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연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지난 6일로 75주년이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라디오 연설에서 "여러분은
위대한 십자군 원정에 나선다"며 "대세는
바뀌었다(The tide has turned)"고 선언했다.
이 연설은 미국·영국·캐나다 등 서방 8국 연합군을 '십자군'으로 결속시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노르망디 기념일은 '연합군의 현충일'이 되어 서방국가들의 동맹 의식을 되새기는 날이 됐다.
▶"40년 전 오늘, 이곳의 하늘은
화약 연기와 병사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으로 가득했습니다." 1984년 노르망디 40주년 기념식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말했다. "여러분은
조국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나치 폭정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여러분 뒤에 조국과 국민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쟁
영웅들을 눈물 흘리게 한 이 연설은 노르망디 기념식 최고의 연설로 꼽힌다.
▶올해 노르망디 기념식에서도 각국 정상들의 감동적인 연설이 이어졌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주목받았다. '미국 우선'을 주장하는 그가 워낙 돌출 발언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참전 용사 여러분의 전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용감하고 비타협적이며 진실한 그 정신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히 강하고 단결된 나라들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미국에서 "트럼프도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나왔다. 백악관 출입 정지를 당했던 기자도 "트럼프가 오늘만큼은 옳았다"고 했다.
▶엊그제 현충일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갑자기 6·25 침략 공훈으로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 이야기를 꺼냈다. 3·1절 100년 기념사에서
느닷없이 '빨갱이론'이 나온 것과 비슷했다. 그는 김원봉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됐고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그래놓고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세 번 현충일 추모사에서 6·25를 한 번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노르망디에서 노르망디를 말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미군 두 명의 이야기를 소개한 뒤 "그
영웅들이 이 자리에 와 있다"며 95세 넘은 참전
용사들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휠체어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노병들은 거수경례로 답했다. 박수와 환호가 1분 넘게 쏟아졌다.
이렇게 대통령으로부터 듣기만 해도 애국심이 솟는 연설을 기대하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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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6·25 영령들 앞서 北 훈장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 칭송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기념사에서 "광복군에는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어서 "통합된 광복군은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고,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고, 북한 정권의 요직을 역임했다. 더구나 "조국 해방전쟁(6·25)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김일성으로부터 최고 훈장의 하나인
노력 훈장까지 받았다.
현충일은 6·25 때 북한군의 침략을 막다 희생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그런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6·25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6·25 때 침략자들 편에서 공을 세운 사람을 일제 때 광복군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말을 이어 붙였다.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김원봉이 공을 세웠다는 6·25로
국토가 결딴나고 우리 국민이 떼죽음을 당했다. 사회 주류 교체가 필생의 숙원이라는 문 대통령이 이제 6·25 남침의 역사마저 거꾸로 뒤집으려 한다. 그것도 다른 장소도 아닌 김원봉 같은 사람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국군들 앞에서였다. 대통령의 이념 성향이 어떤지는 대부분 알게 됐지만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때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독립 유공자 포상을
검토하자"고 했다. 그 뜻에 따라 보훈처는 서훈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자 대통령은 김원봉에게 '국군 뿌리'라는 공적까지 만들어 얹어 주려는 것인가. 지하의 영령들이 통곡할 일이다.
문 대통령은 "보수든 진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했다. 김원봉 찬양의 맥락에서 보면 북한의 '김씨 왕조 진보'도 '애국'의 범주에 드나. 문 대통령은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국민을 이념에 따라 가르지 말고 통합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제발 그래 달라고 대통령에게 간청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는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했고, 5·18 기념사에선
5·18을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은 "독재자의
후예"라고 했다. 국정 과제 1호로 내세운 적폐 청산은 숱한 비극을 내며 집권 2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적폐 수사를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사회 원로의 건의에 대통령은 "국정 농단은 반헌법적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최근 두세 달 사이에만도 대통령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친일, 독재자 후예, 반헌법적이라고 몰면서 편 가르기를 해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국민을 편 가르고 갈등을 부채질하는 핵심에 문 대통령이 서 있다. 이랬던 대통령이 느닷없이 편 가르기를 말자고 한다. 유체 이탈, 내로남불 발언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도 힘들지만 이것은 어이가 없을 정도다.
3·1절 100년 기념식에서 느닷없이 '빨갱이론'을 펼친 데 이어 현충일엔 김일성 훈장 받은 자를 국군의
뿌리로 칭송했다. 국군 통수권자가 현충일 날 호국 영령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한다면 국군 장병들에게
어떻게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나라를 지키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럴 마음이 있기는 있나.
-조선일보(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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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6·25당시 北장관… 1958년 권력투쟁때 숙청
일제땐 임시정부 해체운동 벌여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좌우
합작'의 상징으로 꼽은 김원봉(1898~1958)은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 수립에 관여했고 6·25전쟁 때는 상(相·장관)을
지냈다. 김일성으로부터 '조국 해방 전쟁(6·25)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 창단에 참여했고 이후 의백(단장)을 지냈다. 의열단은 일제 고위 관료·군인·경찰 등을 상대로 암살·파괴
공작을 벌였다. 김원봉은 1930년대 임정 해체 운동을 벌이는
등 임정과도 긴장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1938년 자신이
결성한 조선의용대 대원 다수가 중국 공산당으로 옮기자 남은 대원들과 임정에 합류했다.
김원봉은 1948년 4월 월북해 같은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 격)으로 선출됐다. 그해 9월
북한 정권이 수립되자 초대 내각 국가검열상에 올랐고, 6·25전쟁
중이던 1952년 노동상이 됐다. 그는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국회 부의장 격)까지 올랐지만
1958년 숙청됐다.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함께 언급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37년 결성된 무정부주의 성향의 항일운동 단체 '조선혁명자연맹'이 만든 군사 조직으로, 1941년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됐다.
-김경필 기자, 조선일보(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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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4년전 "김원봉에 최고 훈장 바치고 싶다"
"광복 이후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평가 하는게 역사 세우는 길"
어제 추념사서 "채명신 장군은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던 참군인" 김원봉 이어 우파 인사도 거론
김원봉, 김일성과 함께 -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정권 초대 내각에 참여한 김원봉(원 안)이 김일성(맨 오른쪽)과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북한 김일성 정권의 요직을 거쳤던 김원봉을 좌우(左右) 합작의 대표 사례로 거론했다.
일제에 맞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광복군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고, 그중
하나가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이라는 것이다.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6·25 때의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노력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보수·진보 간 이념 논쟁을 촉발시킬 수밖에 없는 김원봉을 문 대통령이 직접 애국자로 '복권'(復權)시킨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법학도였지만 오래전부터 역사책을 탐독해 왔고, 그 과정에서 김원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봉이 북한 정권에 참여했지만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문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다는 말도 있다. 문
대통령이 김원봉과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이들에 대한 서훈을 추진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여운형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54명에게 훈·포장을 줬다. 하지만 그때도 북한 정권에 참여하거나
관련된 사회주의자들은 서훈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노 전 대통령 옆에서 이런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청해부대 밧줄사고 故최종근 하사 부모와 분향-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식 도중 사고로 순직한 고(故) 최종근 하사의 아버지에게 분향을 권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015년 김원봉의 의열단 활동을 다뤘던 영화 '암살'을 관람한 뒤 김원봉에 강한 관심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치열하게 무장투쟁한 분인데, 해방 후에 북으로 갔다. 얼마 있어 숙청됐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설 곳이 없었다"고 했다. 페이스북에는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된다. 항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며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 독립 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했다.
문 대통령 부친이 북한 흥남
출신의 피란민이라는 점이 김원봉에 대한 관심을 키웠을 수도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제일 혐오하는 말이 '빨갱이'"라며 "김원봉은 남쪽에선 빨갱이로 불리지만 북에서는
숙청당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일제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버림받은 김원봉을 복권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빨갱이'로 몰렸던 민주화
운동 인사와 북한 정권에 참여했던 사회주의 인사들은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독립 이전의 행위가 정당했더라도 전쟁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부정했던 인사들을 섣불리 복권할 경우 통합보다는
이념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원봉 언급이 그에 대한 서훈 논란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사례로 들기 위해 좌파 계열에서 김원봉을 언급했고, 우파
인사 중 6·25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채명신 장군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전우들인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던 채명신 장군은 참다운 군인 정신을 남겼다"고 말했다.
-정우상 기자, 조선일보(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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