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문화원 점거 40년… 국무총리·의원·국보법 사범·주지까지]
[구속 갈림길 앞 두 운동권]
[비판 대상 권력이 도리어 고함 삿대질, 이 정권의 특이한 현상]
[386세대 운동권, 충분히 권력 누렸다]
美문화원 점거 40년… 국무총리·의원·국보법 사범·주지까지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1985년 5월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를 주도했던 함운경(가운데 안경쓴 이)이 72시간 만에 농성을 끝낸 뒤 경찰 버스에 오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조선일보 DB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은 군부 독재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1980년대 중반 북한의 주체사상과 만나 분단과 사회 불평등을 포함한 모든 악의 근원이 미국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80년대 후반 들어 본격적 반미(反美)·친북(親北) 노선이 등장했고, 북한에 간첩으로 포섭되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났다.

1985년 5월 23일, 72시간 동안의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는 민주화 운동과 반미 운동의 과도기에 벌어진 사건이다. 서울 다섯 대학 73명이 점거 농성에 참여했고, 당시 운동권 지도부 다수가 직간접으로 연계돼 있었다. 대학생들은 “광주 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군부의 광주 무력 진압은 미국의 묵인으로 가능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의 주장을 증명할 근거나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당시까지 금기였던 80년 광주를 세상에 환기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외교 공관 점거라는 충격 요법은 성공했지만 광주와 미국을 연계한 것은 오류였다.
사건 직후 점거 참여 73명 중 함운경(서울대),신정훈(고려대),이정훈(고려대) 등 25명이 구속됐고, 김민석(서울대),허인회(고려대),박선원(연세대),고진화(성균관대) 등 10여 명은 배후 명목으로 수배됐다. 점거 당사자 중 일부는 20년, 30년 때마다 만났지만 올해는 별도 모임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 민주당 성향이지만 사건 핵심이었던 함운경이 국민의힘에 들어가 분위기가 서먹해졌다고 한다. 20대 대학생들은 이제 60대 중반이 됐다.
◇그때 그 사람들, 지금 이 사람들
구속자들은 점거 직접 참여자와 총학생회장,삼민투 위원장 등 배후 인물로 나뉜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가 많고, 그중 대부분은 민주당 또는 친민주당 계열이다. 점거에 참여한 신정훈은 나주시장을 거쳐 현재 민주당 소속 국회 행안위원장이다. 이정훈은 민노당 중앙위원이었던 2006년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돼 국보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021년 다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진보 진영 동향을 보고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함운경은 작년 총선 때 국민의힘 소속으로 정청래 민주당 신임 대표의 서울 마포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법원 판결문과 관련자들에 따르면 미 문화원 점거를 최초 모의한 건 함운경,이정훈,박선원,고진화 4명이었다. 함운경은 “나와 이정훈은 점거에 직접 참여하고 박선원과 고진화는 밖에 남아 수습을 맡기로 역할을 분담했다”고 말했다. 박선원은 노무현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문재인 정부 때 국정원 기조실장,1차장을 지냈다. 지금은 민주당 의원으로 국회 정보위 간사를 맡는 등 국정원과 북한 관련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한 고진화는 작년 10월 사망했다.
이들은 구속 이력 때문에 공직 진출이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노동운동,시민운동을 하거나 학원 강사나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다. 윤영상(서울대)은 학원 강사를 거쳐 민노당,조국혁신당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카이스트 교수다. 장영승(서울대)은 나눔기술을 창업했고 박원순 서울시장 때 서울경제진흥원 대표를 했다. 고려대 오태헌은 노동운동을 그만둔 뒤 프로그래머로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하다 1998년 출가해 지금은 광주 증심사 주지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6월 항쟁, 90년 전노협 결성을 보면서 이제 내가 더 할 일은 없다고 판단해 운동을 접었다”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 임원, 변호사, 의사 그리고 고향에서 고물상을 운영한 사람도 있다. 점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학련, 삼민투 핵심 인물로 수배됐던 인사 중 서강대 이해식은 지금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고, 연세대 정태근은 한나라당 의원을 지냈다. 전남대 오병윤은 통진당에서 국회의원을 했다.
◇이재명 정부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
김민석 총리가 이재명 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되자 다시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이 화제가 됐다. 김 총리는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전학련 의장으로 점거 현장에는 없었지만 사건 배후로 지목돼 수배·구속됐다. 김 총리는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것”이라며 “미국이 어떤 민주주의적 태도를 가졌는지 물은 일”이라고 말했다. 함운경 등 일부 관련자는 “김 총리는 사후 수습을 맡았을 뿐 사건에 직접 관여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민주당 당대표가 된 정청래 의원은 1985년 미국 문화원이 아닌 4년 뒤 1989년 주한 미국 대사가 생활하는 대사 관저 점거 사건으로 구속됐다. 85년 문화원 점거가 광주를 알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이 명분이었다면 정 대표가 참여한 대사 관저 점거는 반미 운동 성격이 명확했다. 정 대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현주건조물방화예비, 폭력행위처벌법,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화염병처벌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미국 공관 점거자들에게는 항상 미국 비자 발급이 문제 됐다. 김민석 총리가 비자를 받아 미국 유학을 한 것과 달리 정청래 대표는 2013년 국정감사를 위해 비자를 신청했을 때 거부당한 일도 있다. 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도의원 시절 여러 번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지만, 2005년 지역 혁신 사례를 연구하겠다는 명목으로 신청했을 때 미국은 그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 방문 이후 “문화원 점거 전력을 밝히지 않았다”며 비자를 다시 취소했고, 신 의원 측은 “미국이 묻지도 않았는데 뭘 숨기느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문화원 점거 전력이 있는데 미국으로 유학한 이도 적지 않다.
일본→미국→서울시로 주인 바뀐 국가문화재
1985년 대학생들이 점거했던 서울 을지로의 옛 미국문화원 건물은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건물은 1938년 미쓰이물산 경성 지점으로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4400㎡ 규모다. 모더니즘 양식의 이 건물 완공 소식은 당시 신문에 실릴 만큼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광복 후 미국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1990년까지 미국문화원 건물로 사용됐다. 1990년 서울시로 소유권이 넘어왔고, 2013년까지 서울시청 을지로 별관으로 사용됐다. 2006년에는 근대 건축물로서 가치와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238호가 됐다. 국가유산청은 “창 사이의 벽에 주름 장식을 넣은 것은 장식을 배제한 1930년대 국제주의 양식에서 벗어나려 한 시도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2015~2019년까지 밀랍 인형을 전시한 그레뱅뮤지엄으로 활용됐다. 지금은 시설이 낡아 리모델링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호텔 건너편인데 대부분 주목하지 않고 지나가는 실정이다.

서울 을지로의 옛 미국문화원 건물.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그러나 문화재 지정에 따른 재건축 제약과 비용이 문제다. 서울시의회는 작년 1200억원을 들여 이 건물을 22층 규모 서울시의회 신청사로 건립하는 계획안을 서울시에 냈다. 그러나 문화재를 개조하려면 절차가 까다롭고 12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야 해 논란이 됐다.
서울시는 현재 시청사가 주변 민간 빌딩 세 곳에 세들어 있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예산 낭비이기 때문에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를 보호하면서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우상 논설위원, 조선일보(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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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갈림길 앞 두 운동권
82학번은 한국 운동권사(史)에 한 획을 긋는다. '졸업정원제' 세대인 이들은 머릿수가 많은 데다, 선배들보다 잘 뭉쳤다. 주체사상을 처음 받아들인 것도, 지하서클을 해산하고 학생회를 재건하거나 공개적인 투쟁 조직을 만드는 데 앞장선 것도 이들이다. '강철서신'의 김영환을 비롯해 원희룡, 김민석, 이석기 등이 82학번이다.
▶고대 82학번인 허인회는 전국학생총연맹 전위조직으로 결성된 삼민투 위원장을 맡아 미 문화원 점거를 주동했다. '광주 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죄하라'는 대자보를 창문에 붙이고 농성을 벌였다. 허인회는 이렇게 대중 운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제도권 정치에는 안착하지 못했다. 그의 고대 총학생회장 선후배인 김영춘·이인영·오영식 등이 국회의원, 장관, 당 원내대표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허인회는 세 차례 선거에 나갔다가 모두 떨어지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서울대 82학번인 조국은 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서 활동했다. 조국은 1992년 사과원 기관지에 '류선종'이라는 가명으로 쓴 글에서 "우리 임무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개조)와의 투쟁 속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혼을 수호하고 이 위기를 남한 변혁의 수행을 통하여 타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국은 진짜 운동권은 아니었다는 얘기도 많다. 한 동료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은 신중한 반면 (조국처럼) 운동권에 느슨하게 묶여 있던 사람들 말이 과격하다"고 했다.
▶학생운동권을 떠난 이들은 많이 달라졌다. 허인회는 2000년 청와대 행사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돌연 큰절을 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그는 '개혁 젊은 피'에서 '구태정치'로 전락했다. 조국은 법무장관 임명·사퇴 과정을 거치면서 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로남불' '위선' '파렴치'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서울대생이 선정하는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 두 82학번이 공교롭게 같은 날 구속 갈림길에 섰다. 조국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허인회는 태양광 업체를 운영하면서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로 각각 기소돼 오늘 영장심사를 받는다. 이 고비를 넘긴다 해도 조국은 가족 비리와 울산시장 선거공작 의혹이 남아 있다. 허인회는 불법 하도급, 보조금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때 우리 사회의 부정(不正)을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그 부정 한복판에 서 있다.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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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대상 권력이 도리어 고함 삿대질, 이 정권의 특이한 현상
지난 1일 국회에 출석한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은 이 정권 사람들의 특징인 안하무인식 언행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노영민 실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이 잘못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질책에 사과 대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만 했다. 처음엔 잘못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잘못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야당 의원이 '대통령과 닮아가느냐'고 하자 "모욕하지 말라"며 고성으로 맞받았다. '북한 미사일이 우리에게 위협이 안 된다'는 정의용 안보실장의 답변에 한국당 원내대표가 "우기지 말라"고 하자 정 실장 뒤편에 앉아 있던 강기정 정무수석이 벌떡 일어나 "우기다가 뭐냐"며 소리를 질렀다. 야당과 소통하는 게 주된 업무인 정무수석이 본인 답변 차례도 아닌데 갑자기 끼어들어 야당 원내대표에게 삿대질하며 화를 낸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야당을 존중하지 않는 데 앞서 국회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노 실장은 지난번 국회에 갔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친일파 소송 사기 연루 의혹을 묻는 야당 의원에게 "지금 말을 책임질 수 있나. 여기서 말고 정론관에 가서 말하라"고 했다.
두 사람만 이런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충돌과 언쟁은 늘 있었다. 그러나 갈등은 주로 여야 의원 사이에서 벌어졌다. 정부 관계자들이 직접 고함치고 소리 지르는 것은 이 정권의 특이한 현상이다. 잘못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도리어 더 큰 목소리로 받아치는 정권 핵심들의 행태에는 '내가 민주화 운동 할 때 너희는 뭐 했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전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야당 의원이 주사파 경력을 들어 '대북관·대미관'이 의심된다고 하자 "5·6공화국 때 의원님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했다. 야당 의원을 향해 "그게 질의입니까"라고도 했다. 정작 주사파 생각을 버렸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유은혜 교육부총리는 야당 의원들이 위장 전입을 비판하자 "민주화 운동과 정치 활동을 하느라 그렇게 됐다"고 했다. 의원 시절 남의 흠을 매섭게 지적하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자신에 대한 청문회에서 더한 흠이 드러났는데 사과는커녕 도리어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의혹을 제기했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대상자인 장관 후보자가 다른 사람을 공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고함치고 삿대질하는 격이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정부 관료들은)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한다"고 했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회의에 지각하면서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키워온 관료와 대기업이 '엉뚱한 짓'이나 하고 '혼내야 할' 대상이다. 조국씨는 민정수석 시절 야당이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따지자 "(폭로한 내부 제보자가) 희대의 농간을 부린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우리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독선과 오만에 빠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나라가 편안할 날이 없다.
-조선일보(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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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 운동권, 그만하면 충분히 권력 누렸다
집권 세력 내 386 운동권… 2000년 총선 때 대거 정치 입성
소득 3000달러 권위주의 시절 읽고 토론한 기억으로
3만달러 시대 한국을 이끌려니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조국 법무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른바 '386세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잘 알려진 대로, 386세대는 그 말이 만들어진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1960년대생, 80년대 학번, 그리고 당시의 30대 유권자들이다. 이 세대를 묶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대학 시절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 진보적 이념의 세례, 그리고 그것이 결합된 운동 정치의 경험 때문이었다. 386세대는 2004년 열린우리당의 등장까지 이끌면서 한국적 맥락에서 진보 정치 출현의 세대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도 여느 세대처럼 생활인으로 변모해 갔고 이제는 50대가 되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386세대나 80년대의 '운동'이 여전히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집권 세력 내에 여전히 건재한 386세대 운동권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나 더불어민주당의 386세대 정치인들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 있다. 우선은 그들이 공유하는 '운동의 도덕성'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 운동이나 정치적 운동은 지향해야 할 이상적, 규범적 미래를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집단 활동이다. 운동의 시각에서 볼 때 현실은 모순과 불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변혁해 내려는 운동가들은 시대의 양심을 대표한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아마 80년대 그들도 그런 도덕적 우월감으로 서슬 퍼런 권위주의의 압제를 버텨냈을 것이다. 젊었던 그 시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래서 더욱더 패기와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그들도 '기득권층'이 되었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러저러한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옳고 남들은 그르다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어, 남의 눈에서는 티끌까지도 찾아내어 비판하면서 내 눈 속의 들보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러한 독선과 이중 잣대의 태도 때문이다.
또 다른 불편함은 그들의 폐쇄성이다. 386세대 운동권 정치인들은 세대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닫혀 있다. '끼리끼리'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3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대거 진입한 건 2000년 총선 때이다.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분 속에 386세대 운동권을 대거 정치권에 불러들였다. 송영길 의원, 이인영 원내대표, 우상호 전 원내대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오영식 전 의원이 그때 정치권에 들어왔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정치권에 진입한 것이다. 자신들은 젊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이후 이들은 운동권의 옛 동지들을 이따금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의 평균 연령은 54세로 다른 정당과 별 차이가 없으며, 가장 젊은 의원은 2016년 총선 때 39세였던 김해영 의원이었다. 선거 때마다 20~30대 유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표를 받아왔지만 정작 정치적 충원 과정에서 젊은 세대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이러한 폐쇄성은 국정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 주도하는 청와대는 그러한 폐쇄성으로 인해 매우 동질적인 집단이 되어 버렸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이 애당초부터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끼리 논의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청와대 밖에 있는 대다수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당혹해하는 결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지는 건 이처럼 동질적 집단 내부의 폐쇄성 때문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30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그 시절에 읽고 토론한 운동의 기억으로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된 오늘날의 한국을 진단하고 이끌고 가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는 방황하고 있고 외교는 고립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희망을 찾지 못한다.
2000년 총선을 기준으로 할 때 3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온 지 이미 20년이 되었다. 그만한 시간이면 충분히 권력을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 줄 때가 되었다. 마침 내년이 총선이다. 떠나야 할 적절한 시점이 다가온 게 아닐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선일보(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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