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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도간(猛虎跳澗)] 김종인 비대위원장 집안은 풍수로 가세를 반전시켰다

뚝섬 2020. 5. 30. 07:18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묘(왼쪽). 오른쪽 사진은 가인 묘로 이어지는 호랑이 등뼈와 같은 석맥(石脈).

 

김종인 박사가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섰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대통령 만드는 데 기여한 정치인이다. 이번에는 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김 위원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그 스스로가 말하듯 학연·혈연·지연에서 주류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미국 유학파도 아니다.

김 위원장은 외대 독일어과 졸업 후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이다. 그럼에도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관여하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당선 직전까지 자문에 응하였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경제정책가로 활동하였고, 비례대표로 다섯 번 국회의원을 지냈다.

독일에서 공부하였다는 것과 조부(街人 김병로)가 초대 대법원장이었다는 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한국인이 한둘이던가? 그가 왜소해진 야당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벌써부터 정치·시사평론가들의 예측이 난무한다. 풍수적 관점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왜 뜬금없이 풍수인가? 김 위원장의 집안은 풍수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가인(街人) 김병로에 의해서다.

가인에게는 풍수가 필요한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가인의 아버지도 외아들, 가인도 외아들이어서 삼촌·사촌이 없는 집안이었다. 일곱 살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연달아 여읜 그는 소년가장이 되었다. 열두 살 때는 할머니까지 여읜다. 절손의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거듭된 비운을 반전시키고자 가인은 풍수 공부를 하여 경지에 오른다. "나(김병로) 역시 산서(풍수서)를 신뢰하여 소위 명당설에 끌렸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산서를 많이 읽은 탓에 '명안(明眼)'으로 자칭"할 정도였다. 조상을 길지에 모신 이후 풍수와 절연한다. 그렇지만 그가 소점한 자리(가인의 선영)는 지금도 순창과 담양 곳곳에 남아 있다. 인근에 사는 필자는 가끔 그곳을 답사하면서 가인과 그 시대의 풍수관을 엿보곤 한다. 이후 가인은 많은 자손들을 두었기에 풍수를 통한 가세 반전은 성공한 셈이다.

자칭 '명안'이라던 가인 자신의 묘지는 어떨까? 가인 묘는 강북구 수유동 산 86-1에 자리한다. 근처가 시내버스 종점이기에 찾아가기 쉽다. 터를 잡는(보는) 기본 원칙은 "용(龍)과 혈(穴)을 위주로 하고, 사(砂)와 수(水)를 그다음으로 하라(龍穴爲主, 砂水次之)"는 문장으로 집약된다. 용은 산줄기(산능선), 혈은 무덤 자리, 사는 주변 산들(청룡·백호), 수는 명당 안을 흐르는 물을 말한다. 저 멀리 웅장한 북한산 한 줄기[龍]가 바위 줄기[石脈]로 묘지 뒤까지 뻗어와 자리 하나[穴]를 만들고, 묘지 앞은 커다란 바위가 땅기운의 누설을 막아준다. 묘지 가까이 좌우 산[砂]들이 유정하게 감싸고, 묘지 앞에는 맑은 개울물[水]이 흐른다. 부드러운 산세의 순창·담양 선영과 달리 이곳은 강하다.

산 능선이 바위 줄기(석맥)로 이어져 급하게 내려오는 것을 용맹스러운 호랑이[猛虎]로 이미지화한다. 무덤 앞 큰 바위는 호랑이 이빨이다. 그 앞에 골짝 물[澗]이 있다.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개울을 뛰어넘는 이른바 맹호도간형(猛虎跳澗形)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여 청나라 수명을 연장시킨 학자 출신 정치가 증국번(曾國藩)의 조상 증보신(曾輔臣) 묘가 역시 맹호도간형이다.

누가 가인의 터를 잡았을까? 1964년 1월 가인 사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잡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미 여러 번 개울[澗]을 건넜다. 이번에는 개울이 아닌 강을 건너는 맹호도강(猛虎跳江)을 할까? 1년 후 결과가 기다려진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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