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용 만년필의 조건]
[트럼프 사인의 비밀은 '샤피펜']
사인용 만년필의 조건
[조용헌 살롱]
돌잔치상 위에 놓인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아이가 붓을 집어들면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다. 풍수에서 수십 개의 봉우리 형태 가운데 붓의 모양처럼 생긴 문필봉이 집 앞에 보이면 귀하게 여겼다. 한자 문화권에서 붓은 귀(貴)의 상징이었다. 문형(文衡·당대의 문장가 타이틀)을 누가 쥐느냐가 조선 식자층의 관심사였다.
붓이 가졌던 영광과 권위는 줄어들었지만, 붓의 아류인 만년필은 오늘날 국가 정상들 사이에서 사인을 할 때 아직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폼이 나고 권위가 느껴지는 명품 만년필의 존재가 이때 드러난다. 글을 쓰는 문필가는 신간을 내고 독자 사인회를 할 때 만년필이 필요하다. 나는 원로 작가들이 어떤 만년필을 쓰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하였다. 맘에 드는 만년필 같으면 ‘이거 어디서 구했어요?’라고 꼭 물어보곤 했다. 이번에 트럼프가 한국에서 만든 만년필을 유심히 봤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 업자 시절부터 시작해서 대통령 자리까지 그 주된 업무가 사인의 연속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써보니까 사인용 만년필은 조건이 있다. 우선 몸체가 좀 두꺼워야 좋다. 손으로 잡았을 때 ‘그립감’이 느껴지는 만년필이 좋다. 두툼해야지 안정감이 들고 손가락이 편안하다. 땀이 난 손으로 잡아도 미끄러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어야 한다. 물론 성인 남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둘째 펜촉은 굵은 것이 좋다. 글씨가 가늘게 나오는 것보다는 글씨가 굵고 진하게 나오는 게 보기에도 분명하고 듬직하다. 펜촉이 가늘면 왠지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든다. 세 번째는 디자인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제작된 만년필은 몽블랑 디자인과도 영 다른 분위기이고 펜촉이 아니라 심으로 되어있다. 태극기 도상과 봉황 문양은 한국의 독자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필자는 지방에 다니면서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의 구술(口述)을 몇 시간 동안이나 받아 적는 일이 많다. 대부분 만년필로 노트에 적는다. 볼펜보다는 만년필로 적어야만 나중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명산대천으로 답사 나가기 전에 가방에다가 만년필 두 자루를 챙기고 잉크가 충분히 들어 있는지를 체크한다. 장시간 인터뷰에서는 한 자루만 가지고 적다 보면 중간에 잉크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책상 위에는 잉크병만 대여섯 병이 놓여 있고, 만년필도 서너 개가 꽂혀 있다.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붓에 밥이 들어 있다)’ 팔자는 만년필에 대한 애정이 있다.
-조용헌 동양학자, 조선일보(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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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사인의 비밀은 '샤피펜'
서체가 굵게 나오는 사인펜
오바마 등이 쓰던 볼펜 안써

트럼프 사인(왼쪽), 펠로시 사인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장기화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민주) 하원의장이 편지로 맞붙었다. 펠로시가 16일 "국정연설을 연기하거나 서면으로 대신하라"는 편지를 보내자,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가 해외 순방에 이용하기로 했던 군용기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보낸 편지를 각각 공개했다.
두 편지가 나란히 공개되자 단연 눈길을 끈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필 사인이었다. 펠로시 의장의 사인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사인은 서체의 굵기가 다른 것보다 족히 4~5배나 굵은 것이었다.
보기만 해도 '트럼프 사인'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것은 그가 서명에 사용하는 펜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서명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샤피'라는 특정 브랜드의 사인펜만을 고집한다. 샤피는 1857년 만들어진 필기구 브랜드다. 트럼프가 사용하는 샤피 사인펜 촉 끝부분 두께는 1㎜ 정도다. 일반 볼펜 촉보다 2~3배 굵다. 게다가 샤피 사인펜의 촉은 탄성이 있어 글을 쓸 때 옆으로 조금 눌려지기 때문에 글씨가 더 굵게 나온다.
원래 백악관에선 대통령의 서명용 펜으로 'AT 크로스'라는 미국 필기구 회사의 볼펜을 썼다. 이 회사는 1970년대부터 백악관에 펜을 납품해왔다.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 펜을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 이 회사의 볼펜 150개를 주문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볼펜을 거의 사용하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에 "그것(AT크로스 펜)은 끔찍한 펜이었고 매우 비쌌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샤피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훨씬 더 낫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미국 기념품 숍에서 판매되는 전직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AT 크로스 볼펜은 250달러이고, 트럼프 대통령 사인이 새겨진 샤피 펜은 100달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도 샤피 펜으로 서명했다.
-유지한 기자, 조선일보(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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