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돈은 되놈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은 금메달을 점칠 수 없는 경기였다. 한국의 안현수를 비롯해 미국의 안톤 오노, 중국의 리자쥔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반면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는 꼴찌가 분명했다. 예선에서 다른 선수들이 넘어지거나 실격한 바람에 운으로 올라온 선수였다. 그런데 결승 마지막 코너 구간에서 선두 네 명이 얽히면서 모두 넘어져 버렸다. 멀찌감치 뒤떨어져 있다 결승선을 1착으로 끊은 브래드버리는 호주는 물론 남반구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챙긴'것이다.
▶이 말은 고생하는 사람 따로, 챙기는 사람 따로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청나라 곡마단 구경을 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이라고 한다. 되놈은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로, 병자호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생겨났다. '왜놈은 얼레빗, 되놈은 참빗'이라고 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성긴 빗으로 긁어가고 중국인은 참빗으로 싹싹 쓸어간다는 뜻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한 해 500만달러씩 벌었는데 숨진 뒤 그의 통장에 생각보다 잔액이 많지 않았다. 그의 매니저 커널 파커가 엘비스의 수입 절반을 빼돌렸기 때문이었다. 엘비스는 한 번도 외국 공연을 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출신 불법 체류자로 미국을 떠날 수 없었던 파커가 "미국에서 충분히 벌 수 있으니 월드 투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엘비스 장례를 마친 날에도 뉴욕으로 날아가 기념품 판매 계약으로 수천만 달러를 벌었다.
▶얼마 전 배달대행업체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를 월 정액제에서 주문 금액의 5.8%로 바꾸겠다고 밝혔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사실상 수수료를 올렸다는 이유였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더니…" 하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대선 댓글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은 자신을 수사 의뢰한 네이버에 대해 "네이버는 댓글 조작 프로그램을 알면서도 방치해 광고 수익을 올렸다"며 "되놈이 곰을 고소한 것"이라고 했었다.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씨와 정대협에 대해 "30년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겼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며 여기저기 행사에 데리고 다니면서 모금한 돈은 개인 계좌로 챙겨 어디 썼는지 모르니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피해자 아닌 사람들이 30년간 상석을 차지해왔는데 우리 사회 누구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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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권은 윤미향씨에게 왜 금배지를 달아줬나
보수 정권이 위안부 외교 노력을 지금처럼 방치했다면 가만히 있었을까?
침묵의 대가치고 윤씨의 금배지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시민운동을 하는 분이 7일 아침 전화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하는데 언론의 관심이 적다'는 얘기였다. 그날 10명 내외의 기자가 모였다. 18일이 지난 그제 회견엔 150명 이상 모였다. 시간이 지나고 호응이 달라진 만큼 할머니 주장에도 맥락의 차이가 발견된다. 첫 회견에선 "윤미향씨가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같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중심이었다.
할머니가 말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기준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다. 할머니는 "천년이 가든 만년이 가든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민간에서 투 트랙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외교 협상을 통해, 민간에서는 국제 법정과 의회를 통해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서 기묘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일본과의 외교 협상에서 소위 '진보 정권'이 노력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민간의 국제 법정과 의회 투쟁에선 윤미향씨의 정대협 역할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반일(反日)'이라면 밥 먹다가도 뛰쳐나올 사람들이 주전장(主戰場)에서 뒷전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민간부터 이야기하자. 1998년 일명 '관부(關釜) 재판'은 위안부 법정 투쟁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성과로 남아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부산(釜山)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오가며 일본 법정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승리했다. 상급심에서 최종 패소했으나 1심은 국제 법정에서의 유일한 승소로 기록됐다. 2007년 미국 의회에선 위안부 피해자와 미 의원이 손을 잡고 위안부 청문회를 개최하고 결의안도 채택했다. 일본 정부의 총력 방어전을 국제 무대에서 물리쳤다는 점에서 역사적 성과로 평가됐다. 영화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가 두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때 현장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싸운 주역들은 윤미향씨를 어떻게 평가할까. '관부 재판'을 이끈 김문숙 부산 정대협 회장은 윤씨에 대해 "수요집회에 모금통을 갖다 놓은 사람"이라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미 의회 투쟁을 도운 서옥자 미(美) 워싱턴 정신대대책위 고문은 "할머니들이 청문회 증언에 나섰을 때 정대협은 돈 한 푼 지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미 청문회 주인공인 이용수 할머니는 명쾌하게 정리했다. "재주는 곰(할머니)이 부리고 돈은 ×놈(정대협)이 받아먹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사리사욕'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윤씨는 위안부 성금으로 일본 조총련 학교와 친북 단체 회원들을 지원했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과 수요집회로 한·일 외교 갈등을 일으켰다. 보수 정권이 일본과 안보 협력을 했을 때 "뼛속까지 친일"이라고 공격했다. 윤씨의 정대협을 비판하고 위안부 정체성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친일 망언'으로 몰아 단숨에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위안부 피해자를 앞세워 박근혜 정권의 한·일 합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피해 할머니들을 앞세운 국내 정치 운동엔 늘 윤씨의 정대협이 앞장섰다.
이번엔 정부의 외교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좌파 정권이 걸핏하면 반일을 말하니까 더 노력할 것이라고 믿는다. 반대였다. '고노 담화'를 끌어낸 김영삼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도 올리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가 호소를 했는데도 그랬다. 노무현 정권의 태도는 희극에 가까웠다. 2005년 "위안부 배상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해 과거사 문제에 불을 질러놓고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위안부 피해자 109명에 의해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안 함)'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폼만 잡고 실천하지 않다가 소송을 당한 것이다. 위헌 결정이 늦게 나는 바람에 모든 책임은 다음 보수 정권이 뒤집어썼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직후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그러면서도 사죄와 배상을 위한 외교 노력은 하지 않는다. 부작위 위헌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소위 '진보 정권'의 태도는 윤미향씨의 정대협과 유사했다. 승산이 없는 해외의 주전장을 피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대한 국내 정치에 활용한다. 파괴할 뿐 건설하지 않는 것이다.
보수 정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지금처럼 방치했다면 윤미향씨의 정대협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라"며 청와대로 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에서 윤씨의 정대협은 이상한 침묵을 이어갔다. 그렇게 3년 후 윤미향씨는 여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침묵의 대가인가. 30년 여성 인권 운동의 뿌리를 뒤흔든 대가치고 윤씨의 금배지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선우정 부국장, 조선일보(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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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장 중요하다'더니 부담되자 '토착 왜구'라 조롱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민주당 당선인 수사와 처벌을 촉구한 데 대해 민주당은 "수사를 보고 입장을 정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우리가 언급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권 지지자들은 이 할머니의 폭로로 윤씨와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쏟아지자 '토착 왜구 맞는다'는 등으로 연일 이 할머니를 조롱하고 있다. 어용 방송인은 "회견문을 할머니가 안 쓴 게 명백하다"고 했다. 처음엔 '치매로 정신상태가 이상하다'고 하다 이젠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지지자들은 야당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있었다며 이를 퍼뜨리다 가짜 뉴스로 확인되기도 했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는 "할머니가 '윤미향 국회의원'에게 거부감을 보이는 게 납득 안 된다"고 했다.
이 정부와 지지자들은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떠받들던 사람들이다. '피해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할머니들을 앞세워 전 정부를 '적폐'로 몰고 반일(反日) 죽창가를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에 이 할머니를 초청했고, 위안부 피해자 행사 때는 휠체어에 앉은 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동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 할머니 스토리를 담은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피해자 할머니가 "30년간 속고 당했다"고 진실을 밝히자 여권은 바로 낯빛을 바꾸고 할머니를 '친일파'라고 공격하고 청와대는 "국정과 관계가 없는데 청와대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한다.
이들에게 이용수 할머니 같은 피해자들은 '명분'이고 '이용 대상'일 뿐이다. 처음부터 중요한 건 윤씨와 정의연 같은 '우리 편'뿐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정의연 의혹에 대해서는 옹호 성명만 세 차례 내면서 불교단체가 운영하는 나눔의집 의혹은 비판하는 것도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리를 밝히면 누구든 '친일파' '토착 왜구'가 된다.
-조선일보(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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