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여중생이 하루 만에 필로폰 사서 투약할 수 있다니]
[어느새 일상으로 파고든 마약, 전쟁한다는 각오로 막아야]
[필로폰 靑 행정관]
[철학자 베냐민의 '마지막 원고']
14세 여중생이 하루 만에 필로폰 사서 투약할 수 있다니

<YONHAP PHOTO-1639> 경남경찰, 마약 범죄 조직화한 20명 구속 등 총 100명 검거 (창원=연합뉴스) 경남경찰청이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현혹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마약을 유통하거나 이를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로 20대 A씨 등 20명을 구속하고 8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운반책은 주로 20∼30대였으며 10대도 1명 있었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마약류. 2023.3.7.
필로폰을 투약한 14세 여중생이 경찰에 입건됐다. 서울에 사는 이 학생은 필로폰 0.05g을 물에 타서 마신 뒤 아파트 계단 앞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그동안 10대들이 연성 마약으로 분류되는 마약성 진통제나 대마를 투약한 적은 있었지만 필로폰 투약은 드문 일이다. 이 학생은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필로폰을 구매한 뒤 이른바 ‘던지기’ 방식으로 필로폰을 받았다. 판매자가 약속된 장소에 마약을 숨겨 놓으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인데 구매에서 투약까지 하루 만에 끝났다고 한다. 이젠 어린 학생들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마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충격적 사실을 보여준다.
이 학생은 “호기심으로 해봤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실제 최근까지도 트위터·텔레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마약 광고가 버젓이 올라 있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들이 쉽게 마약에 접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경찰에 적발된 10대 마약사범은 294명으로 4년 전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이 약 5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심각한 문제다.
10대 마약사범 중엔 아예 ‘마약상(商)’으로 나선 경우도 있다. 지난 1월 인천 고교생 3명은 텔레그램을 통해 필로폰 등 마약을 사들인 뒤 웃돈을 붙여 되팔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중간 판매책까지 고용했다. 성인 마약상 흉내를 낸 것이다. 경찰이 이들에게서 압수한 마약만 4억원대에 달했다고 한다. 앞으로 학교 교실도 마약에 뚫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문제는 10대들의 마약 투약과 거래가 주로 인터넷을 통해 가상 화폐로 이뤄지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와 단속에 허점이 없는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일선 학교도 마약 예방 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에게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조선일보(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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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일상으로 파고든 마약, 전쟁한다는 각오로 막아야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는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45·본명 김민수)./뉴스1
유명 작곡가 겸 가수가 수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28일 구속됐다. 그런데 그가 경찰에 체포될 당시 필로폰 30g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약 1000회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마약 사범이 한꺼번에 이 정도 양을 갖고 있기는 드문 일이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필로폰을 구입했다고 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손쉽게 마약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됐고, 마약 유통도 크게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 트위터·텔레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지금도 마약 광고가 버젓이 올라 있다. 판매상들은 “서울·경기 지역은 퀵서비스로, 지방은 버스 화물로 보내줄 수 있다”고 유혹하고 있다. 마약 공급이 늘면서 최근 필로폰 1회분 가격도 2만4000원대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이제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마약이 번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검거된 마약 사범은 5988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7% 늘었는데, 이 중 20대와 30대가 전체의 54%를 차지했다. 3년 전 마약 사범 중 30대가 40대 비율을 넘어섰고 2년 전엔 20대가 30대를 추월했다. 올 상반기엔 20대 비율(33%)이 30대와 40대를 합친 만큼(35%) 증가했다. 이 추세를 꺾지 못하면 젊은 층 마약이 급속도로 번질 수 있다.
과거 음지에서 벌어지던 마약 투약이 도심 한복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마약을 투약한 40대 남성이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 7월엔 강남의 유흥 주점에서 20대 남성과 여성 종업원이 필로폰이 들어간 술을 마시고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추적과 적발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범죄 조직의 대규모 밀수 시대가 끝나고 최근엔 점조직의 밀반입 업자들이 국제 특송 화물로 위장해 반입하는 경우가 많아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젊은 층은 인터넷에서 가상 화폐로 마약을 거래해 추적도 쉽지 않다.
마약은 일단 확산하면 차단하기 어렵다.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 청소년 교육과 강력한 단속을 병행해야 한다. 경찰청장도 “젊은 층의 마약 중독이 심각하다”고 했다. 마약과 전쟁을 벌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조선일보(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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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靑 행정관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미하일 불가코프 ‘모르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이 모르핀 중독자에게 찾아온다. 단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만 모르핀을 끊어 봐라. 공기가 희박하고 숨 쉬는 게 불가능하다. 몸 안에 굶주리지 않은 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것을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다. 시체가 움직이고 우울해하고 고통에 신음한다. 그는 모르핀 이외에 어떤 것도 원치 않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미하일 불가코프 ‘모르핀’ 중에서.
오래전 팔이 부러져 수술한 적 있다. 죽을 듯 아프다가도 진통제를 맞으면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맨정신으로는 상상해본 적 없는 쾌감을 잠깐 경험했던 것도 같다. 내게는 낯설어서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런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어떤 사람들은 약물에 의존하는구나, 생각했다.
의사이기도 했던 작가는 기관절개술을 받은 후 모르핀에 중독된 적 있고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썼다. 결심만 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자만심에서 중독이 시작된다. 꼭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하면서 빠져든다. 작가는 모진 노력으로 중독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괴로움과 위험을 절절히 체험한 작가의 소설 속 젊은 의사는 고통과 환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끝낸다.
전 청와대 행정관이 필로폰 투약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9일 체포, 혐의를 인정했지만 그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수사 중인 공무원의 퇴직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전 정권은 5월 9일, 자신들의 임기가 끝나는 날이 되어서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표를 수리했다.
버닝썬 사건으로 알려진 것처럼 우리 사회는 마약에서 안전하지 않다. 청와대 직원이나 국회의원 가족, 국정원장 사위처럼 특정 계층과 연결되면 징계받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집행유예 같은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
마약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상당량이 북한산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소설에서는 코카인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마약 범죄의 묵인이야말로 ‘가장 추잡하고 간교한 독’을 세상에 퍼뜨리는 일이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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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베냐민의 '마지막 원고'
철학 교수를 원했지만 논문이 어렵다고 배제되고, 이혼과 실연을 겪고, 평생 고학력 실업자로 살지만 몸에 밴 부르주아 취향은 못 버리고,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20세기의 불행을 덤터기 쓰고 막다른 상황에서 자살한 사람, 바로 철학자 발터 베냐민(1892~1940)이다.

19세기 후반 제조업 활기로 호황을 맞은 독일 경제는 20세기 들어서도 장밋빛 기대 속에 있었다. 아버지 에밀 베냐민의 양탄자와 고미술품 사업은 번창했다. 1906년 방탄 비행선이 이륙하는 걸 보려고 공항에 인파가 모이고, 발터 베냐민의 부모는 '독일 예술 백년전'을 보려고 국립미술관을 찾았다. 그해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고 세일러복을 입은 발터 베냐민과 동생은 치펜데일풍 의자 팔걸이에 손을 얹은 채 서고, 어린 여동생은 의자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베냐민은 유대인 가정에서 '기발한 생각을 잘하는 외톨이, 극도로 자기 중심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유년 시절이 끝나자 '피의 20세기'로 내동댕이쳐졌다. 1930년대 유대인 예비 검속과 함께 직업 활동이 금지되고, 유대인 50만명이 독일을 떠났다. 1933년 말 베냐민은 파리의 이민자 무리에 섞여 구호위원회에서 원조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 가난 속에서 '일방통행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등을 썼다. 잡지 원고료와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보내주는 돈을 아껴 쓰며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방대한 사료와 도판을 토대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써나갔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자 베냐민은 다시 망명을 결심한다. 1940년 9월 24일 베냐민은 호르크하이머가 보낸 미국 비자와 스페인·포르투갈 통과 서류를 갖고 피레네산맥을 향해 떠났다. "내겐 이것이 목숨보다 더 소중합니다"라고 했던 가방에는 '아케이드 프로젝트' 초고가 들어 있었다. 9월 26일 밤 베냐민은 스페인 세관 직원의 최종 입국 불허로 '출구 없는 막다른 상황'에 이르자 국경의 작은 호텔방에서 모르핀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조선일보(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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