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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멍석말이] [익명성과 공격성]

뚝섬 2024. 10. 5. 09:57

[사이버 멍석말이]

[익명성과 공격성]

 

 

 

사이버 멍석말이 

 

관심이 돈인 세상이다. 관심경제, 관종, 어그로 같은 단어 역시 일상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방송이나 언론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거나 정치권의 콜을 고사하는 식인데, 모두 지금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흥미로운 건 그들 모두에게서 등장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싫다’는 말이었다. 나락은 불교에서 지옥을 뜻하는 여러 이름 중 하나로 산스크리트어인 ‘나라카(Naraka)’에서 왔다.

 

몇 년 전부터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국에선 주로 손절 문화를 뜻하고, 어떤 인물이나 집단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단하거나 구독을 취소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파급력이 큰 유명인의 발언과 행동에 책임을 요구하는 건 긍정적이다. 문제는 때로 그 기준이 다르고 너무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좌표가 찍힌 인물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세(有名稅)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세금이다.

 

평범한 개인은 약하지만 군중은 강하다. 나쁜 일일수록 혼자하면 두렵지만 함께 하면 더 강력해진다. 팩트 체크를 우선시하는 기성 언론과 달리 사이버 멍석말이는 마녀사냥에 가까워 누군가를 불태워야 끝난다. 군중은 그들의 스타를 높은 나무 위에 올려놓고 우러러보다가 조그만 잘못이라도 있으면 다 같이 몰려가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우러러볼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이때 환호와 미움은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다. 어쩌면 신선한 환호와 미움의 대상을 사냥하는 것에 가깝다. 게다가 이런 군중 심리를 이용해 조회 수 이상의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엄청난 악플에도 끊이지 않는 연예인 부동산의 비포 애프터 기사가 대표적이다. 왜 이런 일이 빈번해졌을까. 성장이 멈추고 성공이 희귀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의 추락을 바라보며 자신이 상승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시대는 모두에게 비극이다. 그 부메랑이 언제 나를 칠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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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과 공격성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중학생 90% 이상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있으면 우리 손안에 세상이 쏙 들어오지요. 하지만 동시에 인터넷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답니다. 그중에서 악의적인 댓글(소위 악플)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근거 없는 소문, 무분별한 욕설, 비방 댓글과 같은 사이버폭력으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인터넷 댓글과 관련된 심리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익명성이 보장될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온라인상에서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부정적인 댓글이나 악성 댓글이 늘어날 것 같죠? 실제로 포스트메스(Postmes)와 스피어스(Spears)는 몰개성화 이론(deindividuation theory)에서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게 되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회 규범을 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요.

 

범죄심리학자 실케(Silke)는 마스크로 신분을 숨긴 사람이 공공기물을 파손하거나 타인을 위협하는 행동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를 내놨죠. 그는 북아일랜드에서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500명을 분석했어요. 그 결과 범행 당시 마스크를 쓰는 등 변장을 했던 206명이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맨얼굴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16%만 피해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혔는데, 변장했던 범죄자는 24%가 심각한 상해를 입혔어요. 신분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수록 공격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는 거죠.

이는 반대 상황에서도 적용됩니다. 상대방의 얼굴, 이름 같은 신분을 모를 때 더 공격성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피해자 이름을 알 때와 모를 때 가혹행위 수준이 달랐다는 걸 실험으로 보여줬어요. 인터넷에서 악플과 허위 댓글이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근거 없는 댓글에도 영향받아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전우영 교수팀은 '인터넷 댓글이 정치인을 판단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해 보았어요. 실험에 참가한 177명에게 '국회의원 ○○○'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생년월일·키·몸무게 등)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치인에 대한 인터넷상의 긍정적인 댓글과 부정적인 댓글을 보여줬어요. 가짜 국회의원에 대한 가상의 댓글이었죠.

결과는 놀라웠어요. 댓글이 타당한지 그른지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긍정적인 댓글을 보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졌고, 부정적인 댓글을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졌어요. 특히 부정적인 댓글을 본 실험 참가자들은 그 국회의원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응답했고요. 사실이 아닌 댓글이라도 사람들의 선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악플과 허위 댓글이 힘을 얻을까요? 독일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Noelle-Neumann)은 이럴 때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Theory)' 현상이 생긴다고 했어요. 댓글에는 반대하지만 공개적으로 강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고립되거나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침묵하게 된다는 거죠. 즉, 자신은 부정적인 댓글을 올리는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댓글을 작성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다수의 의견은 더 힘을 받게 되고, 소수의 의견은 점점 힘을 잃게 됩니다. 다수의 의견이 여론이 되어가는 모습이 마치 나선 모양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남에게 상처주는 못된 사람이 꼭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경우에 따라 남에게 잔혹해질 수 있어요.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게 필요하겠죠?

 

☞악플 해결책은 인터넷 실명제?

 

악성 댓글을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어요. 이름을 밝히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죠. 익명성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감안하면 일부 일리가 있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의사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위험성도 있어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일부 사이트에서는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를 훔쳐 악플을 다는 부작용도 나타났죠. 건전한 사이버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선한 댓글(선플) 달기 운동'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악플 예방만큼이나, 선플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노력도 중요하답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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