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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도 이미지 전쟁터, '감형을 위한 패션'은 무엇인가] ....

뚝섬 2025. 12. 18. 08:47

[법정도 이미지 전쟁터, '감형을 위한 패션'은 무엇인가] 

[슬리퍼 신은 기자]

[저무는 양복시대]

[분홍 원피스는 죄가 없지만]

 

 

 

법정도 이미지 전쟁터, '감형을 위한 패션'은 무엇인가

 

"재판 날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하죠?" 의뢰인들이 종종 묻는다
명품 정장, '물광', 악세서리, 맨발 금지… 재판도 일종의 면접

 

“아, 진짜 미치겠네. 다른 옷 뭐 입을 거 없어요?”

 

한파가 몰아치는 오후, 가정법원 복도에서 한 변호사가 의뢰인 가족을 들볶고 있었다. 소년 재판을 기다리는 시간은 늘 붐비고 복잡하지만, 옷 타령을 듣는 건 또 처음이다. 슬쩍 옆을 보니 대충 상황을 알 만하다.

 

변호사가 학생에게 교복을 입고 오라고 했는데, 학생이 입고 나온 교복 치마가 속옷이 보일까 말까 아슬아슬한 길이인 게 문제였다. 교복을 고쳐 입으려는 10대의 반항심은 세대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나 보다. 여벌 옷은 이거뿐이라며 보라색 체육복을 꺼내 드는 학생에게 변호사가 한숨을 내쉰다. 내가 저 상황에 있지 않아 다행이다. 내 의뢰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한 교복 차림인 데다, 명찰도 똑바로 달았다. 새로 다듬은 지 얼마 안 된 머리 스타일은 어린 나이를 강조하는 듯하다. 백점 만점이다.

 

“재판 날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하죠?”

 

의뢰인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이다. 이 문제로 며칠씩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역시, TPO(시간·장소·상황)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답다. 아니, 이건 한국인만의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외국 또한,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재판을 받으면 무슨 브랜드 옷을 입었고, 어떤 명품 안경을 썼고, 어느 나라에서 만든 가방을 들었는지 사사건건 보도하니까 말이다. 2010년대 음주 운전, 마약, 절도 등 다양한 혐의로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연달아 법정에 출석했을 때,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오늘의 법정 룩 점수’를 채점해 랭킹 매기는 특집을 하기도 했다.

 

사실 법정에 특별한 드레스 코드 같은 건 없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법정 내 게시물에서 ‘법원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권고하면서 “모자, 트레이닝복, 찢어진 청바지, 선글라스 등은 착용하지 말아 달라”고 안내한다. 보수적인 법정 문화를 가진 일본에서는 재판장이 소송 지휘권을 통해 사건 당사자나 방청객의 복장을 통제할 수 있는데, 현란한 무지개색 양말을 신고 온 방청객에게 양말을 보이지 않게 가리라고 지시했다가 그 방청객이 권리 침해라고 반발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양말 때문에 밖으로 쫓겨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이 복장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게도,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조금이라도 나은 판결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다. 의뢰인들에게 ‘평범한 정장 또는 세미 정장’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나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같다. 특히 재범 위험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양형의 핵심이 되는 사건에서는, ‘우리 의뢰인이야말로 이 사회의 모범적이고 성실한 시민’이라는 점을 복장으로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이다.

 

피어싱은 빼고, 문신은 가리고, 머리가 노란색이라면 까맣게 염색하고. 고가의 명품 정장을 입는 건 안 된다. 오만하고 잘난 척한다는 느낌을 줄 필요는 없으니. 여성이라면 메이크업도 중요하다. 스모키 메이크업이나 ‘물광’은 금물. 액세서리는 하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다.

 

듣다 보니 그냥 면접 룩 아니냐고? 맞다. 재판도 일종의 면접이다. ‘채용’ 대신 ‘판결’로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면접. 에르메스 스카프를 가방 속에 숨김으로써 형량을 3개월이라도 깎을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숨기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 판사 앞에서 신발을 꺾어 신고 걸어 다니는 건 자제하자. 맨발도, 발가락 화장도 참자. 그리고 제발, 아무리 애착 아이템이어도, 법정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오지는 말자.

 

-서아람 변호사·前 검사, 조선일보(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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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신은 기자

 

대학 시절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다. 대입 관문을 뚫었다는 만족감에다 집을 벗어난 해방감이 더해 나태와 방종이 일상이 된 학생이 많았다. 늦잠 자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 신고 헐레벌떡 강의실에 뛰어가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교수는 못 본 체했지만 깐깐한 교수들은 “신성한 강의실을 모독하는 차림”이라며 내쫓았다.

 

▶직장에서도 슬리퍼는 요주의 대상이다. 기업 컨설턴트들은 외부 손님이 가장 안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는 경우를 ‘직원들이 슬리퍼 신고 로비나 엘리베이터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볼 때’라고 한다. 자기 자리에서 슬리퍼 신고 업무를 보더라도 상사에게 보고하거나 다른 부서에 갈 때는 정장 신발로 갈아 신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박기종의 ‘직장인 레서피’에서)

 

▶2017년 여름 미국 의회에서 몇몇 여기자들이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취재하러 들어가다가 ‘드레스 코드’ 불량을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했다. 무더위 때문에 그랬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취재원을 만나려면 예의에 맞게 입고 오라는 거였다. 2005년 미국 여자 하키 우승팀이 백악관 초대를 받아 부시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했는데 몇몇이 비치 샌들을 신은 것이 논란이 됐다. CNN이 이를 보도하면서 앵커가 “대통령도 종종 청바지를 입는다”고 두둔하자, 백악관 출입 기자는 정색을 하며 “백악관에 걸맞지 않은 차림새”라고 반박했다.

 

▶수습 기자 시절, 선배들은 취재원을 만날 때 가급적 양복 재킷을 입고, 나이 어린 전경들한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쓰라고 당부했다. 당시 방송사 기자들은 양복, 넥타이를 기자실 한쪽 편에 두고 있다가 리포트할 일이 생기면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가곤 했다. 엊그제 대통령 출근길 문답에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나와 팔짱을 낀 채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일이 논란을 빚고 있다. 여당이 “무례하다”고 지적한 반면 야당은 ‘좁쌀 대응’이라고 반박했다.

 

▶기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질문 내용이 공격적이고 무례하더라도 국민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면 용인이 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장에서 어떤 기자가 ‘당 차원의 향후 계획’을 묻자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이런 자리에서 예의가 아니지 않나. XX자식 같으니라고”라고 화를 냈지만, 기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진 않았다. 대통령실 담당 기자에겐 매일 아침 대통령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출근길 문답 시간이 가장 중요한 일과일 것이다. 이런 중요한 취재 업무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초년병 시절 선배들로부터 꾸중 들어가며 배운 ‘기자의 예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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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양복시대

 

당연한 얘기지만 양복은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서양의 옷’이란 뜻이었다. 조선 말기 개화파 정객들이 제일 먼저 양복을 입었는데, 1880년대 초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파견됐던 김옥균 서광범 유길준 윤치호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한때 양복의 다른 이름은 ‘개화복’이었다.

▷조선에서 서양식 양복을 받아들인 것은 이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894년 갑오개혁 이후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고 1896년 고종의 칙령으로 서양식 육군복장을 제정했다. 1900년에는 문관들의 관복도 일본이 전수한 서양식으로 바꿨다. 1898년 배재학당이 검정 양복 스타일의 교복을, 1907년 숙명여학교가 자주색 원피스로 된 서양식 교복을 채용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한복 교복이 금지돼 양복식 교복이 퍼졌다.

▷‘상의와 하의를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의 양복’으로 대표되는 양복 정장은 한국의 현대사와 호흡을 함께하며 일상 속에서 격식을 갖춘 옷차림으로 정착했다. 경조사나 중요한 만남, 공적인 행사, 면접 등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패션과 의전 사이를 오가며 드레스코드를 충족해 줬다.


▷이런 양복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패션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정장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화상회의에 상의는 격식을 갖추고 하의는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해도 되는 요즘 세태가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브룩스브러더스 등 전통 있는 정장 기업이 줄파산하고 국내 남성복 시장 규모도 8년 새 40%나 졸아들었다. 한 글로벌 의류업체 사장이 말한 대로, 코로나19는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가져다주고 있다”.


양복, 특히 50대의 남성이 입은 양복은 최근 기성세대의 권위나 관행과 동의어가 돼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달 초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논란의 중심에 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관행이나 TPO가 영원히 한결같은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일할 수 있는 복장이면 된다는 주장이다.

 

▷요즘은 맞춤정장보다 경제적인 기성복이 대세지만 양복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여전히 맞춤양복을 선호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맞춤정장 가게가 즐비한 영국의 새빌로(Savile Row) 거리는 ‘원탁의 기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 ‘킹스맨’의 무대이기도 하다.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막아내는 조직의 핵심에 양복점이 등장하는 상상력에서, 유럽사회가 갖는 장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슬쩍 엿보였다. 양복과 언택트 시대의 복장,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을까.

 

-서영아 논설위원, 동아일보(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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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원피스는 죄가 없지만

 

미국 뉴욕주 제14선거구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30)라는 민주당 연방 하원 의원이 있다. 2018년 20대 때 공화당의 10선 거물을 꺾고 최연소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된 무서운 신인이다. 급진 좌파 성향부터 거침없이 돌진하는 언변, 의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젊은 여성다운 발랄한 옷차림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7월 23일 워싱턴 DC의 의사당에서 시대에 남을 연설을 했다. 공화당의 60대 남성 의원에게서 정책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빌어먹을 X(a fucking bitch)"이란 폭언을 들은 지 사흘 뒤였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나는 길거리에서, 식당 서빙을 하면서, 이런 욕설과 성희롱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상처받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그런 욕설을 해도 넘어갈 수 있는 문화,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과 폭언을 용인하는 문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이날 입은 옷은 어깨에 두툼한 패드가 들어가 각 잡힌 새빨간 더블 재킷에 검정 바지였다. 여성 정치인들이 즐겨 입는 파워 슈트의 전형이다. 평소 민소매 원피스나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러플 달린 재킷을 즐겨 입던 그이지만,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자리엔 작심하고 전투복을 입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이날 서른 살 여성 의원의 빨간색 재킷을, 긴 생머리와 빨간 립스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말을 뒷받침하는 소품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기 때문이다.

정의당 비례대표 류호정(28) 의원의 '분홍 원피스' 논란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솔직히 비난과 야유를 받을 정도의 옷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민을 대변하는 국회에서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남성 중심 국회를 깨보고 싶었다"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진보 정치인이 할 일"이라는 류 의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무슨 옷을 입든 일만 잘하면 된다'는 논리엔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사무실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중요한 정보를 감추려는 관료를, 여의도를 염탐하며 빈 곳을 찾아 로비하는 기업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있는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싸우는 직업이다. 정글에선 호랑이도 위장용 줄무늬로 자신을 방어해놓고 사냥한다.

류 의원이 중년 남성 의원들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값비싼 맞춤 정장을 입으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날 입을 옷이 소수 야당 의원에게까지 절박하게 매달려야 하는 서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 상임위원회에서 말 빙빙 돌리는 장관을 몰아붙일 때 허점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옷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씩씩한 국회의원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정시행 뉴욕 특파원, 조선일보(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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