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청와대 말대로 코로나 대응했더라면
靑, 2월엔 "일본 대응 차분하다" 회식 장려, 마스크 사용 자제 요청
첫 사망자 나온 날 짜파구리 파티… 靑·與, 지금은 총선 축배 준비
전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모범'으로 칭찬하니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코로나 선방론'이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잘했네" "민간이 잘했네" 다툼을 하는 것은 네이버와
다음의 댓글 몫으로 남겨 두자. 다만 누구 말대로 우리가 지금 '지옥문' 앞에 있는지, '코로나 방역 선진국'으로 국운(國運) 상승의
기운을 탔는지 판가름 나는 것은 총선 후 몇 달이 지난 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구, 경북 시민들이 피눈물 속에 '자발적
격리'로 대한민국 전체에 방호복을 입힐 때, 자영업자들과
근로자들이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키며 영업과 일자리 손실을
감수하던 그때.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불과 두 달 전 일이지만 기록을 남겨 둬야 할 것 같다.
2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과 경제 모두를
잡겠다고 했지만 4월 총선을 두 달 앞둔 청와대의 마음은 다급했다. 야당의 '경제실정론'이 코로나를 만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날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에게 상인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총선 악재가 분명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데
과도한 불안이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고 해서 차분하게 대응한다"며 한국 언론 탓을 했다. 김 실장이 그렇게 칭찬했던 '차분한' 일본이 지금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는 더 말하지 않겠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인 14일 재벌 그룹 회장들을 불러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 단계"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판단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대통령부터
재벌 회장들까지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한 재벌 그룹 회장은 청와대의 내수 활성화 주문에 "저녁 회식을 활성화할 테니 주 52시간에 저촉될지 우려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청와대는 며칠 뒤 "자율적 회식은 주 52시간제와 무관하다"며 전폭 수용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역주행을 청와대가 장려한 꼴이었다. 당시 청와대 발표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안일한 대응이었는지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당시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외에
중국발 여행객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요구했던 코로나 위기 경보의 '경계'에서 '심각' 단계의 격상도, 정부는
"전국 확산은 아니다"라며 외면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이었다. 그래서 2월 20일,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했던 청와대의 '짜파구리' 축하연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점심 이후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그날 국내 코로나 확진자는 하루에 55명 늘어난 106명이 됐고, 첫 사망자가 나왔다. 여기까지가 세계적 '코로나 선방론'을
주장하는 2월까지의 기록이다. 결국 정부의 이런 낙관론과
방심, 총선을 앞둔 정치적 조바심 속에 모든 비난의 표적이 되는 '신천지
사태'가 터졌다. 정부는
2월 23일에야 전문가 요구대로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그다음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마스크 대란'에
김상조 정책실장은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며 모범 사례로 마스크를 꺼리는 미국과 유럽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국민은 꽃샘추위에 줄 서 가며 마스크를 구입해 남을 배려하고 자기를 지켰다. 국민이 청와대 말대로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했다면 뉴욕과 런던의 비극이 서울에서 벌어졌을지 모른다. 이랬던 정부·여당이 '코로나 선방론'으로 며칠 뒤 총선 축배를 준비하고 있다.
-정우상 정치부 차장, 조선일보(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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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구호 '헛소리 그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월 대선 유세에서 "코로나 백신을 곧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날이 따뜻해지는 4월에는 (바이러스가) 없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이 '그럴 리 없다'며 대유행을 경고했는데도 "독감(코로나) 때문에 나라를 폐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감염자가 폭증하자 "코로나는 독감이 아니다. 지독하다"고 자기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었다. 예상되는 코로나 사망자를 1·2차 대전 희생자 규모에 갖다 붙이기도 했다. 트럼프 발언이 널뛰는 사이 미국 감염자는 47만 명에 육박해 압도적 세계 1위가 됐다.
▶지난해 트럼프는 NATO 사무총장에게 "우리 아버지는 독일의 아주 훌륭한 곳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아버지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고향이 독일인데도 세 번이나 '아버지가 독일 출생'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나는 누구보다 한국을 잘 안다. 서울 인구는 3800만명"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작년 백악관 첫 각료회의에서 막말과 자화자찬을 쏟아내자 미 언론은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으로 주절거렸다고 했다. 순간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 잔치'를 했다는 것이다.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맞붙을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선거 구호로 '헛소리 그만(No Malarkey)'을 내걸었다. 미국 대선에서 이런 구호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과거 클린턴 대통령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내걸어 승기를 잡았고,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주장했다. 그런데 '헛소리 그만'이라니, 트럼프를 상대로는 이만한 구호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첫해 하루 평균 5.9건의 거짓 또는 오해 소지가 있는 주장을 했으나 취임 601~801일 사이에는 그 빈도가 하루 22건으로 뛰었다. 진실을 뻔뻔하게 호도하는 트럼프의 헛소리에 지친 미국 유권자라면 이 구호가 솔깃할 것이다.
▶'헛소리 그만'은 트럼프에게만 쓸 구호는 아닐 것도 같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존슨 총리는 코로나를 우습게 여기다 자신이 걸렸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했던 시진핑은 중국의 코로나 방역이 "투명하다"고 했다. 브라질 대통령은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세계 도처에 헛소리를 남발하는 대통령, 총리들투성이다. 이것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인가.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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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며칠 전 사온 사과가 짓무른 것을 봤다. 서로 맞닿아 있던 부분이 특히 심했다. 적당히 떨어뜨려 놓았으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한창인 때라 생각이 깊어졌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근접공간학(Proxemics)에서 인간관계의 공간을 4가지로 분류한다. 친밀한 공간, 개인적
공간, 사회적 공간, 공적인 공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공간'은 '거리'로 읽어도 무방하다. 가령
친밀한 거리는 46㎝ 이내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연인이나
가족 이외에 허락 없이 누군가 그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본능적 거부감이 드는 거리다. 개인적 거리는 46~120㎝ 이내로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평소 호감을 가진 지인들과의 관계다. 사회적 거리는 120~360㎝ 정도의 거리로 일적인 관계로 만나는
관계를 뜻하는데,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2m가
여기에 속한다. 공적인 거리는 강연이나 행사 등 360㎝
이상의 거리로 이성적 영역이다.
문득 조금만 거리를 두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과 너무 거리를 두어 멀어졌던 사람들 모두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걸까. 거리 조절의 실패는 관계의 실패로 이어질 때가 많다. 동화 '고슴도치의 소원'에는
가까워지면 아프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이야기하며 이 문제를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고,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유채꽃이 한창인 제주에서 상춘객이 몰릴까 두려워 마을 사람들이 꽃밭을 갈아엎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바람이
많이 불던 제주의 돌담을 걸으며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거친 섬 바람에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돌과 돌 사이의 틈새에 있다고 했다. 틈과 틈 사이, 그
빈 공간 때문에 바람이 빠져나가 돌담이 강한 바람에도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아비규환이다. 아직은 아름다운 사회적 거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2020년 봄날은 그렇게 간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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