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양심이 떠난 빈자리… ‘무라야마 저격수’의 총리 등극]
[‘나막신의 눈’]
[자민당 파벌끼리 밀실서 합의하면 끝… 설 곳 없는 민심]
[‘흙수저’ 스가]
일본의 양심이 떠난 빈자리… ‘무라야마 저격수’의 총리 등극
[천광암 칼럼]
日 식민 지배 첫 사죄한 ‘무라야먀 담화’
과거사 미화 광풍 속 ‘기적’처럼 결실
30년간 집요하게 ‘담화’ 공격한 다카이치,
역사의 불길한 伏線, 한일관계 먹구름 예고
‘서민재상.’ 17일 별세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에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국회에서 돌을 던지면 세습 의원이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수저’ 의원들의 천국인 일본 정계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는 완전한 이방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종업원이 3명뿐인 작은 ‘동네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며 야간 상업학교를 다녔다. 70세의 나이로 총리가 됐을 때도 변변한 재산이라곤 지은 지 80년이 넘어 곧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총리 재임 시절에는 민박집으로 휴가를 가겠다고 해 보좌관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하나같이 “총리가 민박을? 장난하지 마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설날의 푸른 하늘을 보고 결심했다.” 한마디를 남기고 취임 1년 반 만에 표표히 총리직을 던지고 떠나버린 ‘선인(仙人)’의 풍모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그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의 이름이 익숙한 것은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서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많은 분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 다시 한 번 통절(痛切)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밝힙니다.”
일본의 현직 총리가 처음으로 공식 담화를 통해 내놓은 반성과 사죄였다. 후임 총리 중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렇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사과는 없었다.
일본사회당 소속이었던 그는 ‘여당=자민당, 제1야당=일본사회당’이 공식처럼 통용되던 ‘55년 체제’가 깨지고 자민당과 사회당 간의 연립정권이 성립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등 떠밀리듯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의석수에서 자민당에 밀리고 사회당 안에서도 비주류였으며, 흔한 각료 경험 한번 없었던 그는 ‘실세 총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자학(自虐)이라고 주장하며 과거사를 미화하고 덧칠하려는 ‘역사수정주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아시아의 일원이 되려면 철저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과 ‘꼭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던 일종의 ‘정치적 기적’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반성과 사죄 행보’에 대한 자민당 강경파와 다른 우파 정당 의원들의 비판과 반발은 거세고도 끈질겼다.
1994년 10월 중의원 본회의 대정부 질의도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당시 2년 차 초선인 33세의 한 여성 의원이 무라야마 총리를 향해 일문일답식으로 집요하게 질문을 퍼붓는다. “지금 총리가 50년 전 정권의 결정을 잘못이라고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까.” “잘못이라는 근거가 뭡니까.” “충분한 국민적인 협의도 없이 총리가 멋대로 일본을 대표해서 사과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여성 의원은 이후로도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공격을 자신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로 삼았다. 3선 의원이던 2002년에는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 정밀히 조사해서 수정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고, 자민당 정무조사회장(한국의 정책위의장에 해당)이던 2013년에는 “침략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 여성 의원이 바로 이달 초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우익 성향의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자민당 간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거의 성사 단계라고 한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별세 시점을 전후해 다카이치의 ‘총리 등극’이 급물살을 타는 것은 역사의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면 불길한 복선(伏線)인가.
다카이치는 2019년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당시 ‘자녀 세대와 손자 세대까지 사죄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아베 담화의 한 구절을 콕 집어 거론하며 “나는 계승한다”고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가 떠난 빈자리가 앞으로 점점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은 괜한 걱정일까.
무라야마 담화는 공자의 ‘장막여신(杖莫如信)’을 인용해 이렇게 끝맺는다. ‘기대고 의지할 지팡이로 삼기에 신의(信義)만 한 것은 없다.’ 퇴임 후에도 “담화의 정신을 잃지 말라”며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를 향해 죽비를 날리던 무라야마 전 총리는, 우리에게 ‘신의를 보여주고 실천한 일본의 지도자’로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천광암 논설주간, 동아일보(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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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의 눈’

일본 정치에는 ‘나막신의 눈(雪)’이란 말이 있다. 신발 바닥에 들러붙은 눈처럼, 밟히는 수모를 감수하며 권력에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자민당과 손잡고 26년 동안 여당 자리를 지켜온 공명당을 두고 일본 언론이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명당이 10일 정치자금 제도 개선 대책이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자민당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에선 “26년 만에 나막신의 눈이 녹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불교 종파인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한 공명당은 중도 보수 성향으로, 1999년부터 더 보수적인 자민당과 연정을 유지해 왔다. 지역구 후보를 거의 안 내고 비례 의석에 주력하는 대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지자들에게 “자민당 후보에게 투표해 달라”고 독려하면서 자민당과 공생했다. 선거구당 평균 2만 명의 조직표를 가진 공명당의 지지는 자민당 의석 확보에 큰 도움이 됐고, 자민당은 ‘알짜’인 국토교통성 장관을 항상 공명당에 내줬다. 또 중의원 지역구 10∼15곳에 후보를 안 내며 공명당 후보 당선을 이끌었다. 공명당이 중시하는 복지 교육 공약 일부도 정책에 반영해 줬다.
▷‘악어와 악어새’ 같던 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년 전 자민당에서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부터다. 모금 행사에서 걷힌 정치자금 일부를 뒷돈으로 챙겨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자민당 지지율은 급락했다. 창당할 때 ‘돈에 깨끗한 정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공명당 본부에도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그 이후로 자민-공명 연합은 주요 선거에서 3연패했다. 특히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공명당 의석수는 32석에서 24석으로 8석이나 줄어 당 지도부가 충격에 빠졌다. 윈윈이었던 두 당의 관계가 어느새 자민당이 공명당의 발목을 잡는 관계로 바뀐 것이다.
▷철옹성 같던 자민-공명 연합이 무너지면서 일본 정치권에선 정권 교체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공명당과 손잡고 다른 야당을 끌어들여 ‘비자민 연립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 간 이념 스펙트럼이 넓긴 하지만 1993년 8개 당파가 손잡고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이듬해 5개 당파가 연합해 하타 쓰토무 전 총리를 선출한 전례를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자민당은 조속히 새 연정 파트너를 찾아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연패를 거듭하면서도 정치자금 스캔들에서 못 헤어나오는 자민당 손을 잡을 야당이 있을지 의문이다. ‘첫 여성 총리’를 꿈꿨던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는 취임 6일 만에 기자회견에서 “총재직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 처지가 됐다. 26년 만에 나막신에서 녹아내린 눈이 일본 정치 지형을 흔드는 대형 눈사태를 유발할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장원재 논설위원, 동아일보(2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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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파벌끼리 밀실서 합의하면 끝… 설 곳 없는 민심
無파벌 스가를 총리로 만들어내는 日 파벌정치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질문자를 지정하고 있다. 그는 14일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민당의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의 지지를 확보해 당선이 확실시된다. 자민당 총재는 16일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받는다. 도쿄=AP 뉴시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달 2일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힌 지 닷새 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출마 의사를 밝히기 전부터 이미 차기 총재로 사실상 결정된 상태였다. 당내 각 파벌이 내년 9월까지인 아베 총리의 잔여 임기를 책임질 사람으로 관리형 정치인인 그가 적격이라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그 과정에서 1억2000만 국민의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아무리 의원내각제를 택한 국가라 해도 394명(중의원 283명, 참의원 111명)에 불과한 자민당 국회의원, 그중에서도 몇몇 파벌을 이끄는 극소수 정치인이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가능케 한 일본 특유의 파벌정치와 밀실정치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 자민당 탄생 이후 파벌정치 생겨나
일본 파벌정치의 역사는 자민당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자민당은 1955년 11월 온건 보수 성향의 민주당과 강경 보수 자유당이 ‘보수 대단결’을 기치로 탄생시킨 정당이다. 두 정당의 이름을 합쳐 새 정당은 자유민주당(약칭 자민당)이 됐다.
같은 해 총선에서 제2당으로 약진한 좌파 사회당에 밀려 제3당이 된 자유당은 존립 위기를 느꼈다. 민주당 역시 1당 자리는 유지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였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후 65년간 1993년 8월∼1994년 5월, 2009년 9월∼2012년 12월 등 두 차례를 제외하면 여당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장기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애초에 결이 다른 두 정당이 뭉쳤기에 당내에는 여러 파벌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대체로 민주당 계열 정치인은 작은 정부, 화합 외교를 중시하는 편이고 자유당 계열은 큰 정부, 강한 일본을 추구한다.

이에 따라 일본의 정권 교체는 집권당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민당 총재를 배출하는 파벌 사이에서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정 파벌이 배출한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선거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른 파벌의 수장을 새 총리로 앉히는 식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당내 정권 교체’란 적당한 타협점을 제시해 일당독재 비판을 비켜간 셈이다.
정계 이단아로 불렸던 자민당 비주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78)가 총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체계가 작동한 결과다. 그는 2001년 집권하자마자 전임자들이 손대지 못했던 우정 개혁 등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바뀐 총리가 기존 자민당과 다른 노선을 취하자 유권자들은 마치 정권 교체가 이뤄진 듯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무(無)파벌에 가까울 정도로 당내 기반이 약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가 21세기에 등장한 9명 총리의 평균 재임 기간(26개월)보다 훨씬 긴 5년을 꽉 채워 집권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 중선거구제와 세습정치
일본 파벌정치가 뿌리 깊은 이유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 넘게 유지됐던 중선거구제가 꼽힌다. 지역구별로 인구에 비례해 3∼5명의 의원을 동시에 뽑는 제도다.
중선거구제 아래에서 각 정당은 복수 후보를 내세웠다. 동일 선거구에 자민당 후보 3명이 나왔다고 가정할 때 모두가 똑같은 정책을 내세우면 3명 다 당선되기는 힘들다. 각 파벌은 수장 및 노선에 따라 각기 다른 정책을 내세우며 당내 경쟁을 벌였다. 겉으로 보면 우부터 좌까지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을 만들어내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순기능이 있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세습정치만 강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에는 ‘국회의원에게 3개의 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반(地盤·지역구), 가반(鞄·돈), 간반(看板·가문)을 일컫는 말로 세 요소의 일본어 발음이 모두 ‘반’으로 끝나는 데서 유래했다. 소선거구제라면 최다 득표를 한 후보 1명만이 당선된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최소 40%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복수 후보가 뽑히는 중선거구제에서는 15∼20% 득표만 해도 당선이 가능했다. 자금력, 인지도 등에서 일반 후보보다 훨씬 앞선 세습정치인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1996년 중의원 선거부터는 1개 선거구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습정치인에게 유리한 정치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2017년 중의원 선거 당선인 중 26%가 세습정치인이었다. 자민당으로 제한하면 이 수치는 40%로 오른다. 아베 총리를 포함해 아소 다로 부총리, 고노 다로 외상 등 현 내각의 주요 각료 모두 세습정치인이다.
또 일본은 대부분의 선거에서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직접 지지 후보의 이름을 써내는 ‘자필 기술’ 방식을 채택한다. 부정 선거를 막고 용지를 준비하기 쉬운 장점은 있으나 무효표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는 데다 익숙한 성을 지닌 세습정치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세습 의원들이 자식의 이름을 ‘이치로’ ‘다로’ ‘신지로’ 등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예로 2000년 5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가 뇌경색으로 사망하자 오부치 가문은 가족회의를 열었다. 1남 2녀 중 성격이 활달한 차녀 유코(優子·당시 26세)가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기로 했다. 유권자들은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20대 여성이 출마했음에도 ‘오부치’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그에게 표를 몰아줬다. 당도 ‘장래 유망주’를 찾기보다 ‘당선의 보증 수표’라는 쉬운 길을 택하는 편이다. 세습정치인들은 대부분 계파 수장을 맡은 경험이 있다. 이 수장 자리 역시 자연스레 대물림된다.
일반 국민의 거부감도 낮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은 도쿄대를 나온 엘리트가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조상의 라면 가게를 물려받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다. 정치 또한 요식업과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가업(家業)이라 여긴다”고 분석했다. 과거 한 여론조사에서는 ‘세습을 제한해야 한다’는 응답이 51%,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49%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 금권정치의 폐해
파벌정치는 금권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1970년대 두 차례 총리를 지낸 ‘금권정치의 대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는 ‘정치는 머릿수, 머릿수는 힘, 힘은 돈이다’란 말을 남겼다.
그는 돈을 건넬 때 상대가 뇌물로 인식하지 않도록 ‘당신이 이 정도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더 잘 안다. 성의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당내 반대파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계파의 의원이 돈을 부탁해도 요구한 돈보다 많은 금액을 선뜻 내줬다.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 대신 내가 곤란할 때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파벌정치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1980년대 자민당의 각 계파 수장들은 소속 의원에게 여름과 겨울에 각각 ‘얼음값’ ‘떡값’ 명목으로 최소 2차례씩 돈을 건넸다. 각 200만∼400만 엔(약 2200만∼4500만 원) 정도였다. 선거 때도 당과 별도로 최소 1000만 엔을 지원했다.
이러다 보니 각 계파 수장은 물론이고 현직 총리조차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나카 전 총리는 현직에 있던 1976년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로부터 당시로선 천문학적 금액인 5억 엔(약 55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1983년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같은 해 총선에 출마했고 니가타 지역구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1988년 리쿠르트그룹이 주식을 공개하기 전에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싼값으로 주식을 팔았다. 수뢰죄로 12명이 기소됐고 연루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역시 퇴진했다.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 또한 1992년 유통기업 사가와규빈으로부터 5억 엔을 받아 기소됐다.
21세기 들어 거액의 현금이 오가는 노골적 뇌물수수 사건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계에서는 아베 총리가 몰락한 시발점을 2017년 초 불거진 오사카 소재 모리토모(森友) 학교법인 비리로 본다.
극우단체 ‘일본회의’ 임원인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당시 이사장이 아베 총리 부부에게 로비를 벌여 헐값에 국유지를 학교 부지로 매입했고, 아베 정권이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아베 정권의 지지율 하락이 본격화했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도쿄 올림픽 연기 등까지 겹치자 버틸 수 없었다는 의미다.
아베 총리는 왜 일개 학교 이사장에게 이렇듯 쩔쩔매야 했을까. 바로 일본회의가 그가 정치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은 ‘평화헌법 개정’, 즉 전쟁 가능한 일본으로의 개헌을 뒷받침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연립여당 공명당은 물론이고 자민당 내 다른 파벌들도 개헌에 소극적이자 외곽 조직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그것이 본인의 몰락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 스가 옹립 과정에서 파벌정치 득세
아베 퇴진 후 스가 장관이 새 총재로 내정되는 과정에서도 파벌정치의 폐해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가 퇴진 의사를 밝히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위 안에 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총리로 사실상 내정된 후인 2, 3일 치러진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38%)로 올라섰다. 파벌정치가 대세론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스가 장관의 총리행은 당내 실력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평도 나온다. 의원 47명을 거느린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달 30일 가장 먼저 ‘스가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이달 1일까지 사흘간 당내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동참했다. 하지만 세계 3위 경제대국을 이끌 새 지도자를 파벌 간 이합집산으로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각 파벌이 새 내각 구성을 두고 벌써부터 논공행상식 자리싸움을 시작했다는 관측도 있다. 정치 평론가 스즈키 데쓰오(鈴木哲夫) 씨는 마이니치신문에 “파벌정치가 과거보다 왜곡된 형태로 부활했다.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어둠의 쇼군’으로 불렸던 다나카 전 총리처럼 상왕 노릇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록히드 비리로 물러난 후에도 계파 의원을 잇달아 총리로 만들며 막후에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 다나카 전 총리처럼 아베 총리가 자신의 심복이었던 스가 장관을 통해 각종 정책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의미다. 양 교수는 “자민당의 장기 집권,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이 동시에 겹치면서 일본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동아일보(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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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스가
2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재임한 지난 7년 8개월간, 매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을 주재하던 그에게서는 볼 수 없던 표정이다. 늘 피로에 찌들고 뭔가 포기한 듯한 굳은 얼굴이었고, 뻔한 답변을 영혼 없이 되풀이하는 듯 보이곤 했다. 그도 최장수 아베 총리와 함께하면서 최장수 관방장관 기록을 세웠다.

▷관방(官房)장관은 흔히 ‘총리의 마누라’라 불린다. 총리를 도와 주요 정책의 기획·조정, 정보 수집 등을 총괄한다. 정부 대변인과 총리비서실장도 겸하지만 무대 뒤 스태프 역할이다. 실제 그는 매일 TV에 등장했지만 개성도 존재감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1일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면서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었고 ‘정치인 스가’로 조명받는 기회가 늘었다.
▷일본 정가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 아키타의 농가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뒤 상경해 고학으로 호세이대 야간 법학부를 졸업했다. 요코하마 시의원 등을 거쳐 48세 때인 1996년에야 초선 배지를 달았다. 지역 기반의 세습 정치인들이 선대로부터 ‘지반(지연) 간반(간판) 가반(가방·자금)’의 ‘3반’을 물려받아 20대부터 정치에 입문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늦깎이인 셈이다.
▷아베 총리와 정치 노선을 같이했지만 아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등 ‘뼛속까지 우파’는 아니라는 평도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들어 “리더가 좋은 사람이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설파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이룬 배경에는 언제나 뒤에서 지켜준 이복동생 히데나가가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베 정권의 독주가 가능했던 데는 관료집단을 장악한 스가의 공이 크다. 그는 2014년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내각인사국을 설치해 고위관료 인사권을 손에 쥐었다. 이후 관가에서 스가는 ‘저승사자’로 통했다. 관료들은 스가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윗분의 의중을 알아서 챙기는 ‘손타쿠’를 했고, 이는 정권 후반에 터져 나온 각종 스캔들의 화근이 되기도 했다.
▷그는 14일 선출되면 아베의 남은 임기인 2021년 9월까지만 총리직을 맡게 된다. 자민당으로서는 지난 8년여간 아베와 일심동체였던 그가 ‘위기관리 내각’ 적임자일 것이다. 혹자는 파벌도 배경도 없는 그가 전국시대에 군주를 보호하기 위해 내세워진 가게무샤(影武者·그림자 무사)로 끝날 수 있다고 본다. 아베 상왕(上王)설, ‘아베스(아베+스가) 정권’ 등이 다 같은 맥락이다. 과연 그는 ‘스가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서영아 논설위원, 동아일보(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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