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조선 망국 논란’보다 중요한 것] [ ..차라리 죽창가만 불러라]....

뚝섬 2022. 10. 23. 05:57

[‘조선 망국 논란’보다 중요한 것] 

[청와대는 차라리 죽창가만 불러라] 

["징용 배상 판결이 '뇌관'... 최근 한일관계 갈등은 모두.. "] 

[꿩이 소리칠 때 대처하는 법]

 

 

 

조선 망국 논란’보다 중요한 것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나라 구실 조선, 그렇다고 日의 강제 병탄이 정당화되진 않아
고종, 만민공동회의 개혁 건의 저버리며 마지막 회생 기회 물거품
100
나려면 소모적 친일 논란 그만하고 미래 준비를

 

조선왕조는 언제 망했나? 이 질문에 대한 즉답은 “1910년 일본에 강제 합병되었다”일 것이다. 그런데 질문의 첫째 사항인 ‘언제’를 더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1897해체설이다. 그해 10월 ‘대한제국’이 성립하면서 고종은 ‘왕’에서 ‘황제’로 격상되었고, 국가 명칭도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오백여 지속된 조선왕조는 종언을 고했다”는 게 해체설의 요지다. 1905주권 박탈설도 있다. 이해 11월 우리나라는 ‘을사보호조약’으로 모든 외교권과 국내 통치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서재필은 일본인 통감이 지배하는 자주 외교권 없는 대한제국은 이미 망한 나라라고 보았다.

 

질문의 둘째 사항인 ‘’, 망국의 원인은 복잡하다. 물론 조선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희생됐다. 조선의 내부 질환이 아무리 심각했다 하더라도 점으로 일제의 침략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노약자의 목숨을 빼앗은 이웃이 살인죄를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100여 년 전 망국적 상황을 지금 되돌아보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그때 갈 수 있었는데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을 되짚어서 지금 잘하려는 애씀이다.

 

그렇게 볼 때 구한말(1863~1910) 상황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1898 고종의 선택이다. 이해 10 말부터 벌어진 만민공동회 망국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과 관이 마음을 모은 아주 예외적인 기회였다. 가령 10월 29일 독립협회 회원들은 종로 한가운데서 정부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국편민(利國便民)에 관한 여러 의견을 모아 고종 황제에게 건의문을 올렸다(헌의6조). 중추원 의장 한규설 등에게 이 ‘헌의6조’를 전달받은 고종은 시행을 약속했다. 국왕이 신료와 백성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약한 이 사건을 서울대 김홍우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계약”이라고 불렀다. “이날 관리와 백성이 협의한 일은 나라 세운 500 이래 처음 있는 ”이라는 한규설의 말도 이 계약의 역사적 의의를 보여준다(’광무계약’). 고종은 또한 11월 1일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하기 위해 중추원 의원(50명) 절반을 독립협회에서 뽑고, 나머지 절반은 관선으로 한다고 제정·공포했다.

 

이처럼 “국가의 앞날에 새로운 빛이 비치는 듯한순간 고종은익명서 사건 핑계로 모든 약속을 무효화했다. 조병식 등 수구파는 자기들이 정권에서 배제될까 봐 11월 4일 밤 광화문 등지에 독립협회를 모함하는 글을 게시했다. 그들은 고종을 찾아가 ‘독립협회가 박정양을 대통령으로 하는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격분한 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 체포 명령을 내렸다. 관민이 뜻을 모으고 임금까지 약속한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고종은 이어서 조병식을 중심으로 한 친러 내각을 성립시켰다. 신민들과 한 약속을 저버린 데 이어 자격 미달자를 요직에 앉힌 것이다. 배신으로 고종은 끝내 사대부는 물론이고 대다수 백성에게 외면받았다.

 

요즘 ‘조선 패망 논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사람은 페르낭 브로델이다. 그는 ‘프랑스의 정체성’에서 “역사란 미래가 현 세대에게 보내는 일종의 빚 독촉장”이라고 말했다. 미래로 연결되는 실천적 관심이 곧 역사 공부라는 얘기인데, 그에 따르면 “오늘의 문을 열고 미래로 나아갈 비로소 현재라는 시간은 미래로 연장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재 시간을 미래로 연장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정치의 블랙홀같은 친일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현재의 병통을 정밀히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국가와 사회의 질환을 엄밀 진단했던 정약용처럼 ‘한국병’의 원인을 다방면으로 심층 분석해야 한다.

 

온 나라의 관심이 용산과 여의도에 쏠린 가운데 한국의 압축 성장을 가능케 했던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 급격히 고령화되는 인구 구조와 최하위 출산율, 학교 교육 붕괴와 학업 성취도 대폭 하락 소식이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고통스러운 국가 개혁을 통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정치권은 온통 정쟁에 매몰돼 있다. 소모적 친일 논란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지금의 논란은과거사실 규명을 위한 것도 아니고, ‘미래준비 차원도 아니다. 오로지 ‘현재’에만 관심 쏟는 여야 인사들의 역사 논쟁은 국민에게 끝내 외면받을 것이다. 100여 년 전 고종처럼.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조선일보(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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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차라리 죽창가만 불러라 

 

일본은 國策에 단결하지만 즉흥적인 국책도 많다
그래서 치밀한 상대에겐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른다
청와대는 뒤로 빠지고 전문가를 모아 힘을 실어라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잡자마자 한 일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2015년 '위안부 합의'를 검증한 것이다. 그때 발표한 보고서 29쪽의 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설득한다는 전략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미국에 역사 피로 현상을 불러왔다.' 미국을 끌어들여 문제를 키우는 바람에 성급한 대응으로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다. 문 정권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위안부 합의를 부정했다. 이런 문 정권이 징용 문제가 터지자 미국으로 달려가 중재를 요청했다. 결과는 보도된 대로다.

위안부 합의 당시 문 대통령은 "10억엔에 우리 혼을 팔아넘겼다"고 했다. 이제 문 정권이 우리 혼을 찾아올 기회다. 위안부 합의에는 ①일본군의 관여 인정 ②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③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④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지원 등 항목이 포함됐다. 징용 문제에서 문 정권이 제시한 타협안은 '일본과 한국 기업이 함께 보상한다'는 내용이다. 이조차 일본에 거절당했다. 지금 상황에서 문 정권이 박 정권이 만든 위안부 합의 이상의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없다.

문 정권은 이런 비교에 화날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이 잘 정리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으나, 징용 피해 보상은 협정으로 받은 무상 3억달러에 반영됐다.' 이 견해를 밝힌 당국자가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지금 파문을 일으키는 대법원 판결은 징용 문제를 위안부와 똑같은 미해결 과제로 규정함으로써 노 정권의 2005년 결정을 실질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의 계승자라면 당연히 사법부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국내 모순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움직인 것은 오히려 박 정권이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2005년 결정이 일으킨 한국 외교의 위헌(違憲)적 상황을 없애는 과정에서 나왔다. 일하는 과정에서 일탈은 있었으나 징용 판결에 대한 박 정권의 관여 역시 본질적으로 행정(2005년 결정)과 사법(2012년 대법원 판결)의 모순을 없애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문 정권은 거꾸로 움직였다. 위안부 합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위안부 문제를 위헌 상태로 되돌렸다. 징용 문제를 다룬 방식은 냉혹했다. 검찰을 동원해 외교 문제에 대한 국가기관 간 논의를 '재판 거래' '사법 농단'으로 몰아붙이고 판사들을 재판대에 올렸다. 문 정권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2005년 결정을 파기하지 않았다. 두 판단을 조화시킬 절묘한 해결책을 제시한 적도 없다. 문제를 악화시켜 파국을 향해 달려갔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당연하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힘을 모아준다고 문 정권이 대일(對日) 외교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 정권은 법적 배상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위안부 합의를 부정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은 합의가 국제 관계에서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이런 정권이 징용 문제에서만 '의도적 모호성'이란 외교의 원칙을 허용할 리 없다. 이런 자세로 협상은 불가능하다.

다음은 외교와 사법의 정책적 협의를 적폐와 불법으로 몰아 단죄함으로써 사법부를 성역화하고 '사법 자제(自制)'라는 또 다른 외교의 원칙을 무너뜨린 일이다. 국제 관계에서 사법부가 외교를 지배하도록 놔두는 정신 나간 정부는 없다. 지금 우리 현실에선 정권이 일정한 양보로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헌법 정신'을 내세운 모험적 판사에 의해 간단히 부정될 수 있다. 일본이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으면 상대를 불신한다.

문 정권이 만든 위안부 합의 검증 보고서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율되지 않은 지시를 함으로써 협상 관계자의 운신을 제약했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협상에서 조연이었으며, 핵심 쟁점에 관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 지적대로 하면 된다. 인재가 고갈된 외교부를 내세우라는 뜻은 아니다. 색안경을 벗으면 한국 사회에는 많은 일본 전문가가 있다. 일본과의 장기전을 위해선 외교만이 아니라 역사, 정치, 통상과 국제법 전문가가 필요하다.

일본은 탄탄한 듯하지만 뜻밖에 허술한 나라다. 일단 국책(國策)을 결정하면 단결해 밀고 간다. 하지만 그 국책은 즉흥적 때론 선동적으로 결정될 때가 자주 있다. 그래서 치밀한 상대를 만나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른다. 이번에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청와대는 끼어들지 말고 차라리 죽창가만 부르는 게 낫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꾸려 전문가에게 힘을 실어라. 어떤 선택이라도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략적 양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조선일보(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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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배상 판결이 '뇌관'이었다… 최근 한일관계 갈등은 모두 법원發"

 

'한일 협정 관계' 최고 전문가… 이원덕 국민대 교수 

 

여권 인사 중에는 "지금은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때" "아베 편에 서려면 동경 가서 살아라"고 발언했다. 이런 감정적 선동이 국익에 도움 될 리 없다. 좀 늦은 감 있지만 지금이라도 한일 관계가 왜 이렇게 파탄났는지 돌아보고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토요일인 13일 저녁, 일본 도요(東洋)대학에서 '한일 관계' 특강 일정을 마치고 막 귀국한 이원덕(57) 국민대 교수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그저께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이번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속마음을 들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 명백했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 제재나 보복을 할 수 없어 다른 이유를 갖다대는 것일 뿐 실제로는 이 문제였다." 그는 '한일협정'에 관한 한 국내외 최고 전문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도쿄(東京)대학에서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했다. 그 뒤 10여 년에 걸쳐 한일협정과 관련된 양국의 방대한 외교 문서를 모두 읽고 해제, 편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원덕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한국은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규정돼 배상 요구할 법적 권리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 사태에는 국내 정치 이용, 과거사 인식 차이, 산업 부문 경쟁 등 복합적 원인이 깔려 있는데, '징용 배상 판결' 문제가 해결되면 일단 진정된다고 보나?

"
그게 뇌관이다. 일본 정책 서클에 초청받아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석한 공무원, 교수, 언론인 등도 '우리는 아베의 조치를 찬성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답을 안 주니 저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실질적 해법을 내놓으면 일본은 제재 카드를 접는 명분을 찾게 될 것으로 본다."

―당신이 생각하는 실질적 해법은 뭔가?

"징용 배상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빠진 채 한·일 기업이 기금을 내는 '1+1 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빈껍데기다. 우리 정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징용 배상 문제를 맡겨보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 대법원과 일본 최고 법원의 법리가 충돌해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외교부 쪽에서는 '만약 재판에 지면 후폭풍을 누가 감당하느냐'고 말하는데, 이는 피해자 구제에 관한 문제이지 국가 명운을 건 역사 싸움은 아니라고 본다."

―경제 보복이 눈앞에 진행되고 있는데 국제사법재판소는 너무 멀지 않겠나?

"반도체 핵심 부품 등의 수출 제재 조치는 일본 정부가 언제든지 '목줄'을 쥘 수 있다는 신호만 보낸 것이다.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켜도 당장 큰 영향이 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일본의 기업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 이번 조치는 아베 측근과 경제산업성 마피아들이 기습작전 하듯 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보복 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받고 몹시 당황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지식인 그룹에서는 '일본이 앞장서 국제 분업 구조를 깨는 것에 대해 바보 같은 짓'이라며 비판한다."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일본 내 지지 여론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 대중은 징용 배상 판결로 일본 대상 기업에 대해 강제 집행을 밟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다른 14건이 소송 계류 중이고 900명이 관련돼 있다. 이대로 가면 그 뒤로도 줄소송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손보겠다는데 일본 대중이 왜 찬성하지 않겠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한인, 조선인 원폭피해자 문제 등 3개 항에 대해서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결론 내렸다. 징용·징병 피해자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봤는데?

"당시 최고 전문가들이 외교 문서를 모두 검토해 내린 결론이었다. 이해찬 총리는 위원장, 문재인 민정수석은 위원으로 참석했다. 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종결된 것으로 봤고, 다만 그때 받은 돈을 경제 건설에 쓰느라 피해자 구제에 소홀했던 점을 인정해 2007년 특별입법으로 사망자 유족 2000만원, 부상자 1000만원씩 모두 6800억원이나 지급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며 뒤집었는데?

"당시 주심(主審)인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지만, 한일 관계에 대형 폭탄을 투척한 셈이다. 그 뒤 박근혜 정부에서 파기 환송돼 다시 올라온 이 건에 대해 지금 같은 사태를 우려해 최종 판결을 지연하려 했던 게 '재판 거래' 적폐 프레임에 걸려든 것이다."

―이런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구속됐고, 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손해와 고통에 따른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며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법치국가에서 법원 판결을 존중해야겠지만…, 정부가 장기간 견지해온 대일 과거사 정책을 뒤엎어버렸다."

―이런 행동을 '사법 적극주의'라 부른다. 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사법 자제 원칙'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국가 간 외교 문제를 다룰 때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시각으로만 자신의 판결이 정의라고 하는데, 국경을 넘어 통용될 수는 없다."

―강제 징용 피해자의 정신적 위자료 등으로 2억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는 사망자나 부상자 유족 측이 받은 위로금보다 훨씬 많다. 그쪽에서 불만이 나오고 소송도 하지 않겠나?

"노무현 정부 시절 사망자 유족 위로금을 2000만원으로 책정할 때 미국과 독일의 유사한 사례를 기준으로 삼았다. 작년에 대법원 2억원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론적으로는 전체 피해 구제를 위해 수십조를 더 써야 한다. 작년에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을 환영했던 사람들도 이를 알면 들고일어날 것이다."

 

G20 오사카 회의에서 만난 두 정상. /뉴시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법원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우를 범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 되니 해당 판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
위안부 문제도 비슷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배상 분쟁과 관련해 '국민의 권리 보호 의무를 위해 일본에 이의를 제기하지않은 우리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당시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서 기금도 만들었고 잠정적으로 끝난 상태로 봤는데 갑자기 이런 판결을 내놓았다. 헌법재판소가 그렇게 하니 다음 해인 2012년 대법원에서 경쟁하듯 폭탄을 던졌다. 최근 한일 관계의 갈등은 모두 법원발(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두 회견에서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된 일본 기자의 질문에 "일본 정부는 더 겸허해야 한다. 한국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훈계하듯 했다. 일본이 그렇게 얕잡아볼 상대인가?

"일본 국민이 왜 일본 최고 법원이 아닌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나. 현실적인 방책을 마련하는 게 외교인데 우리는 원리주의에 지배된다."

―오늘의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매국·굴욕 외교였으며 보상금을 너무 적게 받아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역사적 상황에 대한 몰이해다. 일본과 끈질긴 사투를 벌여 '무상 3억달러와 유상 2억달러'를 받아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종잣돈이 됐다. 경제 발전의 가치를 우선시했기에 피해자 구제에는 확실히 소홀했다."

―불과 몇 년 점령당한 필리핀은 일본에서 5억5000만달러를 받아냈는데?

"태평양전쟁의 전후(戰後) 처리를 위해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 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에서 필리핀, 베트남 등은 연합국 일원으로서 배상받았다. 한국은 그런 전승국 지위를 얻지 못했다."

―6·25전쟁 중이어서 외교 활동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었나?

"미국은 '반공 전쟁'을 수행하는 한국의 위신을 고려해 전승국 지위를 한때나마 검토했으나 영국이 집요하게 반대했다. 모택동의 중국을 일찍이 승인한 영국은 자유중국(대만)과 한국을 조약 서명국으로 인정하는 걸 반대했다. 미·영의 협의 끝에 중국과 한국이 제외됐다. 결국 한국은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규정돼 협상 출발점부터 배상을 요구할 법적 권리를 갖지 못했다. 양국 간 재산 및 청구권을 '특별 조정(special arrangement)'하는 걸로 됐다."

―일본에 공세적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나?

"당초 방대한 배상 요구안을 세웠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민사상 재산의 반환, 채권의 상환 등 재산청구권 처리의 범주에서 '대일 8개 항 요구'로 정리했다."

―청구권 협상에서 한반도에 남겨진 일본인 재산이 쟁점이 됐다. 1946년 기준 재산 총액은 52억달러, 그중 22억달러가 남한에 있었다. 미군정은 남한 내 일본인 재산을 몰수한 뒤 1948년에 한국 정부로 넘겨줬다. 일본은 이에 대해 '역(逆)청구권'을 제기했는데?

"한국 측은 '불법 식민 지배에서 축적된 재산 몰수는 당연하다'고 몰아붙였다. 논쟁 과정에서 '일본이 식민통치 기간 많은 이익을 한국인에게 주었다'는 일본 측 대표 구보타 간이치로의 망언(1953년)이 나왔다. 회담은 5년간 중단됐다. 미국이 중재에 나서 '일본이 역청구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 뒤 협상이 재개됐지만 8개 항목 대부분이 일본에 의해 거부됐다."

―박정희 정부에서 어떻게 타결을 보게 됐나?

"개개의 보상 근거나 명목을 따지지 않고 총액 타결 방식으로 바꿨다. 1962년 협상 당시 서로 제시한 금액은 7억달러 대(對) 7000만달러였다. 이를 좁혀가는 협상이 계속되다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상 간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차관 1억달러'로 타결을 봤다. 이는 JP 결정이 아니었다. 하루 전에 박 대통령이 '무상보다 유상이 많아서는 안 되고 합쳐서 6억달러를 지켜라'는 훈령을 보냈다. 당시 방대한 문서를 보면 얼마나 길고 힘든 싸움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대단한 역량을 보였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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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소리칠 때 대처하는 법

 

한국 호랑이가 일본 꿩에 소리쳤던 게 오랜 구도
이번에 거꾸로 꿩이 노호… 재발 막으려면 정치 리더십 중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반도체 첨단 소재 수출을 규제해 한국을 당혹하게 했다. 일본을 상징하는 국조(國鳥)가 꿩이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호랑이가 일본이라는 꿩을 향해 화가 나 소리치는 구도에 익숙했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꿩이 한국이라는 호랑이를 향해 노호하는 구도가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번 일에 대해 나는 낙관적이다. 일본의 조치는 한·일 양국 경제에 모두 해롭다. 무역 협상자들이 곧 해법을 찾을 거라고 본다. 다만 이제 일본이라는 꿩이 노호할 줄 알게 됐다. 앞으로 또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이라는 호랑이가 자칫 고양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양국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은 자연스러운 동맹이고 비즈니스 파트너다. 문화가 다르고 국익이 다르지만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일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사에서 한 민주주의 국가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적은 없다. 지난 역사가 아무리 피에 얼룩졌을지라도, 한·일 양국이 모두 민주주의 국가인 한, 양국이 교전할 일은 결코 없을 게 확실하다.

일본과 가까운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비상한 위협과 마주하고 있어서다. 한·일 모두 최대 무역 상대가 중국이다. 중국은 인류의 4분의 1을 충격적인 인권 개념으로 통치하고 있는 비(非)자유주의 국가다. 따라서 중국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한·일은 하찮은 일로 다투는 걸 멈추고 홍콩·대만과 더불어 중국의 모델이 돼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정치적 리더십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 혹은 그의 후임자에게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임무는 한·일 관계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하는 일이다. 다만 한국 대통령들이 여론을 이끌기보다 대중의 감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대통령이건 이 일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대통령이 지나온 역사를 쓸어버리는 혁명가가 아니라,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지키고 대표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5년에 한 번씩 혁명가 대통령이 나올 순 없다.

나는 두 가지 사안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65년에 맺은 한·일 기본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일본은 식민지배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그 돈을 개인에게 분배하기보다 경제개발에 쏟는 걸 선택했다.

이건 위안부나 강제징용처럼 1965년 이후에 나온 여러 문제에 대해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그 기금에 기여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국민의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서 모호한 태도 뒤에 숨었다.

두 번째는 2015년에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다. 한국 정부가 이 합의를 버린 건 위험한 전례를 만든 것이다. 어째서 국민이 이 합의를 반기지 않는지 이해하지만, 외교 합의는 현재의 국익을 해칠 때만 파기할 수 있다.

또 한·일 관계에 대해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일본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하는 이들이 식민 통치를 겪은 적 없는 이들이라는 데 나는 놀랐다. 현대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이 경험이 아니라 교육에 기초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육이 바뀌면 감정도 바뀔 수 있다.

북한과 관련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현 정부 인사들이 충심으로 대북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북한에 친절하고 관대하고자 한다. 하지만 북한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 약하고 궁하다면, 그때도 우리는 그들에게 친절할까?

북한은 우리에게 정치 보복 관행이 있다는 걸 안다. 우리가 역대 모든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내는 걸 북한도 봤다. 한국 주도로 통일된 국가에선 그보다 얼마나 심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북한이 주도하는 형태로 통일하지 않는 한, 북한 지도부는 교도소에 가고 북한 국민은 통일 한국의 '상놈'으로 전락할 거라는 걸 북한도 안다.

만약 과거의 적에게 손을 내밀어 더 나은 무엇인가를 일구겠다는 바람이 정말로 우리에게 있다면, 한·일 관계에서 시범을 보이자. 우리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과거사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대북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도 북한 눈엔 '위협'으로 비칠 뿐이다.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한국, 한국인' 저자, 조선일보(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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