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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은 다시 울려야 한다] [성덕대왕신종]

뚝섬 2025. 10. 10. 07:00

[에밀레종은 다시 울려야 한다]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은 다시 울려야 한다

 

파손 우려 때문에 타종 중단
22년 만에 울린 성덕대왕신종
과학적 조사 결과 "균열 없어"
천년의 종소리 더 자주 들리기를
 

지난달 24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성덕대왕신종 타음(打音) 조사 공개회’에서 원천수 주철장 이수자(왼쪽)와 보신각 종지기를 역임한 신철민 서울시 주무관이 타종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국보 성덕대왕신종이 지난달 24일 시민 앞에서 다시 울렸다. 22년 만이었다. 1254년을 이어온 깊은 울림의 종소리도 감동적이었지만,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청중들이었다. 네 번째까지 1분 30초 간격으로, 이후 1분 간격으로 12번 종이 울리는 동안 종각 주위에 모인 771명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귀뚜라미 소리만 옥음(玉音)과 함께 울려 퍼졌다.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에 걸려 있다. 높이 3.66m, 무게 18.9t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最大)의 종이다. ‘미인도’의 치맛자락처럼 봉긋한 곡선, 몸통에 새긴 연꽃무늬와 구름 타고 날아오르는 비천상의 자태도 아름답지만, 성덕대왕신종이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건 ‘주변 100리(40km)까지 퍼졌다’는 웅장하고 신비한 소리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1992년 재야의 종소리를 끝으로 정기 타종이 중단됐다. 1976년 국보 상원사 동종에 균열이 발견돼 타종이 멈춘 데 이어 3년 뒤 옛 보신각종에도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성덕대왕신종도 이대로 계속 치다간 손상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과학적 검토도 없이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에 중단됐다”고 했다.

 

종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다. 타종을 반대하는 이들은 “한번 깨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우려한다. “박물관 유물이니 예술품으로 감상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찬성하는 이들은 “성덕대왕신종은 박제된 예술품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타악기”라며 “종은 울리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는다”고 맞선다.

 

박물관은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 세 차례에 걸쳐 타음 조사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2001~2003년 조사와 최근 2020~2021년 측정 결과에서 고유 주파수 분포, 맥놀이 특성이나 맥놀이의 방향성에서 변화가 없었다. 내부적으로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변화(균열)가 없었다는 뜻이다.

 

1254년을 균열 하나 없이 지킬 수 있었던 기적의 비밀은 뭘까. 세 차례 조사에 모두 참여한 김석현 강원대 교수는 종을 치는 당좌의 위치가 절묘하게 ‘스위트 스폿(타격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며 “그 옛날 어떻게 이토록 정확하게 당좌의 높이를 정했는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야구나 골프에서 스위트 스폿을 때리면 공이 멀리 뻗어 나가는 것처럼, 종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장중한 소리가 울려퍼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상원사 동종은 몸체가 성덕대왕신종의 15분의 1 규모인데도 당목(종 치는 막대)이 상대적으로 컸고, 1970년대 초까지 상원사에서 지속적으로 타종했기 때문에 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옛 보신각종은 다수의 인원이 종의 하대 부분을 타격한 타종 방법이 종의 수명을 단축시켰을 것이라 봤다. 오충석 국립금오공과대학교 교수는 “같은 힘으로 치더라도 하대에 가했을 때는 종이 받는 반력이 당좌를 타격했을 때보다 50% 증가했다”며 “하대 부분을 타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성덕대왕신종은 당목의 크기와 질량, 당좌의 위치, 타종 세기 및 방법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잘 보존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야외 온습도 변화에 노출돼 있고, 태풍·지진·화재 등에 취약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박물관은 종을 보존·전시할 신종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니 이제 해묵은 논란을 끝내도 좋지 않을까. 20년에 걸친 과학적 조사 결과가 쌓였고, 보존 방법에 대한 해답을 얻은 만큼 정기 타종을 재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반가사유상의 미소처럼 천년의 종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듣고 번뇌를 씻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허윤희 기자, 조선일보(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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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소리의 전설은 왜 생겼을까요?

 

국립경주박물관 앞뜰에 있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神鐘)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체험관이 최근 문을 열었습니다. 2004년 이후 성덕대왕신종을 치는 행사가 열리지 않았으니 17년 만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성덕대왕신종이라는 이름이 낯선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종의 별명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바로 '에밀레종'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종이죠. 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종 속에 넣었다는 무서운 전설 때문에 생긴 이름이죠. 실제로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분석해 보니 1초에 5~8번 '엉~ 엉~' 울리는 게 애타게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에밀레종 전설'은 사실일까요? 왜 이런 전설이 생겼을까요?

정말 아이를 넣었을까

전설 내용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신라 경덕왕은 부친인 성덕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기로 했어요. 스님들은 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쇠붙이를 시주받으러 돌아다녔는데요. 그때 어린 자식을 안고 있던 한 아낙이 "우리는 내놓을 게 이 애밖에 없다"고 푸념했죠. 그런데 절로 돌아간 스님은 꿈에서 "종이 제대로 울리려면 아이를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결국 그 아이를 희생시켜 쇳물에 넣자 마침내 종이 완성됐다는 전설이지요. 이후 종을 칠 때마다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것처럼 '에밀레'란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제사나 특별한 의식을 위해 사람의 몸을 바치는 것을 '인신(人身) 공양'이라고 해요. 실제로 신라시대에 이런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성덕대왕신종을 만들 때 아이를 넣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사람의 뼈는 화학 성분인 인으로 이뤄져 있어요. 만약 사람을 넣어 만들었다면 종에 인 성분이 있어야 하는데, 1998년 성덕대왕신종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답니다.

통일신라 왕실의 권력 투쟁

신라 경덕왕 때는 통일신라의 전성기였어요. 불국사와 석굴암도 이때 만들어졌죠. 그런데 경덕왕은 끝내 에밀레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어요. 종이 완성된 것은 771년,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 때였습니다. 그런데 신라 전성기의 마지막 왕으로 불리는 혜공왕은 불행한 임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을 때가 고작 여덟 살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만월부인이 어린 아들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렸어요. 만월부인이 친오빠를 중요한 자리에 앉혀 국정을 쥐락펴락하면서 나라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에밀레종 완성 3년 전에는 큰 반란이 일어나 왕궁이 한 달 넘게 포위되기도 했어요. 780년 다시 반란이 일어나 23세의 혜공왕은 왕비와 함께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후 통일신라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죠.

바로 이런 정치적 상황이 앞에서 말한 에밀레종 전설로 변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전설에 등장하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는 죽은 경덕왕,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어머니'는 정치적 실패로 반란을 막지 못한 만월부인, 제물로 바쳐진 '어린아이'는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혜공왕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죠.

19세기 이후 정착한 설화

이 해석이 사실이라면 에밀레종 이야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해졌을 거예요. 에밀레종 전설은 어떤 책에 기록된 걸까요? '삼국사기'일까요, '삼국유사'일까요? 일단 이 두 책 어디에도 전설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에밀레종 전설이 적힌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선교사·의사이자 주(駐)조선 미국 공사를 지낸 호러스 알렌이 1895년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토리'에 쓴 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록된 에밀레종 전설은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서울의 보신각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에밀레종 전설이 성덕대왕신종과 결합돼 등장한 것은 1920년대 '경주의 전설' 등 일본인이 채록한 기록에서부터였습니다. 나라에서 큰일을 벌일 때마다 재산 일부를 내야 했던 백성들의 고통과 한(恨)이 19세기 말쯤 이런 설화로 표현됐고, 이 설화가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가장 큰 종이었던 성덕대왕신종과 결합해 '에밀레종'이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전설처럼 정말 어린아이를 종에 넣은 것은 아니니 안심해도 됩니다.

[신라의 상대·중대·하대]

1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신라는 전통적으로 상대(上代)와 중대(中代), 하대(下代) 세 시기로 시대를 구분합니다. 상대는 건국('삼국사기' 기록엔 기원전 57년)부터 28대 진덕여왕(서기 654년)까지, 삼국시대의 한 나라로 성장한 시대입니다. 가장 전성기인 중대는 29대 태종무열왕(654년)부터 36대 혜공왕(780년)까지로, 통일을 이뤄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입니다. 혜공왕은 이 시대 마지막 왕이었죠. 이후 37대 선덕왕(780년)부터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935년)에 이르는 시대를 하대라고 하는데, 극심한 분열과 왕권 쇠퇴가 일어나고 각 지역에 호족 세력이 등장해 끝내 신라가 멸망에 이르는 시대입니다.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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