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訪中과 한·일 관계 해법
'Nixon goes to China'(닉슨이
중국에 가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골수 반공주의자(dyed-in-the-wool
anti-communist)였던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72년 '중공(中共)'을 전격
방문, 데탕트 시대를 연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강경파(hard-liner)가 반대
노선의 과감한 결정을 내려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온다는(bring unanticipated effects) 정치적 은유(political metaphor)가 됐다.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로버트 켈리 교수가 미국 안보 매체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한국과 일본은 Nixon Goes to China Moment가 필요하다'는 글을
기고했다. 골자(gist)는 이렇다.
"언사는 더 거칠어지고 상황은 악화 일로에 있다(go on worsening). 문재인 대통령은 강경 노선을 취하며(take a firm
line)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겠다(never
lose to Japan again)'는 등 깊은 분노를 내보이고 있다(display
a deep resentment). 아베 일본 총리 역시 강경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keep
on taking a tough stance). 전시의
흉악했던 행위(atrocious wartime behavior)에 솔직한
편이었던 일본 좌파 매체들도 이번엔 잠잠하다(be quiet). 한국이
의도적으로 전시 상황 이슈를 놓으려 하지(let go of wartime issues) 않는다는 '한국 피로증(Korea
fatigue)'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목청껏 외치는 민족주의(full-throated
nationalism)로 규탄하고 있지만, 일본은 지쳤다며 다른 방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버틴다. 이런 대립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결국엔
양국이 해소해야 할(need to get out of their systems) 문제다. 이는 미국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hold its tongue)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에 중재를 해봤지만 또 재발하곤 했다. 미봉책으로
가려졌을(be papered over) 뿐, 곪아서 심해지도록 방치됐고(be left to
fester and worsen), 양측의
국수주의 과격주의자들(nationalist maximalists on both sides)은 다시금
날뛰었다(run amok). 그래서
이젠 양국이 알아서 분쟁을 해결하라는(resolve their dispute on their own) 입장이다.
반일 선봉에 선 문 대통령과 '한국 피로증'을
대변하는 아베 총리는 같은 처지에 있다. 양국의 가장 다루기 힘들고 완강한 부류를 대표하고 있다(represent
the most recalcitrant and stubborn elements). 이 국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가 오히려 항구적 해법을 찾을 기회다. 닉슨은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과 담판할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다.
결판을 낼 무대는 꾸며졌다. 원초적 민족주의 분노를 표출하다가(let
out the primal nationalist anger) 그 모든
아우성과 과격주의가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비로소 타협 여지를 찾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 고통스러운 충돌(painful collision)이 무책임한
극단주의자들을 뒤로 물리고, 양국 간에 'Nixon goes to
China' 계기를 마련하는 유일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조선일보(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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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외교'와 '韓國 쓰카레'
하고 싶은 말의 70%만 하는 일본인… 일본 내 여론 악화로 보이지 않는 피해 속출
일본
국회(참의원) 의원 백진훈은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史)를 바탕으로 관찰한 한·일 간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하고 싶은 말의 120% 정도를 한다. 일본인은 70% 정도까지만 말하고 만다."
그의 '120 대 70' 이론을 최근 한·일
관계에 적용하면 여론이 악화하는 곳은 한국뿐만 아니다. 70%밖에 말하지 않는 일본인답게 한국제 불매운동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까지
파기되는 데 대한 일본인의 혼네(本音·속마음)를 느끼기도
쉽지 않다.
실제
현실은 어떨까. 일본인 지인(知人) A씨는 중년의 일본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를 들려줬다. "요즘
우리끼리 얘기하다가 한국 문제가 나오면 '이젠 정말 지겹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합의를 해도 또 뒤집을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대학생 때부터 한국을
오갈 정도로 친한파(親韓派)였던 B씨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역사 분쟁에 큰 관심이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영향권 내에 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도 했다.
이런 얘기들을 일본의 사회현상으로 분석해 말한 것은 일 외무성 고위 관계자였다. 그는 이달
초 한국 특파원들을 만났을 때 '강코쿠 쓰카레(韓國つかれ)'를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파기되고, 1965년 청구권 협정도 부정되면서 '코리아 퍼티그(Korea fatigue·한국으로 인한 피로감)'에 해당하는 이 말이 일본에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전 주한 대사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도 본지 인터뷰에서
"현재 한·일 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 악화"라고
했었다. "그 결과 일본의 정책 당국뿐만 아니라 많은 관계자의 행동이 엄격한 제약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코쿠 쓰카레'는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외교 문제로 경제적 보복을 가하는 배경이 됐다. 외교 문제에
경제적으로 보복하는 하지하(下之下) 정책이지만, 일본인들은 큰 지지를 보냈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일본의 몇몇 신문들도 논조가 돌아서고 있다.
일본 내의 여론 악화는 보이지 않는 화살이 돼 재일교포와 주재원, 유학생 등에게로 날아오고
있다. 한국의 취업난으로 현해탄을 건너온 C씨는 일본 회사
최종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최근 일·한 관계 악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이 회사 신분증을 목에 걸기 위한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일 기업인 D씨는 올 초 신규 사업을 위해 일본 관청에 신청서를 넣었다. 기존 사업 영역을 약간 늘리는 것이기에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포기했다. 기자가 겪은 일도 있다. 일본
공무원·언론인·학자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았었다. 그런데 지난달 아베 내각이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 직후 연락을 받았다. "정원 초과로 초청을 취소하게 돼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모임을 소개했던 E씨는 "현 상황에서 한국 기자의 참석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마저 내린 문재인 정권은 교토대 교수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의 지적처럼 '혁명(革命) 외교'를 하는 것처럼 일본에 비친다. 그 결과 국교 정상화 후 일본에서 50년 넘게 형성된 친한(親韓) 세력은 붕괴되고, 한국에
적대적 여론이 보이지 않게 확산하고 있다.
-이하원 도쿄특파원, 조선일보(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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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의 3·1절 축전을 꿈꾸며
전후(戰後) 일본 총리를 역임한 언론인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은 1919년 5월 15일 자 동양경제신보에 다음과 같은 사설을 싣는다. "어느 민족인들 타민족에게 복속되는 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조선 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오랜 독립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은 독립을 회복할 때까지
일본 통치에 계속 저항할 것이며 지식과 자각의 증진에 비례하여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5월 20일 자 요미우리신문에는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기고문을 남긴다.
"물질도 영혼도 그들의 자유, 독립을 강탈하였다.
조선인들이여, 일본인들이
그대들을 모욕하고 고통스럽게 하여도 그들 가운데 이와 같은 일문(一文)을
남긴 자가 있음을 알아주오. 일본이 정의로운 인도(人道)의 길을 걷고
있지 못함에 대한 명백한 반성이 우리 일본인 사이에도 있음을 알아주오."
단잔은 1922년 '대일본주의의 환상' 사설에서 식민지 포기, 일·중 관계 개선, 개방적 무역이 일본의 살길이라는 '소일본주의'를 제창한다.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일본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통절히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1운동은 그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후 역사는 그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3·1운동이 제시한 민족 자결, 비폭력 사상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전후 일본이 추구해 온 반전(反戰)·평화 염원과 일치하는 현재진행형의 보편적 이념이다. 일본은
한국만큼이나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나라다. 3·1운동은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일본 총리가 3·1절 축전을 보내오는
날을 꿈꾼다. 일본 국민을 대표해 일본 정상이 한국 정상에게 전하는
3·1절 축전만큼 '과거를 직시(直視)한다'는 수사(修辭)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과거 앞에 겸허해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독일 총리는 유럽
화합을 위해 연합국 전승기념식에도 참가하는 용기를 낸다. 동아시아 화합을 위한 일본의 용기를 기대하고
싶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조선일보(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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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기념식장의 日 대사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가파르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생각나는 일본 외교관이다. 가나야마는
제2대 주한 일본 대사다. 일본 기업들로부터 포항제철 지원을
비롯한 경제 협력을 이끌어 낸 것이 업적으로 꼽힌다. 숨진 후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파주시에도 그의 묘지가
만들어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은 그가 1969년 3·1운동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한·일 수교 54년의 역사에서 3·1절 행사에 등장한 유일한 일본 대사로 기록돼 있다. 1972년 퇴직한
가나야마는 '현해탄의 가교'라는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과거 일본 관헌(官憲)이
자행한 것이 불행하고 나쁜 짓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일본 대사가 한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할까 두려워서
언제까지나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와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내가 당시 의의(意義) 깊은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매우 다행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가나야마 대사를 배려했다. 기념식장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은 최소화했다. 그 대신 "3·1운동이
거국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며 국력 배양에
힘쓰자고 강조했다.
한·일 양국이 서로 배려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요즘 한·일 관계는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선 최근 3·1운동 100주년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일제 징용 배상
판결, 해상 군사 대치,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공기(空氣)'다. 일본 측은 한국이 이번 3·1절을
계기로 반일(反日)로 치달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의
말대로 일본 측이 '기미년 독립운동'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다. 3·1운동은 침략국을
비난하기보다는 설득해서 양국이 동양 평화를 위해 함께 가자고 한 것이었다. "조선의 독립은 일본이 (침략자의)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떠받치는 자의 중책을 다하게 하는 것"이라는 선언문에 그 정신이 잘 요약돼 있다. 선언문 공약 3장은 "남(일본)을 배척하는 감정으로 그릇되게 달려 나가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일본의 우려와는 달리 3·1운동 100주년은 그 정신을 제대로 살리면 한·일 관계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 수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일본의 정치인들이 50년 전 가나야마 대사의 결단을 한 번이라도
숙고해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상대를 배척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일본을 설득해 함께하려 했던 3·1운동이 비단 일본에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하원 도쿄특파원, 조선일보(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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