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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古地圖) 이야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전도 ‘팔도지도’

뚝섬 2018. 7. 28. 06:16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도제작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현재 남아 있는 지도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뿐이다.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양성지梁誠之가 타계하기 불과 두 달 전인 1482(성종 13) 2 13일에 올린 상소문에 고려 때와 조선 초기에 여러 가지 지도가 제작되었고, 지도를 모두 거두어 관에서 보관토록 해야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때와 조선 초기에도 다양한 지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계에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초기에 제작된 조선전도 두 점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국보 제248호로 지정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이고, 다른 하나는 제명이 없어 ‘팔도지도八道地圖’ 또는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라 불리는 조선전도이다.

 

이 두 지도는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조선사 편찬을 위해 쓰시마번對馬藩의 종가宗家에서 입수한 것으로, 광복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사편수회 위원이었던 가사하바라 쇼조栢原昌三가 1923 8월에 실시한 대마도 사료 채방採訪에 관한 복명서에 따르면, 대마도 종가에서 수집한 지도는 조선도朝鮮圖 사본·동국지도東國地圖·조선지도朝鮮地圖 등이 각 1권이고, 강원도·전라도·경상도·경기도·황해도·함경도 지도가 6매인데, ‘朝鮮地圖’가 팔도지도로 판단되고, 팔도지도에 대해서는 만주 쪽에 지명 등이 표기되어 있어 지도의 연대를 헤아릴 수 있고, 에도시대 모미지야마문고紅葉山文庫, 현재의 國立公文書館에 같은 지도가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해 대마도에서 헌상한 것이며 원본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팔도지도는 종이에 채색으로 그렸고 크기는 가로 91cm, 세로 137cm이다.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1469(예종 원년) 세종의 능을 여주로 옮기면서 여흥驪興과 천령川을 합쳐 설치한 여주驪州가 표기되어 있고, 1435(세종 17) 평안도 강동江東 사람 곽만흥郭萬興의 현령 구타사건으로 강등되었다가 1481(성종 12)에 복원된 강동이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1469년에서 148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팔도지도와 형태가 유사한 지도로는 조선방역지도와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된 ‘조선국회도朝鮮國繪圖’가 있다. 조선방역지도는 지도 부분만의 크기가 가로 63cm, 세로 98cm인 반면 내각문고 본은 가로 91cm, 세로 151cm로 팔도지도와 크기가 비슷하다. 이 세 지도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한반도 북쪽에 만주 전역을 나타낸 점이다. 지면의 한계로 데포르메deformer 형식으로 북쪽 지형을 심하게 압축해 그렸지만, 만주 전역을 조선 영역에 포함시킨 것은 조선 초기의 북방정책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도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퇴색이 심해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나, 주·군·현州郡縣의 기호는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지도의 가장 위쪽 만주 지역에 가로로 굵게 그려진 큰 하천은 흑룡강黑龍江이고, 만주 서쪽 끝의 남류하는 큰 하천은 요하遼河(랴오허 강)이다. 백두산에서부터 북쪽으로 송화강松花江이 크게 굽이지면서 흑룡강에 합류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거의 일직선으로 그려졌지만, 두만강은 하류에서 방향을 틀어 남류하도록 그렸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팔도지도.

 

산줄기는 연총식連塚式 묘사에 녹색으로 채색해 돋보이게 했고, 하천은 모두 쌍선으로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묘사했다. 조선 초기의 지도임에도 불구하고 해안선의 드나듦은 후기의 지도와 다르지 않게 묘사되었다. 해안을 따라서 많은 섬들이 그려져 있고, 작은 섬의 내부는 녹색으로 채색되었다.

 

도경계의 구분은 없지만, 적색의 사각형 내에 도명과 관할 주·군·현의 수를 나타내는 관官이 표기되었는데, 함경도가 22, 평안도 42, 황해도 24, 경기도 37, 강원도 26, 충청도 34, 전라도 57, 경상도 67관으로 전국적으로는 309관이다. 그러나 평안도의 강동현이 강등되어 표기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는 308관이 된다.

 

각 도의 주군현은 원() 기호 내에 표기하고 도별로 색을 달리했다. 경京과 개성開城·관찰사영·행영行營·병영兵營·수영水營은 적색으로, 경기도는 짙은 황색, 강원도는 녹색, 충청도는 갈색, 전라도는 적색, 경상도는 연분홍색, 황해도는 백색, 평안도는 회색, 함경도는 청색으로 각각 구분했다.

 

군현을 연결하는 도로는 적색으로 그렸고, 조선 후기의 지도처럼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묘사한 것이 특이하다. 도로는 만주 지역까지 연결되어 뻗어 있다. 서해안의 청천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삼척까지 이어지는 해안가 군데군데에 적색의 선박 기호가 그려진 것은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설치된 포구를 나타낸 것이다.

 

지도의 해상도가 낮아 지명의 판독이 여의치 않지만, 주·군·현명 외에 산·하천·고개·포구·진보·온천·나루·태실 등의 명칭이 표기되었고, 특히 섬과 포구의 명칭이 여타 조선전도에 비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지명의 표기가 다른 것도 눈에 띄는데 지리산은 ‘知異山’으로,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는 ‘鹿島’, 울릉도는 ‘蔚陵島’, 우산도는 ‘亐山島’, 거문도는 ‘巨大島’ 등으로 표기되었다

 

또 만주지역에도 지명이 표기되어 있는데, 흑룡강을 비롯해 북동강北同江, 온강溫江, 천송강天宋江, 졸본하卒本河, 홀하강忽河江, 금수하金水河, 혼하渾河 등의 하천명이 판독되고, 흑룡강 하구에는 여진족의 방어 초소인 노아간奴兒干과 의주 북쪽에는 고구려의 산성인 봉황성鳳凰城, 요동遼東 북쪽에는 명나라가 요동 지역에 설치한 철령위鐵嶺衛와 개원위開原衛, 온성 북쪽에는 선춘령先春嶺과 금나라 초기의 수도였던 회령부會寧府 등이 판독된다.

 

일본 내각문고에 소장된 조선국회도는 일찍이 일본의 역사학자 아오야마 사다오靑山定雄에 의해 연구되었고, 조선방역도는 이상태李相泰 교수에 의해 연구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팔도지도에 대해서는 이상태 교수의 논문 한 편만 있을 뿐 아직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의 활동 지역이었던 만주 전역이 지도에 그려지고, 지명까지 표기된 현존 가장 오래된 조선전도인 ‘팔도지도’야말로 국보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 월간산(585)(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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