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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본 '천도론'] 굳이 옮기려면, 세종시로는 국회의사당만

뚝섬 2020. 8. 22. 05:29

뜬금없음인가 숨긴 카드인가? 불쑥 나온 천도론(遷都論)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할 즈음 필자는 노무현 정부 때 미완으로 남은 '신행정수도 이전'이 재개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집권 3년 내내 조용하여 그냥 묻히는 줄 알았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신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당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단장 이춘희 현 세종시장) 워크숍에서 '정감록과 풍수'를 발제한 인연으로 이후 오랫동안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세종시 원수산과 그 앞에 흐르는 금강. 노무현 정부 때 ‘신행정수도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원수산 아래 청와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때는 도읍지가 쉽게 옮겨질 줄 알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고 나서야 역사적으로 천도가 쉽지 않음을 알았다. 고려와 조선에서 딱 두 번 천도가 가능했다. 왕건의 개경 천도와 이성계의 한양 천도이다. 둘 다 일종의 창업자였다.

두 왕조에서 천도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 문종·숙종·예종·인종·공민왕·우왕 때 천도 시도가 있었다. 조선 광해군 때 교하천도론(현재 경기 파주시 교하면)으로 3년 동안 조정이 시끄러웠다. 천도 명분은 기존 도읍지 지기(地氣)가 쇠하였다는 풍수적 이유였다. 조선보다 고려에서 천도론이 빈번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고려는 왕건 혼자가 아닌 연합세력에 의해 창건됐고 불교국가였다. 불교의 불국토 사상은 '전 국토의 극락화와 명당화'라는 명분을 주었다. 삼경제(三京制, 개경·평양·한양)나 왕이 삼경을 돌아가면서 머무는 순주설(巡駐說)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고려와 달리 조선에서는 '국토 중심부↔주변부' 관념이 고착된다. 국교를 유교로 바꾸면서 존왕(尊王)·종법(宗法) 관념은 왕경과 지방, 반촌과 민촌 등 땅을 서열화시켰다. 천도론을 강하게 밀어붙인 왕들은 실각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공민왕과 광해군이 대표적이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소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다. 지금 '세종시 천도론'에 여론조사가 호의적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탁옥부(琢玉斧)'라는 풍수 고전이 있다. 조선 후기 지관 선발 시험에 합격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옥(玉)을 쪼는[琢] 도끼[斧]'라는 뜻인데 옥은 산천, 탁(琢)은 땅 고르기, 도끼는 훌륭한 책을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풍수에서 도읍을 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서울·평양·개성을 논하고 현재의 세종시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양(서울) 풍수에 대해 고려 풍수학자 김위제는 "온 세상 신령스러운 고기들이 한강에 조공(四海神魚朝漢江)"할 땅이라 하였다. 세계 수도에 육박하는 지금의 서울을 예언한 말이다. 평양에 대해서는 고려 창업자 왕건이 '수덕(水德)이 순조로운 땅'이라고 하였다. 대동강과 보통강이 관통하는 평양의 안정된 지세를 말한 것이다. 반면 개경은 '삼겸(三鉗)의 땅'이라고 한다. 겸(鉗)이란 죄인 목에 씌우는 칼로, 물·산·사람길이 모두 칼[鉗]과 같다는 뜻이다(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

세종시는 어떨까? 한양 산수의 웅장함과 평양의 수덕순조에는 못 미친다. 그렇지만 산과 물이 아담하게 조화를 갖춘 땅이다. 굳이 이번 정부가 천도하려면, 국회의사당만 옮기는 것은 좋다. 풍수적 이유에서이다. 우선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 터가 문제다. 바람·물·모래가 지나치게 많은 땅이다. 사람(국회의원)  또한 그 땅을 닮아간다. 세종시는 국토의 중앙에 있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서울을 오르내릴 일이 없고,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서울까지 원거리를 오갈 일이 없다. 세종시 주산 원수산 아래 진혈처는 현재 개발되지 않고 처녀지로 온존되고 있다. 그곳에 국회의사당을 짓는다면 원수산과 금강의 지력을 누릴 수 있다. 이것만 성공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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