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도 못 봤다는 서울 광화문 재인산성과 철책 미로]
[‘재인 산성’, 그 진기한 풍경을 또 보고 싶다]
[어느새 우리는 단풍놀이까지 지시받고 있다]
평양서도 못 봤다는 서울 광화문 재인산성과 철책 미로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경찰이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설치한 바리케이드 사이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고운호 기자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인 9일도 서울 광화문 광장이 다시 봉쇄됐다. 경찰 버스가 동원돼 ‘재인산성’이라 불리는 차벽이 다시 쳐졌고, 인도에 철제 펜스로 만들어진 미로식 통행로가 등장했다. 경찰관들이 버티고 선 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수차례 신분증을 요구했다. 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에도 못 보던 장면이다. 한 외신 기자는 “평양의 군사 퍼레이드도 두 번 가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또 다른 외신 기자는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 미쳤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광화문 광장 인근 지상 주차장에선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50여 명이 모여 모 방송사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경찰은 “우리는 집회를 차단할 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시위대만 코로나에 위험하고 다른 일로 모이면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경찰은 길을 건너면 5분밖에 안되는 거리를 막아 놓고선 시민들에게 밀폐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도록 했다. 코로나 방역이 진짜 목적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광화문을 철저히 봉쇄한 그 시각 전국 놀이공원과 산, 쇼핑몰은 연휴를 즐기러 온 시민들로 어김없이 붐볐다. 놀이공원에는 입장을 하거나 기구를 타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지만 거리 두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가을 산행에 나선 시민들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광화문에만 존재하고 반정부 시위대만 골라서 감염·전파되기라도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선택적 대응을 할 수 있나.
정부는 코로나 재확산 책임을 모두 광복절 집회 탓으로 돌렸지만 둘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군사독재 뺨치는 방식으로 집회를 잇달아 봉쇄했다. 정권 비판 시위를 ‘반사회적 범죄'로 몰기까지 했다. 과거 정부 경찰 차벽에 대해선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반헌법”이라던 대통령은 ‘재인산성’에 대해선 “경찰이 최선을 다했다”며 칭찬했다. 방역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부 비판을 잘 막았다고 칭찬한 것 아닌가. 같은 사람이 모이는 일이지만 시위만 코로나에 위험하다는 듯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코로나 계엄’ ‘정치 방역’이란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조선일보(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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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산성’, 그 진기한 풍경을 또 보고 싶다
정말 코로나 방역을 걱정한다면 문 대통령 눈에는 왜 광화문 집회만 보이는가
그쪽에만 바이러스가...
오늘은 한글날, 광화문이 차벽(車壁)과 경찰 병력으로 포위되는 진기한 풍경을 또 보고 싶다.
엿새 전 개천절에 한 번 본 거로는 성에 안 찬다. 그러려면 경찰은 오늘 새벽부터 나와 ‘재인산성’을 부지런히 쌓고 쌓아야 할 것이다. 지난번처럼 총길이 4km의 차벽을 재현하려면 경찰 버스 500여 대는 동원해야 한다. 능숙한 주차 솜씨로 버스 간격을 물샐틈없이 좁혀야 한다.
아예 집에서 광화문으로 나올 엄두가 안 나게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도 지하철 중 광화문역과 시청역, 경복궁역은 서지 않고 그냥 통과시킬 게 틀림없다. 지상으로 들어오는 길목과 이면 도로에는 검문소와 바리케이드가 설치될 것이다. 계엄령을 내린 것처럼 보여야 겁을 먹는다. 복학생 시절인 1980년대에 겪었던 불심검문이 곳곳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흔들거나 소지한 이들은 ‘불순분자’로 찍힐 것이다. 그날 한 금융 그룹 고문은 자신의 광화문 사무실에 들어가기까지 모욕적 검문을 다섯 차례 받았다고 한다. 그는 통화에서 나훈아처럼 “세상이 왜 이래?”라고 말했다.
한글날이지만 광화문 세종 동상 앞의 기자회견은 금지될 것이다. 마스크 쓴 1인 시위도 봉쇄된다. 어느 법령에 근거해 막느냐고 물으면, 경찰은 “한두 명이 모이면 대규모 시위가 된다”고 공식 답변할 것이다. 끝내 광화문을 못 밟아본 한 시민이 ‘광화문이 니꺼(네 거)냐’는 팻말을 들고 있던 장면을 이번에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원에서는 ’10대 미만 차량 집회'는 봐줬지만, 정부 당국은 국민 건강과 생명, 안전을 위해 그것도 안 된다고 또 막을 것이다. 광화문 주변으로 차를 몰고 나오면 체포하거나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동차 창문을 여는 것도 금지된다. 창문을 열어 탑승자가 ‘문 정권 타도’를 외칠 때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깥으로 튀어나올까 봐 국민 건강을 염려해 그러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저께 국감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지침을 들어야 했다. 한 야당 의원이 ‘차 타고 앞뒤로 감염 위험이 있느냐?’고 묻자, 정은경은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위험이 크지 않다’고 짧게 답했다. 현 정권에서 속이 빤히 보이는 잔수를 써대니, 국감장에서까지 이런 유치원 수준의 방역 문답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코로나 방역을 위태롭게 한다. 광복절 집회가 ‘코로나 재유행’의 주범처럼 됐듯이, 집회 한 번으로 자칫 모든 방역 실패 책임을 덮어쓴다. 광화문에 굳이 나오겠다는 사람들도 모를 리 없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 주위에서 늘 만나는 속상한 국민일 뿐이다. 문 대통령과 현 정권이 이들을 코로나 상황에도 광화문으로 몰려나오게 하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 문제나 서해상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 문 대통령은 어떤 모습을 보여줬나. 부글부글 끓는 국민의 마음을 과연 어루만져 준 적이 있었나. 제대로 사과 한번 한 적 있었나.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모여 문재인 퇴진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겠다. 시민들 앞에 서서 끝장 토론이라도 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돌아보면 이런 코미디도 없다.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오래전에 접었지만, 적어도 본인만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말로는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토론이라도 하겠다는 그가 이제는 권력에 취해 ‘광화문 집회는 반(反)사회적 범죄’라고 집요하게 공격한다.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법치와 정당성을 잃은 공권력은 조폭 세계의 주먹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지 않는가. 문 대통령 세대도 젊은 날 그걸 경험한 적 있지 않은가.
방역을 위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면 충분한 설득과 협조를 우선 구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은 방역을 무기로 국민을 갈라치고 협박하고 있다. 정말 방역을 걱정한다면 대통령 눈에는 왜 광화문 집회만 보이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광화문에서만 돌아다니는가.
개천절 광화문과 서울시청 광장은 원천 봉쇄됐지만, 근처 롯데백화점 식품부는 인파로 붐볐다. 내가 직접 가본 홍대 앞 거리도 청춘 남녀로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다. 주말 도봉산 입구는 도떼기시장처럼 등산객이 넘쳐난다. 문 대통령의 논리라면 홍대 거리 젊은이들과 도봉산 등산객들도 ‘반사회적 범죄’의 가담자다. 왜 그쪽에는 건강, 생명 안전을 위해 경찰 버스 차벽이나 철제 펜스를 설치해주지 않나.
문 대통령은 오늘을 무사히 보낸 뒤 “철저히 대비해 빈틈없이 차단했다”고 자평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재인산성’에서 문 정권의 본색(本色)을 시각적으로 보게 됐다. 비록 광화문에서 ‘문재인 타도’를 외치진 못해도 실제로는 훨씬 더 큰 효과를 거뒀을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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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는 단풍놀이까지 지시받고 있다
코로나가 국민의 개인적 삶을 억압할 권한 주는 건 아니다
광풍이 지나면 수십년 쌓아올린 민주주의 탑에 구멍이 나 있을 것
정부가 요즘 ‘불가피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코로나 방역을 내걸고 국민의 기본권과 사생활을 건드리고 있다는 건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 1만명과 버스 수백대, 철제 울타리 1만개로 광화문 주변을 완전히 막고 나서, “전염병 감염 확산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진영 행안부 장관도 차벽 설치 등의 조치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사생활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한되어야 한다. 사생활은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라고 했다. 강 장관은 한 연설에선 “고집스러운 비협력에 대해선 집행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코로나 통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정부는 국민 생활을 세세하게 살피고 챙겨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가 정부에게 국민들의 개인적인 삶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억압할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방역 성과에 과도하게 몰입한 정부는 묘하게 엇나가고 있다. 감염병 예방과 감염 전파 차단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인적 사항, 위치 정보, 신용카드 이용 정보 등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것은 물론 활용·공유하고,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민을 겁박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개천절 집회를 겨냥,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했고, 경찰은 차량 시위를 막기 위해 운전면허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았다.
국민을 어린애 다루듯 온갖 지침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엔 환경부가 ‘코로나 단풍 지침’까지 내놨다. 단풍철 단체 탐방을 자제하고 집에서 모니터로 단풍을 감상하라고 권하면서, 국립공원 탐방 밀집 지역엔 금지선을 설치한다고 했다. 비상 상황이지만 존엄을 지키고 위험 부담은 스스로 판단하면서 살고 싶은 국민 마음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다.
위기가 닥쳤을 때처럼 정부가 일하기 쉬울 때도 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런 경우였다. 그는 플로리다주 재개표 논란 끝에 가까스로 대통령이 돼 지지 기반이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9·11 테러 위기를 딛고 지지율 90%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시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미국 심장부가 테러로 초토화된 상태에서 국민들이 좌우 따지지 않고 결집해 힘을 모아준 결과였다.
진짜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국은 그 논란 많았던 애국법을 통과시켰다. 테러 위협이 의심될 때 도청도 가능케 하는, 평시엔 결코 용납되지 않았을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일부 유보시키는 법을 만들었다. 위기는 민주주의를 해치는 조치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지지율 90퍼센트 대통령 앞에 반대 목소리는 쪼그라들었고, 9·11 테러의 충격이 너무 커서 국민들도 그런 조치의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훗날 실패한 전쟁으로 막을 내린 이라크 공격 역시 테러로 인한 위기감과 부시의 자신감 위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코로나 위기는 나라마다 가장 약한 고리를 더 약하게 만든다. 지금 미국의 약한 고리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코로나 감염 후 입원 치료 사흘 만에 뛰어나와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정확한 정보와 과학적 판단이 서야 할 자리를 흔들고 있다. 우리의 약한 고리는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한 합의 도출 기능을 상실한 거대 여당과 정부이다. 코로나를 이유로 합법과 불가피를 남발하며 기본권을 침해하면서도 자제하지 못한다. 이대로 두면 코로나 광풍이 지나가고 난 후엔 수십년을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탑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을 것 같다.
-강인선 부국장, 조선일보(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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