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와 봉하마을, 누가 불편하게 만드나
이낙연 의원의 국회 연설
"군사독재 정권보다 더 빈부 격차 키운 반서민 정권 됐다, 노무현 정부에 서민은
배신당했다…"
지난달 하순 '노무현과 바보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낙연 총리는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희망(希望)"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호(號) 월간조선에 따르면 2004년
이낙연 의원의 대정부 질문은 이러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는 각종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매일 음식점 190곳이 문을 닫고 실업자 950명이 생긴다고 한다. 음식점의 85%가 적자를 보거나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노동자, 농민, 노점상, 택시 기사만 시위에 나선 게 아니라, 종교인, 교육자, 사학 재단 관계자, 사회
원로, 재향군인, 음식점 주인, 집창촌 여성까지 시위에 나섰다. 급기야 공무원들이 총파업을 선도하는
형국이 됐다. 이 정도면 거의 '민란(民亂)' 직전 상태라고 보아야 옳지 않겠나."
노무현 정부 출범 3년이 됐을 무렵 그의 국회 연설도 '노무현
희망'과는 무관했다.
"국민의 자살이 사상 최다 기록을 해마다 경신하고 있다. IMF 때보다 훨씬 많다. 빈곤층이 8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보다 더 빈부 격차를 키운 반서민 정권이 됐다. 주택
공급을 늘린다면서 규제를 강화하고 균형 발전의 이름으로 전국을 개발 광풍에 몰아넣었다. 최대 실패는
양극화 확대와 사회 분열이다. 서민들은 노무현 정부에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노무현 10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 집결한 당정청 핵심 인사, 현직 광역단체장, 과거 정부 인사 중에도 당시 이 총리 같은 발언을
했던 이가 꽤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 '가치 추구' '원칙 소신' '반칙
특권과의 싸움' '새로운 정치의 씨앗' 등 좋은 말만 넘쳐나고
있다. 노무현과 대립각을 세웠던 보수 언론조차 그가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이었는지를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때와 지금 노무현 평가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설령 그때 안 보였던 것이
지금 보이게 됐다 해도, 이낙연 총리처럼 갑자기 180도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다. 단지 지금의 권력과 시세(時勢)에 편승해 입장을 그렇게 바꿨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이 안
들어섰으면 이 총리도 봉하마을에 안 갔을 거고 지금처럼 성대한 10주년 추모 행사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노무현은 이런 대접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그는 우리 정치사에 큰 정신적 유산(遺産)을 남겼고, 보수
진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던진 '지역주의 타파'는 여전히 이념과 진영 논리를 떠나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실제
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반대 입장에 섰던 사람들도 연민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권과 지지 세력이 주도하는 노무현 10주기나 각종 문화 축제에 대해 보수
쪽 사람들 마음속엔 어떤 불편함이 있다. 현 정권 사람들은
"노무현은 보수·진보 진영을 떠나 소중한 가치"라며 이렇게 떠들썩한
행사를 벌이면서, 왜 보수의 상징적 인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야박했느냐는 것이다. 2년 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았을 때 현 정부의 개입으로 기념우표 발행은 취소됐고 동상(銅像) 건립은 무산됐다. '박정희' 이름을
걸고는 기념 음악회 장소를 빌리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현 정권에서 '박정희 가치'는 한낱 조롱거리로 여겼다.
이는 자기들만 가치 있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도덕적 오만(傲慢)과 같은 것이다.
얼마 전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한 발언도 그렇다. 천안함 피격은 북한과 무관하다든가, 세월호
침몰에는 정권이 개입됐다는 주장에 대해 침묵하던 대통령이 왜 이 부분에만 민감했나.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세력은 민주화 가치를 지키는 쪽이고 한국당을 비롯한 안보 보수 쪽은 독재 정권 잔당으로 입력돼 있는 것 같다.
'광주 사태'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화하고 특별법으로 보상해준 쪽은 문 대통령이 폄하한 '독재자
후예'인 보수 정권이었다. 그렇다 해도 개인은 다른
각도에서 광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민주화를 거쳐 획득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이를 '독재자의 후예' 운운하는
게 바로 독재자적 발상이다.
문 대통령은 학생운동 전력으로 도덕적 우위에 있어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믿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9년간 옥살이했던 장기표씨는 필자와 통화하면서
"사실 나는 데모할 수 있는 대학생이어서 특혜를 받았다. 나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대한민국은 벌써 망했다. 농사 안 짓고 공장에서 일 안 하고 기업도 안 하고 전부 다 데모만 했으면
나라 안 망했겠나. 사회는 다양한 부문에서 다양한 노력이 총화를 이뤄 발전한다"고 말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 운동 경력을 더 이상 팔아먹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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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경제 遺訓, 어디로 갔나
진보의 '새 길' 모색한 노무현, 시장·경쟁 중시하는 조언 남겨
盧는 DJ 실용주의 계승했건만 文 정부 '진보
원리주의' 빠져
어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열정을 쏟았던 일은 진보 진영의 새 길 모색이었다. 급작스러운 서거 후 측근들이
노 전 대통령 구술, 메모, 토의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이
그의 유작(遺作)이 됐다.
'진보의 미래'라는 책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이상과 현실의 접점을 찾기 위해, 진보 진영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현 집권 세력이 노무현 승계자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시장 메커니즘'과 '경쟁'을 중시했다. 그는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생산직 노동자 임금 올려주면, 그
인건비 때문에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하는 문제가 있다. … 각국이 세금
낮추기 경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개별 국가가 그 선택(증세를 의미)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국제 경쟁'이란 개념은 아예 머릿속에 없는 듯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을 밀어붙인 문 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노 전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자'란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시장 메커니즘이 존재하게 해야 한다"면서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반대했다. 반면 문 정부는 프렌차이즈 본사가 가맹점 필수 품목 원가를 낱낱이
공개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경쟁은
중요하다. 사회적 생산력을 위해서도 그렇고,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도 그렇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역사적으로도 그랬다"고
했다. 반면 문 정부는 최고 금리, 카드 수수료 인하, 제로페이 도입, 편의점 출점 규제 등 시장 자율성을 저해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정책을 잇따라 시행하고 있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탈(脫)원전을
바보 짓으로 평가했을 것이다. "세계 6위
원자력 발전 국가인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갖고 있다. … 도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안정성을 갖고 있다." 적폐 몰이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한때 감옥을 다녀온 사람들이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각기 역할을 이루려고 했는데, 저항의 시대를 넘어서고 건설의 시대로 가니까 바닥이 보인다. …
우리는 착한 사람이고 뭔가 미래를 위해 기여한 것처럼 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노 전 대통령이 가장 경계한 것은 '진보 원리주의'였다. 그는 "보수주의는 규제 완화, 작은 정부, 정부 혁신, 구조조정,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이런
명제를 보수주의의 논리로 당당하게 주장한다. … 타당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진보 진영도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보주의의 대안은 뭐냐. 진보 원리주의냐, 제3의
길이냐'는 화두를 던졌다. 그의 답은 다음
말에 녹아 있다. "(유럽 진보 진영에선) 경쟁과
성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동에 대한 태도도 상당히 양보하고, 작은
정부, 민영화, 개방 등에 대해서도 수용하는 전략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보편적 세계주의를 지향하며, 효율을 중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용주의
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이라크 파병은 그런 철학 승계의 결과물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무엇이 바른길인지 선비처럼 올곧게 따지는 서생적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에만 매달리면 완고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언제 물건을 구매하고 언제 팔지를 생각하는 상인들의 현실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보 선배들의 유훈을 깡그리 잊은 듯한 문 대통령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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