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피아노의 시인]

뚝섬 2020. 6. 16. 08:25

음악의 아버지, 음악의 어머니, 악성(樂聖), 가곡의 왕…. 서양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곡가들을 각각 지칭하는 별명이다. 클래식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이 별명들이 어떤 작곡가를 가리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만큼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이 수식어들은 대부분 별명 붙이길 좋아하는 일본에서 왔는데, 별명이 작곡가의 정체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별명과 작곡가의 정체성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이다. 폴란드 출신 작곡가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음악으로 시를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펜을 들고 글자 대신 음표를 하나하나 그려 넣었다. 그리고 꾹꾹 눌러 쓴 이 음표들은 아름다움을 '함축'하고 있다. 시가 짧은 단어로 기나긴 아름다움을 노래하듯 말이다.

또 쇼팽의 작품은 결과보다는 순간순간의 과정 자체가 아름답다. 시가 흘러가듯 감정은 시시각각 확장되고 감수성은 예민하게 흔들린다. 언제든 닿으면 부서질 것같이 위태롭게 떨린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줍은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초인적이고 굳센 해석을 들려주는 연주자보다는 순간순간의 여린 감수성을 잘 포착하는 연주자가 더 마음에 남는다.

 

시처럼 들리는 쇼팽의 작품은 그 본질이 예민한 감수성에 있다. 구조적으로 완벽하고 논리가 치밀한 작품을 찾는다면 굳이 쇼팽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구조와 논리로 무장한 작품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낭만적 피아노 시인은 때로 정해진 구조를 벗어나 일탈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감성을 더욱 섬세하게 담기 위해 기존 질서를 살짝 비트는 것이다. 아름답고도 창조적으로! 시에선 이것을 '시적 허용'이라고 부른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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