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사귀는
법'·'싸우는 법'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사라지자 폭발한 한일
갈등
'夢想외교' 꿈깨고 나를 알고 상대 바로 봐야
국가가 생존하려면 '사귀는 법'과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한국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의 작년 GDP는 1조 7000억달러다. 그러나 '상대 국력'은 여전히 일본의 3분의 1, 중국의 9분의 1이다. 국제 관계에선 상대 국력이 말을 한다. 국가가 '사귀는 법'이 외교이고 '싸우는
법'이 전쟁이다. 사귀는 데 서툴고 싸우는 데 무능한
나라는 굴욕을 겪는다.
아베(安倍晋三)의 일본이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9개월 만에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한 2017년 12월을 기점(起點)으로
치면 1년 6개월이 된다.
'자유롭고 차별 없는 무역 환경'을 담은 오사카 G20 정상회담
공동 선언이 채택된 지 이틀 후다. 일본산 생산 장비와 중간 소재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 큰
충격이다.
일본의 보복이 시작되자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본 보복 품목은 우리가 작성한 예상 리스트의
1~3번에 있던 항목'이라고 했다. 공습(空襲) 목표를 알아맞혔다는 뜻이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淸太宗) 홍타이지에게 포위돼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仁祖) 조정(朝廷)에도 이런 유형의 정부 고위 인사가 많았다.
한·일 외교가 탈선(脫線)한 후 일본은 두 방향으로
움직였다. 일본 정부 핵심 각료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그 국민 간의 청구권은 본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 2조를 한국이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협정 3조 규정대로 '협정의
해석에 양국 간 이견(異見) 있을 때 구성한다'는 중재위원회의 구성을 요구했다. 공개 외교 뒤편에선 보복 과녁을 WTO 규정 위반 여부가 확실하지 않도록 선택하는 은밀(隱密) 작전을 폈다. 한국은 무대응(無對應)으로 일관했다. '설마'로
시종한 대책은 일이 터지자 우왕좌왕했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국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국'이고 '미국과 일본이 동맹국'인 '동맹국의
동맹국'관계다. 유사시(有事時) 한국 방위를 지원할 미군 병력·항공기와 함정·병참 장비는 일본 내 미군 기지에 있다. 미국 입장에선 한·일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한·일 간 과거 각종
위기가 결정적 파국(破局) 없이 수습된 것은 그 배후에서
미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 분쟁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사라졌다.
일본은 중국 억지(抑止)라는 미국의 새 국가
전략의 핵심 파트너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換算)하는 트럼프에게 싫은 내색 한번 비치지 않았다. 워싱턴 정계는 물론이고
일반 미국 국민에게 한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 쪽을 진짜 동맹국으로 여기는가 물어보라. 사실은 일본 역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한국 모습에 미국과 불안을 공유했다. 일본은 한반도 향방을 놓고 중국·러시아와
두 차례나 전쟁을 벌인 나라다.
전후(戰後) 일본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사귀는 법'과 '싸우는
법' 심지어 '지는 법'까지
반성한 토대 위에 세워진 나라다. 1945년 8월 15일 이전 일본 영토는 사할린·한반도·대만·남태평양군도에 이르고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동맹을 영리하게 선택하고 그 동맹 덕분에 전쟁에 승리해서 획득한 전리품(戰利品)이다.
이러던 일본은 1930년대 후반 설익은 '앵글로
색슨 쇠퇴론'에 휘둘려 영 ·미에 등을 돌리고 '독일 발흥론(勃興論)'에 경솔하게 올라탔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 '지는 때'를 놓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세례를 받았다. 일본은 이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칼자루를 쥐는 것'과 '칼날을 쥐는 것'의
차이를 터득했고 강대국과 싸우기 전 '사귀는 법'을 먼저
고민하는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아베의 공격으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것은 문재인 정권이 아니다. 한국 미래 세대의 일본관(日本觀)이 지진(地震)을 만난듯 흔들렸을 것이다. 국제법은 존중하는 깍듯한 나라라는 일본의 '신뢰 등급'이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향(下向) 조정됐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좌절할 이유는 없다. 현재 패권(覇權) 국가 미국 수도 워싱턴이 영국군 포화(砲火)에 불타던 시절이 있었고, 근대 독일은 나폴레옹의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태어났다. 좌절을 좌절로 아는 순간, 그곳이 출발선이 된다. 어차피 나를 모르고 상대를 모르는 '몽상(夢想) 외교'는 언젠가
깨지게 돼 있다. 주(週)
52시간 근무제를 한다며 문재인 정권이 꺼버린 모든 연구소의 컴퓨터를 다시 켜는 것으로 시작하자.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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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첫째 둘째 셋째도 AI", 한국의 첫째 둘째 셋째는 뭔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집중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AI)"이라고 했다. AI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고 강대국
패권 경쟁까지 좌우한다는 그의 통찰은 전적으로 옳다. AI는 자율주행·로봇·블록체인 같은 신산업과 의료·바이오
분야, 나아가 군사·안보와 무기체계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핵심이다. 미국·중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AI 경쟁력
우위에 서려고 국가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AI 전쟁'이다.
과거 한국은 세계 산업의 새 흐름에 민첩하게 올라타던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첫째, 둘째, 셋째도 '북한'이고 '선거'다. 한국 정책에서 AI는
우선순위를 매길 수조차 없다. 정책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십 년 된 낡은 규제와 제도, 관행이 AI의
발목을 잡고 있고 이를 고쳐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제 역할을 포기했다. 'AI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에 대한 규제부터 최악이다. 의료보험이나 은행·금융회사, 유통기업 등에 축적된 방대한 빅데이터가 있지만 AI 연구자나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에 묶여 활용할 수 없다. 정부는 규제를 찔끔 완화한 '데이터 3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핵심 규제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나마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로 기업 AI 개발 부서나
연구기관들이 오후 6시만 되면 컴퓨터를 강제로 끄고 연구·개발자들을 퇴근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세계의 천재급 두뇌들이 휴일도 없이 밤샘하며 AI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경쟁이 되겠는가.
AI 연구·교육 허브라며 출범시킨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은 학생들을 가르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AI 인재를 데려오려 했지만
"미 MIT는 1조원의 AI 기금을 조성했다"는 말을 듣고 스카우트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정부는 AI 인재 육성 대학원 3곳을 선정했지만 이곳들도 교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온갖
규제에다 연구실 컴퓨터를 강제로 끄는 나라에 어떤 AI 인재가 오겠나.
현재 한국의 AI 기술력은 미국보다 2.4년 뒤진 것으로 평가된다. AI에서 2년은 제조업의 20년 격차 이상이다. 중국은 미국과 AI 패권을 겨룰 수준이고, 일본은 초중고 100만명, 대학·대학원 50만명에게 AI를 가르친다. 지난 4월 정부 주도의 유일 인공지능연구원에 기자가 방문했더니 사람 한두 명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전원이 꺼진 컴퓨터 수십 대뿐이었다. 빈 창고가 따로 없었다. 전 정권 때 생긴 곳이라고 지원이 끊겼다고 한다. 대체 이 나라가 왜 이런가.
-조선일보(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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