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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어서 수모당하는 건 처음 본다"] 전근대적 패권에 익숙한 중국은 근대 외교의 원칙인 호혜(互惠) 정신을 모른다

뚝섬 2020. 3. 4. 08:19

한국인 1200명이 세계 곳곳에서 격리됐다… 한국인이 국적을 감춘다
국가 자긍심이 무너지면 정치 변동이 일어난다
국가의 회복 탄력성은 본성이기 때문이다

 

여든 넘은 분이 말했다. "한국인이어서 수모당하는 건 처음 본다". 친구가 이런 문자를 보냈다. '중국에 갔는데 대구 출생이라고 아내를 억류해 생이별 중.' 어떤 신혼부부는 여행지 첫날밤을 창고 같은 곳에 갇혀 도마뱀과 보냈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귀가를 가로막아 인근 호텔을 전전한다는 중국 교민도 있다. 한국인 거주자가 밖으로 못 나오도록 주민들이 현관을 각목으로 막고 못질을 했다는 중국발 뉴스도 나왔다. 모두 '한국인이어서' 당하는 일이다.

역사를 읽으면 정권이 무너지는 요인은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경우는 패전 후 정치 변동처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이 무너졌을 때다.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치고 올라가는 회복 탄력성은 개인·기업은 물론 국가와 국민의 본성이기도 하다. 정치가 이 본성을 어떤 길로 유도하는가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진다. 이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 후 미국의 정치 변동, 3·11 대지진 후 일본의 정치 변동이 전후(戰後) 대표적 사례다. 진보의 몰락과 보수의 부활, 국가의 재도약, 국민 자긍심의 회복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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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례다. 2011 3·11 대지진 발생 다음 날 취재를 위해 후쿠시마에 갔다. 원전이 폭발했을 때다. 서구 언론은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을 "인류 정신의 진화"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무력한 일본에 대해 썼다. 국민은 방치됐고 2차 피해는 커지고 있었다. 정부의 미숙한 대처는 후쿠시마 전체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때 일본 총리는 "전후 폐허에서 다시 일어났듯 우리는 일본을 재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 후 그의 말은 실현됐다. 민주당이 아니라 자민당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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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몰락이 대지진 때문이란 말은 부분적 사실이다. 마지막 칼은 중국에서 날아왔다. 민주당은 친중(親中)을 내세우고 기지(基地) 문제로 미국과 갈등했다. 미·일 동맹의 틈이 벌어지고 대지진으로 일본의 국력이 약해지자 중국은 센카쿠 분쟁을 일으켜 동중국해로 패권을 넓혔다. 전근대적 패권에 익숙한 중국은 근대 외교의 원칙인 호혜(互惠) 정신을 모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오늘 우리가 겪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그것이 국민의 자긍심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진보 정치에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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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사점은 민주당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자민당은 어떻게 국민의 회복 탄력성을 지지 에너지로 끌어들여 장기 집권에 성공했을까. 보수의 부활을 이끈 아베 신조 총리는 1차 집권 땐 "()이 아프다"는 이유로 권력을 내던져 자민당 몰락의 길을 열었다. 그런 인물이 어떻게 일본 보수를 부활시켰을까. 작년 말 일본 잡지 '문예춘추'에 실린 아베 총리의 인터뷰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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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틈만 나면 반복해서 읽는 노트가 있다"고 했다. 재집권까지 5년 동안 틈틈이 쓴 1차 집권기의 '반성 노트'라고 했다. 인터뷰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민주당 정권 때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계기를 만든 것은 나 자신이다. '너 때문'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 말 그대로다. 그래서 부()의 흐름을 바꿀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여겼다. … 나는 운 좋게 두 번째 기회를 얻어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다
."

일본 자민당의 장기적 우위 체제, 달리 말해 일본 사회의 장기적 보수화는 세계 정치학계의 오랜 연구 대상이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야당 분열' '이데올로기적 포괄성'과 함께 '정책 어젠다의 차별성'을 꼽았다. 선명하게 차별화된 정책으로 유동층을 오랜 지지 세력으로 묶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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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은 부끄러운 과거를 후흑학(厚黑學)으로 덮지 않고 실패학(失敗學)으로 드러냈다. 이를 토대로 통화 팽창, 재정 확대, 구조 개혁 등 난해한 정책을 '세 화살'이란 쉬운 말로 풀어낸 '아베노믹스', 국민의 무너진 자긍심과 회복 탄력성을 보수 에너지로 바꾼 '일본을 되찾자'는 구호를 만들었다. 아베 총리 역시 지금 코로나 확산으로 위기에 몰렸지만 그가 당장 물러나도 자민당 정권은 계속될 것이다. 2012년 일본의 정치 변동은 자민당의 보수화 전략과 정치인의 태도 측면에서 지금 한국 정치에 유용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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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한국인 1200여 명이 격리됐다고 한다. 문 정부는 "중국에 갔다 온 한국인 때문"이라며 원인을 국민에게 돌렸다. 지금 한국엔 정권에 대한 특정 집단의 광적 충성만 있을 뿐 국민의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무너졌다. 국민의 회복 탄력성은 정치 변동을 끌어낸다.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는 국가의 본성을 어떤 길로 유도할 것인가는 대안 세력의 자격과 실력에 달렸다.

 

-선우정 부국장, 조선일보(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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