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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디자인] [수단 방법 안 가렸던 주유소 판촉전... ]

뚝섬 2021. 12. 19. 05:56

주유소 디자인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로스앤젤레스의 주유소.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도심의 주유소는 운전 중 차에 기름이 비어야만 생각나는 장소다. 목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대표적 상업 건물임에도 건축적으로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주유소 디자인은 기능이 위주다. 운전하면서도 멀리서부터 보이는 큰 간판, 차량을 위한 넓은 폭의 진입로, 비를 맞지 않기 위한 지붕 캐노피와 후면의 서비스 공간 배치가 기본이다. 그 디자인이 아주 천편일률적이다. 고속도로나 국도, 서울의 주유소나 시골의 주유소나 브랜드만 다르고 모두 똑같다. 정유회사의 기본 매뉴얼 지침으로 제한이 있겠지만 디자인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독창성이 부여되면 좋겠다.

 

1888년 독일. 베르타(Bertha Benz) 부인은 남편이 발명한 벤츠 자동차를 몰고 만하임부터 포츠하임까지 100㎞ 거리를 시운전했다. 역사상 첫 로드 트립이다. 이때 주유를 위해서 들렀던 비스로흐 마을의 약국은 최초의 주유소로 기록되어 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록펠러와 같은 벤처사업가들이 주유소 사업을 전망했다. 주유 기능에다 음료수, 커피, 신문, 담배의 판매를 겸했다. 점차적으로는 화장실과 세차장, 편의점, 식당, 어린이 놀이터의 기능까지 합쳐진 모습도 갖추게 되었다. 주유소는 자동차 시대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나름의 문화를 구축해왔다. 과거 미국의 필립스66 주유소는 ‘병원처럼 청결한 화장실’을 내세워 광고했다. ‘호두 롤’이 유명한 스터키(Stuckey’s)처럼 맛있는 간식거리로 알려진 주유소도 있었다.

 

텍사스의 주유소.

 

 

미국의 주유소들도 매뉴얼에 따라 지어지면서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장소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 이런 건축물에 대한 역사적 보존이 언급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좋은 건축물은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한다. 맛집처럼 하나의 명소가 된 주유소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장식할 수 있다. 주유소는 짧게 들르는 장소지만, 살면서 아주 여러 번 들르는 장소이다. 그 시간의 모음은 그리 짧지 않다.

 

 

 

미국의 역사도로 66(Route 66)에 남아있는 주유소 타워스테이션(Tower Station).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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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방법 안 가렸던 주유소 판촉전...

 

1995년 1월 서울 용산역 앞의 어느 주유소는 모델 에이전시에 의뢰해 '늘씬한 8등신 여성 모델' 3명을 고용했다. 주유를 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업무는 "고객이 기름을 다 넣고 나갈 때까지 상냥하게 웃으며 말 상대를 해주는 일"이었다. 이 특별 서비스는 몇 달씩 계속됐다. 당시 주유소들의 손님 끌기 경쟁이 얼마나 과열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문은 '고객을 유혹하는 미인계 마케팅'이라고 표현했다(경향신문 1995년 3월 17일 자).

주유소들의 판촉 전쟁은 1993년 7월 현대그룹의 현대정유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불붙었다. 몇 달 뒤엔 정부가 서울 등 6대 도시에 대해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을 없애는 등 설립 규제까지 완화하자 주유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1993년 11월부터 4개월간 새로 생긴 주유소가 860곳에 이르렀다. 업자들은 온갖 사은품을 경쟁적으로 뿌려댔다. 화장지·생수는 물론이고 타월·비누·볼펜·주방용품·꽃씨부터 현미·차조·수수·감자 등 농산물까지 200여 종이나 됐다. 경품으로 승용차를 내건 곳도 있었다.

 

핫팬츠 차림 여대생들이 미소 지으며 고객에게 주유와 유리창 청소를 해 주는 서울의 한 주유소(왼쪽·경향신문 1995년 4월 14일 자). 오른쪽은 주유소에 들어오는 차를 향해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90도로 인사하는 모습(동아일보 1995년 4월 6일 자).

 

주유소 서비스도 완전히 달라졌다. 들어오는 차량에 전 직원이 도열해 "어서 오십시오!"를 외치며 90도로 인사하는 건 기본이었다. 핫팬츠 차림 여대생들이 창유리를 닦아주고 커피와 신문도 제공했다. 서울 강남의 어느 주유소는 "손님이 기다리는 시간을 1초라도 줄여 드리겠다"며 모든 종업원이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쌩쌩 달리며 일했다. 호남정유는 22연승으로 화제를 모았던 자사 여자 배구팀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주유소로 보내 판촉물을 나눠주게 했다. 

 

이런 정도로는 모자랐는지 더 '화끈한' 판촉법이 등장했다. 요란한 음악에 맞춰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춤추는 주유소가 나타났다. 서울 한남동의 어떤 주유소엔 아예 큰 무대가 설치됐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일수록 '미인계'의 수위도 올라갔다. 불과 5㎞ 거리에 주유소가 12곳이나 몰려 있던 서울 무악재~녹번 로터리 구간의 어느 주유소는 전문 치어리더들까지 고용했다. 밤 10시를 넘긴 시각까지 주유소에서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학생 등이 차도로 뛰어나와 한 차선을 거의 막고는 호객했다는 시민 고발이 신문 독자란에 실렸다(동아일보 1994년 11월 18일 자). "도대체 기름을 파는 곳이냐, 여자들 웃음을 파는 곳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과열 판촉 경쟁은 경영의 발목을 잡았다. 1994년 주유소의 마진율은 5.4~9%였는데 판촉 비용이 매출액의 4%에 이르렀다. 출혈을 못 견뎌 문 닫은 주유소가 1993년에만 50곳이 넘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 이후 주유소의 꼴불견 판촉전은 사라져 갔다.

최근 주유소 간의 서비스 경쟁이 또 불붙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기 자동차 증가 등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이번엔 아직 '미인계'는 등장하지 않았다. 수소·전기 충전 시설이나 카드 없이 결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미래형 주유소로 변모하기 경쟁을 벌인다고 한다. 이맛살 찌푸리게 했던 그때의 유치한 판촉전은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조선일보(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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