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미소 띤 윤미향
'입성(入城)'이라는 표현이 '국회'라는 단어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었을까.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얘기다.
지난달 30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안에서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길을 가로막던 숱한 의혹과 논란이 무엇 하나 해명되지 않았지만 기어이 국회에 입성했다. 이제 전날처럼 기자들 앞에서 진땀을 뻘뻘 흘릴 필요도 더는 없다. 사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도 그는 옅게 웃었다.

'국회의원 윤미향'은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 매년 1억5000여만원의 연봉을 받고, 운전기사까지 포함해 10명의 보좌진을 거느린다. 비록 윤 의원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거대 여당이 기꺼이 방탄(防彈)에 나서줄 것이다.
돌이켜보면 윤 의원과 그가 이끌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그동안 늘 당당했다. 지난달 정의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왜 기부금을 할머니들에게 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정의연 측은 "정의연은 피해자들의 생활 안정만을 위한 인도적 지원 단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신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또 "지난 30년간 활동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나"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정말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됐을까. 기자가 취재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초라하고 주눅 들어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겨울을 좁은 임대아파트에서 이불 한 장에 의지해 지냈다. 우연히 소식을 들은 여당 당직자가 그날 당장 이 할머니에게 60만원짜리 온수매트를 갖다준 게 뉴스가 됐다. 30년 가까이 이 할머니를 집회와 모금 현장에 동원했던 윤 의원과 정의연은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의 당당함은, 기자가 취재 중 만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위축된 모습과 대비되며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수도권에 사는 A 할머니는 윤 의원을 "도둑×"이라고 불렀다. "할머니들에게는 1000원 한 장 쓴 적이 없다"며 "어지간히 도둑질, 강도질을 해먹어야지. 국회에 들어가선 또 무슨 ××을 하려느냐"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인터뷰 때마다 "절대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내가 한 말인 게 알려지면 윤미향이 나를 가만 안 둘 거야"라고 했다. B 할머니 딸도 "윤미향이나 정의연으로부터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도 "정의연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코지를 할까 걱정된다"며 익명을 요청했다.
윤 의원은 지난 4월 "정치도 길 위의 인생처럼 산다면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그는 두려움이 없겠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걱정이 크다. 특히 피해자 할머니들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국회의원 윤미향'이 '길 위의 윤미향'과는 다르길 바랄 뿐이다.
-이기우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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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수난 시대
기부는 행복 바이러스다… 잘못하다 걸렸을 때 하는 것도, 부자들 팔 비틀기용도 아니다
요즘 윤미향씨 탓에 부쩍 기부란 말이 화제에 오른다. 기부를 떠올리면 2년 전 작고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생각난다. 그와 함께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구 회장은 신문 등을 통해 좋은 일을 했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알게 되면 사재(私財) 등으로 도와줬다고 한다. 비서들이 '배달부' 역할을 맡아 "모시는 어른이 드리라고 했다. 문제가 없는 돈이니 받으셔도 된다"면서 전했다. 놀라웠던 것은 돈을 건네받은 사람 중 적잖은 이들이 "내가 돈 받겠다고 한 일이 아니다. 더 좋은 데 쓰시라"면서 거절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따뜻하고 아름다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구 회장의 숨은 기부 활동이 자칫 세금 처리 등에서 문제가 될 수 있어 제도화한 것이 바로 LG 의인상이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121명에게 줬다. 이런 사정이 조금씩 알려져 "난 가전은 LG 제품만 쓴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기부는 자본주의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기부가 대표적이다.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 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며 1조원이 넘는 재산을 장학 재단에 내놓은 이종환 관정교육재단 이사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통 큰 기부만 있는 게 아니다. 명동성당을 가보시라.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엔 자녀의 생일마다 파티할 돈을 쪼개 기부하는 이들이 수만 명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수많은 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부자여서가 아니다. 청소부로, 분식점 주인으로, 파출부로 일생을 바쳐 모은 돈을 자신을 지켜준 사회에 내놓는 뭉클한 사연들도 부지기수다. 기부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기부도 종종 있다. 최근엔 조국씨와 김의겸씨가 그랬다. 조국씨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 "('가족 펀드' 의혹이 제기된) 사모 펀드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아마 반대 진영이나 재벌 등이 의혹받는 과정에서 기부를 선언했다면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 이제 초등학생도 다 짐작한다.
김의겸씨는 그 유명한 '흑석동 집'을 팔면서 '차액 기부'를 선언했다. 예상대로 기부 선언 후 총선 출마 선언으로 이어진 그의 행동에 대한 비판은 논외로 두자. 살면서 그토록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찬 기부 선언은 처음 봤다.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상위 30%에게는 그 돈을 기부하라는 '강요'가 시작됐다.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도 놀랍지만, 기부란 행위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어도 되는지 모를 일이다. 혈세를 이용한 이 돈의 기본 성격은 소비 활성화를 통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이다. 이런 일에 상위 30%는 빠지라는 소리인가? 기부마저도 교묘하게 부자와 일반인이란 편 가르기 프레임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부금 횡령 의혹 사건이기도 한 '윤미향 사태'는 우리 사회 특정 세력들의 비뚤어진 '기부관'에서 기인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일부 진보 진영은 쉼터 고가 매입 의혹 등의 행위를 놓고, 기부 모금이나 사용을 정밀하게 쓰지 못한 게 무슨 큰 잘못이냐는 식으로 덮고 가는 태도를 보인다. 기부를 아주 우습게 알거나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기부는 잘못하다 들킨 뒤 찾는 피난처도, 돈 많은 사람들의 팔을 비틀어 받아내는 돈도 아니다. 기부는 삭막해지는 세상에 단비 같은 행복 바이러스다. 그렇기에 기부를 하는 것도, 기부받은 돈을 쓰는 것도 무엇보다 존중받고 소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기부'라고 쓰고 '공돈'이라고 읽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인열 사회정책부 차장, 조선일보(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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