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30년 넘게 한국과 인연 맺으며, 부산과 서울서 바라본 거리 풍경
교황 지나간 감격의 세종로서 대학생과 전경 충돌하던 시절 지나
창문 밖 거리 풍경 속 한국인의 생각과 열정, 난 아직도 배우는 중
한국에서 지낸 여러 해 동안, 운 좋게도 여러 차례 부산과 서울의 주요 거리들을 내다볼 수 있는 넓은 창문이 있는 사무실에서 일했다. 1984년 부산 미 영사관에 도착해 국제시장에서 멀지 않은 대청로 도심에서 일하게 되었다. 번화한 중심가가 사무실 바로 밑이었고 언제나 차들이 많이 다녔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차량 중 적어도 한 대는 택시(항상 노란색 포니2였다)거나 버스였다. 운전자들은 상대의 코앞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이대며 말싸움을 하곤 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지만 몸싸움으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을 보고 한국에 대한 교훈을 얻었는데, 한국 사회는 정면충돌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또 언제 물러서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러스트=이철원
다음 근무지는 서울이었다. 1984년 여름, 한창 비자 신청 성수기인 미 대사관의 요청으로 서울로 가서 비자 발급 업무를 돕게 되었다. 매일 현기증이 나도록 관광객과 학생 수백 명을 인터뷰하는 와중에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첫 공식 방한을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인파에 둘러싸여 세종로를 지나가는 장면을 2층 창문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더 큰 자유를 향해 내딛는 의미심장한 발걸음이었으며, 이 나라의 풍성하고 오랜 천주교 역사가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듬해, 정식으로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교황을 봤던 그 창문으로 대학생들이 전경과 충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교황이 지나갔던 바로 그 거리에서 젊은이들은 경찰봉과 헬멧, 방탄복, 그리고 최루탄까지 갖춘 전경들 앞에서 타이어에 불을 지르며 시위를 벌였다.
1990년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광화문과 세종문화회관이 내려다보이는 8층 모퉁이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배정받은 사무실 중 최고의 경치였던 것 같다. 보통 대사관 대표로 정문에서 시민 단체 대표 혹은 소규모 시위대 대표와 만나 그들의 성명서를 전달받았고, 종종 그들을 대사관으로 초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도 했다. 특히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2002년 대사관으로 복귀했을 때는 마침 대통령 선거를 앞둔 때였다. 수 주에 걸친 선거운동 기간, 소수 정당 선거운동 차량이 사무실 바로 아래 대사관 뒤편에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FXXking USA’ 음악을 요란하게 울려댔다. 당시 만연했던 반미 감정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2003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반대 시위대가 대사관 출구를 막아 밤늦게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던 적도 있었다. 이후 이 감정은 2008년 대규모 촛불 집회로 이어졌는데, 촛불 집회는 한국에서 비폭력 시위 방식이 진화한 결과였다. 처음 한국에 온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인들은 열정적으로 변화를 주장하지만 의견이 다른 상대편과 한국 사회 자체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교훈을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네 번째 근무는 2014년 미 정부 경력을 마치고 민간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을 때이다. 우연히도 사무실은 대사관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고, 다시 사무실 창문을 통해 세종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세종로를 지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켜보면서 지난 30년간 이 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 이후 몇 주 동안 덕수궁에서부터 경복궁까지 내려다보이는 16층 사무실에서 매주 대규모 촛불 집회가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1980년대 이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회상하면서 종종 저녁에 집회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와 사무실 주변을 걸어 다녔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으며 한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여러 사무실들의 창문보다 더 좋은 전망을 바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례없는 한국의 발전을 최전방에서 볼 수 있어 운이 참 좋았다. 지금 사무실 창으로는 다시 한번 변화를 겪고 있는 세종로의 공사 현장이 보인다. 세종대로의 과거 모습과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세종대로가 다음에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줄지 궁금해진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 前 주태국 미국 대사, 조선일보(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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