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보다 비싸진 흑염소 ]
[삼복더위 보양식의 ‘지존’은 염소?]
[민어는 어떻게 여름 보양식계 '존엄'이 됐나]
[木浦 三味]
한우보다 비싸진 흑염소
중국 제나라에선 종(鐘)을 만든 뒤 소의 피를 발라 틈을 메웠다. 왕은 끌려가던 소가 눈물을 흘리자 “차마 볼 수가 없다”며 놔주라고 했다. 백성이 “그럼 피를 바르지 말까요” 묻자 왕은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했다. 양으로 소를 대신한다는 이양역지(以羊易之) 이야기다. 맹자는 왕에게 “눈물 흘리는 소만 봤지 양은 못 보셨군요.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왕은 제대로 답을 못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불쌍히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측은지심을 못 느끼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명맥을 유지했던 개고기가 개 식용 금지법 공포로 2027년부터 사라지게 된 데는 반려견 문화 확산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개고기가 사라진다고 보양식 문화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개고기 식당에선 오래전부터 조리법과 육질이 유사한 흑염소를 ‘대체재’로 준비했다. 메뉴판에 개고기는 ‘영양탕’, 흑염소는 그대로 ‘흑염소탕’이라고 적었다. 들깨, 겨자, 식초가 재료인 소스를 함께 사용하다 보니 두 고기를 구별하기 어렵다. 국내 최대 개 식용 시장이었던 성남 모란시장 입구에는 ‘흑염소 특화 거리’라는 조형물이 들어섰다. ‘복날의 제단’에도 개 대신 흑염소가 오르고 있다.
▶최근 흑염소 낙찰가는 50㎏ 1마리에 100만원으로, 2019년 33만원과 비교해 무려 3배로 올랐다. 가격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져 사육을 포기하던 것이 몇 년 전이었다. 지난달 전남 강진의 염소 경매시장에서 ㎏당 평균 가격은 암염소 1만8776원, 거세 흑염소 1만8150원으로 ㎏당 1만5000원 안팎인 한우를 앞섰다. 국내산 흑염소로는 개고기 빈자리를 감당 못 하자 염소 수입도 2014년 1463t서 2022년 3322t, 작년 5999t로 급증세다. 수입 염소의 99%는 호주산이고 뉴질랜드가 나머지다.
▶국내 흑염소 농가들이 ‘포스트 개고기’에 준비가 덜 된 것과 달리 호주는 치밀했다. 호주축산공사(MLA)는 작년 8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개고기 반대 여론을 언급하며 “한국 시장에서는 쇠고기·양고기보다 개에 가까운 풍미와 저지방을 지닌 고기가 개고기를 대신할 것”이라며 ‘염소 특수’를 준비했다. 호주는 국내 흑염소의 절반 가격으로 대대적 공세에 나섰지만, 우리 정부와 국회는 ‘개고기 금지’만 신경 썼지 그 이후는 내다보지 못했다. ‘한우’와 수입산으로 나뉜 소고기에 이어 흑염소도 ‘한염소’와 호주산이 경쟁할 모양이다.
-정우상 기자, 조선일보(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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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 보양식의 ‘지존’은 염소?
보신탕부터 흑염소까지
복달임 음식의 흥망성쇠
경기도 하남 ‘까치산장’ 주인 차형자씨가 흑염소 배받이와 갈비 수육을 손으로 찢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하남에 있는 흑염소 전문점 ‘까치산장’은 중복이던 지난 21일을 앞두고 흑염소탕 가격을 2만원으로 1000원 올렸다. 식당 주인 차형자씨는 “염소 가격이 말도 못하게 올랐다”고 했다. “염소 고기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넘게 뛰었어요. 2020년만 해도 탕 한 그릇에 1만7000원을 받았는데, 손님들에겐 죄송하지만 이제는 2만원을 받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염소가 개, 닭, 장어, 민어 등 쟁쟁한 강자들을 제치고 보양식계 지존 자리에 오를 기세다. 인기와 가격이 치솟고 있다. 한국흑염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산지 염소값(생체)은 1kg 기준 거세·암염소 1만9000원, 비거세 1만7500원이었다. 크게 오르기 전인 2021년 7월 1kg당 거세 1만3000원, 비거세·암염소 1만1000원과 비교하면 평균 52% 상승했다. 염소 한 마리 무게가 평균 60~70kg인 점을 감안하면 마리당 120만원꼴이다. 5년 전만 해도 염소 한 마리 가격은 10만~15만원 정도였으니, 10배 정도 오른 셈이다.
◇개 밀어내고 왕좌 차지한 삼계탕
전통적으로 한국 보신 식문화의 중심은 개장(狗醬) 즉 개고기 국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개고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저렴한 단백질원이었다. 19세기에 발간된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에는 개장국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때도 개고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개발된 게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육개장이다. 19세기 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육개장은 대구에서 꽃피웠다. 20세기 초까지 ‘대구탕’이라 불릴 정도였다.
서울과 호남에서는 민어가 개고기만큼 인기가 높았다. ‘서울에서는 복중에 민엇국으로 복달임해 온 식습관이 있다. 60세 이상이 되는 분들은 예부터 민어 등 물고기를 쇠고기 대신 즐겨 먹는다(1974년 3월 14일 자 조선일보).’ 민어는 1934년 어획량이 7만4000t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남획으로 급감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복달임 음식 대표 자리에서 밀려났다.
삼계탕은 1950년대 이후 외식으로 등장했다. 비슷한 음식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지만, 음식보다는 보약으로 인식됐다. 삼계탕이란 단어는 1910년 일본인들이 작성한 ‘중추원조사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여름 3개월간 삼계탕, 즉 인삼을 암탉의 배에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약으로 마시는데, 중류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나온다.
요리로서 삼계탕은 ‘조선요리제법’ 1817년판에 나온다. 저자 방신영은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배 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 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이나니라’라고 적었다.
경기도 하남 '까치산장' 흑염소탕./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당시 삼계탕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었던 약선(藥膳)음식이었다. 닭과 인삼은 비싸고 귀했다. 삼계탕 대중화는 인삼 전매가 풀리고, 양계산업이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다. 닭 배 속에 인삼 가루 대신 수삼(水蔘)을 넣은 삼계탕 전문점이 속속 문을 열었다. 최고의 보양식 타이틀을 바로 차지하진 못했다. 보신탕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신탕이란 이름은 1950년대에 등장한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저 식당에서 뭘 파는 거냐’고 묻자 보좌진이 차마 개고기 국이라 답할 수 없어 보신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알려졌다”고 했다. 보신탕은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해외에서 논란이 됐다. 보신탕집은 서울 4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삼계탕은 때를 놓치지 않고 국민 보양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장어·민어·염소… 보양식 춘추전국
요즘 염소 가격이 치솟는 건 개고기 식용 문화가 차츰 사라지면서 대체품으로 염소 고기가 뜨기 때문.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라 불릴 정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까치산장 차형자씨는 “흑염소 인기를 체감한 건 3년 전부터”라고 했다. “코로나를 이겨내려면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개고기는 꺼려진다는 거예요. 그런 손님들이 흑염소로 많이 전향하셨죠.”
염소 고기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오래전부터 합법적으로는 구할 수 없는 개고기 대체육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김진출(78)씨는 “여기서는 한국에서 염소탕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염소탕이나 염소전골을 먹으며 개고기 수육과 보신탕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고 했다. 염소 고기는 개고기와 맛과 질감이 비슷하다. 갈비나 배받이 부위를 수육으로 먹으면 개고기와 차이가 나지만, 얼큰하고 구수하게 양념해 끓이는 탕이나 무침은 구분하기 힘들다.
염소에 앞서 뱀장어(민물장어)와 갯장어(하모)가 삼계탕의 패권에 도전했다. 박정배 작가는 “뱀장어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먹어왔지만 반으로 갈라 간장양념을 발라 굽는 현재의 조리법은 일제강점기에 소개됐고, 1970년대 육식·보양식 문화가 본격화하며 퍼졌다”고 했다.
경남 고성 포교마을 '나포리횟집'의 갯장어 샤부샤부./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몇 해 전부터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던 갯장어가 뱀장어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양식이 불가능한 데다 여름에만 잡혀 연중 먹을 수 없는 희소성, 양식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뱀장어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프리미엄’ 이미지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개처럼 이빨이 날카롭고 잘 물어 갯장어(개+장어)란 이름을 얻었다. 일본명 하모(ハモ)’도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ハ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갯장어는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사이에서 특히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한반도 남해안산이 일본산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방 이후로 한참 동안 남해안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전량 수출됐다. 전남 여수, 경남 통영·고성 등 남해안 일부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에서 갯장어를 몰랐던 이유다.
한때 잊힌 민어도 2000년대 중반부터 언론에 다시 소개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서해를 끼고 있는 전라도와 충청도, 서해에서 배로 올라올 수 있는 서울에서 주로 먹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민어를 찾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다. 2014년쯤 민어 양식이 성공하면서 가격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여름 대표 복달임 자리를 삼계탕으로부터 빼앗지는 못하고 있다.
박 작가는 “삼계탕은 주재료인 닭과 인삼의 생산·유통이 산업적으로 완전히 정착된 상태”라며 “염소는 물론 어떤 음식도 삼계탕을 끌어내리고 보양식 ‘존엄’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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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어떻게 여름 보양식계 '존엄'이 됐나
민어 남획으로 씨 말라 잊은 사이 삼계탕이 '국민 보양식' 타이틀 차지
초복(初伏)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최고 인기 보양식을 꼽으라면 민어인 듯하다. 서울 한 일식집 주인은 "7~8㎏ 이상 나가는 먹을 만한 민어는 ㎏당 9만원이나 한다"며 "아무리 초복 직전이라 그렇다지만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혀를 내두른다. 닭과 인삼이라는 두 강자가 연합한 삼계탕, 스태미나의 상징 장어, 보신탕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어떻게 민어는 여름 보양식계 '존엄'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민어는 오래전부터 여름 보양식으로 사랑받았다.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이 삼품(三品)"이라는 말이 있었다. 보신탕은 평민이 먹고, 민어탕은 사대부가 먹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비싸진 않았다. 민어가 흔했기 때문이다.
민어는 여름이 제철이다. 8월 산란기를 앞두고 몸집이 커지고 기름도 가장 오른다. 민어는 서해, 전남 신안 일대 바다에서 산란한다. 전남 신안 임자도·재원도 토박이들은 "여름 산란기가 되면 알 낳으러 몰려든 민어 떼가 '꺽꺽' 우는 소리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민어잡이 배가 하도 많아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많이 잡히는 만큼 흔히 먹는 생선이 민어였다. 서울 토박이인 70대 어머니는 "어릴 땐 민어포를 대구포나 북어포보다 더 자주 먹었다"고 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민어는 정부가 물가를 조사할 때 빠지지 않는 품목이었다. 1969년 5월 17일 자 동아일보 '여름 물가 소비자 노트' 기사에 따르면, 당시 민어 가격은 한 관(3.75㎏)에 1800원.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4만5000원쯤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사 먹을 수준이다. 그야말로 '백성의 생선'이라는 민어(民魚)의 한자 뜻풀이에 걸맞았다.
평범한 생선이던 민어가 귀한 신분으로 격상한 건 남획 때문이다. 어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민어 어획량이 증가하다가 1970년대 정점을 찍고 급락하면서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생선 가게에서 보기도 힘든 생선이 됐다.
이때 치고 들어온 보양식이 삼계탕이다. 1960년대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가 조사한 데 따르면, 삼계탕이라는 단어는 1923년 일제 총독부가 작성한 '중추원조사자료'에 처음 나온다. '여름 3개월간 매일 삼계탕 즉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약으로 마시는데, 중류(中流·중산층)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
삼계탕이 외식으로 등장한 건 1950년대 중반이다. 그때는 닭을 인삼보다 앞세워 '계삼탕'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처갓집 온 사위에게 씨암탉 잡아주던, 닭이 귀하고 비쌌던 시절이다.
양계 산업이 본격화한 1960년대 삼계탕도 대중화한다. 최고의 보양식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보신탕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보신탕이 해외에서 논란이 됐고, 보신탕집은 서울 4대문 밖으로 쫓겨난다. 삼계탕은 때를 놓치지 않고 국민 여름 보양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삼계탕의 권좌가 1990년대 들어 흔들렸다. 음식은 맛과 영양만큼 가격이 중요하다. 독일 본 대학과 프랑스 인세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레드와인 3병을 주었다. 병당 각각 3유로, 6유로, 12유로짜리라고 알려줬다. 실제로는 모두 같은 와인이었다. 실험 대상자는 대부분 "12유로짜리 와인이 가장 맛있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가격은 음식에 대한 만족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보양식은 특히 그렇다. 귀하고 값비싼 재료라야 한다는 심리가 있다. 그런데 닭과 인삼은 너무 싸고 흔해진 것이다.
그러자 잊었던 민어가 소환됐다. 2000년대 중반쯤부터 신문과 방송에 민어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과거 민어는 서해를 끼고 있는 전라도와 충청도, 서해에서 배로 올라올 수 있는 서울에서 주로 먹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민어를 찾으면서 그러잖아도 비쌌던 민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민어가 여름 보양식계 지존으로 등극한 이유다.
다행히 양식 민어가 2014년쯤부터 시장에 풀렸다. 민어는 성질이 예민한 데다 상품(商品)으로 판매할 정도 크기가 되려면 4~5년은 키워야 해 양식이 쉽지 않지만 성공한 것이다. 양식 민어가 나오면서 민어 가격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 민어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양계 산업이 본격화하면서 삼계탕 인기가 하락한 것처럼, 민어도 최고 보양식 자리를 곧 내줘야 할 수 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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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浦 三味
민어의 장중한 맛과 홍어의 톡 쏘는 맛 사이에서 중용을 잡는 맛, 병어조림
안동에 가면 지인들이 밥 먹자고 데리고 가는 데가 갈빗집이다. 안동역 앞 걸어서 5분 거리의 골목길 이쪽저쪽에 갈빗집이 대략 20여 군데는 되는 것 같다. 숯불에 갈비 굽는 냄새가 골목길에 진동한다. 안동에서 손님 대접할 때는 갈빗집이다.
안동의 대각선 방향에 전라도 목포가 있다. 목포 친구들이 데리고 가는 데는 목포역 앞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민어탕 집들이다. 온통 해물(海物)집들이다. 민어탕, 병어조림, 횟집이 쭉 깔려 있다. 어제도 후배 차에 동승해서 1시간 30분 동안 100㎞가 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중요한 사무가 있어서가 아니다. 목포 민어탕집을 가기 위해서이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민어탕을 한 번 더 먹기 위해서 여정에 올랐던 것이다. 적어도 여름 동안 3번은 민어탕을 먹어야 보람을 느낀다. 못 먹으면 인생 헛바퀴 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허둥대면서 시간 없다고 자기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나!'
목포의 한 횟집의 민어회. /조선일보 DB
민어는 목포 인근 바다에서 잡힌다. 날것으로 먹기보다는 냉장고에 2~3일 숙성시켰다가 먹어야 맛이 좋다. 경상도 친구들은 약간 물렁하다는 느낌을 주는 민어의 식감에 익숙하지 못하다. 민어 부레를 참기름 버무린 소금에 찍어 먹으면 쫀득쫀득하다. 민어 껍질도 찍어 먹을 만하다. 양은 냄비에다 양념을 넣고 끓여서 나오는 민어탕은 '성난 파도를 잠재우는 맛'이다. 민어가 좀 심심한 맛이라면 그 대칭점에 홍어가 있다. 나는 팍 삭힌 홍어맛을 선호한다. 암모니아 가스가 분출되는 홍어맛 말이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 따라 삭힌 홍어 먹다가 입천장 벗겨진 적도 있다. 중년이 되니까 왜 암모니아 가스 맛이 당긴단 말인가? 홍어를 먹고 나면 내장에 쌓인 퇴적물이 시원하게 청소되는 것 같다.
목포 삼미의 하나가 병어조림이다. 민어의 장중한 맛과 홍어의 톡 쏘는 맛 사이에서 중용을 잡는 맛이다. 목포 인근의 임자도·지도 일대에서 늦봄과 초여름에 많이 잡힌다. 목포는 주변의 무안군·해남군 일대에서 양념이 풍부하게 생산된다. 파·마늘·고추·양파의 산지들이다. 이 풍부한 양념들과 민어·홍어·병어가 어우러져 목포 삼미를 만들었다. 의식주 가운데 식(食)이 범부(凡夫)에게 의욕을 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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