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의 기원]
[로마-흉노 망국으로 이끈 실크의 치명적 매력]
[“2300년 전 거대 제국 이룬 흉노, 비밀병기는 메신저”]
로마-흉노 망국으로 이끈 실크의 치명적 매력
《인류의 역사는 옷과 함께했다. 동물과 달리 몸의 털을 줄이고 지능을 키우면서 인간은 기후와 환경에 적절한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옷이다. 지금도 명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옷을 의미하는 이유다. 모피가 추운 겨울을 대표하는 명품이라면 실크는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의 최고 사랑을 받은 명품이다. ‘실크로드’라는 말에 숨겨진 진짜 ‘실크’가 가진 수천 년 명품의 역사를 살펴보자.》
황금 못지않은 명품

실크로드에서 발견된 2000년 전 중국제 실크. 강인욱 교수 제공
흔히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한다. 정작 고대의 어떤 기록에도 실크로드 같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19세기 말 독일의 학자 리히트호펜이 주장한 것이다. 그는 해양을 통한 식민지 경쟁에서 밀려버린 독일의 대안으로 바다를 거치지 않아도 중국으로 이르는 무역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그 길을 중국의 명품을 대표하는 실크의 길로 명명했다. 로마 이래로 서양 사람들에게 실크는 황금보다도 값진 명품이라는 인식이 강렬하게 각인돼 왔다. 실제로 실크는 고대에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교역에서 주요한 명품이었다. 그 배경에는 험난한 내륙을 가로지르는 교역로라는 지리적 특성이 있다. 배에 많은 짐을 실어 나르는 바닷길과 다르게 내륙은 낙타의 등에 짐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가볍지만 고부가가치의 명품을 주로 거래했다. 향료나 비단 같은 물건이 최적이었다. 이제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실크와는 전혀 관계없이 세계 곳곳을 잇는 무역로에 ‘실크로드’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실크는 고부가가치의 명품 교역품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실크의 기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낸 흔적이 보인다. 누에 벌레는 뽕잎을 먹고 입으로 다시 토해서 실을 뿜어 고치를 만든다. 예전부터 고치 안에 있는 번데기는 주요한 단백질원으로 널리 사용됐다. 고치 속 번데기를 꺼내 먹는 과정에서 고치가 가진 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다. 다만, 야생의 누에에서 뽑아낸 원시적인 실크는 서로 끈적거리게 엉키고 거칠어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실크가 명품으로 되는 데는 고르게 실을 잣는 양잠기술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한나라 시절에 양잠기술이 최절정에 달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도 즉위 직후 6부를 돌면서 양잠을 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실크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고대의 전문화된 기술을 의미한다. 최고의 ‘명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재료 자체보다는 최고의 기술이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실크라는 명품에는 누에 벌레의 선별과 실을 뽑는 일련의 양잠기술 획득이 필수다. 고대 이래로 그 노하우를 유지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사업이었다. 그래서 고대부터 양잠을 관장하는 신께 드리는 제사가 동아시아에서 널리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의 제도에서 따온 왕비가 직접 참석하는 ‘선잠제’를 거행했다.
실크 두른 3000년 전 청동신상
그런데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양잠의 신을 모시는 의식의 기원은 실제로는 중원지역이 아니라 남서부의 쓰촨 지역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대 이래로 중원과는 다른 쓰촨 분지의 사람들은 고대에 파와 촉 사람이라는 뜻으로 파촉(巴蜀)이라고 불렸다. 유비가 세운 촉(蜀)나라로도 유명한 촉이란 이름의 한문은 뽕나무에서 기어 다니는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것이다.

과거 진귀했던 실크는 동서 문명을 잇는 명품 교역품이었다. 중국 싼싱두이에서 발견된 3000년 전 청동 신상. 신상 중에는 비단을 두른 것도 있으니, 바로 양잠의 신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촉나라의 선조를 잠총(蠶叢)과 종목(縱目)이라고 기록했다. 종목은 세상을 굽어보는 천리안이요, 잠총은 양잠을 관장하는 신이다. 우리로 말하면 단군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양잠의 신인 셈이다. 잠총과 종목의 실체와 쓰촨 지역의 오랜 양잠기술은 실제 고고학 자료로도 증명됐다. 2021년에 중국을 뒤흔든 대형 발굴이 쓰촨의 수도 청두 근처인 싼싱두이(三星堆)에서 벌어졌다. 중국중앙(CC)TV는 일주일 가까이 발굴을 생중계할 정도였다. 바로 이 유적은 3000년 전 쓰촨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모시던 제사 터다. 특히 제사구덩이에서 툭 튀어나온 눈에 황금마스크를 한 청동신상이 다수 발견됐다. 신상을 감싼 직물을 감정한 결과 양잠을 해서 뽑아낸 실크로 판명됐다. 이로써 마치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이 신상은 잠총과 종목이라는 결론이 났다.
유목민 야성 잃게 한 매력
2017년 국립문화재연구원과 몽골 고고학연구소는 몽골의 가장 서부인 알타이 산맥 근처의 시베트 하이르한이라는 유적에서 약 2000년 전 중국제 비단옷을 입은 미라를 발굴했다. 이 지역은 기후 조건이 좋아서 미라와 의복들이 종종 발견된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주로 혹독한 초원의 기후를 견디고 말을 타기 편한 가죽옷이 주로 발견됐다.

(좌) 2017년 몽골 서부 알타이 산맥 근처 시베트 하이르한에서 출토된 약 2000년 전의 비단옷/(우) 1920년대 몽골 노인울라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실크.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전형적인 중국제의 비단이 발견되었다. 혹자는 비단을 입었으니 중국인이 아니냐는 오해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초원 깊숙한 지역에서 중국인이 유목을 하며 살 리는 없다. 반대로 유목민들 사이에서 비단이 널리 유행했다는 뜻이다. 흉노 시절에 비단은 왕에 해당하는 선우와 귀족들만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린아이도 비단옷을 입을 정도로 몽골 알타이 지역에서 비단이 널리 유행했다.
그만큼 중국의 실크가 유명했다는 뜻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목민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황금보다 값비싼 실크를 몸에 걸치면 험한 말 타기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망명한 흉노 선우의 신하는 비단을 좋아하다가는 결국 망할 것이라는 눈물의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실크를 구입하는 데 막대한 부를 소모했고, 또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중국제 마차를 몰고 다니면서 흉노는 점차 유목민의 야성과 힘을 잃어갔다.
로마의 곳간 탕진시킨 실크
흉노뿐이 아니라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기원전 55년에 파르티아와 벌인 카레이 전투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2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포로로 잡혔지만 정작 파르티아는 100명도 안 되는 사상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 패배 와중에도 로마인들은 파르티아인이 두른 실크에 반했고, 이후 로마의 부를 탕진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이기도 했다.
실크는 20세기 근대 일본을 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 상징성을 근거로 2014년 일본은 근대 실크산업의 산실인 도미오카 제사장(실크를 뽑는 공장)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일본이 최초로 등재한 근대화 산업유산이기 때문이다. 고대에 양잠기술은 중국에서 고도로 발달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서양에 뒤처졌고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현대적인 양잠기술을 도입해 현대화된 실크 제품을 생산했다. 과거의 전통을 현대의 기술로 개혁하는 ‘동도서기’의 상징인 셈이다. 이후 현대화된 양잠산업은 메이지 유신의 경제적 밑천이 돼 일본이 경제를 일으키던 1920년대에는 한 해 수출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크는 동서 문명의 기원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실크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그 대신 다양한 화장술로 자신을 가꾸거나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재질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실크 같은 명품 콘텐츠를 찾아 헤매고 있다. 반도체 같은 작고 가벼운 기술, 그리고 사람을 매혹시키는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로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실크의 역사가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동아일보(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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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년 전 거대 제국 이룬 흉노, 비밀병기는 메신저”
《“까똑.”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모바일 메신저의 알림, 때로 귀찮지만 이제 우리 삶은 이 메신저가 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 메신저로 열린 스마트한 세상이 도래하면서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했던 도장 찍힌 문서들은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장, 합격통지서 등 우리 인생의 주요 고비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는 문서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우리 삶에서 메신저가 그 모든 결정을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백신 접종을 비롯한 병원 예약, 결혼과 부고는 물론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선거에서도 메신저를 통한 연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때로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결정하는 메신저의 등장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메신저로 나라를 움직인 것은 지금만의 일은 아니다. 바로 2300년 전 중국의 북방과 몽골 일대를 호령하던 유목 제국 흉노는 글자 없이 메신저로만 거대한 제국을 일궈냈다. 중국과 맞서 거대한 제국을 일사불란하게 메신저로 다스렸던 그 모습에 스마트 사회에 적응하는 우리를 비추어보는 것은 어떨까.》
메신저로 이어진 거대 제국
흉노와 적대적이던 중국은 그들의 야만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들은 글자가 없고 나무에 새겨 표시하거나 끈을 꼬아서 뜻을 전한다.” 마치 글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런데 천하의 진과 한나라는 수백 년간 글자도 모르는 그들에게 쩔쩔매고 살았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흉노는 간결한 메시지로 통치했으며, 국가 조직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조직을 정비했다. 그리고 법률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했다. 흉노의 정부조직은 가운데 왕을 두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 측근을 배치하는 식이었다. 마치 사람에게 두 팔이 있는 것과 같다. 그 하부조직은 마치 손가락처럼 십진법에 근거해 5명 또는 10명 단위로 조직을 만들었다. 이런 조직은 인간의 신체적인 특징과도 잘 부합되니 특별한 가르침이 필요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다시 그 밑에 하부조직을 만드는 식으로 하니 아무리 세력이 커져도 자신이 상대하는 이는 10명 내외의 사람들이다. 그렇게 간결하되 엄정한 원칙은 유목민들이 순식간에 초원, 나아가 세계를 정복하는 기반이 됐다. 집 없이 사방을 다니는 신속성에 간결한 정보력까지 갖춘 흉노는 이후 유목국가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흉노 이래로 초원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국가들이 발흥하며 끊임없이 역사를 바꾸는 주체가 됐다. 급기야 흉노 등장 후 1300년이 지난 시점에 등장한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도 기본적으로 흉노와 비슷한 조직이었다.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모스크바, 유럽까지 정복한 몽골 제국에서 메신저는 빠르게 정보를 이동시키는 역참으로 이어졌고, 몽골 제국의 성공의 비결이 됐다.
한자를 사용한 흉노

2020년 몽골 울란바토르대 발굴팀이 2200년 전 흉노의 성터에서 발굴한 올지스톰의 기와. ‘하늘의 아들인 선우, 영원히 복을 받으라’는 글자 11자가 새겨져 있다. T 이데르항가이 울란바토르대 교수 제공
후대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해보니 글자를 모른다는 중국 기록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흉노는 한문을 잘 알고 있었고,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2020년 몽골 울란바토르대 발굴팀은 2200년 전 흉노의 성터를 발굴했다. 여기에서 ‘하늘의 아들인 선우(흉노의 왕), 영원히 복을 받으라’는 글자 11자가 새겨진 기왓장(막새기와)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집을 지으면 담벼락이나 처마 끝을 둥글게 장식하는 막새기와는 본래 중국 사람들의 전통이다. 그런데 흉노인들이 만든 기와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11자인데 실제 중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글자를 넣은 적이 없다. 또 내용도 흉노인들을 위한 맞춤형이다. ‘하늘의 아들 선우’라는 구절은 흉노인들이 자신들의 왕인 선우를 부를 때 외치는 ‘텡그리 후 샤뉘’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길상어(축복의 말)를 적절히 조합해서 흉노인의 기개를 드러냈다.

2200년 전 흉노의 성터였던 몽골 하르가닌 두르불진의 전경. 이곳에서 글자가 새겨진 기왓장이 나왔다. T 이데르항가이 울란바토르대 교수 제공
사실 흉노인들은 원래 유목을 하고 한문을 널리 쓰지 않았다. 게다가 유목을 하면서 사방을 다니는 흉노에게 성은 별로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 성터의 기와는 흉노인들이 아마 중국이나 다른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맞이하는 용도였을 것이다. 외교사절단이 오면 보란 듯이 마치 플래카드를 걸듯이 명문의 글자를 걸어놓은 것이다.
메신저로 연애편지 보낸 선우

위 사진은 몽골 유목민의 말에 새겨진 기호(점선 안). 과거부터 유목민들은 이처럼 문서 대신 기호 등을 이용해 소통했다. 아래는 흉노 무덤에서 출토된 골제 주사위와 그 위에 새겨진 기호. 강인욱 교수 제공
그뿐 아니다. 흉노는 글자를 영악하게 외교전술에도 사용했다. 흉노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와 메신저를 적절히 이용해 중국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섣불리 흉노를 정벌하려다가 되레 크게 패하고 난 후에 중국은 저자세를 취했고, 흉노 역시 적절하게 대응했다. 당시 두 나라는 목간에 글자를 적어서 뜻을 주고받았다.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죽고 난 후 그의 부인이었던 여후(呂后)가 정권을 잡았다. 수많은 부인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 끝에 얻은 자리였으니 동양의 ‘블러디 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기세가 등등했다. 그런데 권력자 여후를 흉노의 왕인 묵특선우(모둔선우)는 글자 그대로 음담패설 같은 메시지로 도발했다. “듣자 하니 그대는 과부라고 하고 나도 홀몸이라 재미없고 우울하니 우리 만나서 외로움을 달랩시다”는 내용이었다. 좋게 말하면 러브레터요, 나쁘게 말하면 저열해 보이는 외교적 도발이다. 당장 사신의 목을 치고 흉노와 전쟁을 벌이고 싶었겠지만, 당시 한나라는 흉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북방에서 글자도 없이 사는 유목민의 왕이다.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흉노의 왕이 ‘러브레터’를 만들어 보냈는데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여후는 분통을 억누르고 “내가 나이가 많아서 연애는 어렵고, 대신에 마차와 말을 보내니 즐겁게 노십시오”라고 달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흉노의 계책은 그뿐이 아니었다. 묵특선우의 다음 흉노 왕인 노상선우가 중국에 보낸 죽간은 길이가 1척 2촌(약 27cm)이었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 황제가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죽간은 1척 1촌이었다. 흉노는 얄밉게도 중국의 황제가 쓰는 것보다 약 2.5cm가 긴 1척 2촌의 목간에 메시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 흉노가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를 메시지에 담아 전한 것이다. 이렇듯 흉노인들은 글자를 몰라서 안 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효율적인 국가 통치를 위해서 쓰지 않았을 뿐이다. 대신에 글자의 효용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적절히 사용했었다. 한나라가 200여 년간 흉노에게 쩔쩔매고 매년 엄청난 양의 공물과 공녀를 바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고립 사회에 다시 돌아보는 메신저
어느덧 종이가 사라지고 우리의 모든 일이 메신저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연락은 구두로 명령을 내리고 전령이 전하는 유목민 시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십진법에 기초해서 운용되는 유목민 조직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소위 ‘단톡방’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과거 유목민의 메신저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 정보가 메신저를 타고 넘나들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제 메시지는 부차적인 게 아닌,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 우리가 얼마나 건전하고 올바른 메시지를 받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자 대신 메시지로만 유라시아를 제패했던 흉노에서 칭기즈칸에 이어지는 유목민의 지혜를 다시 돌아볼 때가 됐다. 메신저를 알고 메시지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21세기 승자가 될 것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동아일보(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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