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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聖者’ 위트컴 장군]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뚝섬 2022. 11. 17. 09:12

[‘파란 눈의 聖者’ 위트컴 장군]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파란 눈의 聖者’ 위트컴 장군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앞 대화재로 주택 수천 채가 불탔고 이재민 3만명이 거리에 나앉았다. 휴전 직전 유엔군 제2군수사령관으로 부산에 도착한 리처드 위트컴(1894~1982) 장군이 그 참상을 보고 이재민을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눴다. 군수물자 전용 죄목으로 워싱턴 청문회에 소환되자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리처드 위트컴(Richard S. Whitcomb) 장군/위트컴희망재단

 

▶이후 한국에서 그의 삶은 인류애의 실현 과정이었다. 전쟁으로 환자가 넘쳐나자 AFAK(미군대한원조) 기금을 지원받아 160병상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준 것이 지금의 메리놀 병원이다. 건축비가 모자라자 휘하 장병에게 ‘한국사랑기금’이란 이름으로 월급의 1%를 기부하자고 호소했다. 부산의 유엔평화기념관엔 “가장행렬을 해서라도 기금을 모으겠다”며 군복 대신 갓과 도포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던 그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람들은 위트컴 장군을 ‘파란 눈의 성자(聖者)’라 불렀다. 부산대 발전의 초석도 그가 다졌다. 1953년 종합대로 승격한 부산대가 캠퍼스를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자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50만평을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건의해 확보한 터가 지금의 부산대 캠퍼스다. 대학 건물 지으라며 25만 달러 원조금도 마련해 줬다. 대학 정문까지 이어지는 1.6㎞ 진입로도 그가 닦았다.

 

▶전역 후엔 한국에 남아 한미재단을 설립하고 전쟁고아 돌봄 사업을 시작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가 고아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천안의 한 보육원을 방문했다가 그곳 원장을 만나 결혼한 이가 한묘숙(1927~2017) 여사다. 별세하며 아내에게 유언 두 개를 남겼다. 하나는 “나를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찾아 고향에 보내라”는 것이었다. 한 여사는 ‘위트컴 희망재단’을 만들어 재산과 연금까지 쏟아부으며 유해 봉환에 애쓰다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남편 곁에 묻혔다.

 

▶위트컴 장군에게 지난 11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한국 정부는 별세 40주년이 돼서야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의 한국 사랑을 기리는 조형물 건립 추진 시민위원회도 지난주 발족해 모금 운동에 나섰다. 내년 11월 11일 부산 평화공원에서 제막식을 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이 전쟁 폐허를 딛고 번영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피땀만 흘린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낯선 땅에 찾아와 인류애를 실천한 위트컴 장군 같은 이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 숭고한 사랑과 희생의 이야기를 찾아내 기려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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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프랑스 3성(星) 장군 몽클라르는 1·2차 대전에서 숱한 무공을 세우고 예편했다. 6·25가 터졌을 때 프랑스는 여러 분쟁으로 정신이 없었다. 한국엔 군사고문단 20여 명만 보내려 했다. 그러자 몽클라르 장군이 나서서 600명 넘는 전투 부대원을 직접 모았다. 대대급 지휘관은 중령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맞춰 예순을 앞둔 나이에 '예비역 중장'을 버리고 '중령으로 강등'을 자처했다. 참전을 말리는 아내에게는 "자유를 위한 여정은 군인의 성스러운 본분"이라고 했다. 몽클라르 부대는 1951년 지평리 전투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을 제압했다. 유엔군의 운명이 갈린 결정적 승리였다. 

 

▶1953년 11월 부산역 인근에서 큰불이 나 이재민 3만명이 생겼다. 전쟁에 화상(火傷)이 겹친 참사였다. 당시 부산 군수사령관 위트컴 장군은 군 물자를 풀어 이재민을 구했다. 그 때문에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지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했다. 1954년 전역해 예비역이 된 뒤에도 한국에 남아 보육원을 짓고 '전쟁고아의 아버지'가 됐다. 병원과 학교도 세웠다. 그는 군복을 벗고도 '승리'를 이어갔다.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2013년부터 명예 미 8군 사령관을 맡고 있다. 해외 미군이 주둔국 국민을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한 첫 사례다. 작년 11월 그의 아흔아홉 살 백수(白壽) 생일잔치는 미 8군이 준비했다.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 사령관이 무릎을 꿇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백 장군과 에이브럼스 부친은 '6·25 전우'다. 풍파를 견뎌온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장면 같았다.

 

▶전 국방장관 등 예비역 장성 450명이 참여하는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이 그제 출범했다. 모인 '별'이 1200개를 웃돈다고 한다. 이들은 대(對)국민 성명에서 "북한의 비핵화 실천은 조금도 진척이 없는데, 한국의 안보 역량만 일방적으로 무력화됐다"고 통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군 지휘관들까지 동참한 것은 대북 안보 태세가 그만큼 불안해 보인 까닭일 것이다.

 

군사강국일수록 예비역 장성들을 안보 분야 최고 전문가로 대우하고 식견을 존중한다. 지모(智謀)를 갖춘 예비역 노장(老將)은 현역에겐 정신적 버팀목이다. 평생 안보 전선을 지켰던 그들은 '애국심'과 '명예'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심장이 뛴다. 북핵 폐기 가능성은 희미한데 한·미 동맹은 전례 없는 위기다. 정부는 예비역 장성들의 충정을 흘려듣지 말았으면 한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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