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평양에서 23층 신축 아파트가 붕괴했다. 수백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라면 참사 소식이 평양 외부로 퍼지는 것부터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선전 기관들은 "유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표하고 수도 시민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절대 권위를 갖는 노동당 간부들이 직접 사과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당시 이미 휴대전화가 300만대 보급된 상황에서 옛날처럼 감추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17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 속에서 지난해를 보냈다"고 했다. "인민의 충복을 맹약한다"며 고개까지 숙였다. 무오류의 북한 최고 지도자가 모든 주민이 보는 TV에 나와 '반성'한 것은 김정은이 처음이다. 김정일은 대중 연설을 한 적이 없다. 김일성은 자주 했지만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고위 탈북민은 "신(神)과 같은 1인 영도자 입에서 오류를 인정하는 '자책'이란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김정은은 울기도 잘한다. 인민무력부장 등을 공개 처형하던 2015년 평양 보육원의 설맞이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수산사업소의 한 직원이 '물고기 대풍'을 김일성·김정일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울었다. 그때마다 북한은 김정은의 '애민 정치' 선전에 열을 올렸다. '눈물 쇼'가 새로운 선전 수법이 됐다.
▶김정은이 19일 노동당 전원 회의에서 "경제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 생활이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졌다"고 했다. 최고 지도자가 직접 경제정책 실패를 시인한 것은 전례가 없다. 북은 1993년에도 경제 실패를 자인했지만 김일성이 아니라 강성산 총리가 총대를 멨다. 김정은이 잘못을 인정하자 20일부터 당·정 간부들이 경쟁적으로 반성문을 쓰고 있다. 잘못은 자신이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권력이 아직 공고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간부 통제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2012년 첫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제 특구와 농업 개혁도 발표했다. 그러나 핵과 경제를 같이 개발한다는 망상을 좇다가 민생 경제를 파탄 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역대 최악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꽃제비(구걸 아동)'가 다시 등장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반성 쇼'와 '눈물 쇼'를 해야 할 정도로 민심이 나쁠 가능성이 있다. 쇼로는 사람들 눈을 잠시 가릴 수 있지만 오래 속일 수는 없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8-22)-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보가 강둑을 무너뜨렸다고?… 수압붕괴설 현장에선 실소] (0) | 2020.09.02 |
|---|---|
| [노인의 금융] (0) | 2020.09.01 |
| [풍수로 본 '천도론'] 굳이 옮기려면, 세종시로는 국회의사당만 (0) | 2020.08.22 |
| [다주택 안 파는 靑 참모.. ] [조용한 연설의 힘] (0) | 2020.08.03 |
| [물난리 앞 '파안대소'] [KBS 사장의 '세월호 변명'] (0) | 2020.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