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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核과 북핵은 장르가 다르다] [왕이가 김정은 팔을 툭툭 치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

뚝섬 2020. 12. 2. 06:11

[이란核과 북핵은 장르가 다르다]

[왕이가 김정은 팔을 툭툭 치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진보도 보수도 아닌 트럼피즘에 휘둘리는 미국 정치]

 

 

 

이란核과 북핵은 장르가 다르다

 

11월 24일(현지시각)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블링컨이 주축이 될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북핵 문제에 대한 리뷰 과정에 들어갔다. /AP 연합뉴스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 때 케리 미 국무장관은 빈 현장에서 18일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지휘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외교관인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 밖 한 도시에 그렇게 장시간 머문 것은 현대 외교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 합의에 공을 들였고, 이를 최고의 외교 업적으로 내세운다. 당시 케리와 함께 이 합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바이든 부통령,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 설리번 부통령 안보보좌관이 내년부터 대통령,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미 대외 정책을 이끈다. 케리도 외교 전반에 대해 조언할 것이라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가 깨버린 이란 핵 합의를 원상 복구시키려 할 것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모범 사례’를 북핵 문제에도 적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자연스럽다. 실제 블링컨은 “북한과의 핵 합의에 최고 모델은 이란”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이 합의의 핵심은 ‘다자적 접근’을 통한 ‘단계적 주고받기’다. 미국은 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과 함께 만든 합의서에 향후 10년에 걸쳐 이란과 서방 국가들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촘촘하게 명시했다. 타결·적용·이행·전환일 등으로 구분된 단계마다 무엇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고, 이를 어떻게 확인하며,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어떤 제재가 가해지는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란 핵과 북핵은 ‘불량 국가의 비밀 핵 개발’이라는 겉표지만 넘기면 완전히 다른 장르다. 일단 핵 개발 단계가 다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시설 등을 갖추고 있지만 핵무기 개발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면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 단계에 근접해있다. 완성된 핵무기를 협상으로 포기시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이란 핵 시설은 모두 미국 정보망 안에 있지만 북의 농축 시설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전체 시설을 파악하지 못하면 ‘단계적 주고받기’ 그림도 그릴 수 없다. 김정은이 다 노출돼 있는 ‘영변’으로 ‘핵 포기’ 사기를 치려 한 것도 숨겨진 시설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도 차마 받지 못한 카드에 바이든 팀이 눈길을 줄 리가 없다.

 

북의 뒷배를 봐주며 대북 공조를 무력화시키는 중국의 존재도 무시 못할 차이다. 이란 합의에도 중국이 참여했다지만, 북한과 이란이 중국에 갖는 전략적 의미는 근본부터 다르다. 또 5년 전과 달리 지금 미·중은 신(新)냉전 상태다. 이란과 달리 북은 단 한 명이 모든 결정을 하는 절대 왕정 체제이기도 하다. 이 모든 차이를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체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북핵에 이란 모델 적용’은 원칙적·상징적 수사(修辭) 이상은 아닐 것이다.

 

북핵은 이란보다 몇 배 어렵고 불확실한 난제다. 많은 사람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을 방치했다”고 비판하지만, 북핵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협상에 질렸다고 보는 게 맞는다. 바이든 시대에도 화끈한 돌파구가 열리기보다 지루한 리뷰 과정과 탐색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란식(式) 해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북핵 모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만 이란 모델에서 계승할 확실한 하나는 ‘강력한 제재’다. 바이든 외교팀은 ‘이란 핵 합의는 이란의 결단에서 시작됐고, 그런 결단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제재 노력에서 비롯됐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북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블링컨은 부장관 시절 격주마다 회의를 주재하며 세계 각국의 대북 제재 이행 상황을 직접 챙겼던 인물이다. 국내 일각의 ‘트럼프식 깜짝쇼’에 대한 미련도 그만 접을 때가 됐다.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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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가 김정은 팔을 툭툭 치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달 25~27일 서울을 다녀갔다. 그가 체류하는 동안 보여준 거만함과 외교적 결례도 문제지만, 중국 정부 내 서열이 20위권에 불과한 외교부장의 방한에 우리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한 건 조선 시대 명나라에서 칙사라도 온 것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접견실에서 민망한 자세로 왕이 외교부장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는 문 정부가 자초한 외교적 고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부 인사들은 그간 미국에 대해 할 말과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쏟아내 왔고, 일본에 대해서는 마치 대일 항쟁기라도 되는 양 ‘죽창가’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반일을 선동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현 정부와 관계가 덜 껄끄러운 주요국은 중국뿐이다. 그래서 더욱 중국 호감을 사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현 집권 세력의 삐뚤어진 역사관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6·25 전쟁의 성격에 대해 소위 ‘항미원조’의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최근 시진핑 발언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은 미국의 침략 전쟁이고 한국이 이에 가담하였다는 말인가. 말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부르짖지만 기본적으로 주한 미군을 한민족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로 보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다음으로 정책적 고려 요인이다. 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데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또는 건설적 역할이 긴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우리만의 목표가 아니며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3회 중국 방문과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중국이 얼마나 초조하고 조바심을 갖고 있나 보여줬다. 중국은 혹시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깜짝 딜을 통해 중국이 아니라 미국 쪽으로 기울지는 않을까 우려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친중 태도는 현 집권 세력이 내걸고 있는 민족주의와 자주의 관점에서 모순됐다. 민족주의와 자주를 구현한다면 모든 외세에 대해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 주장을 이야기하지 않고 할 말을 못 하는가. 현 정부가 고대하고 있는 시진핑의 방한은 2017년 문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이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정상 간 답방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현 정부는 국민에게 대단한 외교 성과인 양 설명하는가.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에 오면 한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대통령을 예방하는 정도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왕이 부장을 만나기 위해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였고, 특히 자가 격리 중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친전과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중용의 ‘유천하지성위능화(唯天下至誠爲能化·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해야 변화를 만든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코로나 와중에 방한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이낙연 대표는 대권 후보 중 한 사람이다, 벌써 중국의 ‘책봉’을 염려하는 것일까.

 

중국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은 우리 국민 자존심도 생각했어야 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하면서 문 대통령처럼 민망한 자세로 안내한 적이 있을까. 감히 지도자 동지 팔을 툭툭 치도록 놓아두었을까. 미국러시아일본 정부는 중국을 대하는 한국 행태를 보고 앞으로는 ‘중국처럼 한국을 거칠게 다루어야 저런 대접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한국 외교가 길을 잃고 헤매는 가운데 허황한 기대에 빠져 중국에 자발적인 과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얻는 것도 없음은 물론, 중국에 휘둘리기까지 하는 상황을 보면서 조선조 말에 이 땅에 감국대신으로 와서 조선 국정을 휘둘렀던 위안스카이가 지하에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조선일보(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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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아닌 트럼피즘에 휘둘리는 미국 정치

 

미국 대선에서 낙선자가 선거 결과 승복을 거부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거기에 수천만 유권자들이 그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하며 ‘4년 후’를 외치는 것도 당연히 초유의 일이다.

 

왜 이럴까? 한마디로, 이번 선거는 그 근본 패러다임이 과거 어느 대선과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미국 대선의 패러다임은 항상 보수·진보라는 전통적인 두 이념 간 대결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달랐다. 한마디로, 이번에는 ‘진보’와 경쟁한 것이 ‘보수’가 아니라 ’'트럼피즘'이라는 새로운 이념이었다. 즉,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진보’ 대 ‘트럼피즘’의 대결이 된 것이다. 투표 결과가 이를 보여 주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 연표

 

강자 공화당·약자 민주당 구도 깨져

 

고래로, 미국 사회의 강자들은 보수 정당(공화당)을 지지했고, 약자들은 대체로 진보 정당(민주당)을 지지해왔다. 그런데 이번은 이 공식이 깨졌다. 브루킹스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지역이 ‘보수’ 트럼프 후보가 아니라 ‘진보’ 바이든 후보를 선택했다. 즉, 부자 지역에서 진보 바이든이 훨씬 더 많이 이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여기서 잃은 것을 어디서 만회했을까? 매킨지컨설팅사 분석에 의하면 트럼프는 그것을 전통적인 진보 지역에서 만회했다. 2007년 이후, 미국 수많은 도시 중 불과 25곳에서 미국 일자리 전체의 3분의 2가 창출됐는데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찍은 표의 대부분이 이 25곳 이외 도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농촌 등 낙후된 지역에 사는 약자들이 트럼프, 즉 보수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대이변이었다. 왜 약자들이 자기를 지켜주는 ‘진보당’을 버리고 보수당 후보를 택했을까? 한마디로 그들이 트럼프를 전통적인 ‘보수’ 후보로 보지 않고 소위 ‘트럼피즘’이라는 새로운 이념의 구현자로 봤기 때문이었다.

 

트럼피즘은 ‘미국 우선주의'

 

트럼피즘’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미국 우선주의’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근 70년간 해온 세계의 ‘어른 노릇’ 이제 그만하고 미국 국민 실속 차려주는 데 주력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주의’는 너무 ‘비싸게’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미군 주둔 비용, 중동 평화 유지 비용, 각종 세계 기구 분담금 등 이 돈을 이제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4년 전 트럼프는, 바로 이 점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 외침은 미국의 소시민, 특히 서민들에게 어마어마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트럼피즘’이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과감하게 자신이 외쳤던 바를 실행에 옮겨 나갔다. WTO(세계무역기구), 파리 기후 협약, 세계 항공 협정, 이란 핵 협상 등에서 다 과감하게 탈퇴하고 동맹국들에게는 더 많은 방위비 분담 등을 요구하며 좌충우돌했다. 트럼프가 이렇게 세계를 대상으로 안면 몰수까지 하면서 과감히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대해 미국 서민들은 환호했다. 이 환호에 기름을 부은 건 바로 성공적인 경제 정책이었다. 과감한 감세, 이자율 인하,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실업자를 줄이고 경제를 큰 폭으로 성장시켰다. 미국의 서민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로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트럼프는 무려 7000만 표가 넘는 미국 역사상 최대 표를 얻은 낙선자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보수’ ‘진보’와 구별되는 자신의 고유한 이념적 브랜드를 가진 최초의 낙선자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는 한마디로, 신도가 수천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종교의 교주급에 비유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건 그가 자기 주장이 거짓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교주의 정통성을 믿고 싶어 거짓말이라도 듣기를 바라는 수많은 신도의 간절한 욕망에 부응하고 있을 뿐이다. 이 ‘트럼피즘’의 물결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 미국 정치에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확실한 민주적 정치 프로세스가 이를 많이 도울 것이다.

 

2년 후 총선에서 트럼피즘 주목해야

 

160여 년 전 링컨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설파했다. 미국은 그 원칙을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제도로 실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집권당은 2년에 한 번씩 반드시 국민이 내 주는 시험을 쳐야 한다. 즉, 대통령에 취임하면 바로 2년 후, 중간고사, 즉 총선이 있다. 대통령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민은 여당 의원들을 많이 떨어뜨린다. 의석이 줄어드니 대통령이 남은 2년 동안 사실상 별일을 못 하게 되고 그러면 재선도 힘들어진다. 중간 선거 후 2년이 지나면 이번에는 본고사가 있다. 이번에는 국회는 물론, 대통령 본인까지도 심판을 받는다. 재선에 실패하는 건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치욕이다. 이렇게 2년마다 받는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강요하는 국민 우선주의, 이것이 바로 미국 정치의 핵심이다. 이렇게 국민을 진정한 나라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은 건국 이래 무려 27번이나 헌법을 개정했다. 부러운 나라다.

 

이렇게 국민의 힘이 센 나라에서 자신의 고유한 이념으로 수천만 국민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휘젓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당장 2년 후 총선에서 아마도 트럼프의 위력이 나타날 것이다. 단, 한 가지 변수가 있다. 트럼프에게 닥칠 탈세, 명예훼손 등 다양한 혐의 형사 소추 가능성이다. 이것은 상당히 살아있는 가능성이긴 하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게임은 미국 민주주의에 닥친 포퓰리즘의 거대한 폭풍이다. 그 직접적 영향권 아래 대한민국, 깊이 생각해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전성철 글로벌 스탠다드 연구원회장, 조선일보(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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