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경제에 공짜 점심 없다… '여소야대' 선택한 대가 치를 것"]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 "경제에 공짜 점심 없다… '여소야대' 선택한 대가 치를 것"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돌파한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2024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공직 은퇴 후 윤경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에만 전념해온 윤 전 장관은 지난 총선 결과가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김지호 기자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사령탑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돌파했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총선이 가져올 여파를 우려하고 있었다. “고금리, 고물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처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나 이 엄중한 시기에 ‘여소야대’를 초래한 국민의 선택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책의 내용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태도나 이미지에 감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나라 앞날이 걱정된다”고도 했다.
◇서민, 영세업자 고통 가중될 것
-’대파’ 논란 등 지난 총선은 경제와 민생이 흔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에는 책임이,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번 총선의 선택으로 자산이 없는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법치가 실종되고, 사회 도덕률, 국민의식도 추락했다.”
-국민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건가?
“이 나라 앞날이 걱정되는 것이 어떤 집단의 정체성이나 추구하는 가치, 정책의 내용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 태도나 이미지로 감성적 판단을 하는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고금리, 고물가의 고통이 너무 컸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이 컸다. 코로나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으로 공급망에 차질이 생겨 곡물, 석유 등 원자재 값이 치솟았다. 문재인 정권의 유산도 발목을 잡았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교과서에도 없는 정책으로 5년간 나라를 거덜 낸 후유증이 지금도 이어지거나 현실화되고 있다.”
-언제까지 전(前) 정부 탓을 할 거냐는 지적이 많다.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지금 왜 어려운가? 최저임금의 일괄적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는 업종별,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한다. 근무시간도 업종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 일률적으로 52시간으로 정한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경제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망한다. ‘경제는 정치인들이 잠든 밤에 성장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래도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 대통령과 경제 수장들이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정부가 경제 위기의 원인과 실태를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사실이다. 그런데 여소야대에 막혀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있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국 경제의 기적은 끝났나’란 기사를 봤나? 대한민국 정권 교체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는 책임은 안 지고 권한만 행사한다. 사법부는 어떤가. 정부가 혁신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반도체지원특별법만 해도 그렇다. 반도체는 기업 간 전쟁을 넘어 국가 간 대항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일본, 대만은 반도체 생산에 사활을 걸고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재벌 특혜라고 한다. 양곡관리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밀, 보리, 옥수수, 콩 등 5대 곡물의 수입 비율이 90%가 넘는다. 쌀만 짓는 농업 구조를 바꿔야 곡물 공급망 와해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수하라는 법을 만들면 농업 구조 조정은 물 건너간다.”
사과에 이어 배 가격이 1년 새 두 배 넘게 오른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 배, 사과 등이 진열돼 있다./뉴스1
◇사과값 폭등, 빨리 수입했어야
-세계 각국이 어렵지만 물가만 오르고 임금은 그대로인 한국의 인플레이션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건 착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인플레가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그렇게 높지 않다. 한국 소비자물가가 3.5%로 오를 때 유럽 국가들은 4~6%까지 올랐다.”
-사과값은 최고 176%까지 폭등했다.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사과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 중 하나다. 기후 이변으로 인한 흉작에 수요를 감당할 공급량이 절대 부족했다면 정부가 빨리 수입 조치를 했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은 IMF 외환 위기, 코로나 때보다 살기 힘들다고 한다. 제2의 외환 위기 운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 외환보유고가 4000억불이 넘는다. 경상수지도 흑자를 지속하는 등 우리 경제의 체질이 향상돼 있다.”
-KDI는 한국은행이 점진적으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행이 11번째 동결하고 있는 금리에는 물가 안정 추세, 해외 금리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KDI 제안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국내 물가가 아직 2%대에서 머물고 있고, 미국 기준금리보다 우리 금리가 2% 낮은 점 등 금융통화위원회의 고민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초 3개월간 7.3%나 상승한 원달러 환율도 문제다.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존중해야 한다. 정부가 함부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 상당한 외환보유고 등으로 단기적으로는 등락을 거듭해도 균형을 찾아갈 것으로 본다.”
-반도체 수출 증가세로 민간 소비가 개선되고 1분기 국내총생산(GDP)도 1.3% 성장하는 등 회복기로 들어섰다고 진단하는 경제학자도 있던데.
“올해 1분기에 1.3% 성장했다는 건데, 이걸 지난해 4분기와 비교했느냐, 전년도 동기와 비교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전년도 같은 기간에 GDP가 너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기저 효과로 올라갔을 가능성도 있다. 아직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조심스럽다.”
지난 3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등 채소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뉴시스
◇25만원 지원? 반헌법적 행위
-이재명 대표의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 주장을 강하게 비판하셨다.
“총예산만 13조원이다. 그 돈으로 우리 경제에 필요한 투자나 인프라 건설에 투입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13조원을 일시에 살포하면 물가만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이걸 법률로 강제하겠다는 건데,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와 삼권분립에 맞서는 위헌적 행위다.”
-’25만원’이 총선 민심을 흔든 것도 사실이다.
“스위스 국민들은 기본소득 정책을 70%가 반대해 무산시켰다. (포퓰리즘에 환호한)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국민의 예를 명심해야 한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경기가 어려울 땐 국가 재정을 늘려서 부양시키는 게 옳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1000조원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남겼다. 600조였던 채무가 문 정부 5년 만에 40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윤석열 정부가 국가 재정을 함부로 확장할 수 있겠나.”
-결국 내수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 아닌가.
“내수는 투자와 소비가 견인한다. 그런데 우리는 규제가 너무 많다. 환경 규제로 설악산, 한라산에 케이블카 하나 설치하기 힘든 나라다. 문화재라도 나오면 개발이 올스톱된다. 국토의 70%가 산이다. 중국 태산, 황산에는 케이블카가 수십 개다. 요새는 기술이 발달해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도 않는다. 스위스는 산 정상까지 산악 열차가 다니지 않나.”
-기업 규제 완화는 왜 더딜까?
“수출과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도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하려고 하면 정경 유착이라는 시대착오적 주장이 나온다. 현재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2009년 기준인 자산 규모 5조원인데, 대기업에 포함되는 순간 적용받는 규제가 300개에 달한다.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승격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이게 말이 되나? 과도한 상속증여세로 가업 승계도 어려워져 일본이나 독일처럼 100년 기업이 나오기도 어렵다.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법인세율부터 인하해야 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구조 조정, 인수 합병 등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 분담이 따른다. 일본 국민은 이를 불평하지 않고 함께 견뎌왔다.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높은 인식은 배워야 한다.”
2024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尹, 원칙 없는 협상은 안 돼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돌파한 윤증현 리더십은 여전히 회자된다.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정부를 중심으로 여야가 협조했고, 무엇보다 국민이 함께 고통을 견뎌주셨다.”
-부임 직후 마이너스 성장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정부는 플러스 3% 성장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입각하면서 마이너스 2% 전망으로 변경했다. 정부가 정직해야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고,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한다.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28조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추가경정예산도 단행했다.
“전 국민의 소비 수요를 살리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매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경제 상황을 챙겼다. 그런 노력이 합해져 이듬해 6%가 넘는 성장을 일궜다. 세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교과서적으로 극복한 사례라는 찬사를 받았다.”
-저출생 대책으로 이민청 설립을 가장 먼저 제안한 관료도 윤증현이더라.
“저출생과 이민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단일 부서가 시급하다. 여성의 생애주기별 지원 문제, 재능과 기술을 보유한 젊은 이민자들 받아들이는 문제를 이 부서에서 함께 다뤄야 한다.”
-의료 대란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의료를 산업화하고 투자를 개방해야 한다. 의사 증원은 필수 의료, 지방 의료, 의과학자 수요 증가를 고려할 때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의료계 반발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할 정부의 치밀한 대책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2년 넘게 한 장관직을 사임할 때 이명박 대통령이 만류했다던데.
“불면증이 너무 심해 검사를 받았더니 원인이 햇볕 부족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들어오니 햇볕 쬘 시간이 없었던 거다. MB에겐 죄송했지만 계속 일하면 죽을 것 같았다(웃음).”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언 한말씀.
“여소야대 국면이라 협치가 불가피하겠지만, 원칙 잃은 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기친람도 길이 아니다. 권한과 책임을 대폭 하부로 위임하고 인재 풀을 넓혀야 한다.”
☞윤증현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아시아개발은행 이사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 국무총리 대행을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2011년부터 윤경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 왔다.
-김윤덕 선임기자, 조선일보(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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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이 나라가 자기들만의 나라인가, 이대로면 모든 게 속절없이 무너져"
윤증현(72)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말문을 꺼냈다..
"요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지금 정부가 하는 걸 보면 희망이 안 보이고 내가 말해봐야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의욕이 없어졌다."
그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한 주역이다. 당시 그가 3%의 경제성장 목표를 -2%로 대폭 수정했을 때 정부 위신(威信)의 추락이어서 반대가 심했다. 그는 '정부는 정직해야 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며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에는 성장률을 6%로 회복시켰다.
그런 그가 "정책이 잘못됐거나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을 바꾸거나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정책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른다"며 질타했다.
윤증현 전 장관은 “경제 컨트롤타워가 청와대 비서관인가. 왜 경제부총리 자리를 뒀는가”라고 말했다.
―당신이 성장 중심의 우파(右派) 경제에 속하니까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못마땅한 것 아닌가? 경제를 보는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나?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엇이 국민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답이 나와 있다. 지금 세계 경제성장률은 3.9%로 호황(好況)이다. 우리는 2.9%에 머물고 있다. 시장에서는 혼란이 일어나고 역대 가장 낮은 고용률과 높은 실업률이 무얼 말하는가. 통계청 자료에서 입증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밀어붙이니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정책은 현 정권의 존재 이유인데 바꿀 수 있겠나?
"어떻게 이뤄 놓은 대한민국인데 이 나라가 자기들만의 나라인가. 이런 식의 정책 운용이면 모든 게 속절없이 무너진다."
―여권에서는 지금 경제의 어려움은 지난 정권의 적폐 탓이라는데?
"무책임한 소리다. 완전히 망하고 싶으면 '전임자와 언론 탓으로 돌리라'는 말이 있다."
―높은 실업률, 취업난, 신성장 동력 부재 등은 역대 어느 정권도 들어왔던 소리다. 경제가 어렵다고 했지 경제가 좋다는 언론 보도를 한 적이 별로 없는데?
"과거 정권도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극복하고 이 정도까지 왔다. 하지만 이번 정권의 경제 운용은 몹시 위험하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경제정책의 내용과 체계는 확실히 잡혔다'고 했다. 성과가 나려면 시간을 두고 좀 더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나?
"정책이나 투자의 회임(懷妊) 기간이라는 게 물론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이 지금까지 해온 탈원전, 최저임금, 주 52시간 정책마다 시장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 방향이 틀렸으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악화된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검증된 바 없고 말이 안 되는 이론이다. 현실을 비틀어 이론에 맞추려 하니 지금의 혼란이 나타나는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서민층의 소득을 늘려줘 돈을 쓰게 해 성장하겠다는 것인데.
"소득을 늘려서 성장이 되는 게 아니라,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생겨야 소득이 느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을 늘려주겠다는 것인데 그 임금을 누가 주나? 정부가 주는가? 그건 민간 기업이고 소상공인이다. 이번처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들고일어나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한 적이 지금껏 있었나."
―내년 최저임금 8350원 인상 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난리가 났지만,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사과했는데.
"경악스러운 발언이었다. 한노총과 민노총 등 대기업 노조원의 복지만 보이고, 이런 영세 자영업자들은 국민으로 안 보이는 모양이다. 영세민들의 일자리가 다 날아간다. 이렇게 일을 벌여놓고는 정부 재정을 집어넣고 가맹점 본사와 건물주를 때리는 것이 정상인가."
―보수 정권에서 성장 중심으로 해오면서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가 심화됐으니, 분배와 복지에 좀 더 무게를 둬야 하지 않는가?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와 정책의 배열 때문이지 분배와 서민 소득을 신경 안 쓴 역대 정부가 어디에 있느냐. 양극화가 심하다고 하는데 OECD 국가에서 그렇게 심하지 않다. 최저임금도 낮은 것이 아니다. 사실을 왜곡해 선전 선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현 정권에서 서민 계층이 더 어려워졌다. 시장과 통계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 현 정부는 시장에 대한 존중이 없다. 어떤 정책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지금 정부는 민간과 기업, 시장이 해야 하는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한다."
―서민 소득을 늘려주고 저녁 있는 삶을 해주겠다는 선의의 취지는 받아들일 만하지 않은가?
"무슨 말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있다. 국민 세금을 받는 공무원이 책상에 앉아 시장도 모르면서 잘못된 정책을 만들어 국가 자원을 낭비하고 국민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데 선의라서 용납될 수 있나.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당장의 부작용은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제는 세계적 추세가 아닌가?
"정책은 진공(眞空) 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주어진 현실 환경에서 그 정책이 수용될 수 있을지 살펴야 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려면 업종과 지역별 차등화를 해야 한다. 조선소와 반도체,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다르고, 서울과 지방의 물가도 다르지 않은가. 주 52시간제도 업종마다 다를 수 있다. 휴일과 밤낮이 없는 언론사가 정말 52시간제를 할 수 있나. 지킬 수 없는 법을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범법자를 양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근무시간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의 자율 협의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지 않은가, 그 나름대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인데.
"이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의심스럽다. 상식선에서 너무 이탈해 있다."
― 관료 선배로서 이런 현안을 놓고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나?
"이들이 어떤 자세로 공직을 맡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떤 조언을 한들 먹힐지 자신이 없다. 이렇게 입장이 다른 이들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까 고민이다. 원전(原電) 건설에 앞장서 온 산자부가 정권이 바뀌자 원전 폐쇄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다고 느낀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를 놓고 청와대와 경제 부처, 여당 간에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데?
"그래서 시장이 더욱 혼란스럽다. 김동연 부총리의 말은 전혀 먹히지 않는 것 같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청와대 비서관인가. 대체 왜 경제부총리 자리를 뒀는가. 그가 역할을 못하도록 한 것은 결국 대통령인 셈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청와대 핵심들이 생각하는 경제정책 방향과는 안 맞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면 애초에 그쪽 생각과 맞는 사람을 앉혔어야지. 원래 일은 내각이 하고 청와대는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거꾸로 됐다. 청와대에서 모든 걸 장악하고 각 부처는 있으나마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의 지배 구조'를 운운하는데, 대기업의 지배 구조를 탓하기 전에 현 정부의 지배 구조가 훨씬 더 문제가 있다."
―청와대는 마치 모든 계열사를 좌지우지하던 과거 재벌 회장의 비서실을 연상케 한다. 미국 백악관 직원은 400명이 안 되는데 지금 청와대 비서실 직원은 500명이 넘는다
"청와대 조직이 너무 방대하다. 이번에 최저임금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자영업자·소상공인 담당 비서관 신설을 확정했다고 한다. 비서관만 만들면 해결되나. 청와대에 일자리수석과 경제수석이 따로 있는데 이해가 안 된다. 일자리 없는 경제가 있나, 경제수석이 일자리 빼놓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정부의 지배 구조부터 바꿔야겠지만, 현실에서는 이 정권은 칼자루를 쥐고 대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을 압박하고 있다. 요즘 대기업은 마치 줄 서서 기합받는 졸병 같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지금처럼 대기업의 지배 구조에 칼을 대려고 했다. 정권의 역점 사업이었다. 당시 기자가 금감위원장인 내게 의견을 물었을 때 '굉장한 위험한 짓을 한다. 기업의 지배 구조는 무엇이 옳은지 정답이 없다. 그 나라의 사회·문화 환경과 업종별로 다를 수 있다. 기업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이익을 내 종업원에게 봉급 많이 주고 국가에 기여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 말이 파장을 일으킨 적 있다."
―대기업이 우회 상장 등을 통해서라도 지배 구조에 집착하는 것은 후계 상속과 관계돼 있다. 정상적으로 하면 상속세가 너무 높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모기업을 팔아야 하거나 아예 경영권을 내주게 되기 때문이다.
"자녀 상속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일 수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양도세와 부가세까지 합쳐 65%에 달한다. 기업을 경영해오면서 법인세, 배당세, 개인소득세, 양도세까지 이미 다 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만 했는데, 인정해줄 부분도 있지 않은가?
"일자리 창출을 첫째 목표로 한 것은 잘했다. 그런데 정책이 엇박자가 나면서 더 혼란해졌다."
―대통령도 나라가 잘되는 쪽으로 해보려는 것이지, 망하는 쪽으로 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시장을 존중하고 성장 담론이 있어야 한다. 투자를 해야 성장이 이뤄지는데, 투자가 일어나려면 규제를 혁파해야 하고 길을 열어줘야 한다."
―어떤 길을 말하는가?
"의료를 포함한 헬스케어 산업, 바이오 산업 등에 민간이 투자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도대체 21세기에 원격진료도 허용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나. 노동 개혁은 현 정권 들어와 노조에 밀려 훨씬 더 후퇴했다. 이런 규제와 기득권이 요즘 말로 '적폐'다. 현 정책의 궤도 수정 없이 항해하는 것은 자해(自害) 행위다. 이대로 가면 이 정권은 결국 경제로 망할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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