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포토라인 인민재판'] [포토라인 세워 罪人 낙인, 누가 검찰에 그 권한 줬나] [포토라인 왜 생겼나... ] 취재원이 카메라 앞에 서야 할 의무는 없다

뚝섬 2019. 1. 16. 06:02

'포토라인 인민재판'


중세에 '시련 재판(trial by ordeal)'이 있었다. 피고에게 고통을 가해 버텨내면 무죄, 거부하거나 견디지 못하면 유죄로 판단했다. 무죄 증명을 하려면 불길 속에서 살아나오거나 찬물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있어야 했다. 펄펄 끓는 기름에 손을 넣었다 꺼내야 하는데 화상을 입으면 유죄가 됐다. 결론을 이미 내놓고 하는 재판이었다. 


▶얼마 전 한 법관이 검찰의 포토라인 세우기가 중세 시련 재판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수십 대 카메라 앞에 선 피의자는 중압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야 유·무죄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실제가 그렇다. 경험자들은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팔다리는 후들거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들 한다. 그 법관은 "형사소송법엔 피의자가 공개 소환과 포토라인의 시련을 감내해야 할 의무 조항이 없다"고도 했다.




▶이른바 '포토라인(photoline)'은 수사기관에 공개 소환된 사람이 잠시 멈춰 서게 바닥에 테이프로 만들어 놓은 선()이다. 26년 전 재벌 회장이 카메라에 맞아 다치면서 관행으로 굳어졌다. 문제는 검찰의 공개 소환이다.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이 한국에선 공개 소환돼 카메라 앞에 서서 사실상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주장도 있다. 언론이 공개 소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죄 추정을 받는 한 개인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법조계에선 세상에 두 개의 법정(法廷)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현실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여론의 법정'이다. 현실 재판은 판사가 주재하지만, 여론 재판은 검찰이 조종한다. 검찰은 포토라인 세우기를 수사 대상자에 대한 공격 압박 카드로 쓴다. 한국에선 죄 없는 사람도 검찰에 의해 여론 법정에서 얼마든지 인민재판 당할 수 있다. 


▶요즘 검찰은 재판 시작 전에도 끊임없이 혐의를 흘려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든다. 피의사실 공표는 범죄이지만 사문화됐다. 검찰 공소장은 범죄와 상관없는 개인 흠집 내기와 추측으로 가득하다. 판사에게 선입견을 주려고 만든 '노래하는 기소장(singing indictment)'이다. 별건 수사나 뭐든지 나올 때까지 털고 또 터는 압수수색은 일상이 됐다. 심지어 수갑도 자기들 멋대로 채운다.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어제 포토라인 관행을 바꿔보자는 변협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도 되돌아봐야 한다. 검찰 악습(惡習)을 걷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명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1-1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포토라인 세워 罪人 낙인, 누가 검찰에 그 권한 줬나

 

현직 부장판사 등 법조계, 오랜 관행에 문제제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검찰 청사 앞에 있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포토라인은 피의자가 소환될 때 잠시 멈춰 서도록 수사기관 출입구 앞바닥에 테이프로 만들어 놓은 선이다. 피의자가 여기에 서면 기자들은 사진을 찍고 입장을 물어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 포토라인에 섰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친 이후 이 포토라인 문제가 법조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과 검찰이 죄인(罪人)으로 낙인찍는 도구라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울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검찰의 '수사 공보 준칙'에도 피의자에 대한 촬영은 '주요 공인(公人)으로서 소환 사실이 미리 알려져 소환 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게 돼 있다. 그런데 포토라인이 정착된 1993년 이후부터 전직 대통령, 재벌 총수, 국회의원 등 주요 사건 관련자들은 어김없이 포토라인에 섰다
.

그간 포토라인을 유지했던 가장 큰 논리는 이것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공개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으면 국민은 검찰이 누구를 조사하는지 알 길이 없다" "결국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밀실 수사가 많아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

그러나 포토라인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그 사람은 사실상 죄인이 되고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아도 명예가 회복되지 않는다"(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2012년 한 사건 피의자가 경찰 조사를 받는 장면을 언론이 촬영한 것에 대해 "언론 보도를 보다 실감 나게 하기 위한 목적 외에 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

특히 검찰이 수사에서 포토라인을 활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검찰은 "포토라인은 언론이 만든 것"이라는 입장이다. 포토라인을 설치하는 건 분명 언론이다. 그러나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울지 결정하는 건 검찰이다. 검찰은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공개 소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언론은 포토라인을 만들었다. 그런데 검찰은 사흘 뒤인 14일엔 그를 비공개로 소환했다
.

현직 고위 법관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포토라인에 서고 안 서고를 검찰이 자의적으로 선별해 결정한다. 누가, 어떤 법령이 검찰에 그 권한을 부여했나'라며 '알 권리를 구실로 유죄 심증(心證)을 퍼트려 정면으로 무죄 추정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라고 썼다. 부산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포토라인은 국민적 공분(公憤)을 만들어 수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진국 아주대 교수는 한 논문에서 '정치적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여론 재판에 회부하고자 할 경우에는 포토라인이 인권 침해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전락한다'고 했다
.

실제 검찰은 포토라인에 세울 수 있는 결정권을 활용해 피의자나 참고인을 압박하기도 한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 신분이었던 몇몇 판사가 소환 통보에 불응하자 "공개 소환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은 비공개로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

해외에선 사건 관련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예가 거의 없다. 미국·독일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원치 않으면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은 피의자가 언론 노출을 원하지 않을 경우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기도 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포토라인을 없애는 논의를 본격화할 때가 됐다"고 했다. 대한변협은 15일 관련 토론회를 연다.

 

-조백건 기자/김은정 기자, 조선일보(19-01-1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포토라인 왜 생겼나… 1993년 소환된 정주영, 취재카메라 부딪혀 다쳐

 

검찰 포토라인이 정착된 계기는 1993 1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검찰 소환이었다. 당시 국민당 대표이던 정 회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불려 나왔다. 국민당 관계자들이 경쟁자였던 김영삼 후보 지지 인사들의 대화 내용을 도청했다는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정 회장이 검찰에 나오자 순식간에 기자들과 현대그룹 관계자 등 수십명이 뒤엉켰다. 그 와중에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정 회장의 이마를 찍었다. 그의 이마는 2㎝가량 찢어져 피가 흘렀다
.

이후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한국사진기자협회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공동으로 포토라인 제정 논의에 들어갔다. 이어 1994 12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원의 인권 보호를 도모한다"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발표했다. 나중에 이는 2006 '포토라인 시행 준칙'으로 구체화됐다
.

여기서 포토라인은 사진·카메라기자의 접근 제한선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취재원이 멈춰 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수 있도록 출입구 바닥에 테이프로 만들어 놓은 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

이 시행 준칙에는 취재원의 포토라인 거부권에 대한 내용은 없다. '포토라인이 설정되면 해당 취재원에게 알린다'는 내용만 있다. 하지만 이는 사진기자들이 정한 준칙일 뿐이어서 취재원이 이를 지키고 카메라 앞에 서야 할 의무는 없다.

 

-엄보운 기자, 조선일보(19-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