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역대 어느 정권도 이런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보다 감시당하는 게 더 두렵다]

뚝섬 2020. 9. 18. 06:22

 

역대 어느 정권도 이런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런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방역을 앞세워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있다
정부가 하겠다고 하면 찍소리 못하고 국민은 끌려가는 중

 

염색물이 빠져 흰 머리숱이 늘어나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보면 안쓰러움이 없지 않다. 그녀는 날마다 ‘신규확진자 몇 명, 이 중 몇 명은 감염 경로 파악 안 된다’고 8개월째 똑같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지 본인도 모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코로나 발생 현황 브리핑이 그녀의 모든 직무처럼 됐다는 점이다. 방역 책임자라면 그 시간에 정말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처음으로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일일 발생 현황을 읽어봤다. 예상 밖에도 첫째 항목으로 ‘서울 도심 집회 관련’이 나왔다. 방송 등이 여기에 근거해 ‘광화문 집회발(發) 확진자’를 한 달 넘게 보도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제 자 현황은 ‘4명 추가 확진돼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 총 585명’이었다. 집회 관련(216명), 추가 전파(321명), 경찰(8명), 조사 중(40명)으로 세분해 놓았다. 감염 경로를 조사 중인 40명까지 ‘집회 관련’으로 포함한 발상이 흥미로웠다.

 

그날 광화문 집회에는 5만 여명이 참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격앙한 뒤로 휴대폰 위치 추적에 들어갔다. 상당수 참석자들이 진단 검사 종용 문자를 받았다. 개인 정보나 사생활 보호를 따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거동이 불편해 집안에서 지내는 한 80대 노인은 집회 단체 계좌에 후원금 몇 만원을 넣었을 뿐인데 어떻게 알고 이런 문자가 왔다고 한다.

그전까지 진단 검사는 증상을 신고해온 사람이나 밀접 접촉자들에게 이뤄졌다. 물론 진단 검사를 받으라는 것은 개인에게 전혀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응하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말에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내 주위에 문자 받은 사람들치고 검사를 안 받은 이는 없었다. 이 엄청난 숫자의 검사에서 ‘집회 관련 확진 216명이 나왔다.

 

하지만 감염자들은 그날 앞뒤로 여러 곳에서 숱한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떠들었을 수 있다. 광화문 광장보다 더 밀폐된 지하철과 버스·택시도 탔을 것이다. 그날 광화문에 나갔다고 거기서 꼭 감염됐다는 증거는 없다. 그 많은 집회 인파 중 왜 216명만 감염됐을까. 광화문에서 감염됐다면 감염시킨 이들은 또 어디서 감염됐을까.

 

그럼에도 정은경의 질병관리청은 한 달 넘게 ‘광화문발 확진자’를 발표하고, 매스컴은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현 정권에 야당과 일부 교회, 보수 진영을 마음 놓고 공격해도 좋은 근거가 됐다. 10명 이상 집회 금지의 정당성이나 개천절 집회는 불법이라는 논리가 가능해졌다. 현 정권이 끝날 때까지 정권 비판 집회 같은 생각은 아예 못 하도록 만들었다. 문 대통령의 칭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정말 해야 할 일은 다른 데 있다. 가령 코로나 발생 현황에는 ‘지하철발(發) 확진자’는 하나도 없다. 광화문 집회처럼 무차별 검사를 안 해서인지 실제 안 나온 것인지 누구도 답변 못 한다. 만약 후자라면 코로나 전파에 가장 취약하다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왜 발생이 없는지 이런 걸 조사하는 게 방역 당국의 역할이다. 모든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해서인지 지하철 소독을 잘 해서인지를 조사해봐야 한다. 무차별 이동 감염 우려가 높은 전국의 버스나 택시에서도 한두 건밖에 보고가 안 됐다. 코로나 청정 비결을 알면 실질적으로 방역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발생 8개월이나 지났으나 어느 정도 밀폐된 공간이면 코로나에 취약한지조차 모르고 있다. 실제 무엇이 고위험 시설인지도 조사가 안 돼있다. 학교ㆍ학원ㆍ 독서실ㆍ 카페ㆍ 음식점ㆍ PC방ㆍ 노래방ㆍ사우나 등 어느 곳이 가장 취약한지 체계적인 샘플 조사를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자녀가 공부해야 할 학교는 문 닫게 해놓고 어른들의 술집은 허용하는 식이다. 현재 우리 국민의 감염 혹은 면역이 어느 수준인지 대규모 항체 검사를 실시한 적도 없다.

 

코로나 피해액만 수십조원대로 쌓이고 있는데, 추적ㆍ격리ㆍ폐쇄의 방역 대응이 지금 상황에서도 유효한지를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만 쫓아가고 있다. ‘수도권 2.5 단계’로 올릴 때나 다시 2단계로 내릴 때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었다. 자영업자에게는 살고 죽느냐 문제인데, 주먹구구로 어떤 업종은 묶고 어떤 업종은 풀어준다. 불만과 원성이 너무 높으면 풀어주고, 또 확진자가 늘었다고 하면 묶는다. 문 대통령이 2.5 단계를 풀어주면서 “확산세가 서서히 진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다고 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방역 문제와 함께 고려해야 할 개인의 자유ㆍ기본권ㆍ경제ㆍ교육ㆍ 문화, 그리고 삶의 가치 등 숱한 영역이 있다. 지금은 방역을 앞세워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있다.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고 하면 국민은 찍소리 못하고 끌려가는 중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렇게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20-09-1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코로나보다 감시당하는 게 더 두렵다

 

가는 곳마다 방명록·QR코드… 너무 쉽게 헌법권리 내준 듯
“코로나로 새로운 독재 출현” 권력의 ‘코로나 통치’ 감시해야

 

인감증명서를 떼러 주민센터에 갔더니 입구에 처음 보는 장비가 있었다. QR 코드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머뭇거리니 직원이 익숙한 말투로 안내했다. 스마트폰에서 무슨 앱을 열어 뭘 누르라고 하더니 ‘모두 동의합니다’에 체크하라고 했다. 무엇에 동의했는지도 모른 채 즉석 QR 코드가 만들어졌다.

 

무엇에 동의했나 궁금해 다시 그 앱을 열어봤다. 이름과 전화번호, QR 코드, QR 코드 생성 일시 등등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서울시에 제공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센터 문턱을 넘기 위해 꼼짝없이 개인 정보 일체를 털린 것에 비해 인감증명 떼려고 내미는 주민등록증은 무척 허술해 보였다.

 

늘 가던 동네 빵집에 식빵을 사러 갔더니 방명록을 작성하라고 했다. 식당 입구엔 QR 코드를 만들어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어떤 식당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신 분은 저희 집에서 식사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써붙였다.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그 비논리가 우습지만은 않았다. 지하철 역에 들어서면 “마스크는 우리 모두의…” 어쩌고 하는 안내 방송이 반복된다. 개찰구에 카드를 대면 “마스크를 착용하십시오”라고 기계가 명령한다. 인류 종말을 그린 SF 영화 같다. 역을 빠져나갈 때 기계는 아무 말이 없다.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무언의 석방(釋放)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우리가 너무 쉽게 헌법적 권리를 정부에 넘겨줘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나 혼자 조심한다고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종이 생겨나는 바이러스는 어차피 종식(終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방역뿐 아니라 바이러스와 지속 가능하게 공생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경기도는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안 쓰면 300만원까지 벌금을 매긴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정책인가, 아니면 ‘코로나 전사’ 시늉을 내는 정치인의 수인가.

 

코로나 초기엔 같은 구(區)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지나치리 만큼 걱정스럽기도 했다. 공익을 위해 확진자 인적 사항과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왔고 이제 대통령의 입에서 “종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런 말은 최후에 했어야 했다. 권력이 코로나를 통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두렵고 불안한 것은 나만의 걱정인가.

 

국가 권력이 코로나를 이용해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개인을 희생시킬 것이란 경고는 진작 학계에서 나왔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이후에도 생체학 신호를 포착하고 추적하는 감시 기록 체계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며 “현재 우리는 프라이버시라는 영역을 모두 없애는 막강한 감시 체제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가 명령 통제 체제에 시민들이 순치되면서 코로나가 끝난 뒤 새로운 독재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은 현 상황에 굉장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코로나에 걸리는 것도 싫고 확진자가 되어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도 피하고 싶지만, 누구와 언제 어디서 만나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감시당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싫다. 특히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이 정부를 믿기가 어려워 더 끔찍하다. K방역’이라는 자화자찬은 ‘한국인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들’이란 권력의 자랑으로 들린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녕 소수인가.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