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선관위가 재검표에 나서고 사정 당국에 의문 제기된 곳
법적으로 들여다보면 진상은 규명될 수 있어
문제는 선관위가 이미 신뢰를 잃었다는 것
"컴퓨터(로 진행한) 투표와 개표는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위헌'이다. 일반 비(非)전문가인 시민이 전 선거 과정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개성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다."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SNS에 2009년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공유하면서 올린 글이다.
이 판결의 영문(英文) 골자를 보면 헌법재판소는 2005년 실시한 독일 연방 하원 의원 선거에서 컴퓨터로 결정된 투·개표에 항의하는 시민 고발 사건 2건을 판시하면서 "그 사안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시민에 의해 투표의 핵심 과정과 개표 결과가 검증되는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 즉 투·개표의 모든 과정은 헌법상 예외 규정이 없는 한, 시민적 재검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판결에서 주시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선거의 공공성(public nature of elections)'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재검표 권리이다. 특히 투·개표 과정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없는, 다시 말하면 이해관계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재검표 요구'를 수용한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선거가 권력자나 이해관계자끼리 하는 게임이 아니고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공공 행사라는 의미인 것이다. 즉 컴퓨터 서버니 QR이니 바코드니 하면서 일반 국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을 설정해놓고 자기들만의 '암호'처럼 까불어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의문이 있는 시민은 구체적 증거 없이도 누구나 언제나 투·개표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고 '다시 보기'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표를 찍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count)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투표하는 사람은 자기 표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개표하는 과정에서 어떤 인위적 작용에 따라 승리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선거의 맹점이고 함정일 수 있다. 권력을 쥔 세력에 어떤 자제와 제어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다. 고금을 통해 권력을 쥐면 자기 아닌 상대방은 모두 적폐로 몰 수 있다. 또 법도 바꾸고 죽은 사람도 살리고 살아 있는 사람도 죽일 뿐 아니라 돈도 벌고 좋은 자리도 차지하는데 왜 굳이 정직한 척할 필요가 있겠는가.
현실로 돌아와 우리는 지금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4·15 총선에서 투·개표 부정에 관련된 문제점, 특히 사전 투표의 문제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의 통계학자도 통계상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투표용지가 야당 의원 손에 들어가고, 개표한 용지가 빵 상자 속에 처박혀 있었다. '빳빳한 신권 다발처럼 묶인 사전 투표지'를 고발한 변호사도 있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권은 물론 친여·친야 사이에서 공방만 난무하고 있고 정작 그 여부를 가릴 선관위는 팔짱을 끼고 있다. 가관인 것은 야권 내에서 '부정이 있다 없다'로 인신공격이 계속되고 야권의 유튜버 사이에서도 '사쿠라 논쟁'이 일고 있다. 보수·언론 내에서도 부정 여부를 둘러싸고 자해적(自害的) 논쟁이 일고 있다.
선관위가 재검표에 적극 나서고, 의문이 제기된 곳을 사정 당국이 법적으로 들여다보면 진상은 규명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다. 선관위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 있던 인사가 선관위원이 되고 야당 몫 선관위원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선관위가 의혹을 밝히는 데 나설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미 제기된 재검표 요구 등 139건의 선거 무효소송을 어떻게 수용할는지도 불투명하다. 검찰의 권력 감시 의지는 아마도 '조국 사태'까지일 공산이 크다. 검찰의 기(氣)는 이미 꺾인 듯하고 강직한 검사는 이제 소수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당이 심취해 있는 '4·15 승리'에 칼을 들이댈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나라 사법의 총책인 대법원은 국민 사이에서 권력의 하수인으로 인식된지 오래다.
이런 와중에 선거 부정을 제기하는 것조차 공연히 일을 만드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또 선거 부정 타령이냐'는 일부 비아냥에 문제는 덮이고 있다. 우리에게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 같은 한 줄기 '소나기'는 없을까? 우리에게 선거 부정을 고발할 내부의 용기는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 '표를 찍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은 요원한 것인가?
-김대중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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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의 거듭되는 선제 물타기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고 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사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싹쓸이로 장악해 못 할 게 없게 된 정권이 무슨 피해를 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명백한 증거로 유죄가 확정된 사건까지 뒤집자고 하고, 해묵은 KAL 폭파 음모론도 다시 끄집어내고, 국립묘지에서 '친일파' 묘를 파헤치자고 할 정도로 무소불위인데 누가 이 정권을 음해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내용이 뭔지도 밝히지 않았다.
이 대표의 '그림자' 발언이 나오자 정치권에선 대통령 측근인 민주당 당선자가 과거 노무현 재단 관련 차명 계좌를 운영했고 관련 폭로가 있을 것이란 말들이 나왔다. 일반인들로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대표가 무슨 걱정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해 사전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는다.
이 대표는 총선 직전에도 "(어디선가) 총선용 정치 공작을 2~3개 정도 준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도 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야당발 폭로는 있지도 않았다. 정작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이 4월 초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총선 전에 알려졌다면 유권자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일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총선 전에 사건을 알고 부산시장의 사퇴 시기를 조율했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이 사건이 폭로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 대표가 미리 선제적으로 물타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총선 전 한 비례대표 후보의 재산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총선 이후에야 사실을 공개하고 그를 제명했다.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일단 덮어둔 것이다. 이 대표가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미리 물타기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지난 선거 때 자신의 '미리 물타기'가 효과를 봤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 사실은 밝히지 않은 채 '뭔가 터지면 우리를 향한 음해'라는 식의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음해인지 아닌지는 곧 밝혀지게 돼 있으니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국민 앞에 공개하는 것이 옳다.
-조선일보(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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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選 의원으로 살아남는 비법을 알려줄 테니"
초선 당선자에게 걸려온 중진 전화 '공동체보다 내 이익 우선' 여전
선거 패배에도 착란적 탐욕 팽배… 대의의 싹 터야 국민 돌아볼 것
"다선(多選) 의원으로 살아남는 비법을 가르쳐줄 테니 우리 모임에 들어오세요."
최근 미래통합당 한 초선(初選) 당선자 A씨는 한 중진 의원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 의원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당에서는 편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형성해야 오랫동안 의정 생활을 할 수 있다"며 앞으로 자신이 주재할 모임에 반드시 나오라고 했다. 4·15 총선 참패에 대한 반성이나 당 혁신 방안을 찾기 위한 자리라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 A씨는 순간 '이게 바로 계파라는 건가'라고 직감했다. A씨는 "고민해보겠다"며 일단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이 망해가는데 다선 타령이 웬 말인가…"
미래통합당의 이번 총선 패배를 두고 "젊은 세대와 소통이 부족했다" "극단적 지지층과 이념에 갇혀있었다" "미래 비전을 제시 못 했다" 등 분석이 쏟아진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A씨의 푸념은 보다 근본적인, 그래서 더욱 극복하기 힘든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당이 무너져도 내 선수(選數)만 쌓이면 된다'거나 '공동체 생존보다 내 이익이 우선'이라는 식의 '속물적 이기주의'가 그것이다. 국민에게 이름도 낯선 일부 중진들은 선거 참패 후에도 앞다퉈 '내가 당 대표감'이라며 대대적 당 개혁을 예고한 '김종인 비대위' 출범을 한 달여간 지연시키고 아직도 훼방 놓으며 착란적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막말로 선거 말아먹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당 징계는 부당했고 나는 떳떳하다"고 외치는 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쪽에서는 당 대변인 출신 의원이 "과거에 발목 잡혀있으면 당의 미래가 없다"는 만류에도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극단적 지지층을 독려하며 '사전 투표 조작론'을 설파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가 권력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대의(大義)에 헌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통합당에서 이런 근원적 소명 의식은 장기 실종 상태다. '정치는 원래 권력 투쟁'이라며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분을 벌이거나 뒤에서 조용히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자리와 자잘한 이권을 챙기는 게 거듭된 일상이었다. 헌신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유권자에 대한 상식적 예의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사적 욕망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는 최근 펴낸 책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60년대 초반 할아버지 김병로 선생을 만나기 위해 집을 오가던 정치 지망생들 얘기를 꺼냈다. 하루는 김 내정자가 대기하던 이들에게 넌지시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시려는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이렇게라도 해야 주머니에 용돈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김 내정자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리 정치는 이런 측면에서 본질상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 "어디에 줄 댈 것인지 항상 고민하는 사람들의 정치는 국민으로서 불행"이라고 했다. 대의 추구는커녕 속물근성이 주류 정서처럼 보이는 근래의 통합당이 떠오르는 일화다. 이런 김 내정자의 당 혁신이 온전한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구성원들의 각성과 자립이 필수다.
작년 말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조국을 옹호하는 상황이 힘들어 결단했던 것"이라며 "초선 때부터 재선에 얽매이면 국가와 국민은 헛구호가 될 수 있으니 소신을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 정당 인사의 발언이지만 통합당 당선자들도 마음에 새겨둘 만하다. 유권자들이 통합당에서도 대의와 소신의 작은 싹이라도 발견할 때 비로소 선거 승리를 논할 자격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언한 '익숙했던 과거와의 결별'이 시작되는 지점도 바로 이 언저리일 것이다.
-최승현 정치부 차장, 조선일보(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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