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지소미아 승리", 줄 잇는 외교 거짓 또 하나 추가인가
나라만 멍든 지소미아 소동, 안보 라인 책임 물어야 한다
제 발등 찍은 지소미아 사태, 무능 외교 나라가 부끄럽다
친일·반일로 나라 가르고, 한미동맹까지 흔든 '혼란의 3개월'
도끼로 제 발등 찍은 '지소미아 패착'
'이순신' 찾고 '죽창가' 부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위정자의 '포호빙하'(暴虎馮河),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反日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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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지소미아 승리", 줄 잇는 외교 거짓 또 하나 추가인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연기와 관련
청와대 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과 포용외교의 판정승"이라고
했다. 국민소통수석은 '외교 실패'라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 "일본 시각으로 바라보는 비합리적
비난 보도"라고 했다. 일본 측에서 "양보한 것 하나도 없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가 "강력 항의해 사과를 받았다"고 하고, 일본 측이 "사과한 적 없다"고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국가 간 협의 후 각자가 유리한 방향으로 포장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을 넘어서면 거짓·왜곡이다. 지소미아 사태는 우리 정부가 한·일 갈등에 미국을 잘못 끌어들였다가
낭패를 당한 사건이다. 수출 규제는 풀지 못하고 한·미 동맹만 훼손시켰다. 그 책임자들이 도리어 "우리 탓하면 일본 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토착 왜구' 찾고 '죽창가' 부르던
그 모습이다.
일본이 '퍼펙트 게임' 등 유치한 언사로 자극하기도 했지만 '외교 승리'라는 청와대의 자찬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수출 규제 협의를 국장급으로 격상한다는 것 말고 일본에서 무엇을 받아냈나.
지난 8월 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청와대는 "미국도 이해했다"고 했지만 미 정부로부터 "거짓말"이라는 말을 들었다. 미 안보 라인이 총출동해 "지소미아 유지하라"고 압박하는데도 안보실장은 "한·미 동맹과 아무 상관 없다"고 했다.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때 청와대는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깊은 유감을 표했다"고 했는데, 러시아 대사관이 바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남북 대화가 다양한 경로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다음 날 북 외무성 국장이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일축했다.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정박했을 때 정부는 마치 배가 표류한 것처럼 거짓 브리핑을 했고, 해상 살인 사건에 연루된 북 어민들을 강제로 북송한 뒤에는 "신문 과정에서 어민들이 '죽더라도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고 국회에서 거짓말을 했다. 드러난 거짓이 이 정도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더 속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들통나면 언론 탓을 하고 새로운 거짓으로 덮으려고 한다.
-조선일보(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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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만 멍든 지소미아 소동, 안보 라인 책임 물어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소동으로 나라만 멍이 들었다. 국익에 아무 보탬이 안 됐고
일본에 타격도 못 줬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파기 철회는 없다"고 배수진을 치더니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까지 정지시켰다. 일본이 내놓은 것은 수출
규제 협의를 국장급으로 격상한다는 하나마나 한 약속이었다.
외교적 완패였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큰소리는 빈말이 됐다. 뒷감당도
못 하면서 만용만 부린 외교·안보 참모들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놓고 "판정승을 거뒀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지소미아 파기가 일본을 움직이는 지렛대라고 꺼내 든 것부터 전략적 오판이었다.
일본은 한국처럼 북한으로부터 직접 위협을 받는 처지가 아니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위성
탐지 능력도 한국보다 월등하다. 북한 관련 정보를 한국으로부터 못 얻는다고 아쉬울 것이 없다.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 입장에서 아무 부담 없이 한국만 궁지에 빠지는 꽃놀이패였다.
우리 외교·안보 라인엔 출구 전략도 없었다. 지소미아 종료 시점이 다가올수록 일본은 느긋해졌고
초조해서 발을 구른 것은 우리 정부였다. 다급해진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태국에서 아베 일본
총리의 손목을 잡아끌어 예정에 없던 약식 회담을 했다. 청와대는 이 만남을 즉각 발표하면서 양국 간
대화 해결 노력이 재개된 것처럼 포장했지만 일본 측 반응은 냉담했다. '이순신 장군의 열두 척
배'와 '동학 농민군의 죽창가'까지 외치며 요란하게 시작했던 항일 투쟁이 구차스러운 구걸 외교로 쪼그라들었다.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의 급소를 찌른 게 아니라 미국의 뺨을 때린 격이었다. 미국은 한국에 실망감을 표시했고 "한·미 간 사전 협의가
있었다"는 청와대 변명에 "거짓말 말라"고 공개 반박까지 했다. 미국이 지소미아를 살리기 위해 일본
설득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한국을 상대로 최대 압박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한·미 동맹만 큰
상처를 입었다.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둘러싸고 국내 여론도 극심하게 분열됐다.
지난 3개월 동안 벌어진 이 터무니없는 사태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확실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교적
참사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지소미아는 한·미 동맹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국민을 속인 안보실장과 지소미아 파기로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처럼 대통령 판단을 흐리게 한 안보실 2차장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게 상처 입은 나라와 인사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조선일보(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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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등 찍은 지소미아 사태, 무능 외교 나라가 부끄럽다
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로 연기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일본은 수출 규제
해제를 논의하는 국장급 대화를 재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종전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발표도 했다. 결국 얻은 것도 없이 뽑았던 칼을 칼집에 다시 넣게 된 것이다.
지소미아는 단순히 한·일 간 협정이 아니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상징이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기본 틀'이다. 만약 종료를 강행했다면 한·미
동맹은 수렁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원인과 책임은 일본에 있다"며 큰소리치던 정부가 종료 시한을 6시간여 앞두고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 수출 규제를 끌어들이며 안보 신뢰 문제를 제기한 일본 책임이 크지만, 맞불
조치라고 엉뚱하게 지소미아 폐기 카드를 꺼낸 것은 문재인 정권의 패착이었다. 한·일 갈등에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한·미·일 3각 협력을 깬 책임을 한국에 물었고,
한·일 갈등이 한·미 갈등으로 비화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정작 일본에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문 정권이 반일(反日) 카드로 국내 정치 시선을 돌리겠다고 파기를 밀어붙였다가 명분도 잃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지난 3개월간 국론은 분열됐고 남은 건 동맹 훼손뿐이다. 특히 미국의 압박은 한·미 동맹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미국은 '한·미가 조율했다'는 청와대 해명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고, 우리 군의 독도 방어 훈련을 "도움 안 된다"고 문제 삼았다. 미 국무부, 군 수뇌부가 총출동해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한 데 이어 미 상원은 초당적 결의안에서 '한국 결정으로 주한 미군이 위험해지고 미 국가 안보에 직접 피해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 우호적인 사람들까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이 지소미아 문제를 계속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이런 우려는 분노와 불신으로 커질 것이다. 미국이 신뢰가 깨진 한국과 동맹 관계를 재설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미 고위 당국자들이 금기(禁忌)나 다름없던 주한 미군 철수·감축론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방위비 인상 압박도 한층 거세질 것이다. 안보 리스크로 한국 경제의 신뢰도도 흔들릴 수 있다.
한·미·일 균열로 득보는 것은 북한·중국뿐이다. 북한은 한국을 겨냥한 미사일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고, 중국은 패권적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가 알아서 저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존심을 세우고 지지자들이 좋아한다고 국익을 해치는 자해(自害)를 한다면 대통령의 직권 남용이다. 지소미아 파기가 실리와 명분, 국익을 모두 훼손한 것이 확인된 이상 종료 연기가 아니라 철회를 선언하고 한·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게 일본의 수출 규제를 푸는 데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
-조선일보(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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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일로 나라 가르고, 한미동맹까지 흔든 '혼란의 3개월'
-지소미아 파기 선언부터 연기까지
'지소미아 파기 선언→美 중재→日수출규제 철회' 기대했지만
안보동맹 美 신뢰 잃고, 日 양보도 못 얻어… 野
"자해 외교"
23일 0시 종료 예정이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은 일본과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한다는 조건으로 당분간 연장하게 됐다. 그러나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시키기 위한 카드로 꺼냈던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의 확실한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미·일 안보 협력은 물론 한·미 동맹에도 상처를 남겼다. 국내적으로도 지소미아를 둘러싼 갈등과 국론 분열이 계속됐다. 지난 8월 22일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3개월은 실리와 명분, 국익을 모두 훼손한 '잃어버린 3개월'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야당은 국가 안보를 담보로 모험을 했다는 점에서 '자해(自害) 외교'라고 비판했다.
한·미 동맹의 훼손 우려에도 청와대가 지난 8월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린 것은 한·일
간 과거사 갈등 중재에 소극적인 미국을 끌어들여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소미아로
대표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일본의 미·일 동맹에
대한 민감한 반응 등을 고려했을 때 3개월의 시간을 두고 지소미아로 압박하면 미국과 일본 모두 변화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한·일 간 과거사와 경제를 둘러싼 갈등에 안보 사안을 끼워 넣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청와대는 예상을 깨고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렸다. 한·미 동맹 훼손 우려에도 "미국이 이해했다"며 방어막을 쳤다.
그러나 지소미아 파기 결정 직후부터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을 필두로 "실망했다"며 노골적 불만을 드러냈다. 지소미아 문제로 자극을 받은
미국이 일본을 설득해 한·일 간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모두 빗나갔다. 오히려 미국은 일본이 아닌
한국을 상대로 지소미아 복귀를 압박했다. 미국의 한국 압박에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외에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차관보 등 핵심 인물이 모두 가세했다. 이러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도 청와대는 "지소미아가 없어도 미국을 통해 한·일이 정보를 간접적으로 주고받는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으로 보완할 수 있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이 방위비 협상과 연계해 파상적 압박에 들어가면서 결국 청와대는 일본과 '조건부 연장'에 합의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한·미 동맹에는 상처가 난 셈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 전망도 불투명하다.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문희상 국회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장관 등 모든 인사를 통해 일본과 수출 규제 철회와 지소미아 복귀의 맞교환을 협상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렸던 태국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약식 면담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은 징용 판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었다. 이번 한·일 간 협의에는 양국 갈등의 근본 이유였던 징용 문제에 대한 것은 없고, 수출 규제도 대화 상황에 영향을 받게 됐다.
그동안 국내적으로도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는 야당과의 갈등이 커졌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까지 했다.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얻은 이익은 지소미아
파기와 반일(反日) 정서 강화를 통한 반사이익이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로 한때 지지율 40% 선이
붕괴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지소미아 종료 시한을 앞두고 반일 정서가 커지면서 지지율은 40% 중반대로 회복됐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대신 조건부 연장으로 일본과 '불완전 합의'를 하면서 지지층의 반대가 확산할 수도 있다. 실제 참여연대는 이날 "정부의 결정은 미국의 노골적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했다.
-정우상 기자, 조선일보(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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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제 발등 찍은 '지소미아
패착'
미 국방장관이 한·미안보협의회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은 전시(戰時)에 한·미·일이 효과적·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중요하다"며 "지소미아가 종료되지 않도록 (한국에) 촉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 종료나 한·일 관계 갈등으로 득을 보는 곳은 중국·북한"이라고도
했다. 지소미아가 한·일 간 문제를 넘어 미국의 안보 이익과 직결된 문제임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 정부에 '지소미아를 유지하라'는 최후통첩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지난 8월 청와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국은 예상을 넘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조율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거짓말"이라고 일축하기까지
했다. 지소미아 종료 시한(23일)이 다가오자 "한국이 종료를 강행하면 가장 강한 수준의 문재인
정부 비판 성명을 발표할 방침"이라고 했다. 우리
군의 독도 방어 훈련에 대해 미 국무부가 "도움 안 된다"고
문제 삼는 전례 없는 일도 있었다. 한·미 동맹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몇 달 새 쏟아졌다. 지소미아 파기 카드에 일본은 꿈쩍도 안 하고 한·미 신뢰에만 금이 가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국방부는 지소미아 종료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반일(反日) 카드로 조국에 대한 시선을 돌리겠다고 파기를 밀어붙였다가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정작 파장이 감당할 수 없이 커지자 종료 철회 명분을 찾기
위해 뒤늦게 일본에 대화를 구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대통령이 국제회의장에서 일본 총리 손을
이끌어 10분간 소파에 앉혀놓고 안보실장이 그 사진을 찍어
"대화했다"고 홍보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양해 없이 사진을 촬영해 공개했다"고 한다. 국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죽창가' 부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없어졌다. 도끼로
제 발등을 찍었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미 국방장관에게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했다. 이미 패착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우기는 것이다. 미국은
격분하는데 안보실장은 "한·미 동맹과 전혀 관계없다"고
한다. 무엇을 더 기대하겠나.
-조선일보(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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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찾고 '죽창가' 부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문재인 대통령이 태국 아세안+3 정상회의 행사장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11분간 약식 '환담'을
했다. 청와대는 이를 즉각 발표하면서 "양국 현안은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고위급 협의를 갖는 방안도 검토해보자"고도 했다. 역대 최악인 한·일 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일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베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보도자료도
형식적이었다. 일본에선 인도 총리와의 만남이 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양국 간 온도 차가 너무 커서 우리만 헛물 켜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나 지금 같은 한·일 갈등을 방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외교 노력을 주문하는 사람들을 '친일파'로 몰며
반일(反日) 선동에 앞장서던 이 정권이 갑자기 일본과의 대화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은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에 앞서 외교부 차관보는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가능한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안보실 차장이 "미국에 중재
요청하면 글로벌 호구 된다"고 하더니 이제 미국에 손을 벌리는 것은 또 뭔가.
이렇게 구차한 처지가 된 것은 조국의 파렴치에 대한 국민 분노를 돌리려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덜컥 파기한 데 따른 것이다. 안보 문제를 정치에 끌어들인 데 대해 미국이 크게 반발하면서 청와대는 진퇴양난에 몰리게 됐다. 이제 곧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한이 다가온다. 청와대는
지금 지소미아를 연장할 작은 명분이라도 얻어야 할 처지다. 그러려면 한·일 회담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은 냉담하다. 그러니 일본에 매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청와대 참모, 여당까지 "이순신 장군의 열두 척 배" "의병을 일으킬 만한 사안" "도쿄올림픽 보이콧" "죽창가"를 앞다퉈 외쳤다. 민주당은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돌렸다. 지금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난데없는 지소미아 파기로 위기를 자초해 놓고 책임지는 사람 하나도 없다.
-조선일보(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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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의 '포호빙하'(暴虎馮河),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조선의 국난 대부분은 위정자의 무모한 용기 때문
당장은 통쾌하겠지만 국가 운명과 연결될 수도
큰일 임할 때 두려워하는 위정자의 덕목이 필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큰일을 하실 때 어떤 사람을 쓰시겠냐고. 공자가 답했다. "나는 맨주먹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몸으로 큰 강을 건너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사람(暴虎馮河·포호빙하)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큰일에 임할 때 두려워할 줄 알고(臨事而懼·임사이구) 지혜를 모아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무모한
용기만 내세우는 사람보다 신중한 자세로 지혜로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임사이구'는 세종대왕께서도 마음에 늘 담고 있던 말이다.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가
이어지자 신하들과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말을 하셨다고 한다(세종실록 1449년).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이 국정에 임할 때 이보다 더
소중한 덕목은 없을 것 같다.
역사를 보면 위정자들이 '포호빙하'만 하다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이 당한 국난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1591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쥐눈이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서 왜적 침범 가능성을 일축했다. 당시 조선 최고의 장군 신립은 왜군의 조총을 우습게 알고, 천연
요새인 조령을 마다하고 평지인 탄금대에서 기마 부대로 맞붙었다가 그나마 남아 있던 조선의 정예군 8000명을
전멸시켰다.
대표적 사례는 1636년 후금 홍타이지의 황제 즉위식 때 나온다. 주변국 사신 모두 절하면서 예를 다했는데 조선의 사신만이 꼿꼿이 서서 즉위식 분위기에 재를 뿌렸다. 오랑캐한테 절을 할 수 없다는 기개는 대단했지만 몇 달 후 홍타이지가 직접 조선을 정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신이 절하지 않은 대가는 왕이 대신 치렀다. 홍타이지 앞에서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가 되겠다고 서약했다. 백성들은 이보다 1000배는 더 큰 고통을 당했다. '포호빙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역사가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위정자들의 행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임사이구'는 쫀쫀해 보이고 당장 효과도 없는 반면 '포호빙하'는 기개가 있는 것 같고 당장 통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근자에 들어서도 '포호빙하'는 계속되고 있다.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호언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결과는 어땠나? 박근혜 정부 때에는 가계 부채만 잔뜩 늘어났고, 현 정부에서는 국가
부채가 크게 늘고 있다. 포호하던 기개와는 달리 경제 체질만 취약해졌다.
'포호빙하'가 국내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나마 낫다. 우리끼리
고통받고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외 관계에서는 다르다. 조선시대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될 수 있다. 최근 일본과 미국에 대한 '포호빙하'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위안부 합의를 깨는 것이나 강제징용자 보상 판결은 기세는 좋지만 후폭풍에 대한민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늠이 안 된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죽창가를 부르고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호언하는 것은 참 느닷없다. 국가의 운명이 걸릴 수도 있는 중대 사안임에도 '임사이구'가 없었다. 일본과 경제 전쟁을 선언했지만 정작 전쟁을 수행할 기업인에
대한 지원은 없다. 반기업 정서도 그대로이다. 검찰 새 수뇌부는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예고했고, 노동부는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발표했다. 새로 취임할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재벌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경제 전쟁의 선봉장에 서야 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로
구속될 처지가 되었다. 기업인에 대한 배려 없이 국민의 반일 감정만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지소미아 협정을 파기하고 미국에까지 '포호빙하'하는
것은 더욱 우려된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제대로 목소리를 못 내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
다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미·중 패권 전쟁을 정확히 예측한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옳고 그른 것은 양측 힘이 동등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한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약자가 큰소리쳐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지금 우리가 미·일 동맹에 대해 '포호빙하'하는 대가는 훗날 감당치 못할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상의 대변혁기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위정자들의 역사의식과 '임사이구'가 너무도 간절한 시점이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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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日의 정치학
⊙ 反日민족주의의 逆風 각오하고 韓日국교정상화 밀어붙인 朴正熙, 내년 총선 겨냥해 反日 포퓰리즘 선동하는 文在寅
⊙ 《반일종족주의》 돌풍 등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그 변화 보지 못하고 있어
⊙ “한 나라가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전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국제 정세와 세계 조류에 적응하는 결단이 있어야”(박정희)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의 反日선동에 휩쓸려가고 있다. 사진은 8월 2일 의원총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비난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조선DB
1963년 10월 15일 민주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 후보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정당의 윤보선(尹潽善) 후보와 15만여 표차로, 신승(辛勝)이었다.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는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접전 끝의 신승이었지만 박정희(와 5・16세력)의 정치권력은 이제 국민 직선(直選)에
의한 집권이라는 절차적 정당성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갓 출범한 박정희 정권은 곧바로 커다란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1964년 3월 24일 대규모 학생 시위가 발발했다. 박 정권의 ‘한일(韓日)국교정상화
추진’에 대해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며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학생 시위는 점차
도를 더해가며 대규모 학생·시민 연합 시위로 발전했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는 박정희 정권이 자초(自招)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벌이는 반일(反日) 소동의
위력이 잘 보여주듯, 한국에서 반일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다. 게다가 당시는 반일 민족감정의 날이 더욱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출범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그것도 접전 끝에 탄생한 정권이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섰으니 무모하기까지 한 셈이었다.
‘바보 朴正熙’
한일회담 반대 시위는 갓 출범한 박정희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로 이를 제압했다. 사진=조선DB
사실 정치공학적 타산(打算)으로만 보자면 박정희 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 추진은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권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반일민족주의의 기수(旗手)를 자처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 문재인 정권이
내년 총선(總選)을 겨냥해 반일 포퓰리즘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재미를 보는 것처럼 정치적 솜씨를 발휘하는 게 나았다. 박정희 정권이 그 반대파들이 늘 욕해왔던 것처럼
권력에만 혈안이 된 집단이라면 그래야 마땅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그런 솜씨를 발휘하기는커녕 어리석게도(?)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박정희가 바보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그는 포퓰리즘적 기준으로 보면 정치적 바보다. ‘바보
박정희’다. 그런데 그게 그의 진면목이다. 그는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일’ ‘해야 할 일’을 ‘하자’고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1964년 6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은 대규모로
치달은 시위를 비상계엄령으로 제압했다. 그래서 한일회담 반대 시위는 ‘6・3사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5년 6월
22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을 조인했다. 안으로는 ‘반일’과 ‘민족’을
앞세운 반대를 무릅쓰고 밖으로는 지난한 협상 끝에 해낸 타결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당시 박 정권이 굴욕적 협상으로 ‘민족적 자존심’을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주장이 여전하다. 그때도 지금도 아무 쓸모없는 시비다. 한일국교정상화로 확보된 무상(無償)협력 3억 달러, 유상(有償)차관 2억 달러, 그리고 상업차관 3억
달러까지 총 8억 달러에 달하는 돈은 결코 헐값이 아니었다. 한일협정
체결 전후 시기 일본의 외환(外換)보유고는 16억~18억 달러 남짓으로 그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한일 국교 정상화,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져
한일협정 타결은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본격 진입하는 출발이었다. 한국은
한일협정 타결 2년 뒤인 1967년, 현재의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반이 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연속적인 것이었다.
한일협정 타결 전 박정희는 경제정책에서 큰 전환을 했다. 내포적 공업화에서 수출 드라이브로의
전환이었다. 국내적으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한국 식자층에 팽배했던 발상은 ‘민족자본’과 ‘자력갱생’이었다. 그들에게 ‘외자도입과
수출’은 대외(對外)종속의 심화일 뿐이었다. 세계적으로도 후발 개발도상국 모두가 그런 발상에 머물러 있었다(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문재인 정권이 새삼 소득주도성장과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다). 박정희의 선택은 전인미답(前人未踏) 예외의 길이었지만, ‘한강의
기적’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타이밍과 관련해선 더욱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이 경제성장의 질주를 하던 시기는 중국(중공)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사회주의 폐쇄경제에 머물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만약 때가 늦었다면 한국이 가진 기회는 고스란히 거대 중국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 결정적 통과점이던 한일협정을 둘러싼 시비가 지금 또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大選)을
앞둔 후보 시절 한 방송에서 “박정희 체제가 남긴 유산을 씻어내자는 것이 적폐(積弊)청산의 의미”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정권은 그 말대로
하고 있다. 반일 소동을 타고 ‘1965년 체제의 청산’
주장까지 등장했다. 일본과 단교(斷交)를 초래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폭주다. 그런데 갖은 패거리들이, 그리고 그에
휘둘린 대중이 반일 캠페인에 여념이 없다. 이 같은 모습은 6・3사태 당시 고등학생들까지 과시적 경쟁으로 반일 데모에 나서던 양상과 본질에서 다를 바 없는 되풀이다.
변화의 징조
간혹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은 필리핀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것보다 적다는 지적이 나오곤 한다(큰
차이는 아니다). 그러나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 시
일본의 전쟁 대상에 해당했다. 하지만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시 일본의 전쟁 대상이 아니라 일본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한국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피해 배상이 아니라 식민지배 배상이었다.
문제는 전쟁피해가 아닌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의 예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물론 제국주의 시대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서구 열강(列强) 전부가 그랬다. 그런 점에서는 한일협정에서 이루어진 대일(對日) 청구권 타결은 식민지배와 관련해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해석을 어떻게 하든 그랬다.
구체적 내용에서도 그랬다. 한국은 여전히 강제동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좀 미묘하다. 징용(이라는 의무 동원)은 조선인에게만 행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징용은 법적으로 일본인을 비롯한 소속민 모두에게 적용된 것이었다.
어떻게 하든 당시 조선인은 1910년 한일합병으로 국권(國權)이 일본제국으로 넘어가면서 법적으로는 일본제국의 소속이었다.
한일합병의 불법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논리적 벽이 있다. 대한제국에 대해 절대적 법적 전권을 갖고 있던 고종·순종을 정점으로 한 이씨 왕가 일족은 한일합병에
대한 법적 설득력이 있는 저항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씨 왕족은
일본 황실에 이왕가라는 자격으로 편입되고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특권을 누렸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 이제 우리는 ‘사실(事實·fact)’과 담담하게 마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실이란
수식어가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족하다. 그러나 굳이 ‘거짓 없는 사실’이라는 의미로 진실(眞實)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그만큼 거짓이 횡행한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사실 직시는 그만큼
용기 발휘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도서 전 분야에 걸쳐 베스트셀러에 오른 《반일종족주의》는 그런 차원에서 고무적이다. 반일
선동이 기승을 부리고 격한 비난을 터뜨리는 자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예전 같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는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무산과 퇴행의 위험도 여전한 가운데 이제 막 포착된
가능성이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는 늘 함께 온다.
타성(惰性)에 젖은 이들은 이런 변화의 징조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결국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한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어떠한가?
反日 소동 앞의 한국당
일본이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문재인 정권발(發) 반일 소동이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그러자 눈길은 자유한국당과 황교안(黃敎安) 대표 등 그 지도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쏠렸다. 어떻든 대표적인 야당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문재인 정권이 자초한 사태임에도 일본을 규탄하는 데 들러리를 서는 쪽을 선택했다. 문 정권에
이러저러하게 해결을 주문하기는 했지만 그 목소리는 매우 힘이 없었다. 문 정권이 부추기고 있는
반일 광풍(狂風)에 힘없이 휘둘리는 모습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각 지역 당원협의회(지구당) 위원장이나 지역구 의원들 명의로 반일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반일 위력이, 그리고 친일(親日)이라는 딱지가 마치 마법의 주술처럼 여전한 위력을 떨치는 앞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정치적, 다시 말해 불가피한 정치공학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50여 년 전 국가의 앞날을 위해 충분히 예상되던 반일 선동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선택을 주저하지 않던 박정희 대통령과 집권 공화당의 자세와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지금 그런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정치적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다시 보는 박정희의 특별담화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협정 조인 다음 날인 1965년 6월 23일 특별담화문의 내용 일부다.
〈한 민족, 한 나라가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전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국제 정세와 세계 조류에 적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국제
정세를 도외시하고 세계 대세에 역행하는 국가 판단이 우리에게 어떠한 불행을 가져오고야 말았는가는 바로 이조(李朝) 말엽에 우리 민족이 치른 뼈저린 경험이 실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국제 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적은 국제공산주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 빼앗겨서는 안 되지만, 더욱이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서는 우리와 손잡을 수 있고
벗이 될 수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더구나 중공의 위협이 나날이 증대하여 가고 있고, 국제사회가 이른바 다원적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위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반세기 전에 우리가 겪은 민족의 수난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민족의 번영을 기약하는 현명한 판단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래 몇 년간 중국(중공)이 우리 한국에
어떤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5년
당시 담화는 그때에는 물론 지금도 50여 년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현재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지적도 덧붙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비생산적인 사이비 행세, 이것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지레 꾸미려 하는
권위주의, 명분주의, 그리고 언행불일치주의입니다.〉
박정희의 근대, 좌파의 前근대
이 언명은 그때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아니 오히려 지금 더욱 뼈가 저리게 절감되는 지적이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사이비, 겉치레, 명분주의, 언행불일치는 여전하다.
우리는 그간 근대화가 일단은 다 이룩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양식 있는 많은 이는, 한국인의 근대적 성장이 여전히 더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도그마를 앞세운 사제(司祭)와 숭문주의(崇文主義) 선비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정당하게 여긴다. ‘민주’만을 앞세운 자들과 좌익들도 그런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자신의 정당성이 선험적이라 믿게 되면 자신의 권력쟁취 자체가 곧 정당성의 실현이 된다. 결국 그들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장악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옳기
때문에 성과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또 강변하게 된다. 바로
거기서 사이비, 겉치레, 명분주의, 언행불일치의 ‘내로남불’이 나온다. 근대적 용어와 진보를 아무리
내세워도, 그래서 이들은 본질적으로 전근대적 퇴행(退行)의 무리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예정된 구원도 개개인이 성취로서 증명해야 한다고 믿는 게 자본주의의 정신적
동력”이었다고 한 것은, 다시 말하자면 근대적 정신은 성과를 통한 증명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근대적 모든 존재는 그러하다. 군대는 국방의 임무를 다할 때 존재
가치가 있다. 기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무너진다. 박정희는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의 가치관 자체가 그러했다.
그에게는 ‘정당성이란, 선험적(先驗的)인 게 아니라 성과를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으며, 그렇게 했다. 박정희의 이런 인식이야말로 진정으로 근대적인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박정희의 유산(遺産)을 적폐로
몰고, 급기야 지금껏 이어온 국가 간 협약까지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들의 망동(妄動)을 저지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다툼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근대 문명국가로서의 한국을 전근대적 퇴행으로 끌고 가는 것을 저지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책임감과 결기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12월 17일 한일기본조약 비준서에 서명, 한일국교정상화를 마무리지었다. 사진=조선DB
박정희는 1965년 특별
담화에서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입니다. 응당한 노력을 지불함이 없이 공짜로 무엇이 되려니, 또는 무엇이 생기려니 하는 생각은 자신력을 완전히 상실한 비굴한 사고방식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가 앞으로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느냐, … 관건은, … 우리의 각오가 얼마나 굳으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는 남에게 기대도 하지 않았고, 남의 탓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책임 자체를 말했다. 바로 이게 근대적
정신이다. 박정희는 대중에게 아부하는 단 한 점의 포퓰리즘도 없이 그것을 말했다. 이 당부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면모에선 5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책임감과 결기는 물론이요, 시대적 과제에 대한 성찰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묻게 된다.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월간조선(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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