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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손혜원 부친 특혜' 의혹.. ] .... ['우리 아버지는']

뚝섬 2022. 6. 5. 07:05

[보훈처]

['손혜원 부친 특혜' 의혹, 이번에도 실무자 혼자 한 일이라니]

["손혜원 父, 공작선 타고 월북" 감추려 자료 공개 거부했나]

['우리 아버지는']

 

 

 

보훈처 

 

미국 보훈처인 제대군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는 부처 규모가 국방부 다음으로 크다. 32만명의 직원이 보훈병원 163개, 국립묘지 120개를 관장한다. 규모도 규모지만 직원들부터 '참전 용사와 제대 군인의 영예를 지키는 부서'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링컨 대통령 취임 연설문 일부인 '전쟁터에서 산화한 이와 그의 아내, 자녀를 돌보기 위하여'란 부(部) 모토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말이 저급한 트럼프 대통령마저 현(現) 장관을 임명하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사람들을 보호해달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영국 등 영연방 국가 현충일은 11월 11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전 국민이 1차 대전 전장(戰場) '플랑드르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빨간 양귀비를 달고 11시에 2분간 묵념한다. 매우 엄숙하다. 재향군인회가 양귀비 판매권을 갖는다. 꽃 값은 내고 싶은 대로다. 수익금은 재향군인회 운영비다. 전쟁을 겪으며 버텨온 나라는 보훈이 강하다. 보훈을 통해 국민 결속을 추구한다. 언제든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보훈처 시작은 1961년 군사원호청이다. 6·25 상이군인들과 유가족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 영역이 더해졌다. 전쟁터에서 몸바친 호국만이 아니라 독립·민주까지 보훈에 합친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한다. 보훈에 이념과 정치가 개입될 여지가 생겼다. 정권 성향에 따라 중심추가 호국과 민주를 왔다갔다한다. 좌우가 함께했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도 오락가락한다.

 

▶최근 보훈처에서 하극상이 벌어졌다. 피우진 전 처장 시절 '적폐 청산' 문제를 묻겠다며 국회가 피 전 처장의 '오른팔'을 불렀다. 현 처장이 '출석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거부했다. 이 '오른팔'은 정권 출범 직후 윤봉길 의사 손녀인 독립기념관장을 찾아가 "일주일 안에 사표를 내달라. BH(청와대) 뜻이다"라고 했다는 사람이다. 1년여 만에 사무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 정부 들어 보훈처에 보훈혁신위란 것이 만들어져 대대적 적폐 청산 작업이 벌어졌다. 전 정권 처장의 '비위'를 캔다며 경찰관까지 파견받아 6개월간 조사했다. '6·25 전범' 김원봉 서훈 검토 논란이 벌어졌고, 하재헌 중사 공상(公傷) 판정, 6·25전쟁 영웅 포스터에 중공군 사진 게재 등 호국 영령과 유가족들을 욕보이는 일이 이어졌다. 이제 보훈처 안에서 편을 나눠 싸우고 하극상까지 벌어진다. 보훈처가 국민 통합이 아니라 이념 전쟁터가 됐다.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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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부친 특혜' 의혹, 이번에도 실무자 혼자 한 일이라니


손혜원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 특혜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이 피우진 보훈처장에 대해 "손 의원에게 부정 청탁을 받았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손 의원 경우는 '청탁한 사람은 과태료 사안이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라는 이유에서 수사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대신 보훈처 전 보훈예우국장(현 국립대전현충원장)은 국회 제출 자료에서 '손 의원 오빠가 전화로 부친의 유공자 신청을 했다'고 거짓 보고한 걸 문제 삼아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손 의원 부친 손용우씨는 남로당 활동, 월북 경력으로 과거 6차례 보훈 신청에서 탈락했다가 현 정권에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손 의원은 작년 2월 국회 의원회관으로 피 처장을 불러 독립유공자 선정 문제를 논의했고, 보훈처는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도 유공자 선정이 가능하도록 내규를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전후 사정으로 볼 때 손 의원이 피 처장에게 청탁을 했고 피 처장이 부하들에게 지시해 무리하게 손 의원 부친을 유공자로 선정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실무 국장은 재판에 넘기면서 손 의원과 피 처장은 불러 사실 확인하는 절차도 없이 혐의가 없거나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냈다. 부처 국장이 무슨 이득 볼 게 있다고 '북한 공작선을 타고 월북했던 사람'이라는 과거 치안본부 작성 자료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손 의원 부친의 유공자 선정에 관여했겠는가. 검찰은 '증거 자료가 없다'고 했는데 검찰이 한 것이라고는 피 처장과 손 의원에게 서면 질문서를 보낸 것밖에 없다. 두 사람이 '답변을 거부한다'고 알려오자 수사를 끝냈다는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가 전 정권이 임명한 환경부 산하기관 간부들을 밀어내고 자기들 추천 인사를 임명하려 했던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청와대 인사수석실 비서관만 불구속 기소하고 상급자인 인사수석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부 초등학교 국정 사회 교과서 조작 범죄 사실이 드러났을 때 역시 "장차관 모르게 실무자들이 한 것"이라며 과장과 과장 아래 직원만 불구속 기소하고 끝냈다. 유독 이 정권에선 실무자들이 윗분 모르게 '정권 관심사'를 처리하다가 사법 처리 대상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선일보(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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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父, 공작선 타고 월북" 감추려 자료 공개 거부했나

손혜원 의원의 부친이 '1947년 말 북한의 대남 공작선을 타고 월북해 밀명을 받았다'는 내용이 적힌 국가보훈처 자료가 공개됐다.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가 1986년 작성한 손용우씨 독립 유공자 공적 조서에는 이런 내용과 함께 '손씨는 6·25 당시 경기도 설악면 세포 조직책이었다' '손씨의 여동생과 사촌은 각각 조선민주여성동맹과 자위대원으로 활동하다 월북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조서는 당시 치안본부의 확인을 받아 작성됐다.

손씨는 이런 이력 때문에 1982~2007년 6차례나 보훈 신청에서 탈락했다가 현 정권 들어 독립 유공자로 선정돼 논란이 됐다. 당연히 '실세 여당 의원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졌지만 보훈처는 야당의 요구에도 손씨 공적 조서 등 공개를 한사코 거부해왔다. '개인 정보'를 이유로 댔지만 결국 자료에 적시된 손씨의 구체적 반(反)국가 행적이 드러나는 걸 막으려 했던 것 아닌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는 또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다.

손 의원 부친 서훈 과정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손 의원은 지난해 2월 피우진 보훈처장을 의원회관으로 불러 독립 유공자 선정 문제를 논의했고, 피 처장은 "다시 신청해 보라"고 했다. 보훈처는 곧 '광복 이후 사회주의 활동 이력자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만 않았으면 서훈을 검토한다'는 취지로 내규를 바꿨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기념식에서 손의원 모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직접 수여했다. 모든 일이 한 사람을 위해 짜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의원과 보훈처는 정당한 절차를 따랐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손 의원은 부친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니들(너희들) 아버지는 그때 뭐하셨냐"며 윽박질렀다. 손 의원과 대통령 부인의 특수 관계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겠나


-조선일보(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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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어느 의원이 '늬들 아버지는 그때 뭐 하셨느냐'고 사납게 물었을 때 영화 '친구'에서 고교 선생이 학생들에게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묻고는 차례로 뺨을 때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의원은 제 아버지를 감싸느라 남들 아버지의 과거를 야유하듯 물었을 테지만 지금쯤 후회하고 있어야 옳다. 그 의원은 듣는 이들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치켜든 셈이다.

▶이 의원의 '뭐 하셨느냐'는 글을 읽은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는'이란 제목의 글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고 한다. 6·25 때 인민군이 독약 풀까 봐 친구들과 우물을 지켰던 아버지, 31년간 광산에서 석탄 캐며 6남매 키우고 진폐증 얻어 돌아가신 아버지, 평양에서 태어나 기관사로 일하다 전쟁 때 연합군 물자를 날랐던 아버지…. 모두 훈장감이다. 다달이 연금을 받지 않아도 아버지들은 다 유공자다. 시인 김현승이 쓴 대로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고3 때 이북에서 전쟁을 맞은 아버지는 국군에 자원 입대했다. 전쟁 터지고 첫 겨울, 미군 수송기가 산등성이에 떨군 보급 물자를 두고 남과 북의 굶주린 군인들이 전투를 벌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고 명예 제대하셨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서야 국가 유공 대상임을 알았다. 자식들이 대신 지원서를 넣을 때 아버지는, 불구가 된 것도 아닌데 미안한 일이로구나, 하셨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 주차장 요금을 할인받을 때마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비닐봉지 한 장 허투루 안 버리고 달력 이면지를 메모지로 쓰시던 분이었다. 세상 뜨면 현충원에 안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무척 기뻐하셨다. 나 같은 졸병에게도 정말 그곳 자리가 있느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영결식에서 3군 의장대 경례를 받는 아버지 영정을 보며 아들로 태어나 새삼 자랑스러웠다.

▶시인 손택수는 어려서 한 번도 목욕탕에 데려가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다른 부자(父子)가 서로 등 밀어주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간 뒤에야 비로소 그는 아버지 등을 본다. 거기엔 지워지지 않는 시커먼 지게 자국이 있었다. 모두에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소중한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그 울타리를 넘어서 자신의 아버지를 경우에 맞지 않게 국가의 유공자로 만들려다 논란이 벌어지자 '너희 아버지는 뭐 했느냐'고 핏대를 세운다면 제 아버지를 더 욕되게 할 뿐이다. 참으로 부박(浮薄)한 질문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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