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앞 '파안대소'
한 대선 주자가 유력 정치인 상가에 문상을 갔다. 빈소 응접실에 둘러앉아 담소를 시작했다. 입담 좋은 정치인이 너스레를 떨자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초가 지났을까. 얼굴이 굳은 대선 주자가 동행한 기자들을 살폈다. "혹시 사진 찍으셨나요? 웃는 사진 나가면 안 되는데…." 장례식장에서 파안대소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친 것이다. 다행히 웃는 사진은 없었고, 훗날 그 대선 주자는 대통령이 됐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캐머런 영국 총리, 덴마크 총리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셀카를 찍었다. 만델라 대통령 추모식장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정치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면 반사적으로 웃음부터 짓는 모양이다. 오바마는 몇 달간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세월호 수색 작업 중 순직한 소방관 영결식장에서 여당 최고위원이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참석한 소방대원들이 같이 찍자 하니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야당 민주당은 놓치지 않았다. "국민과 함께 슬퍼하기 싫다면 억지로 할 필요 없다. 다만 국민 아픔에 생채기 내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세월호 사고 브리핑을 하며 웃는 모습이 공개됐다. 브리핑을 하다 말이 엉키자 웃으며 '난리 났다'고 혼잣말하는 NG 장면을 편집해 한 방송이 "참사 브리핑을 하며 웃었다"고 내보낸 것이다. 왜곡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이들이 절규하고 있을 시간 박근혜 청와대는 웃고 있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체육관에서 컵라면 먹은 장관은 사진이 공개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밥은 먹어야 했지만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제 대전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파안대소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모임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문제는 뒤에 놓여있던 TV가 대전 물난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진을 자신들이 유포해 놓고선 비판 여론이 일자 '악마의 편집, 악의적 보도'라고 했다. 즉시 사과했으면 여론도 달라졌을 것이다. 내로남불이 체질화된 사람들이 화부터 먼저 냈다.
▶재난 상황이라고 정치인이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을 수는 없다. 밥도 먹어야 한다. 그러나 남의 문제는 맹비난하고 똑같은 행태를 한 자신은 억울하다는 내로남불은 없어야 한다. 만약 상대당 의원들이 이런 사진을 찍었으면 파안대소한 민주당 의원들은 어떤 논평을 냈겠나. 국민이 늘 지켜보고 있다 생각하면 이런 사고는 준다.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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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의 '세월호 변명'
세월호 참사 당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교육부 장관은 컵라면을 먹는 사진이 공개된 후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현장에서 어떻게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밤 광화문 서울청사에서 안전행정부 장관 등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들이 야근 끝에 치킨을 시켜먹은 것까지 도마에 올랐다. 허기 때문이었다는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두 장관은 석 달 후 나란히 경질됐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 공무원에 대해 골프·음주 자제령을 내렸다. 몇몇 공무원이 골프를 하다 적발돼 해임·감봉 등 징계를 받았다. 유명 개그맨까지 골프 쳤다는 이유로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당시에 골프를 하고 술을 마신 모든 국민은 애도하지 않은 사람들일까. 그런 억지가 당시엔 횡행했다. 애도는 의무나 강요와는 다르다.

▶그제 열린 KBS사장 인사청문회에서 양승동 후보자가 세월호 참사 당일 노래방에 갔느냐는 문제를 놓고 또 논란이 벌어졌다. 그는 지난 3월 첫 청문회 때는 "노래방에 간 적 없다"고 했었다. 그러다 노래방에서 결제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나오자 다른 직원에게 법인카드를 건네고 자신은 가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었다. 하지만 그제는 "그날 노래방에서 16만원 상당의 비용을 제 법인카드로 제가 결제했다"고 했다. 법인카드를 다른 사람에게 준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묘했다. "참석자들 증언에 따르면 제가 그곳에서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진 않았다고 말씀드린다." 노래방에 갔는데 노래는 안 불렀다는 것이다. '기억이 안 난다'는 안전장치도 잊지 않았다.
▶양 후보자는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KBS 부산총국 편성제작국장이었다. 세월호 사건 취재 담당도 아니다. 그날 부서 회식을 하거나 노래방에 간 국민이 최소 수십만명은 됐을 것이다. 양 후보자도 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노래방 간 게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청문회 때마다 복잡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진땀을 흘린다. 무슨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양 후보자는 지금 대통령이 팽목항에 내려가 사망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썼던 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KBS 사장 후보 정책설명회 때 세월호 리본을 달고 나온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랬는데 그날 노래방에 갔다니 입장이 딱하게는 됐다. 양 후보자가 그래도 KBS 사장이 되면 정권 홍보가 아니라 공영방송의 본분에 충실하기를 바랄 뿐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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