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어느 날 시각장애 노인 거지에게 일어난 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뚝섬 2021. 7. 11. 06:17

어느 날 시각장애 노인 거지에게 일어난 일 

 

‘말의 힘(The Power of Words)’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win the sympathy) 있다. 동영상은 홀로 길거리에 앉아(sit alone on a street) 잔돈을 구걸하는(beg for spare change) 나이 많은 시각장애 거지(old blind beggar)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인은 동냥 깡통 옆에 골판지 하나를 세워놓았다. 거기에는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I’m blind). 제발 도와주세요(Please help)”라고 적혀 있다. 많은 사람이 그 앞을 오가지만, 대부분 힐끔 쳐다보고는(give a sideways glance at it) 그냥 지나쳐버린다(walk past him). 어쩌다 간혹 한두 사람이 그가 있는 쪽을 향해 동전을 던지고(throw the change in his direction) 갈 뿐이다.

 

그나마 깡통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사회 서열 맨 밑바닥에 있는(be at the very bottom of the pecking order) 그가 혹시라도 말이라도 걸까 싶어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리나케 도망가버린다(make off in all haste). 시각장애 노인은 던진 동전을 찾느라 애를 쓰다가(try to find the change) 겨우 찾아내서는 깡통에 집어넣는다(locate the coin and put it in the tin).

 

그런데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지나가다가(walk by) 되돌아오더니(turn back) 골판지에 쓰인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본다(have an eyeful of it). 그러더니 그의 허락을 청하지도 않고(without asking his permission) 골판지를 집어 들고 그 뒤에 뭔가를 써서(write on the back of the cardboard) 돌려 세워놓고는 제 갈 길을 간다(go on her way).

 

그때부터 정말 이상한 일(something truly odd)이 벌어진다. 예전엔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이 모두 돈을 보태주고 간다. 깡통이 차고 넘친다. 동전이 아니라 지폐를 놓고 가는 이도 많다. 게다가 그를 향해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숙여 건네주고(bend down to give it to him instead of chucking it at him) 간다.

 

며칠 후 그 여성이 다시 들른다(come by again). 지난번 그녀가 앞에 섰을 때 구두를 만져봤던(touch her shoes) 노인은 이번에 자기 앞에 선 사람의 구두를 만져보고는 그녀라는 걸 알아챈다. 그녀에게 묻는다. “그때 내 골판지에 뭐라고 써놓고 갔나요?”

 

그 여성이 거지 노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stroke him on the shoulder) 대답한다. “같은 말을 썼어요(write the same). 다만 다른 단어로 표현을 바꿔봤어요(refine the expression with different words).”

 

그녀가 노인에게 인사하고 성큼성큼 자리를 떠나는(stride off) 뒤로 동영상에 비친 골판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오늘 참 아름다운 날입니다(It’s a beautiful day). 그런데 저는 그걸 볼 수가 없네요(I can’t see it).”

 

위의 글을 메신저로 소개해주신 분이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여 보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고,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07-0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하늘에도 슬픔이'

 

1963년이면 너나없이 힘든 시절이긴 했다. 그래도 대구 명덕초등학교 4학년 이윤복의 헤어나기 어려운 가난엔 온 국민이 눈물지었다. 윤복이는 여섯 살에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병든 아버지, 동생 셋과 함께 움막에서 살았다. 누군가 염소를 치려고 지은 것이어서 비 오면 여기저기 깡통 놓고 빗물을 받아야 했다. 윤복이는 학교가 파하면 껌팔이를 해 번 돈으로 국수를 사다 가족을 먹였다.

▶한 푼도 못 번 날이면 저녁을 굶고 이튿날 아침 동냥을 나갔다. "한 숟가락만 보태주세요." 하소연해 모아온 밥을 식구들이 나눠 먹었다. 동냥 다니다 보면 같은 반 아이가 있는 집 문을 두드릴 때도 있었다. 틈틈이 구두닦이, 빈 병 줍기, 보리 이삭줍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바로 아래 여동생이 남의 집 식모살이라도 하겠다며 가출했다. 윤복이는 이런 일들을 매일매일 일기에 썼다. 그해 12월 20일 일기는 이렇다. '하늘을 쳐다보니 참말로 맑았습니다. 우리 식구도 저 하늘처럼 말끔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  

 

▶그래도 따뜻한 이웃들이 윤복이를 버티게 해줬다. 같은 반 아이들은 보리밥에 짠지 반찬 얹은 도시락을 윤복과 나눴다. 부모와 길을 가다 윤복을 만나면 부모를 졸라 일부러 껌을 사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공책과 연필 같은 학용품을 사주며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이 살라"고 했다. 동냥을 가면 수북한 밥과 함께 쓰던 옷가지를 꾸려주는 집들도 있었다.

▶윤복이 일기는 선생님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965년 김수용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영화는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해 서울에서만 30만 관객을 불렀다. 지금으로 치면 전국 1500만명쯤 되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뒤론 영화 필름이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었다. 대만에서 찾아낸 필름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해 5월 22일부터 한 달간 무료로 상영한다. 윤복이 동냥해 온 밥을 동생들 입에 떠넣어 주는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윤복은 1990년 병으로 세상을 떴다. 동생들은 그의 바람대로 넉넉하진 않아도 건강하고 사이좋게 자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한 세대 남짓 전 일인데 까마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다 같이 어려웠지만 바로 그래서 서로 배려하고 아끼고 아픔을 나누던 시대였다. 그 사이 우리는 국민소득 90달러에서 3만달러를 내다보는 부자가 됐다. 먹고살 만해졌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리 슬픔이 끊이지 않는가.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일보(14-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