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끝에 양춘 있다]
[사람의 길 읽은 조경의 神]
[산천어(山川魚)]
[얼음 없는 겨울, 물고기는 오히려 더 춥다]
대한 끝에 양춘 있다

“아유, 이번 달 난방비가 48만원이 나왔어, 48만원!” 수영장 탈의실 옷장 너머에서 아주머니의 한탄이 들려온다. 나도 평소보다 10만원 이상 더 나와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저 집은 더하네. 들어 보니 복층이란다. “엄마, 그만 좀 해!” 같이 수영을 다니는 20대 딸이 듣다 못해 짜증을 낸다. “어쩌라고, 그럼 집에서 패딩 입고 있어?” ”그래, 입어라. 제발 좀." 모녀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웃는다.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말렸다. 연일 이어지는 영하의 날씨에 제대로 머리를 안 말리고 돌아다녔다가 감기로 고생 좀 했다. 이래저래 무시무시한 추위다.
“대한 끝에 양춘이 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외치며 이 시기를 버텼다. 큰 대(大)에 찰 한(寒)을 쓰는 24절기 가운데 가장 춥고 혹독한 마지막 때를 지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도록 정수리에 머무는 볕 양(陽)에 봄 춘(春)의 계절, 말만 들어도 행복한 봄, 봄, 봄이 온다. 이런 말도 생각난다. “터널이 가장 어두울 때가 밖으로 나가기 직전이라는 걸 알아둬.” 내가 가장 힘들 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보처럼 울다가 “정말?” 하던 기억이 난다. 설령 거짓말일지라도, 그때는 그런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여러분, 긴긴 터널 끝에 빛이 온답니다, 봄이 온답니다, 복이 온답니다. 그렇게 믿고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꽁꽁 얼어붙은 서울 종로구 인왕산 수성동계곡
오늘 서울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꽁꽁 얼어붙었다. 물소리가 아름다워 수성(水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한파 속 계곡은 고요하기만 하다. 흐르는 물조차 동면에 드는 한겨울, 난방비 폭탄에 간담이 서늘하지만, 그래도 자연을 흉내 내어 사색에 잠기어 볼까. 세상에 필요 없는 계절은 없다. 정신과 육체의 담금질은 언제나 우리를 한 뼘 더 깊고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리니. 오너라, 동장군! 으, 추워, 추워, 춰! 춤이나 추자!
-정수윤 작가·번역가, 조선일보(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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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읽은 조경의 神

뉴욕 센트럴파크. 프레데릭 옴스테드의 대표작으로 1876년 완성된 도시 공원의 모범이다.
프레데릭 옴스테드(Frederick Olmsted)는 ‘미국 조경의 아버지’로 불린다. 19세기부터 팽창하는 도심 속에 ‘열린 공간’에 대한 개념과 공원을 통한 복지를 주장했다. 이전까지 개인 소유이던 정원을 시민이 사용하는 공원으로 변환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의 조경 디자인은 땅과 식물의 조화, 건축의 질서, 그리고 인간의 행태를 이상적으로 반영·제시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1876년 완성된 뉴욕 센트럴파크다. 지난 150년 동안 수많은 도시 공원의 모델이 됐다. 옴스테드는 여러 대학교의 조경에도 관여했다. 스탠퍼드, 버클리 등 오늘날 캠퍼스가 예쁘다고 회자되는 곳들이다. 그중 백미는 뉴욕 이타카(Ithaca)에 있는 코넬대학이다. 고딕, 신고전주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언덕, 폭포와 호수의 전망 등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이 그의 손으로 연출됐다.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 화이트 코넬(White Cornell)의 의뢰를 받은 옴스테드는 공원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의 기능과 자연경관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사각형 인공 중정을 만들며 주변에 건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피하고, 언덕이 많은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미를 극대화했다. 그 결과 ‘리베 슬로프(Libe Slope)’ 또는 ‘도서관 슬로프’라 불리는 커다란 경사지가 만들어졌다.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 대화를 나누고 카유가(Cayuga) 호수와 석양을 바라보는 코넬의 명소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동선 계획이다. 캠퍼스 내 여러 건물을 연결하는 보도를 구획하는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겨울에 춥고 눈이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최단 거리를 찾아 건물 사이를 서둘러 이동하는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길을 만든 것이다. 국내외 수많은 대학의 잔디밭에 예외 없이 행인들이 가로지른 자국이 나 있는 걸 보면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코넬대학교 캠퍼스의 ‘리베 슬로프(Libe Slope)’. 조경디자이너 프레더릭 옴스테드는 인위적으로 사각형의 중정 주변에 건물을 배치하는 대신, 언덕이 많은 지형을 살려 자연미를 극대화했다. 눈이 오는 날, 최단거리를 찾아 사람들이 건물을 이동하며 남긴 발자국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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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山川魚)
바다·강 오가는 송어랑 친척이지만 평생 민물에만 살아

단양 다누리아쿠아리움에서 전시 중인 산천어. /위키피디아
지난 주말 강원도 화천군에서 개막한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가 오는 29일까지 열려요.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축제 현장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얼음낚시로 산천어를 잡았죠. 산천어(山川魚)는 몸의 빛깔이 고와서 '계곡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사실은 강과 바다를 오가며 사는 물고기인 '송어'와 같은 종(種)이랍니다. 송어는 강에서 알이 부화한 뒤 어른이 되면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번식을 하러 강으로 올라오는 물고기예요. 다 자라면 몸길이는 60㎝에 이르고 몸 전체가 은색을 띠고 있죠.
그런데 송어 중 어떤 무리는 알에서 깨어난 뒤에도 바다로 나가지 않고 평생 강과 계곡에서 살아가요. 새끼 물고기 때 갖고 있던 몸의 검은 반점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고, 다 자란 몸길이는 25㎝ 정도로 바다에서 살아가는 동족들의 절반이 채 되지 않죠. 이 무리가 바로 산천어랍니다. 이렇게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아가는 동족들과 달리 평생 강이나 계곡에서만 살아가는 물고기를 육봉형(陸封型)이라고 부른답니다. 반면 강과 바다를 오가면서 사는 동족들은 강해형(降海型)이라고 부르지요. 육봉형 물고기가 왜 생겨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다만, 댐 건설 등의 이유로 바다와 강을 오가는 통로가 막혔을 때처럼 변화된 환경에서도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진화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과학자들은 이야기해요.
송어 말고 은어나 빙어도 원래는 바다와 민물을 오가면서 살지만, 지금은 민물에서 평생 살아가는 육봉형도 볼 수 있습니다. 산천어는 수질이 깨끗하고 수온도 낮은 물에서 살 수 있어요.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태백산맥 동쪽 동해와 연결되는 하천, 비무장지대 계곡 등에 주로 서식하죠. 하지만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인공적으로 양식도 되고 있어요. 백두산 천지에도 북한에서 인위적으로 풀어 넣은 산천어들이 살고 있대요. 이번 화천 축제에서 사람들이 낚시로 잡은 산천어도 실은 자연산이 아니라 인공 양식해서 방류한 거라고 해요.
산천어(송어)가 번식하는 모습은 연어와 아주 비슷해요. 자갈이 깔린 여울에서 수컷이 꼬리를 움직여 알 낳을 자리를 마련하면 암컷이 2500개 정도의 알을 낳고 수컷이 정액을 뿌려 수정시킨 다음에 알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자갈과 모래로 잘 덮어놓죠. 하지만 연어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답니다. 먼바다에서 알을 낳기 위해 올라와 기진맥진해진 연어가 번식이 끝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 것과 달리, 다음번에도 번식할 수 있죠. 살아가는 동안 최소 두 번은 번식이 가능하대요.
요즘은 우리 토종 산천어 혈통 보존 문제가 수산 당국의 고민거리로 떠올랐어요. 물고기를 테마로 한 축제가 많아지면서 산천어 수요가 늘어 수정이 돼 부화를 앞둔 일본산 산천어 알의 수입도 늘어났는데요. 이 과정에서 알이나 새끼가 강이나 계곡으로 흘러들어가 토종 산천어와 번식해 교잡종이 생기는 일이 점점 많아졌대요. 이 때문에 토종 산천어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재작년부터 비무장지대의 계곡에서 산천어들을 잡아 번식하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정지섭 기자’도움말=송하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해양수산연구사, 조선일보(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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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없는 겨울, 물고기는 오히려 더 춥다
호수 얼면 빙판이 온실 유리 역할… 물속을 비닐하우스처럼 덥혀줘
수십년만에 가장 따뜻한 올 겨울, 민물고기에겐 가장 추운 겨울
손꼽아 기다렸던 얼음낚시가 이상 난동 탓에 실종되었다. 화천, 인제, 홍천의 얼음낚시 축제들은 큰 차질을 빚었다. 러시아에선 빙판이 녹아 얼음낚시를 하던 차량 수십 대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이 토픽에 올랐다. 대한 추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태공들은 2월 들어서도 영상 기온이 지속되자 한숨 속에 얼음낚시 장비를 도로 넣었다.
낚시인은 우울해도 물고기는 모처럼 따뜻한 겨울이 좋지 않았을까. 아니다. 오히려 얼지 않아서 더 춥다. 호수가 얼면 빙판이 온실 유리 역할을 해서 물속을 비닐하우스처럼 덥혀주는데, 얼지 않으면 찬 공기의 한기(寒氣)가 그대로 유입된다. 얼음낚시를 해보면 빙판 밑 수온은 낮에 섭씨 5~6도까지 올라간다. 얼기 전엔 안 낚이던 고기들이 얼음구멍 밑에선 잘 낚인다. 수십 년 만에 가장 따뜻한 올겨울은 민물고기들에게 가장 추운 겨울로 기억될 것이다.
바닷고기는 어떨까. 바다는 어차피 얼지 않기 때문에 따뜻한 겨울이 좋지 않을까. 역시 그 반대다. 해수온이 올라가면 산소량이 줄어 식생이 빈약해진다. 기체의 용해도는 온도에 반비례한다. 난류보다 한류에 산소가 많고 산소를 마시는 영양염류와 영양염을 먹는 해조류가 한류에 번성한다. 김과 미역이 모두 겨울에 자라는 것과 최북방 찬물에서 자란 백령도 미역을 높이 쳐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다의 겨울은 육지의 여름과 같고 바다의 여름은 육지의 겨울과 같다.
TV 화면에서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열대 바다의 고기 떼를 자주 보기 때문에 따뜻한 해역에 어족이 풍부하다고 알고 있지만 열대 바다엔 해초가 없어 산호초만 벗어나면 물고기가 많지 않다. 세계적 황금 어장은 그린란드, 사할린, 알래스카 등 춥고 위험한 극지 주변에 형성된다.

겨울엔 얼음이 얼어야 낚시꾼도 좋고 물고기도 좋다. 호수나 강의 얼음은 온실 유리 역할을 해 물속을 오히려 따뜻하게 만든다. /김용국 기자
그래서 겨울철 이상 난동은 바다에 적신호다. 해조류가 쇠퇴하면 해초를 먹고 사는 고둥, 전복, 성게 등이 사라지고 해초밭에 은신하는 작은 물고기도 사라진다. 해양의 먹이사슬이 파괴되는 것이다. 최근 20년간 동해의 수온은 세계 평균 수온 상승치의 6배가 넘는 1.5도나 상승하면서 동해와 제주도에서 해초가 녹아내리는 '갯녹음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겨울이 따뜻해지면 틸라피아, 구피 같은 아열대성 외래 어종이 증가하는 것도 큰 문제다. 한반도 토착 어종들은 대부분 냉수 어종이라 추위에 강하지만 외래 어종들은 추위에 약하다. 그래서 물이 찬 강 상류나 고지대엔 서식하지 못하고 얕은 하천에선 혹한기에 동사하여 확산이 억제돼 왔다. 그런데 겨울 온난화가 지속되면 확산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자연은 오랜 순환의 규칙에 맞춰져 있다. 그 리듬이 깨지면 문제가 생긴다. 호수학 권위자인 강원대 김범철 교수는 "물고기들이 봄에 알을 낳는 것은 그때 치어의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 난동으로 플랑크톤이 일찍 번성하면 정작 치어 부화기엔 플랑크톤이 쇠퇴하여 치어 생존율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겨울이 추워야 봄에 낚시가 잘된다. 겨울이 겨울 같지 않아서 봄도 봄 같지 않을까 걱정이다.
[덕후가 주는 TIP]
민물고기는 봄에 잘 낚이고 바닷고기는 가을에 잘 낚인다. 그 이유는 민물과 바닷물의 수온 변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민물은 수량이 적어서 빨리 데워지나 금세 식고 바닷물은 느리게 데워져서 천천히 식는다. 그래서 민물은 봄과 초여름에 물고기가 살기 좋은 적서(適棲)수온이 형성되고 바닷물은 가을과 초겨울에 적서수온이 형성된다.
-허만갑 낚시 칼럼니스트·유튜브낚시교실 '허기자TV' 제작, 조선일보(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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