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파도서 좌초… 인텔의 '구원투수'도 짐 쌌다]
[퀄컴에 인수설까지… ‘반도체 제국’ 인텔의 굴욕]
[죽느냐, 사느냐… 인텔, 군살 도려낸다]
['마케팅·재무통 CEO' 16년… 인텔, 돈 좇다 핵심칩 놓쳤다]
[인텔의 '50년 반도체 패권' 흔들리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 36년 ‘인텔맨’ 사내연애로 불명예 퇴진]
AI 파도서 좌초… 인텔의 '구원투수'도 짐 쌌다
인텔 CEO 겔싱어 3년 만에 사임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2일 물러났다. 추락하는 인텔의 구세주가 되겠다며 2021년 2월 CEO에 올랐지만, 실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왔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 졸업 직후 입사해 총 33년 반을 근무했던 회사를 떠나며 “인텔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다”며 “오늘은 시원섭섭(bittersweet)한 기분”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겔싱어의 퇴임은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물결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인텔의 진정한 신봉자(true believer)’라 불렸던 그는 CEO 취임 직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고 추진했지만, TSMC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막대한 적자만 기록하며 주저앉았다. 야심차게 내놓은 AI 가속기 ‘가우디 시리즈’도 엔비디아의 벽에 막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겔싱어의 퇴임은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한번 뒤떨어진 기술을 회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고 했다.
◇겔싱어, 목표 설정 과했나
겔싱어는 인텔이 수십 년간 군림한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이 지속해서 줄어드는 가운데 고가의 첨단 반도체 제조를 새로운 수입원으로 삼겠다며 파운드리 재진출을 전략으로 내세웠다. 올해 2월 인텔 연례 행사에서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 업계 2위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와 2위 삼성전자가 구체적인 계획조차 내놓지 않은 1나노 공정의 반도체 생산도 내년 시작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에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반도체 업계에선 “너무 꿈같은 얘기를 해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왔다.
그가 공격적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는 사이, 회사의 실적은 해마다 급감했다. 인텔의 연간 매출은 그가 취임하기 전인 2020년 779억달러(약 109조원)에서 올해 510억달러 수준으로 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09억달러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인텔의 연간 적자는 2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 내부에서도 “겔싱어가 산업 변화에 대한 감각을 잃었고, 첨단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공장 짓는 데 너무 집중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 배경이다.
자금과 인력을 쏟아부은 파운드리 성과도 겔싱어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업계에선 인텔이 내년 양산을 계획하던 18옹스트롬(1.8나노에 해당) 공정의 수율은 10%가 채 안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고객사 브로드컴은 인텔 반도체 주문을 취소했다. 첨단 공정 양산이 실현되지 않으며 기대하던 매출도 올리지 못해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인텔은 미 오하이오주·유럽 등지에 계획 중이던 생산라인 건축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해야 했다. 이 여파로 인텔에 예정된 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도 78억6000만달러로 기존보다 6억4000억달러 삭감됐다.
◇인텔의 미래 어디로
인텔은 이사회가 새로운 CEO를 찾는 동안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타우스 수석 부사장이 임시 공동 CEO직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제 인텔이 AI용 반도체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2021년 인텔이 출시한 AI반도체 ‘가우디’는 출시 3년째에도 유의미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겔싱어 CEO 재직 당시 인텔은 가우디 시리즈가 올해 5억달러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 봤지만, 올해 3분기 실적을 공개하면서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정정했다.
올 들어 인텔은 대규모 적자에 직원 1만5000명을 해고하는 등 뼈를 깎는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인텔의 주가는 겔싱어 CEO 취임 후 현재까지 58.87% 하락했다. 겔싱어 CEO의 사임에 한때 5% 가깝게 올랐던 2일 주가도 다시 내려가 전 거래일 대비 0.5% 하락 마감했다.
☞팻 겔싱어
19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8세에 품질관리 기술자로 인텔에 입사했다. 회사에 근무하며 이후 스탠퍼드대학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로 석사를 받았다. 1996년 35세의 나이에 인텔 역사상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근무한 후 회사를 떠났다가, 2021년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했다.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조선일보(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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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에 인수설까지… ‘반도체 제국’ 인텔의 굴욕
PC와 노트북마다 붙어 있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파란색 스티커는 품질 보증서였다.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들어가 있다는 뜻으로, ‘반도체 제국’ 인텔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 제국은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이 인텔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합병(M&A)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미국의 한 자산운용사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투자를 제안한 것도 ‘제국’으로선 굴욕이다.
▷인텔의 적자 규모는 올해 1분기 3억8100만 달러에서 2분기 16억1000만 달러로 불어났다.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올해 들어 20% 오르는 동안 인텔 주가는 55%나 빠졌다. 급기야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에서도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인텔은 전체 직원의 15%인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의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인텔은 반도체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적회로(IC)를 발명한 로버트 노이스, 그리고 IC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든 고든 무어가 함께 1968년 창업했다. 사명인 인텔(Intel) 자체가 ‘집적 전자공학(Integrated Electronics)’의 약어다. 1970년 세계 최초로 D램 반도체를, 1971년 최초의 CPU를 선보였다. 이후 PC 대중화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외계인을 납치해 기술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기술력을 자랑했던 인텔은 이후 PC에서 모바일, 인공지능(AI)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2006년 애플의 아이폰용 칩 생산 요구를 거절할 정도로 변화에 둔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면서 기술 경쟁력이 뒤처졌고, 조직이 비대화되며 의사결정은 굼떴다. “관료제가 인텔을 멍청한 회사로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1등이던 인텔의 몰락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산업의 속성이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로의 이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혁신의 아이콘이 혁신을 게을리하다 도태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인텔의 굴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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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인텔, 군살 도려낸다
위기 타개 비상 계획 준비
한때 ‘반도체의 제국’으로 불리던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독일에 짓기로 한 공장 투자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을 위해 미래 핵심 사업부와 사업을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167억달러(약 22조)를 주고 사들인 자회사 알테라 매각, 300억유로(약 44조원) 투자를 약속한 독일 공장의 투자 백지화 등의 안이 검토되고 있다.
2일 로이터통신은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이 이달 중순 본격적인 비상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16억달러(약 2조 2000억원)라는 대규모 적자를 밝힌 인텔이 인적 구조 조정에 이어 사업 구조 조정까지 단행하며 재무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당초 인텔은 전체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1만5000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텔이 최근 암울한 실적을 보고한 이후 이 같은 구조 조정 논의가 더욱 시급해졌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투자 은행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와 함께 사업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에 직면한 인텔이 자회사를 매각하고 직원들을 무더기로 잘라내는 등 역사상 가장 추운 겨울을 앞두고 있다. 인텔 제국이 추락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핵심 사업 매각
로이터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 3월 자회사로 분사한 FPGA 업체 알테라를 매각할 계획이다. 앞서 인텔이 이 2015년 이 회사를 인수한 지 9년 만이다. FPGA는 추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로, 용도에 맞게 회로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다. 이 같은 특징으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활용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당장 사정이 안 좋은 인텔은 눈물을 머금고 재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당초 이 사업부의 IPO(기업 공개)를 고려했지만 다른 반도체 기업에 완전히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잠재적 인수자 중 하나로 마벨 테크놀로지가 거론된다”고 전했다.
인텔이 유럽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 공장 투자도 잇따라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게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300억유로(약 44조5000억원)를 투자해 짓기로 한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장이다. 지난해 인텔은 1.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급 공정을 도입해 독일을 인텔의 유럽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1년 만에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인텔은 프랑스 파리 인근에 추진하기로 한 AI와 HPC(고성능 컴퓨팅) 연구·개발 허브 설립 계획을 접었고, 이탈리아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계획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 투자를 줄줄이 보류하는 건 인텔도 기업의 존망을 두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단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파운드리 사업부를 매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인텔은 현 겔싱어 CEO가 2021년 수장 자리에 앉은 뒤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다. 수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총 53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선 내년에도 막대한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다만 로이터는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구조 조정안에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은 아직 포함돼 있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선을 그었다.
◇반도체 호황 때 홀로 몰락하는 인텔
인텔의 실적 부진은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지난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올해 들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로 역대 최대 실적을 쓰고 있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매출이 지난해 대비 100% 안팎 개선되고 있다. 반면 인텔은 올해 들어 부진한 실적을 내며 주가가 50% 이상 하락했다. 30일 기준 주가는 22.04달러로 한창 잘나가던 시기인 1997년 수준이다.
인텔의 끝없는 부진의 원인을 두고 무사안일주의와 관료주의가 고착화된 인텔의 기업 문화가 꼽힌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인텔 이사회에서 립부 탄이 사임했다고 전하며 “반도체 베테랑인 탄 이사가 사임한 것은 인텔의 위험 회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문화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탄 이사는 세계 3대 전자 설계 자동화 업체로 꼽히는 케이던스 회장 출신이다. 로이터는 “탄 이사는 파운드리를 보다 고객 중심으로 만들고 불필요한 관료주의를 없애고 싶어 했지만 관철되지 않자 좌절감을 느꼈다”며 “특히 비대해진 인력 구조, 위험 회피적인 문화, 뒤떨어진 AI 전략 등에 실망하고 회사를 떠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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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재무통 CEO' 16년… 인텔, 돈 좇다 핵심칩 놓쳤다
'끝없는 추락' 인텔, 무슨 일이
인텔이 스마트폰의 두뇌로 통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의 선두 주자 ‘ARM’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적자로 돌아선 실적과 구조 조정에 이어 ARM 지분까지 모두 정리하자 인텔의 위기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상 최대 위기를 맞으면서 인텔의 주가(13일 기준 20.47달러)는 한 달 새 40% 넘게 하락, 27년 전 수준(1997년 초 20.28달러)으로 후퇴했다. 창업자 고든 무어를 비롯해 반도체 전문가들이 이끌었던 인텔이 마케팅과 재무 전문가 출신 CEO(최고경영자)들을 거치면서 기술 주도권을 점차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주력 제품에 안주하며 새로운 기술 혁신에 실패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재무·마케팅 전문가들이 기회 놓쳐
13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인텔은 이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ARM 주식 118만주를 더 이상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인텔이 이번 매각으로 1억4700만달러(약 2000억원)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갖고 있던 주식만 처분한 게 아니다. 인텔은 지난 1일 실적 발표 직후 전체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1만5000명을 감원하고, 배당금도 오는 4분기부터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2분기 16억1000만달러(약 2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전년 동기 14억8000만달러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여파다.
197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했던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이른바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컴퓨터 시장에 안주하면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간과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텔은 모바일 반도체 수요를 놓친 데다, 이제는 AI(인공지능) 반도체 칩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테크 업계에서는 이 같은 위기가 마케팅과 재무 전문가 출신 CEO들이 인텔을 이끌면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다. 반도체 전문가였던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크레이그 배럿이 인텔 CEO로 기술 혁신을 이끌며 전성기를 일궜는데, 마케팅 전문가 출신으로 2005~2013년에 CEO로 재임한 폴 오텔리니와 C OO(최고운영책임자) 출신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2013~2019년 재임)가 인텔을 이끌면서 쇠락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특히 크르자니크는 원가 절감에 목을 매면서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소극적이었다. 모바일 전용 반도체로 넘어가던 시기에 인텔은 경쟁사보다 뒤떨어진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만을 고집해 “사골처럼 우려먹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또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밥 스완(2019~2021년 재임)은 투자 비용 회수를 따지다 오픈AI에 투자할 기회를 걷어찬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통, 재무통 출신 CEO들의 헛발질이 잇따르자 뒤늦게 인텔은 2021년 밥 스완을 경질하고 기술 전문가인 팻 겔싱어 현 CEO를 회사로 다시 불러들였다. 그럼에도 인텔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파운드리는 ‘밑 빠진 독’ 되나
인텔은 강점을 보이던 서버용 CPU에서조차 AMD에 밀릴 처지에 놓였다. 인텔의 데이터센터 부문 올해 예상 매출액은 126억달러로 AMD(129억달러)에 추월당하고 내년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질 전망이다. 역점 사업으로 올해 본격 시작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는 상반기에 총 53억달러 적자를 냈다. 이에 당초 계획했던 투자를 줄줄이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인근에 추진하기로 했던 AI와 HPC(고성능 컴퓨팅) 연구·개발 허브 설립 계획을 접었고, 이탈리아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계획도 중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인텔의 파운드리 수익이 여전히 낮고, 핵심 제품(CPU)에 대한 수요도 거의 증가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인텔에 총 85억달러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한 미국 정부와 인텔이 앞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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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50년 반도체 패권' 흔들리나
인텔 변혁 이끌던 크러재니치 CEO, 부하 여직원과 성추문으로 물러나
퀄컴·구글 등 IT부터 반도체까지 기술 패권 잡으려는 기업 경쟁 활발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해왔던 인텔이 흔들리고 있다.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준 데 이어 AI 반도체·자율주행차용 반도체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는 엔비디아·퀄컴 등 반도체 기업부터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등 IT(정보기술) 기업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여기에 인텔의 변혁을 주도해왔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21일(현지 시각) 사내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갑작스레 사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이 리더십 부재라는 덫에 걸린 사이, 다른 기업들이 속속 치고 나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2위로 밀려난 인텔
인텔은 1968년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창업한 이후 2016년까지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는 세계 모든 PC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부품이었고, 여기서 쌓은 기술력으로 서버용 CPU 시장에서도 독점적인 지위를 장악했다.
이런 인텔은 2000년대 말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신칩 전문 기업이던 미국 퀄컴은 스마트폰의 CPU라고 불리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개발해 삼성전자·LG전자·화웨이 등 세계 스마트폰 업체들을 선점하면서 'CPU=인텔'이라는 공식이 깨졌다. 이는 인텔의 실적 둔화로 이어졌다.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인텔은 작년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블룸버그
크러재니치는 인텔이 흔들리던 2013년 CEO로 선임됐다. 1982년 인텔에 입사해 30년 넘게 엔지니어로 근무한 크러재니치는 CPU에 매출의 90% 이상을 의존했던 인텔의 체질을 AI·자율주행차용 반도체 기술 기업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015년 사물인터넷·자동차 반도체 기업인 알테라를 167억달러(약 18조6600억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AI 기술 기업인 네르바, AI 반도체 기술 기업인 모비디우스를 인수하고 발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섰다. 작년에는 최고 자율주행차 기술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약 17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크러재니치가 갑자기 CEO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인텔은 미래의 성장 동력을 발굴해왔던 선장을 잃은 것이다.
◇미래 반도체 기술 패권 노리는 기업들
인텔이 흔들리는 틈을 타서 세계 반도체·IT기업들은 반도체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이미 10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7나노 공정을 상용화하면서 반도체 제조 기술력을 선도하고 있다.
반면 인텔은 빨라야 내년에 10나노급 공정으로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반도체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 반도체 시장에서도 그래픽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AI 반도체와 자율주행차 전용 반도체 칩셋 개발에서 인텔을 앞서나간다는 평을 받는다. 구글·아마존 등 IT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AI 반도체를 설계하면서 반도체 독립을 추진 중이다. 인텔은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로버트 스완을 임시 CEO로 선임하고 현재 새로운 수장 찾기에 나섰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세계 IT 산업의 두뇌 역할을 해왔던 인텔의 자리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철 기자, 조선일보(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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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
36년 ‘인텔맨’ CEO, 사내연애로 불명예 퇴진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수장,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 시각) 불명예스러운 사임을 발표했다. 사내연애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인텔의 6번째 CEO인 크르자니크는 지난 36년 동안 인텔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인텔은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조사를 통해 크르자니크 CEO가 관리자급 직원에게 적용하고 있는 사내연애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크르자니크의 사임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 ‘실리콘밸리 중심’ 출신 크르자니크…인텔 엔지니어에서 CEO까지
크르자니크는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났다. 산타클라라는 미국의 첨단기술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의 중심지로, 인텔 본사가 자리한 곳이다. 크르자니크는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1982년 인텔 뉴멕시코 공장의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이후 1996년 공장 감독직을 맡으며 관리자로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승승장구한 크르자니크는 인텔의 부사장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3년 5월, CEO자리에 올랐다.
크르자니크는 지난 5년의 임기 동안 PC 중심의 체제를 데이터 중심 체제로 변환하는 데 주력했다. 크르자니크는 인텔의 사업 부문을 인공지능(AI), 무인항공기,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장치, 5G 등으로 확장시켰다. 크르자니크는 또 지난 2016년 자율주행 차량 소프트웨어 장치를 개발하는 이스라엘 업체, 모바일아이(Mobileye)를 153억달러(약 16조원)에 인수하는 등 인텔의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지휘했다.
크르자니크가 추진한 모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 씨넷은 “크르자니크의 임기 동안 인텔은 가상현실(VR)과 모바일 부문에서 경쟁업체에 밀려났다”고 했다. 인텔은 지난해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완전히 발을 뺐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는 2018년 6월 1일 “인텔에 있는 모든 성소수자(LGBTQ) 친구들에게, 행복한 자긍심을!(To my friends in the LGBTQ community from all of us at Intel, happy #Pride!)”이라는 글과 함께 인텔 로고가 박힌 무지개 깃발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한다. /크르자니크 트위터
크르자니크는 사내 소수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개혁도 시도했다. 크르자니크는 지난 2015년 여성과 비주류 소수층 기술직과 관련한 고용 인력 다양화 계획을 발표했다. 크르자니크는 이 계획을 위해 2020년까지 여성과 소수층 엔지니어 등의 고용 유지를 지원하기 위해 3억달러(약 333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크르자니크가 CEO로 있는 동안 인텔의 주가는 약 120% 상승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도 약 18% 증가했다. 뉴욕타임스(NYT) 자체 조사에 따르면 크르자니크의 지난해 연봉은 2150만달러(약 238억원)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CEO 순위 60위에 올랐다.
◇ 36년 ‘인텔맨’ 크르자니크, 불명예 퇴진…“미투 운동 여파”
36년 간 인텔맨으로 몸담은 크르자니크의 결말은 불명예스러웠다. 크르자니크는 21일 사내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크르자니크는 지난 1998년 지금의 아내인 브랜디 크르자니크와 결혼해 십대인 두 딸을 두고 있다.
인텔 이사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최근 조사에서 크르자니크가 인텔 직원과 ‘합의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사회는 모든 직원이 회사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행동 강령을 엄중히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크르자니크의 사임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인텔은 관리자급 이상 직원들에게 사내연애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인텔은 크르자니크가 사임하거나 은퇴할 경우 3800만달러 규모의 보상금을 받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현재 인텔은 크르자니크가 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왼쪽) 인텔 CEO와 그의 부인 브랜디 크르자니크. /크르자니크 트위터
인텔 이사회는 크르자니크 사임 발표 이후 로버트 스완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임시 CEO직을 맡겼다고 밝혔다. 스완 CFO는 2016년 이베이에서 인텔로 적을 옮겼다. 이사회는 회사 내외부에서 차기 CEO 후보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크르자니크의 사임이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여파라는 분석이 나왔다. NYT는 “크르자니크의 사임은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 폭로 사건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 이후 고위 중역진들이 겪고 있는 혼란의 가장 최신 사례”라며 “직장 내 성희롱, 성평등 관련 감독이 강화되면서 나이키, 룰루레몬 애슬레티카 등 많은 기업의 중역들이 회사에서 축출됐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도 “크르자니크의 사임은 미투 시대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새로운 기업 정신에 부합한다”고 했다.
◇ 크르자니크 떠난 인텔, 경쟁 밀려나나…‘기회’라는 전망도
업계에서는 크르자니크가 떠난 인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인텔 주가는 2.4% 하락했다. CNBC ‘매드머니’ 진행자 짐 크래머는 이날 “크르자니크의 사임 소식에 놀랐다”며 “크르자니크는 매우 사려깊은 인물이고, 인텔을 재창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텔의 팔콘(Falcon) 8+ 무인항공기. /인텔 제공
글로벌 금융자문회사 에버코어 ISI의 C.J 뮤즈 애널리스트는 “크르자니크가 사임한 것은 확실히 좋지 못하다”며 “엔비디아, AMD 등 경쟁사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미 투자은행 코웬앤컴퍼니 매튜 램지 애널리스트는 “크르자니크는 인텔이 어려운 시기에 사임했다”며 “지난 2015년부터 회사의 주요 고위직 임원들이 연달아 사임했기 때문에 내부에서 후임자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르자니크가 떠난 것이 인텔의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슈로트 리서치 설립자인 라이언 슈로트 애널리스트는 “인텔은 크르자니크가 떠나면서 황금 기회를 얻었다”며 “(크르자니크 후임으로) 적절한 CEO가 임명되면 인텔은 AI, 5G 등 다양한 개발 영역의 목표 달성을 가속화하고, 치열한 경쟁 중에 있는 생산 프로세스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선목 기자, 조선일보(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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