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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 해협... 700m 해협서 제국이 명멸했다] ['처음부터 다시' 푸틴] .... [푸틴의 '大橋패권'... ]

뚝섬 2022. 12. 28. 09:40

[보스포루스 해협, 흑해와 지중해 잇는 바닷길… 폭 700m 해협서 제국이 명멸했다] 

['처음부터 다시' 푸틴] 

['첫 공식 차르' 이반 4세] 

[푸틴의 '大橋패권'... ]

 

 

 

보스포루스 해협, 흑해와 지중해 잇는 바닷길… 폭 700m 해협서 제국이 명멸했다

 

[주강현의 해협의 문명사]

 

보스포루스 해협 양옆으로 튀르키예 최대 도시이자 세계적 관광지인 이스탄불 시가지가 들어서 있는 모습. 이 해협을 통해 마르마라해가 흑해와 연결되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난다. /AP 연합뉴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협 관광지’는 보스포루스해협이다. 튀르키예 방문객 대부분이 이스탄불을 방문하며, 이스탄불의 핵심이 보스포루스해협이기 때문이다. 최단 폭이 서울 시내를 관류하는 한강(약 1㎞)보다도 좁은 700m다. 강처럼 흘러가지만 최대 수심이 110m 달하므로 만만한 해협이 아니다. 거친 역사의 격랑을 안고서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 등이 해협에서 명멸해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하여 지중해의 마르마라해와 흑해가 연결된다.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가 해협에서 조우한다. 인구의 3분의 2는 역사·상업지구인 유럽지구, 3분의 1은 동쪽 아시아지구에 산다. 그런데 애써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하는 방식은 유럽 중심 사고이며, 그냥 해협이 가로막을 하나의 유라시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인식은 늘상 튀르키예가유럽인가 아시아인가라는 해묵은 정체성 논쟁과 연결되어 있다.

 

이스탄불은 기원전에 비잔티온(나중에 비잔티움)으로 건설된 이래로 문명의 십자로로 기능해왔다. 아나톨리아 반도를 거쳐온 실크로드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해협을 건너면 곧바로 로마로 들어간다. 반대로 로마제국에서 건너온 물산이 이스탄불을 거쳐 페르시아만의 바그다드와 바스라로 넘어가며, 거기에서 배에 실려 인도나 중국으로 갔다.

 

동로마의 소멸은 흔히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로 묘사된다. 십자군전쟁 이래로 기독교도의 거친 공세가 훑고 지나간 터전이 이교도의 손에 의해 함락되는 최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한판 붙은 1453년의 공성전이 보스포루스해협에서 벌어졌다. 이후 정교회의 아야소피아가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된 것이 상징적 징표다.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으로 이스탄불에 뿌리내렸고, 동지중해는 물론이고 흑해도 제국의 판도 내로 접수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최후가 비장했던 만큼 오스만제국의 최후도 비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이 패배하자 해협은 영국, 프랑스, 그리스 등 연합국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른바 중동으로 나아가는 교두보로 활용되었다.

 

보스포루스해협을 이스탄불 중심의 국지적 공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해협은 내해인 마르마라해로 이어지고, 다시 다르다넬스해협을 통과하여 에게해로 연결된다. 다르다넬스해협은 고대 트로이가 있던 문명의 거점으로 헬레의 바다라는 뜻의 헬레스폰토스해협으로 불렸다. 트로이전쟁의 신화와 역사가 다르다넬스해협에 각인되어 있다. 다르다넬스해협도 최소 폭은 1.2㎞에 불과하며 서쪽의 유럽, 동쪽의 아시아를 연결한다. 아나톨리아 반도가 유럽 대륙과 2개의 해협을 통하여 조우한다. 흑해에서 보스포루스, 다르다넬스 두 개의 해협을 관통하여 에게해에 당도하는 것이다.

 

해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진다. 북쪽의 흑해는 케르치해협을 통하여 아조우해와 연결된다. 케르치해협은 한국인에게는 낯선 명칭이다. 케르치 동쪽은 러시아, 북쪽과 서쪽은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와 면한다. 아조우해는 오스만제국의 관할에 있던 시절에는 ‘물고기해’로 불렸다. 우크라나이나-러시아 전쟁의 격전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케르치해협 역시 보스포루스해협만큼이나 간격이 좁다. 여기에 놓은 케르치 대교(일명 크림대교)는 동쪽의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한다. 해협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본디 1943년에 나치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미완성으로 끝났다. 구소련 시절에도 끊임없이 해협을 이으려 노력하다가, 러시아가 크림을 점령한 이후 2018년에 다리를 놓았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10월 이 다리를 일부 폭파하여 상징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아조우해가 오스만제국의 내해로 존재했을 당시, 슬라브의 백인 노예들이 흑해를 거쳐서 이스탄불로 팔려왔다. 오늘날 동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백인 노예가 이스탄불의 할렘까지 흘러온 것이다. 20세기에 소비에트가 성립되면서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북쪽은 전일적인소련의 바다 변했다. 그렇지만 이스탄불이 전략적으로 존재하는 흑해에서 지중해로 가는 뱃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소련이 해체되고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아조우해와 흑해 연안에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은 새로운 문명의 부침이 해협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뜻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3 지중해가 3개의 해협으로 연결되는 전략적인 이다. 케르치-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3개의 해협이 아조우해-흑해-에게해를 연결한다. 단순하게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를 뛰어넘어 북쪽의 흑해 문명권과 남쪽의 지중해 문명권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튀르키예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러시아 함대가 보스포루스해협을 빠져나가려면 튀르키예의 감시와 규제를 받아야 한다.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튀르키예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도 해협을 통과하여 흑해로 진입하려고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튀르키예의 눈치를 봐야 한다. 게다가 일대일로의 육지 노선 종착역의 하나는 결국은 아나톨리아 반도이고, 이스탄불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처럼 해협과 내해가 삼중으로 연결되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 3중의 해협과 세 바다의 운명적 만남은 전적으로 지구의 지질 변화라는 장기 지속의 산물이다. 간빙기에 빙하가 녹으면서 흑해와 아조우해가 만들어졌고, 해협도 탄생했다. 한창 전쟁 중인 아조우해는 수심이 얕아서 항해가 쉽지 않다. 수많은 물고기가 탄생하고 서식하는 보육장이기도 하다. 흑해에서 살아가는 많은 물고기를 키워내는 생명의 바다가 전쟁 때문에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주강현해양문명사가· 제주대 석좌교수, 조선일보(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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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푸틴 

 

1968년 소련에서는 영화 '방패와 칼'이 최고 인기였다. 2차 대전 때 독일에서 암약한 소련 스파이가 주인공이다. 열여섯 살 소년 푸틴이 이 영화에 푹 빠졌다. '조국은 어디서 시작되는가'란 주제가를 지금도 외운다고 한다. 원래 선장이던 꿈이 스파이로 바뀌었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KGB 지부를 찾아가 '스파이가 되는 법'을 물었더니 한 장교가 귀찮은 듯 "법대를 가라"고 했다. 푸틴은 정말 법대를 나와 KGB 요원이 됐다. 

 

▶옐친의 크렘린궁에 중용된 푸틴은 1996년 플레하노프 광산연구소의 대학원 과정에 등록했다. 법학이 아니라 천연자원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러시아를 다시 부강하게 하려면 가스·석유 같은 자원 개발과 수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봤다. 실제 2000년에 집권한 뒤 러시아 수출의 천연자원 의존도를 40%대에서 70%까지 끌어올렸고 미·이라크 전쟁으로 고유가가 지속되자 달러를 벌었다. 지금 푸틴의 크렘린궁은 유럽으로 연결된 가스·송유관을 움켜쥔 거대 기업이나 다름없다.

 

▶'푸틴의 금고지기'로 불렸던 한 금융인이 "푸틴은 권력의 원천을 군·경찰이 아니라 TV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집권 1년 만에 러시아의 주요 채널 3곳이 크렘린 통제에 들어갔다. 이 TV들은 웃통을 벗거나 전투기를 모는 푸틴 모습을 내보낸다. 2009년 한 소도시 공장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밀린 임금을 달라는 시위가 일어나자 푸틴이 직접 달려갔다. 사장들을 모아놓고 "당신들 욕심 때문에 주민이 피해를 보면 용서 않겠다"고 다그쳤다. 사장들이 임금 지불을 약속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러시아 하원이 엊그제 대통령 임기를 3연임까지로 제한하는 규정을 무력화하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지금도 연임 중인 푸틴은 2024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데 헌법을 고쳐 2024년 출마자부터 선수(選數)를 '제로(0)'로 만들자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라는 것이다. 이대로면 푸틴은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그 경우 푸틴은 총리를 지낸 기간을 포함, 36년 통치로 스탈린의 30년을 뛰어넘는다. 

 

▶푸틴을 보며 갑자기 등장한 세계의 스트롱맨들 현황이 궁금하다. 중국 시진핑은 우한 코로나 창궐 주범에서 갑자기 '퇴치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또 '승리'한 것이다. 그는 종신 집권이 가능하다. 트럼프는 방역 책임자가 코로나 위험성을 공개하자고 하자 전화로 고함쳐 겁먹게 했다고 한다. 스트롱맨들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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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식 차르' 이반 4

 

러시아 영광 이끈 절대군주… 왕비 잃자 폭군으로 변해

재임 초반엔 시베리아·볼가강 등 영토 확장하며 탁월한 리더십 발휘
후반기엔 반대파 잔혹하게 숙청
푸틴 대통령 4선에 '차르 부활' 비판

 
얼마 전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대통령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네 번째 취임식이 열렸어요. 푸틴은 2000~2008년 연달아 두 번 대통령을 지낸 뒤 잠시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대선을 통해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했지요. 그리고 지난 3월 치러진 대선에서 또다시 당선돼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예정이랍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공화국인 러시아에 전제 군주(나라의 모든 권력을 군주가 쥐고 군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 '차르(tsar)'가 부활했다며 비판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러시아 역사에서 차르는 어떤 의미일까요?

◇밝게 빛났던 이반 4세의 치세 전반

15세기 이전까지 러시아는 여러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었어요.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시기에는 그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죠. 그러나 이반 3(1440~1505)가 모스크바 대공(大公·작은 나라의 군주)이 된 뒤 몽골 지배에서 벗어났고, 러시아 동북부 일대를 통일하면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거듭났어요.

 

한 귀족(오른쪽)을 강제로 차르의 옥좌에 앉힌 뒤 반역죄라며 위협하고 있는 오프리치니크 모습/위키피디아

 
이반 3세는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 황제의 조카와 결혼해 로마제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어요. 또 스스로를 '차르(황제)'라 부르고 강력해진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크렘린궁을 개축했어요. 이렇게 이반 3세는 러시아가 전제 군주 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닦아 '이반 대제(大帝)'로 불렸지요.

이반 3세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바실리 3가 왕위를 이어받아 30여 년간 통치했어요. 그런데 바실리 3세가 사망하자 고작 세 살이었던 장남 이반 4(1530~1584·이하 이반)가 왕위를 물려받았지요.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당시 유력한 두 귀족 가문이 번갈아가며 대신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이반은 어머니가 귀족들에게 독살당하는 등 귀족들의 치열한 권력 암투를 목격하며 자랐고, 그 과정에서 숱한 수모를 당하며 의심 많고 냉혹한 성격을 갖게 됐어요.

이반은 열일곱 살이 되자 교회에서 정식 대관식을 치렀어요. 이때 공식적으로 '차르'라는 칭호를 채택했지요. 이반 3세를 비롯한 이전 통치자들은 공식적으로 여러 작은 나라의 대공일 뿐이었는데, 이반 4세는 처음으로 '모든 러시아의 차르'인 황제 자리에 오른 거예요.

이반은 대관식 후 차르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주력했어요. 우선 귀족과 성직자, 고위 관료, ()상인 등 각 계층의 대표자로 구성된 '젬스키소보르(전국 회의)'를 소집해 국정의 주요 사안을 논의했어요. 이를 통해 귀족의 일방적인 횡포를 막으려 했던 거지요. 대외 원정에도 적극 나서 카스피해 연안과 볼가강(러시아 서쪽 강)을 러시아 영토로 만들었어요. 또 시베리아 지역을 정복해 러시아가 동쪽으로 광대한 영토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죠.

◇아내의 죽음, 폭군으로 돌변하다

치세 초반 탁월한 리더십으로 러시아의 영광을 이끌던 이반은 1560년 사랑하는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돌변해요. 어린 시절 귀족들의 궁중 암투를 경험했던 그는 왕비가 독살당했다고 믿었지요. 이반은 복수심과 분노에 찼고, 이후 자기 측근을 비롯한 주변 귀족 세력들을 숙청해나가기 시작했어요.

이반은 전 국토를 차르의 직영지인 '오프리치니나'와 귀족들의 영지인 '젬시치나'로 구분하고 자신의 땅을 충신들에게 나눠줬어요. 이반에게 영토를 받은 사람들을 '오프리치니크'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별도의 특별 군대를 조직해 차르의 손과 발이 되어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어요.

오프리니치크의 테러 대상은 차르에게 저항하는 세력과 그 가족들이었어요. 하지만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무차별적인 테러를 벌이기도 했지요. 희생된 귀족의 재산은 국가로 몰수되었고, 붙잡힌 사람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어요. 1570년 오프리치니크는 '노브고로드'라는 도시에 몰려와 6주간 3만여 명을 학살하고, 같은 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간첩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100여 명을 처형하기도 했어요.

오프리치니크는 검은 옷에 검은 말을 타고 개 머리와 빗자루를 말 안장에 매단 채 온 나라를 누볐어요. 차르에 반대하는 이들을 개처럼 물어뜯고 빗자루로 쓸어버리겠다는 의미였죠. 이들로 인해 러시아는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고, 이반의 권력은 더 막강해졌어요. 이를 통해 정적(政敵)이 모두 제거됐다고 생각한 이반은 오프리치니크를 해산한 뒤 모조리 몰살했지요. 이에 당시 유럽 사람들은 그를 'Ivan the Terrible(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이반)'이라고 불렀어요.

◇번개처럼 빛나고 벼락처럼 두려웠던 황제 

러시아 거장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죽어가는 아들. 

 

이반의 광기(狂氣)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말년엔 자신의 아들을 때려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어요. 1581 11월 이반이 며느리인 황태자비의 옷매무새를 보고 잔소리를 했는데 아들인 황태자가 제 아내 편을 들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몽둥이로 아들의 머리를 내려친 거예요. 정신을 잃고 쓰러진 황태자는 며칠 후 죽고 말았지요. 이를 계기로 9세기 무렵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류리크 왕조'의 계보가 끊어졌고, 이후 러시아에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섰답니다.

이반의 통치 후반기, 러시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스웨덴에 발트 연안을 비롯한 많은 영토를 빼앗겼어요. 이반은 1584년 며칠을 울부짖으며 궁 안을 헤매다 죽었다고 전해지는데요. 훗날 소련에서 이반의 시신을 부검해본 결과 독살로 판명됐다고 해요.

러시아를 단단한 토대 위에 세운 능력 있는 군주이자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인 폭군이라는 두 가지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이반 4. 번개처럼 빛나면서 벼락처럼 두려운 군주였다는 의미를 지닌 '뇌제(雷帝)'라는 별명은 그의 삶을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는 듯해요.

[차르(tsar)]
슬라브계 여러 국가의 군주()를 부르는 이름이에요. 라틴어 '카이제르'에서 유래했는데, 로마 황제를 일컫는 말이었죠. 18세기 표트르 대제 때 정식 칭호가 '임페라토르(황제)'로 바뀌었지만, '차르'는 이후에도 러시아 황제를 일컫는 관습적 명칭으로 사용됐답니다.


-공명진 숭문중 역사 교사/기획·구성=박세미 기자, 조선일보(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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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大橋패권'

 

청바지 입고 직접 트럭 몰며 19㎞ 크림대교 건너는 쇼 연출… 영유권 확고히 한다는 뜻 과시
우크라이나 "국제법 무시" 반발

사할린에도 10㎞ 다리 추진… 日과 영토분쟁 쐐기 박으려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현지 시각)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주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개통식에서 직접 트럭을 몰고 다리를 건너기 위해 운전석에 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현지 시각) 러시아 남서부 도시 타만에 나타났다. 이곳에서 크림(Crimea)반도를 연결하는 19㎞짜리 '크림대교'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청바지에 점퍼를 걸친 푸틴은 러시아제 대형 트럭 '카마즈'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양쪽 사이드 미러 위에는 러시아 국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푸틴이 맨 앞에서 트럭을 출발시키자 30여 대의 다른 트럭들이 뒤를 따랐다. 19㎞를 16분에 주파해 크림반도에 도착한 푸틴은 개통식에서 "세기의 대역사를 완성한 여러분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크림대교는 포르투갈의 '바스쿠다가마 대교'(17.3)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가 됐다.

푸틴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강제로 빼앗은 뒤 이 다리를 건설해 크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해 왔다. 2016 2월 본격적으로 건설에 들어간 이 다리는 오는 11월 개통 예정이었다. 하지만 푸틴의 재촉에 공기(工期) 6개월이나 앞당겼다. 인부 15000명을 투입해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쉼 없는 공사를 진행했다. 왕복 4차선에 하루 4만대의 차량이 오가며 연간 1400만명을 실어나르게 된다고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이 보도했다. 공사비는 36억달러( 39000억원)가 투입됐다.

푸틴은 개통식에서 "우리 아버지들이 살던 차르 시대부터 이 다리를 꼭 만들고 싶어 했다"고 했다. 선조들의 염원을 자신이 이루어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크림대교는 2차 대전 때 만들어진 적이 있다. 75년 전 독일이 히틀러의 지시로 다리를 건설하던 중 완공하지 못하고 연합군에 밀려 퇴각했다. 소련의 스탈린이 그 공사를 이어받아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소련은 1944년 다리를 개통시켰지만 급조된 탓에 다리를 강타한 유빙(流氷)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6개월 만에 무너져내렸다. 크림대교엔 3명의 독재자(히틀러·스탈린·푸틴)와 영토 분쟁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크림대교 개통에 대해 볼로디미르 그로이스만 우크라이나 총리는 "크림반도를 일시 점령한 러시아가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유럽과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통치를 불법 침략으로 간주해 경제 제재를 가하는 중이다.

푸틴의 '대교 패권주의'는 러시아 동부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본토와 사할린섬을 잇는 가칭 '사할린 대교'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푸틴은 "사할린을 이대로 방치하지 않고 본토와 연결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일본 우익은 사할린섬 남쪽 일부와 홋카이도(北海道) 동쪽의 쿠릴열도가 일본의 영토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푸틴은 사할린을 러시아 본토와 연결해 사할린이 러시아 영토라는 사실에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다.

사할린 대교의 길이는 현재 10㎞로 예상된다. 어떤 구간에 가설하느냐에 따라 크림대교보다 더 긴 다리가 등장할 수도 있다. 막심 소콜로프 교통부 장관은 14 "올해 안에 건설 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며 다리가 아닌 해저터널을 놓는 방법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조선일보(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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