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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소환한 화두]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뚝섬 2020. 10. 29. 06:24

 

이건희 회장이 소환한 화두

 

2000년대 초반 독일 하노버 출장길에 유럽 최대 전자양판점 ‘메디아마흐트(MediaMarkt)’ 쇼윈도에 놓인 삼성전자 LCD(액정 화면) TV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한국 기업 전자제품이 유럽에서 ‘눈에 확 띄는’ 장소에 놓여 있는 걸 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우리 제품이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면서 의기양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기억의 백미는 그다음이다. 앞뒤로 놓인 소니와 삼성 TV를 요모조모 비교해 보고 있자니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삼성 TV 첨 보셨죠. 요즘 완전 뜨고 있는 ‘일본 브랜드(eine japanische Marke)’예요. 전자제품은 역시 일본이 최고죠.”

 

삼성은 꽤 오랫동안 유럽에서 일본 브랜드로 오인받았다. 제품 뒤편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도 그들 눈에는 당연하다는 듯 ‘메이드 인 재팬’으로 인식됐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도 상당수 유럽인이 한국을 베트남 옆의 개발도상국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내 유명 백화점 맨 앞줄에 놓인 삼성 TV를 어찌 한국 제품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삼성의 품질제일주의, 세계 1류를 지향한 집념이 상당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이후 삼성의 진격 앞에 미국과 일본, 유럽 유수 전자 회사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한 국가 이미지는 결국 대표 기업이나 유명인들 이미지가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문화 강국으로서 위상을 구축해가는 과정은 삼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등정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렵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은 한국 사회가 과거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통해 더 높은 가치를 달성하면 한국 사회도 이와 함께 변화해가리라 믿었던 것이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란 발언은 사실 그런 열망을 담고 있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세계 1류’로 만들려 애쓰고, 다른 한국 기업들도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면서 전반적인 한국 기업 경쟁력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기업만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가 이건희라는 인물이 추구한 ‘1류를 향한 끝없는 집착'에 답하며 조금씩 전진했는지 모른다. 이 회장은 28일 자신이 애착을 가졌던 경기도 화성⋅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뒤 선영에 묻혔다.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에 1류가 된 한국 사회를 보지 못했다. 이 회장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 감탄하건 질시하건, 궁극적으론 그의 유산을 넘어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도전하는 한국 사회의 동력이 멈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철환 기자, 조선일보(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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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2009년 10월 파리의 ‘뉘 블랑슈(nuit blanche)’ 축제일 밤을 잊을 수 없다. 시민들이 문화예술 공연을 보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백야(白夜)의 제전인데, 그해 축제의 주인공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노트르담 성당 뒤편에서 삼성 LED 제품으로 꾸민 초대형 라이트 쇼를 마련해 감탄을 자아냈다. 파리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삼성이 나눠준 빨간색 하트 모양의 LED 배지를 가슴에 단 채 축제를 즐겼다. 당시 파리특파원이던 기자도 한국인인 것이 마냥 자랑스러웠던 밤이었다.

 

▶10여년 전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 부근의 삼성전자 유럽물류센터에 가본 적이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물류 창고에 삼성 TV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안내인은 “1주일이면 다 팔려나간다”고 해서 기자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이렇게 풀린 삼성 TV가 유로 디즈니랜드 호텔 객실이며 파리의 퐁피두 센터, 초호화 유람선 객실 등에 깔려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

 

▶몇 년 전 외교부가 세계 17국 남녀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한국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다. 1위가 ‘테크놀로지’, 2위가 ‘삼성’이었다. 삼성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테크놀로지 강국 이미지 구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계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기술 강국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삼성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이 애견 단체 회원들의 반대 시위로 무산될 뻔했다. 한국은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것이다. 당시 한 신문은 노 대통령이 국빈 만찬에서 여왕 애견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만평을 싣기도 했다. 삼성이 나섰다. 이건희 회장의 애견 활동을 소개하고, 영국 애견협회가 주관하는 세계 최고 명견 선발 대회 후원을 약속하며 반대 여론을 누그러트렸다. 삼성은 지금도 그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21만명을 고용해 세계 74곳에서 연구센터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 만큼 대한민국 브랜드도 올라갔다. 이제는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 SK, LG 등 많은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일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세계 유명 백화점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우리 기업 제품들이 이제는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 익숙한 풍경이 됐다. 과거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모르는 외국인이 적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주눅이 들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천지개벽이다. 이 변화를 이끈 사람들 중에서도 빛나는 한 분이 영면했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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