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비망록'의 황당한 부활]
[총선 뒤 '4200만원 뇌물 실세' 풀어준 법원, 법치의 위기다]
[예상했던 대로 걱정했던 대로]
'조작 비망록'의 황당한 부활
"검찰이 진술을 회유하고 불법 수사를 했다면 상식적으로 그런 내용이 담긴 문건을 검찰 스스로 법원에 냈겠습니까?"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 자금 사건을 수사했던 한 현직 검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고(故)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여권(與圈)은 '검찰 강요로 허위 진술을 했다'는 내용의 한씨 옥중 비망록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마치 비망록이 세상에 처음 나온 증거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한 전 총리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 내부는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비망록은 9년 전 수사팀이 처음 입수해 한씨의 위증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고, 법원 역시 검찰 주장을 인정한 문건인데 이제 와서 비망록이 불법 수사의 징표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2011년 6월 9일 법원에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한씨의 서울구치소 감방에서 해당 비망록을 압수했다. 당시 한 전 총리 수사팀 관계자의 말이다.
"한 전 총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씨는 검찰이 질문을 하면 뭘 보고 계속 읽었다. 재판장에게 제지를 요청했지만 한씨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이거 없이는 말을 못 한다'고 하더라. 수사팀은 그게 '위증의 시나리오'라고 보고 영장을 받아 압수했다. 현재 오르내리는 옥중 비망록이다."
당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등 소송 관계인 모두가 비망록을 증거자료로 검토했다. 법원은 비망록에 근거가 없다고 보고 한 전 총리 유죄판결에 반영했다. 하지만 MBC 등 일부 매체는 당시 법원이 압수영장을 발부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10년 만에 드러난 빼앗긴 비망록"이라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0년 전 검토가 끝난 문건을 놓고 "사건의 진실이 10년 만에 밝혀지고 있다"고 흥분했다. 판사 출신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며 "검찰이 고도로 기획해 증인을 협박·회유했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보는 상당수 법조인은 고개를 내젓고 있다.
유일하게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1심 판결문에서조차 비망록은 언급되지 않는다. 무죄를 선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검찰의 협박 내용이 담겼다는 비망록을 사실로 전제하고 검찰 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럼 재판은 할 필요도 없이 한 전 총리는 무죄다. 재판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망록에 근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한씨의 당시 변호인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이다. 그는 최근 비망록이 새로운 증거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하며 9년 전부터 늘어놓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총선에서 압승한 거대 집권 여당도 동조해 5년 전 끝난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국희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20-05-23)-
_______________
총선 뒤 '4200만원 뇌물 실세' 풀어준 법원, 법치의 위기다
서울동부지법이 22일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석방했다. 판사는 유씨가 금융위 국장과 과장 시절 업자들에게서 받은 4200만원이 뇌물이라고 인정하고서도 "개인적 친분 관계로 받은 돈"이라며 풀어준 것이다. 법리를 떠나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유씨는 업자들에게서 현금과 전세금, 항공권, 골프채, 골프텔 숙박비를 받고 오피스텔도 공짜로 썼다.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니라 공무원을 하면서 알게 된 관계였다. 여러 명에게 지속적으로 금품을 받았고 대부분 유씨가 먼저 요구했다. 범죄 혐의를 덮으려고 정권 실세들에게 구명 로비까지 벌였다. 검찰은 "탐관오리의 전형(典型)"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금품을) 선의로 생각했을 수 있다"며 형을 깎아줬다. 공직자가 업자들과 어울리고 금품을 받은 '유착'을 '친분'이라고 한다. 앞으로 뇌물 받은 공무원이 '친분 관계로 받았다'고 하면 모두 풀어줄 건가.
유씨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을 '형'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유씨는 청와대 특감반 조사도 빠져나갔다. 그의 구명에 정권 실세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청와대는 뇌물 의혹이 불거진 사람을 오히려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영전시켰다. 상식 밖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러더니 이제 판사까지 유씨 구명에 나섰다.
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3000만원 이상 뇌물 수수에 대해서는 징역 3~5년을 기본으로 최저 2년 6개월, 최고 6년의 형(刑)을 선고하라고 돼 있다. '적극적 요구' '장기간 수수' '3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가중처벌된다. 유씨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양형 기준이 정한 최저형에도 미달하는 형이 유씨에게 선고된 것이다. 집행유예 사유는 더더욱 찾을 수 없다. 다른 판사들조차 "이례적 판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이 '이례적'이지 '권력에 아첨하는' 판결이다.
2018년 기준 3000만원 이상 뇌물 수수로 유죄판결을 받은 101명 가운데 91명(90%)이 1심에서 실형 판결을 받았다. 유씨 같은 고위직 공무원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실형이 선고됐다. 22일에도 군사법원장이 6000만원 뇌물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고무줄 판결'도 정도가 있다. 누가 법원이 공정하다고 믿겠나.
이 정권 들어 법원 재판이 정권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공공기관 운영 정상화'라며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있었다. 돈 준 사람은 구속됐는데 정작 돈 받은 조국 전 법무장관 동생 영장은 기각되기도 했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했던 판사 서클 출신들이 연이어 청와대에 들어가고 여당 국회의원이 됐다. 대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까지 정권 코드 판사들로 채워졌다. 그러는 사이 총선에서 압승한 정권은 증거가 명백한 '한명숙 유죄' 확정판결까지 뒤집으려고 한다. 청와대와 정권 핵심들이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 공작' '대선 여론 조작' '조국 사건' 재판도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민주 국가 근본인 법치의 위기다.
-조선일보(20-05-23)-
______________
예상했던 대로 걱정했던 대로
실패한 정책 달라지나 했던 헛된 기대 박살 낸 대통령
내부 異見 허락 않는 폐쇄 집단은 자발적 進路 수정 불가능
문재인 정권이 4·15 총선을 휩쓸자 정권 앞날에 관해 두 가지 추측이 나왔다. 대부분은 정권의 생각·버릇·행태가 어디 가겠느냐는 비관론(悲觀論) 쪽에 섰다. 입법권이라는 날개까지 달았으니 더 극단으로 치달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사법부는 무릎을 꿇고 대통령의 수하(手下) 권력이 된 지 오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 브레이크 없는 권력이 완성된다. 운전수의 폭주(暴走)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너무 답답하고 우울한 전망이라서 그랬을까. 비관론의 그늘 아래서도 작은 목소리지만 실낱같은 기대가 없진 않았다. 정권을 대표하는 정책 상품인 소득 주도 성장이나 탈(脫)원전 에너지 정책은 역(逆)효과와 부작용이 의도했던 정책 효과를 압도하는 걸로 드러났다. 그걸 덮어보려고 2018년 8월 느닷없이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통계 산출 방식을 바꾸는 꾀를 써보기도 했다.
원전(原電)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선 경제성 평가 숫자에 분(粉)칠을 하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를 고의로 지연시키는 수법도 동원했다. 겉으론 이런 억지를 써도 정권 내부에선 귓속말로라도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비판에 떠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뻗대왔지만 선거도 이겼으니 소리 소문 없이 은근슬쩍 정책을 변경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일부의 희미한 기대,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였다.
며칠 안 가 이런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는 박살이 났다. 실패한 정책들을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밀고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 대감염(大感染)이란 비상사태를 맞아 힘을 모아줄 테니 '잘 대처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었다. 이걸 실패한 정책에 대한 지지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 정권 출범 이후 국민이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한 분야가 '경제'였다. 경제 불황·경기 침체·고용 악화를 초래한 경제정책을 시정하라는 요구였다. 엊그제 통계청 조사에서도 경제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는 더 악화된 걸로 나타났다. 저(低)소득층은 '일해서 번 수입'은 줄고 '배급받은 복지 혜택'에 갈수록 의존하고 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에선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자국(自國) 기업의 고향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지원 기금을 마련하고 각종 유인(誘引)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정권의 보복만 두렵지 않다면 크든 작든 진작 해외 망명(亡命)의 이삿짐을 꾸렸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구호를 선창(先唱)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불신과 의혹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자체가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표시다. 2011년 그리스 통계청장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는 EU(유럽연합) 본부에 다급한 목소리로 구명(救命) 요청 신호를 보냈다. 검찰이 자신을 '직무 유기' '허위 진술' '공문서 위조' '국익 배반죄'로 기소했다는 것이다. 국익 배반죄는 종신형(終身刑)이 선고될 수 있는 죄목(罪目)이다. 정권의 지시를 어기고 GDP 대비(對比) 재정 적자 비율을 곧이곧대로 작성한 것이 탈을 냈다. 이 소동을 겪고 얼마 안 가 그리스는 국가 부도(不渡) 사태를 맞았다.
어제 현대판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전 부산 경제부시장이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났다. 다음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一家), 그다음은 울산지방선거 부정 개입 혐의로 재판받는 여당 의원과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에 대한 무죄 선고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확정판결 뒤집기도 시동(始動)을 걸었다.
'희미한 기대'와 '실낱같은 희망'을 짓밟고 왜 모든 것이 걱정했던 대로 굴러가는 것일까. 답은 심리학에 있다.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 끼리끼리 집단은 '대책회의' '확대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거듭할수록 같은 생각이 더 굳어진다. 이것이 '내부 이견(異見)을 허락하지 않는 집단(Team of Unrivals)'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통령 생각이 달라진 게 없고 둘러싼 사람 생각이 그대로인데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영화 '판도라'를 보고 원전 폐기 결심을 굳혔다는 대통령께 넷플릭스 프로 '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 Gates)'를 한번 시청(視聽)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계 최대 자선 재단을 이끄는 게이츠가 지구온난화 문제와 다음 세대 에너지원(源)을 찾아 씨름하면서 인기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전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무식한 기자는 이걸 보고 원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20-05-23)-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에게 선거 부정을 고발할 내부의 용기는 없는 것일까?.. [이해찬 대표의 거듭되는 선제 물타기] ["多選 의원으로 살아남는 비법을 알려줄 테니"] (0) | 2020.05.26 |
|---|---|
| [우리 정치권의 '사이비 프로'들] 시민사회는 정치 운동의 원천… 진정한 프로 정치인 발굴해야.. (0) | 2020.05.25 |
| [한국 시민사회는 죽었는가] [한명숙이 뭐길래]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0) | 2020.05.22 |
|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탈북자 북송 모임' 가졌다니] [네 딸을 미국이 아니라 평양 음대로 보낼 것이지] [너도나도 친일파?] (0) | 2020.05.22 |
| [사리사욕 꼼수 한국당 '국민 혐오도' 김정은 넘을 건가] (0) | 2020.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