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제 이제 外交가 나설 때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와 '받아들이기 힘든 역사'가
섞인 게 세계의 현실
일본 문제 너머 국가 最優先 과제에 온 힘 쏟으라
대통령 광복절 연설을 듣고
상당수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엇보다 '죽창'과 '의병'과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연설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듣는 우리 마음을 누가 헤아리겠는가.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협력의 길로 나오면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했다. 외교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응수한 일본에 '다른 의도'가 없다면 일본은 대화의 자리로 나와야 한다.
현재의 한·일 문제는 1965년 체결된 '한·일 기본 조약'과 '한·일 재산 및 청구권 문제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됐다. 이 같은 해석 차이는 다시 1910년의
한·일 병합조약의 유효성(有效性)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합조약 5년 전에 체결된 을사조약은 역사 교과서에서 나온 대로
무장한 일본 헌병과 경찰이 궁궐을 배회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군 사령관과 함께 조선 대신을 윽박지르는 분위기 속에 맺어졌다. 병합조약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법무도(不法無道)한
짓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다.참치!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또 하나의 역사'가 있다. 을사조약과 병합조약 사이인 1905년 7월 27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인정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密約)을 맺고, 보름 후에는 2차 영·일 동맹을 통해 영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제국주의 시대에 조선의 항변(抗辯)에 힘을 보태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피눈물 나는 일이지만 이것 역시 역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역사에서 '만일(if)'이라는 가정법(假定法)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지만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부질없이 '만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만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몇 개 사단(師團) 병력을
편성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연합국의 일원 자격을 인정받아 1945년
8월 15일 서울에서 개선(凱旋) 행진을 벌일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한국과 일본은
승전국과 패전국 입장에서 만났을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광복절은 그런 의미에선 회한(悔恨)의
날이기도 하다.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은 역사의 두 얼굴 가운데 한쪽 얼굴을 자신의 명분으로 내세운 두 나라가 맺은 조약이다. 승전국과 패전국의 회담에서도 승전국의 뜻이 100% 관철되는 경우는
드물다. 당시 한국 경제 규모는 일본의 29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의 종합 국력이 한국을 앞섰던 시대다. 이 상황에서 양국은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합의하고' 합의할 수 없는 부분은 저마다 해석이 가능하도록 회색(灰色) 지대로 남겨두고 회담을 타결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 병합조약)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기본 조약 제2조가
그런 회색 지대다. 조약이 체결될 때 불법(不法)이었으므로 당초부터 무효란 해석과 체결 당시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나 이제는 무효(無效)라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식민 종주국(宗主國)이었던
미국·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는 과거 식민지 국가에 대해 수십 번 사과했다. 그 사과는 도덕적 사과였지
법적 사죄(謝罪)가 아니었다. 이것도 21세기 현실이다.
한국은 한·일 기본 조약 이후의 결과가 나쁘면 '또 하나의 을사조약'이 되고 만다는 각오로 달려와 세계 15위권의 경제 선진국이 됐다.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마음을 녹일 일본의 양식(良識)이다. 장제스(蔣介石)도 마오쩌둥(毛澤東)도
마다했던 물질적 배상에 구애돼선 안 된다. 이제 외교로 그 길을 터야 한다.
나라 안은 두 조각, 세 조각이 나있다. 몽둥이만
쥐지 않았을 뿐 서울 복판 모습은 해방 직후다. 세계 제1 대국과
제2 경제 대국은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때 이랬다. 빨간불 켜진 경제 신호등을 파란불이라고 우기는 건 정권과 정권의 방송과
정권 대변 신문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은 동맹 가치를 돈 저울로 단다. 트럼프가 북한 핵, 한·미 동맹, 주한 미군 문제를 놓고 내일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할지 누가 예측할 수 있는가. 북한의 미사일·대공포
발사 소리와 패악질을 누가 폭죽(爆竹) 소리라고 하는가. 국민은 불안하고 자존심은 하루하루 무너지고 있다. 국가 과제의 우선(優先)순위를 다시 분명히 정해야 한다. 나라를 망치는 무리 다음에 나라를 팔아먹는 무리가 등장했던 기억을 씹고 또 씹을 때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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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日 이성적 접근 다행, 하지만 거꾸로 된 현실 인식 여전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74주년 기념사에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일부가 '보이콧'을 주장하는 내년 도쿄올림픽은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질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과거보다 미래를 주로 언급했다. 일본 아베 총리가
이에 화답해 하루빨리 백해무익한 한·일 갈등을 끝내고 정상적 관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부터 철회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3·1운동 100년 기념일 등 중요한 국가적 행사 연설에서 '친일' '빨갱이'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는 식의 어이없는 돌출 발언을 해왔다. 이날도
그런 발언으로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우려했으나 다행히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거꾸로 된 현실 인식이 여전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일 "남북 경협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계속했다. 북한
김씨 왕조가 없어지고 북한 땅이 자유시장 경제에 통합되면 우리 경제에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김씨 왕조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개성공단 같은 경협을
확대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북 체제 유지와
안전'을 강조했다. GDP가 한국 중소
도시 규모도 안 되는 세계 최악의 낙후 집단과 경협을 해 무엇을 얼마나 얻겠나. 개성공단을 10개 만들어봐야 한국 국민소득은 최대 0.5% 증가할 뿐이라는 연구도
있다. 이런 경협조차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금
북한은 핵 폐기는커녕 핵 무기·물질을 더 늘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무슨 평화 경제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지금 동북아에서 외톨이는 누구인가. 북한은 문대통령에게 '겁먹은 개처럼 짖지 말라' '맞을 짓 말라'고 하고, 일본과는
단교 상태나 마찬가지고, 중·러는 우리를 무시하며 우리 영공을 넘나들고, 미국 대통령은 '북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니 괜찮다'며 우리에겐 매일같이 '돈 내라'고
닦달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사방이 막힌 외톨이가 돼 있다.
나라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 대통령 자신 아닌가.
-조선일보(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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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호구 챔피언에 등극한 게 언젠데 모르고 있었나? (박태준, 8월 13일 조선닷컴)
'"글로벌 호구"
"日 영향은 한 줌"… 김현종의 무책임한 입' 기사: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12일 친여 방송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 데 대해 "우리한테 진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전략물자는 '손 한 줌' 된다"고 말해. 또 "미국을
방문해 중재란 말을 하지 않았다"며 "(미국에) 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제가 글로벌 호구가 되는데"라고도. 이에 "일본 경제 보복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는데 이미
사태가 다 해결된 뒤 소감 밝히는 자화자찬식 인터뷰 같다"는 비판 제기돼.
▲없는 평화 찾지 말고 평화를 찾아온 탈북민이나 좀 챙겨라 (윤종원, 8월 13일 페이스북)
'굶주림 피해 한국 왔는데… 굶주리다 숨진 탈북 母子' 기사: 10년 전 입국한 42세 탈북 여성이 한국에서 낳은 6세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됨. 통장 잔액은 0원이었고, 탈북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들에게 병이 있어 일하러 나갈
수 없었다고. 모자 사망 시점은 약 2개월 전으로 추정.
▲안 보이는 게 곧 안보입니다! (임원규, 8월 13일 조선닷컴)
―북한도 힘 빠지겠다, 욕했는데 못 알아들으니, 쯧
(Wooang Yoon, 8월 13일 페이스북)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희망 安保' 기사: 문재인
대통령, 1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난달 25일부터
다섯 차례 계속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지 않음.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나서 맞대응할 경우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며
계산된 저강도 대응임을 강조했지만, 문 대통령이 북 위협을 의도적으로 축소·외면하는 '희망 안보관'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 나와.
▲이 정도면 불법선거자금 아니냐????? ㅋㅋㅋ (Edgar Moon, 8월 10일 페이스북)
'일 안 해도… 대졸 4000명에 정부가 월 150만원씩' 기사: 34세 이하 미취업 이공계 대상 졸업생을 대학 연구원으로 6개월간 채용해 연구 보조 등의 업무를 맡기고 월 150만원 정도
급여를 주는 '청년 TLO' 사업이 파행하고 있음. 실제 출근 시간이 석 달 중 열흘도 안 되거나, 학교 측이 아무런
일을 시키지 않는 등 일 안 하고 돈 챙길 수 있는 '꿀알바'라고.
-촌철댓글, 조선일보(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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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외톨이
북한의 도발에 한반도는 요동치지 않았지만,
국민들 마음속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요동치고 있다
3·1절 기념사처럼 '빨갱이' 단어를 다섯 번 사용하지 않았지만, 광복절 경축사에는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란다"는 경고문이 들어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꼭 넣고 싶었던 구절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 "남북 경협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 따라잡을 수 있다"며
위기 처방전을 내놓았다가 스타일을 구겼기 때문이다. 세간의 첫 반응은
'가짜 뉴스려니'였다. 나중에는 대통령의 정신
건강을 의심했다. 더욱 운이 안 좋았던 것은 '평화 경제'의 파트너인 김정은까지 협조를 안 했다는 점이다. 그 발언이 있고 16시간도 안 돼 미사일을 또 쏘아대며 "남조선은 맞을 짓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광복절 경축 자리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무슨 평화 경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큰 성과다.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그 이전의 상황과 분명하게 달라졌다"며 직접 해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자랑'처럼 그 이전 상황과 분명히
달라졌다. 헌법상 국가 보위 책무를 지는 대통령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대통령이 안전보장회의 한 번 참석하지 않았고 침묵했다. 이에
보조를 맞춰 청와대 안보실장은 "미사일 도발이 큰 위협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핵실험
횟수를 묻는 말에 난감해하다 안보실 차장의 틀린 조언을 받아 "한 차례도 없었다"고 답했다. 질의한 여당 의원이 "그렇지요. 한 번도 없었지요"라며 바보처럼 맞장구쳤다.
북한의 도발에 한반도가 요동치지 않았지만, 상당수 국민 마음속에서는 '나라가 허물어지고 있구나. 자유민주 체제가 이 나라에서 유지될까'라며 그 어느 때보다 더 요동치고 있다. 어쩌면 북한의 미사일
한 발보다 이런 정부가 더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연설에서 "여전히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 국내외에 적지 않지만
우리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입 닫고 있으면 대통령에게는 평화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허튼 망발' '오지랖 넓다' '겁먹은
개'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 같은 공식적
막말을 들어도 "우리와 쓰는 언어가 다르다"며
굴욕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우리는 비판할 수 있지만, 바깥에서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좀 참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이는 우리 국민이 모욕당하는 것이다. 저 형편없는
북한 정권에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그가 보낸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 나도 한·미 연합 훈련 좋아하지 않는다. 북한 미사일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 아니니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지만,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뉴욕 브루클린
임대 아파트에서 월세 114달러 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방위비 인상)를
받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한다. 문 대통령의 억양을
흉내 내기도 했다. 트럼프의 인격 문제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문 대통령이 어떻게 비쳤기에 이럴까 싶다.
이는 대통령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국격과 국민의 존중과 관계되는 것이다. 이제 중국은 "힘이 약하면 도망치거나 피해야 한다"고 조롱하고,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일본은 대놓고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국제 호구'처럼 된 것은 단순히 강대국에 끼인 약자(弱者)라는 걸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국민에게
자부심을 못 심어줄지언정 창피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대통령이 광복절 연설에서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 국가'가 돼야 한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희망이야 밝힐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대통령의 말만 그럴듯할 뿐이다. 정말 '교량 국가' 같은 구상이 있었으면 일본 정부와 안 싸워도 될 싸움을 벌였을 리 없다. 당초
협상으로 해결하거나 서로 한 발씩 물러날 수 있는 사안을 '죽창가' 같은
관제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극단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 덕분에 대통령 지지율은 반등했지만, 결국 나라 경제와 기업, 서민들은 모두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다.
대통령의 연설에서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경고문이 바로 대통령 본인과 지금 같은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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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응원가' 반대편서 울리는 비상 사이렌
'비판 유튜브' 손 보려는 정권… 생각보다 빠르게 칼 뽑아
정권 비판하면 가짜 뉴스 몰아… 이 모든 게 비상 사이렌으로 들려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실이 어제 실내 방송을 한다. "입주민 여러분,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은
두 번 반복됐다. 순간 내 가슴이 흔들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태극기'도
알겠다. 그런데 갑자기 낯설다. 토요 광화문 집회를 이어온 '태극기 부대', 그 때문에 엄청 껄끄러웠을 문(文) 정부, 양쪽은 서로
극한 대척점이라 봤는데, 이제 곳곳의 민관 집회가 불매(不買)의 태극기를 들라고 나를 동원하려 든다. 뭔가 작년 광복절까진 너무
당연했는데 올해는 아니다. 이쪽저쪽, 그들 사이에서 '나의 태극기'는 길을 잃는다. 나는
번지수를 못 찾고 허둥댄다.
5060 중년 사촌끼리 보는 단톡방이 뜨겁다. 아베를 꾸짖는 글, 태극기를 흔드는 흰 저고리, 검정 치마의 소녀 그림이 올라와 있다. 지금 광복절, 광화문광장과 태평로 여기저기에서 발성된 어지러운 집회의
확성기 음향이 내 창문에 와서 부딪힌다. 단체도 소속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어딘가.
분명한 것은 나는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파트 관리소장님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복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라 사랑과 정권 사랑은 전혀 다르다. 정부 비판은 기자로서 내
존재 이유다. 정권에 장단 맞추는 일은 설령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일처럼 보여도 내 몫은 아니다. 나는 좌든 우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긴장할 뿐이다. 정권은 언론이
열에 한 마디만 쓴소리를 해도 적으로 돌렸다.
정권은 유튜브를 손 볼 모양이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총선 전에 저들이 칼을 뽑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이제
한·일 갈등의 경제적 영향을 비관(悲觀)하면 가짜·허위·과장으로
몰릴 각오를 해야 한다. 정권은 '이길 수 있다' '따라잡을 수 있다' 같은 친정부 응원가만 허용할 태세다.
'가짜 뉴스'를 정권이 규정하면 매우 위험한 폭탄이다. 저들은 '시장(市場)의 불안감'을 얘기했는데, 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이 오히려 가짜 뉴스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IMF 사태' 때도 펀더멘털이 든든하다고, 신용 등급이 좋다 했지만 결국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경제 예견은
그만큼 조심스럽다. 지금 정권의 잣대로 보면 루비니 교수 같은 이성적 비관주의는 이제부터 가짜 뉴스다. "평화 경제가 답이다", 이런 의도된 국민
동원 여론에 찬성하지 않으면 매국이나 가짜로 낙인찍힐 것이다.
정권은 반일로 나라 전체의 심리를 쥐고 흔드는 게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외국으로 도피하라는 사이렌으로 알아들은 사람도 있고, 현금
자산을 움켜쥐고 금융 방공호로 숨으라는 사이렌으로 들은 사람도 있고, 피켓을 들고 광장에 운집하라는
사이렌으로 알아들은 사람도 있다.
외면하지 말자. 정권 지지자도 반대자도 다 같이 '한국인'인 이유는 헌법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자유민주'와 '공화'다. '애국적 의무감', 그건
두 번째다. 과거 아일랜드는 영국인이 보기에 게으르고 술독에 빠져 있는 구제 불능 '하얀 깜둥이'였다. 이제
아일랜드는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영국을 뛰어넘었다.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서고, 외국 기업이 활동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실업률을
크게 낮추고 구조 조정을 이룬 결과다. 경제 쪽 가짜 뉴스를 색출한 때문이 아니다. 민족보다 실용을 택한 결과다. 그래야 한국도 일본을 뛰어넘는다. 어제 내가 사는 아파트는 광복절 태극기 게양이 5분의 1도 안 됐다. 비 탓일까. 독립문에서
가깝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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