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이사 가라
"증손자 대가 되면 조상 위패를 들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전후 무렵에 황해도 구월산(九月山)에는 '신(申)도사'가 유명하였다. 구월산은 남쪽의 계룡산처럼 도사들이 많이 살았던 산이다. 구월산, 계룡산, 김제 모악산은 평야 지대에 우뚝 솟아 있다는 지형적 공통점이 있다. 일반인들의 접근성도 좋고, 식량 조달이 용이해서 도사들이 먹고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해방이 되니까 개성의 부자들이 구월산의 신도사를 많이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대략 전답이 50마지기 이상 되는 중농(中農) 계층들이었다. 예측이 잘 안 되는 사회 변혁기에는 용한 도사를 찾기 마련이다. 신도사는 허겁지겁 자기를 찾아온 개성 부자들에게 공통적인 점사(占辭)를 내놓았다. '이도남하(移道南下)'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 사람의 사주팔자 전체 내용을 글씨로 써 준 종이를 '간명지(看命紙)'라고 부른다.
간명지에 초년운, 중년운, 언제 무슨 일이 생기고 등등을 나열해서 한문으로 써 준다. 그리고 끄트머리 부분에 '이도남하'라고 쓰고 여기에다 신도사는 방점을 찍었다. '남쪽으로 이사 가라'는 요지였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서 남쪽으로 갈까요?" "아니다. 전답을 다 팔고 가산을 정리해서 내려가라" "남쪽의 어느 지역으로 가란 말입니까?" "한강 아래로 가면 한 번은 죽었다 살아날 것이고, 낙동강 아래로 가면 안전하다" "그러면 고향에는 언제쯤 돌아올 수 있습니까?" "당신 자식 대(代)나 손자 대까지는 돌아올 수 없고, 증손자 대가 되면 조상 위패를 들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구월산 신도사가 개성 부자들에게 충고한 점사의 핵심 내용이다.
한강 아래는 6·25 때 인민군이 점령했었다. 거의 죽을 뻔했다. 낙동강은 인민군이 점령 못 했으니까 안전하다는 예측이 맞았다. 증손자 대에 위패를 들고 돌아온다고 했는데, 그 증손자 대가 지금인가? 언제인가? 해방 무렵에 이북에서는 구월산 신도사가 유명했다면, 남쪽에서는 여수 순천 일대에서 활동한 '문둥이 사주'가 유명하였다. 요즘은 이런 도사 만나기도 어렵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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