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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오물 가득했던 애물단지 도심 하천… ] [이명박]

뚝섬 2025. 9. 9. 07:39

[청계천, 오물 가득했던 애물단지 도심 하천… ]

[이명박]

 

 

 

청계천, 오물 가득했던 애물단지 도심 하천… 

 

지금은 관광객 몰리는 명소

 

올해로 청계천이 복원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청계천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자연스럽게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했습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위쪽을 북촌, 청계천 양안을 중촌, 아래 남산 쪽을 남촌이라고 했는데요. 북촌에는 양반과 고위 관료, 중촌에는 중인과 상인, 남촌에는 가난한 선비가 주로 살았지요. 지역마다 생활과 문화가 달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답니다.

 

청계천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한양의 지형 때문에 도성의 하수가 모여 동쪽 끝 중랑천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갔습니다. 평소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다가, 비가 오면 갑자기 불어나는 건천이었지요. 그래서 큰비가 내릴 때마다 주변이 자주 잠겼고, 물길을 다스리는 일이 꼭 필요했어요. 조선 태종 때부터 청계천 관리는 나라의 중요한 일이었죠. 일제강점기에는 하천을 덮는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일제가 패망하면서 끝내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박성원 기자

 

6·25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청계천 둑길의 비탈진 곳곳에 판잣집을 빽빽하게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계천 주변은 오·폐수 냄새가 가득하고 환경도 열악해 도심 속 슬럼가가 되었지요.

 

정부는 도시 개발을 이유로 1958년부터 하천을 덮고 그 위에 도로를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판자촌은 철거되었고 주민은 서울 외곽과 바깥으로 강제 이주해야만 했죠. 청계천 복개 공사가 끝난 이후엔 그 위로 대규모 고가도로가 세워졌습니다. 길이 약 5km, 폭 16m의 청계고가도로였죠. 서울 동서를 한 번에 잇는 길이라서 서울의 대동맥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청계천을 덮은 구조물과 청계고가도로는 큰 사회문제로 떠오릅니다. 지하 하천에 오염 물질이 쌓이면서 메탄가스 등 유독가스가 차올라 폭발 위험이 생겼고, 청계고가도로 역시 노후화로 인해 붕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생긴 거예요.

 

무엇보다 시민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강북 도심을 가로지르던 고가도로는 더 이상 발전의 상징이 아니라, 도시 풍경을 해치는 흉물로 보였지요.

 

200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서울시장에 당선됐지요. 청계고가도로와 복개 구조물을 철거하고, 청계천을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이 추진된 것입니다. 이 계획은 시작한 지 불과 2년 3개월 만에 완성돼 지금의 청계천이 생겨났답니다.

 

오늘날 청계천은 매일 약 12만t(톤)의 한강 물과 지하수를 인위적으로 끌어와 흘려보내는 인공 하천입니다. 그래서 매년 유지·관리 비용이 수십억 원이라고 해요. 하지만 복원의 효과는 분명합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청계천에는 물고기 20종이 살고 있어, 자연 하천과 비슷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청둥오리, 백로, 왜가리 등이 자주 날아와 쉬어가고, 2급수 이상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쉬리도 터를 잡았죠. 과거 흉물로 여겨졌던 장소가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이자 작은 생태계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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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이명박(1941~ ):

 

[김동길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중도를 간 사람은 대개 우왕좌왕"

 

전직 대통령이 네 사람이나 철창신세를 지는 그런 나라가 지구 상에 또 있을까. 이승만이 감옥에 가지 않은 것은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18년 집권했던 박정희는 그의 심복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권총을 들고 현직 대통령을 살해했기 때문에 투옥되는 모욕을 당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만일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면 아주 먼 곳에서 만세 수를 누렸을까. 만일 김영삼이 김대중에게 대통령 될 길을 열어 주지 않았더라면 퇴임 후에 본인도 아들도 철창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비리가 있으면 재임 중에 사임하도록 해야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잡아가다니! 이 나라의 정치 풍토는 선조 때 싹이 트기 시작한 사색 당쟁 때문에 반대파의 씨를 말리려는 참혹한 살생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왜 그 악습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오늘, 구속되어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이 나라 17대 대통령 이명박에게 어떤 개인적 감정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하는 말이다. 나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가 서울시장 재임 중에 청계천을 복원한 것과 서울 시내 교통 문제를 시민이 편리하도록 개선한 사실들을 큰 업적이라고 나는 평가하였다. 이명박 자신이 나는 생긴 것도 한심하고 목소리도 좋지 않아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매우 겸손하게 말한 것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우리 몇 사람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을 누비었다. 심지어 미국까지 가서 동포들을 모아놓고 "이번 대선에서는 이명박이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고 여러 번 핏대를 올렸다.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명박을 비교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의 관상이 비슷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섞어가면서 나는 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다.

이명박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정동영을 531만표 차로 누르고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 나는 그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비서실장 정정길을 시켜 우리를 시내 음식점으로 초대하여 저녁 대접을 하고 청와대에서 만든 기념품을 전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청와대에 오라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정 실장에게 "우리가 무슨 전염병 환자인가. 청와대에 들르면 큰일 나는가" 하였을 때 실장은 매우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선거 공약의 하나였던 대운하 공사를 포기하였다. 그 동기는, 서울대 교수 100여 명이 연서로 탄원서를 만들었는데, 대운하 공사는 국토와 그 환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그들을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 공약을 접어 버렸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초대를 받아 떠날 때 말썽 많던 작가 황모씨를 대동하고 출국했다. 대통령이 누구와 어디를 가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큰 깃발 하나만을 들고 나가야 할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나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오로지 중도만 가는 실용주의자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곧 내 의견을 털어놓았다. "정치적 식견이 없으면 침묵을 지킬 것이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중도를 간다는 사람은 대개 우왕좌왕하는 사람이다"라고 듣기 싫은 소리를 퍼부었다. 나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사실을 지금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가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처럼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41년 오사카 근교 어느 목장에서 노동을 하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살림도 고달팠지만 해방되고 식구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삶을 살았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대학에 진학하여 졸업은 했지만 취직이 안 돼 고생하던 터에 현대에 입사, 정주영을 회장으로 모시고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그 회사 사장도 되고 회장도 되면서 그는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뒤 현대를 물러난 그는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다음 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당선됐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등 의원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면받으면서 그는 서울시장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었다. 특히 청계천 복원 사업이 국민을 감동시켜 2007년 마침내 그는 이 나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링컨처럼 되지 못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나라의 많은 가난한 젊은이에게 이명박은 마땅히 희망을 주어야 했는데 왜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가. '링컨처럼 되라'는 말은 아직도 듣기 좋지만 '이명박처럼 되라'는 말은 듣기도 싫다.

나는 현직 대통령에게도 책임은 있다고 본다. 만일 그가 이명박 내외를 청와대에 초대하고 저녁을 대접한 뒤에 "부정 축재하신 액수가 어마어마하더군요. 1000억 정도를 희사하면서 장학 재단을 하나 크게 만들라고 당부하시면 제가 이명박 대통령의 뜻대로 하고 이 대통령의 명예는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사법처리를 한다는 건 피차 민망한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한마디 했으면 오늘 같은 불상사는 없었을 것 아닌가! 대통령이 군자가 돼야지 소인이 되면 나라가 어지럽다.

오늘의 대통령은 어제의 대통령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 그를 감옥에 넣어서 대한민국이 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지는 않는다. 19대 대통령도 임기를 끝내고 국민의 존경이 차고 넘치는 대통령이기를 바란다.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조선일보(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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