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자유를 빼앗기고 남루한 삶을 살려는가?"]
[옐로카드 선거]
"젊은이여, 자유를 빼앗기고 남루한 삶을 살려는가?"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이낙연 출마자는 지난달 "저는 남루한 청춘을 종로에서 지냈습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를 종로구민들에게 보냈다. 요즘엔 '흙수저' 간판(?)이 정치인의 최고 자산이라지만 1970년대 초 서울대 법대생이 자기 청춘을 남루했다고 기억한다? 당시 대학생들은 거의 모두 맨주먹이었지만 낭만이 있었고 하늘을 찌를 기개(氣槪)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제, 수많은 그의 동년배는 갑자기 남루해진 그들의 노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필자의 세대는 각자 자기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지만 모두 그렇게 고군분투하다 보니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해져서 나라의 번영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불과 2~3년 사이에 나라가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나라가 수백, 수천 년 전, 아마도 태고적부터, 불평등 사회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난과 압제는 모든 인류의 공통 운명이었고 우리나라는 정체된 사회제도 탓에 서구에 비해 조금 더 최근까지 낙후되었었다. 뒤늦게 근대화하면서 제도적 불평등은 점차 시정되었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해소가 훨씬 어렵고 아직 해결한 나라가 없다. 우리는 그간의 경제성장으로 모든 사람의 생활이 개선되었지만 경제 규모의 팽창으로 소득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격차는 커졌다.
이는 누구의 악의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지혜를 모아서 순리적으로 개선해 나아가야 할 과제인데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민중의 박탈감과 원한을 부추겨 정권을 쟁탈하고서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 이 나라가 악의 세력이 세우고 지배해서 서민은 늘 암흑 속에서 짓밟히기만 한 나라라고 요란하게 선전선동하며 기득권층 박멸 작업을 하고 있다. 우선 나라의 경제를 망쳐 중산층과 중하위층을 무력화해서 정권의 인질로 잡았다. 모든 공직에 패거리를 심어서 나라를 사유화하고, 안보를 파괴해서 불안으로 국민을 길들인다. 무엇보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시민의 자유를 몰수해서 국민을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게 하고 사회주의 인민으로 훈련시키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단 하나 확실하고 영속적인 인간 발전의 원천은 '자유'다. 자유가 있어야 개인의 수만큼 독자적인 발전의 핵이 형성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 세대는 그럴듯한 좌파 구호에 속아서 자유를 상납하고 복지에나 기대려는 것인가? 저 불량배들이 나라를 해체하고 기둥뿌리까지 뽑는 것 좀 막자고 어른들이 울부짖는데 "기둥까지 싹 갈아서 초일류 국가 만들겠다는데 내버려두세요"라고 하니 어찌 피가 마르지 않겠는가.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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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카드 선거
4·15 총선은 선수 퇴장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반칙에 대해 옐로카드 주느냐 여부
나라의 존재·정체·미래 위해 국민이 스스로 정리할 시간
이번 4·15 총선의 최대 변수는 무당층 또는 중도(中道)라고 한다. 근자의 한국 정치처럼 적대적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결국 결정권은 20%에서 30%에 이르는 무당층이 쥐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또는 좌우의 '확신자'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 표의 행방은 이미 결정돼있다. 따라서 무당층 또는 중도의 표심을 겨냥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당층이 선거판을 보는 관점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뉜다. 사람들은 나라가 큰 재난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정이 급박하고 불안정할 때 '안정' 쪽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중간에 말을 갈아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문제는 이런 심리가 집권자나 집권 세력에 의해 악용(惡用)된다는 데 있다. 마치 자기들이 잘해서, 잘나서 칭찬받는 줄로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포장한다. '그것 봐라, 국민이 우리를 전폭 지지하지 않느냐'며 기고만장해서 난폭 운전을 계속 하게 된다. 결국 '안정'을 바라는 국민의 정서를 기만하거나 배신하는 것이다. 전염병 등 재난은 조만간 종식되지만 내일의 '한 표'는 오랫동안 남아 우리 모두를 괴롭힐 수 있다.
무당층의 또 다른 관점은 이 난국에 야당이 과연 나라를 리드할 능력이 있는가, 야당의 지도자는 믿을 만한가, '저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가' 등에 회의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번 4·15 총선은 야당의 능력을 묻는 선거가 아니다. 야당이 잘나서, 정권 담당 능력이 있어서, 정책이 훌륭해서, 또는 야당의 지도부가 유능해서 찍어주는 선거가 아니다. 야당의 무능·불능 문제는 2년 후 정권 교체를 다루는 대선(大選)에서 물으면 된다.
내일 있는 선거는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는 선수(집권 세력)의 퇴장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고 반칙에 대한 옐로카드를 줄 것이냐를 결정하는 자리다. 선거에서 패배해도 문 정권은 그대로 있다. 적어도 2년은 그렇다. 다만 더 이상 나라의 경제를 파탄 내고, 안보를 멋대로 재단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좌파 이념 몰이'는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중간 평가의 자리다.
우리는 지난 3년간 문재인 대통령을 알 만큼 알아왔다. 매일 보고 듣고 살아왔다. 결론은 문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경제정책의 잘못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탈원전에서 절대 후퇴하지 않는 아집을 보였다. 그는 국민 앞에 어려움을 털어놓고 솔직히 이해를 구하는 인간성을 보여준 적도 없다. 우리는 그에게서 좌파 이념에 맹목적으로 몰두하거나 좌파 집단의 포로가 돼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 그는 국민 간의 분열을 중재하고 화해를 도모하기보다 한쪽 진영의 선두에 서서 반대쪽을 힐난하는 정파 게임을 즐기는 듯하다.
이런 대통령이 수장(首長)으로 있는 집권 세력이 앞으로 2년, 4년, 7년 나라를 쥐고 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내일 선거에서 이기면 마치 신임장이라도 받은 듯 무소불위, 안하무인, 기고만장으로 가는 문 정권의 난폭 운전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지난 3년이 하루하루 실망과 놀라움과 한탄의 연속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들에게 엄중한 옐로카드 한 장 주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크게 홀대받은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옥중 서신을 통해 친박 세력에게 야권 단합을 호소했지만 정계의 친박은 박 전 대통령의 충정을 보란 듯이 배신하고 있다. 그래도 '국민 속의 친박'은 그의 지시를 존중할 것이다.
우리는 건국 후 수많은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이번 선거처럼 마음이 무겁고 결과가 두려운 선거가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지난날 선거는 여야의 대결이었고 민주화의 과정이었고 산업화의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정권 교체의 신선함과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나라의 존재, 나라의 정체, 나라의 미래를 심각히 고민하게 될 뿐이다. 어떻게 한 개의 선거가 감히 오늘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나라의 안위를 결정하는 천 근의 무게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비단 무당층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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