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전쟁]
[북한, 새 한반도 지도에 남한 전체를 회색으로 처리]
[‘정복되지 않는 나라’]
[한미 연합훈련 파행, 더 이상은 안 된다]
분열과 전쟁

매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다. 6·25전쟁 중인 1950년 9월 15일에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은 몇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진행된 기적의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인천에는 북한군이 거의 없었다. 북한이 인천에 있던 사단 병력을 낙동강으로 내려보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쉬운 성공이었다는 건 아니다. 인천을 상륙 지점으로 지목한 중공군 장교도 있었지만, 끝까지 인천상륙작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 것은 성공의 비결이었다. 이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이 정신없이 후퇴하게 함으로써 민간인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만약 전국에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면 보복과 원한의 악순환은 아마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원한과 욕망이 결합하면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국난 앞에서 단합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늘 단합했던 건 아니다. 로마에 남아 있는 티투스 개선문은 예루살렘 정복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의하면 당시 로마군이 도시를 포위하고 공격할 때 예루살렘 안에서는 열심당, 시온파, 요한파라는 3개의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다. 감정적 대립이 아니었다. 성전을 둘러싸고 상대를 학살하는 피의 내전을 벌였다.
상대를 제거하면 우리가 행복해진다는 사고는 인류의 역사에 늘 존재했다. 단지 기준이 부족, 인종, 종교, 계급, 이념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거나 위장되었을 뿐이다. 지금도 지위가 있는 일부 정치인 가운데 ‘국민 일부를 묻어버리면 완전한 민주주의와 행복한 사회가 온다’는 말을 공석에서 하는 이도 있다. 전쟁과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오면 인간은 원초적 욕망을 추구하는 야수로 변한다는 건 역사 속에 증거가 차고 넘친다.
요즘은 정치인 지식인 방송인을 가리지 않고 증오를 조장한다. 그건 핵을 땅속에 묻는 행위와 같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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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새 한반도 지도에 남한 전체를 회색으로 처리

북한이 전국 국가 기관에 부착된 한반도 지도를 모두 ‘반쪽 지도’로 교체했다(replace with ‘half maps’).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북한은 정권 수립일인 9·9절을 맞아(on the occasion of the regime’s founding anniversary) 남한 전체를 회색 처리하고 북한 지역만 표기한 새 지도를 전국에 배포했다(distribute new maps nationwide). 기존 지도는 일괄 수거·폐기한(collect and dispose of them all at once)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조치는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Hostile Two-States Theory)’에 따른 민족·통일 개념 지우기 일환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023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plenary meeting)에서 남한을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는다며 화해(reconciliation)와 통일(reunification) 대상이 아닌 완전히 다른 국가로 규정한 바 있다.
‘반쪽 지도’의 맨 위 부분엔 ‘조선지도’라고 적혀 있고, 왼쪽에는 ‘우리가 건설하는 문명강국(civilized power)은 사회주의 문화(socialist culture)가 전면적으로 개화발전하는(fully blossom and develop) 나라, 인민들이 높은 창조력과 문화 수준을 지니고(possess high creativity and cultural standards) 최상의 문명을 최고의 수준에서 창조하며 향유하는 나라입니다.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붉은색으로 쓰여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in the lower right corner) ‘알아보기’라는 제목 아래 지도 범례(map legend) 설명이 표기돼 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동상’ ‘주요 혁명 전적지’ ‘주요 혁명 사적지(Major Revolutionary Historic Sites)’ 등 김씨 일가 우상화 시설물 기호를 위쪽에 표시해 놓았다.
지도에는 수도와 도·시·군 소재지(seat), 국가·도 경계(national and provincial borders), 주요 도로, 산 및 고개, 소금밭(salt field), 항구·배길(항로) 등이 표시돼 있다. 이에 비해 남한 지역은 통째로 비워둔 채(leave it entirely blank) 회색으로 해놓고(color it gray) ‘한국’이라는 국명만 적어놨다.
이는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hostile and warring relationship)’로 선언한 후 민족·통일 개념 지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accelerate the erasure of the concepts of nationhood and reunification) 보여준다. 남조선이 아닌 한국으로 명명할 것과 한국은 외국이라는 인식을 주입하는(instill the perception) 사상 교육도 실시했다(conduct ideological education).
새 지도에는 과거 김정일의 지시 사항을 빼고(omit past directives) 김정은의 어록으로 대체했다. 또 김일성 출생 연도 기준 ‘주체 114년’으로 표기됐을 부분이 2025년으로 돼 있다. 데일리NK는 이와 관련, “김일성·김정일 경외심을 줄이고(reduce reverence for them) 김정은 우상화를 강화하려는(enhance the idolization)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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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되지 않는 나라’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충격에 이어 의문이 꼬리를 문다. 탈레반의 폭정은 부활할까? 탈레반은 정말 변했을까? 미국은 왜 이렇게 어설픈 철수를 한 걸까? 오판일까? 무슨 음모가 있는 걸까? 다음번 아프가니스탄의 희생자는 중국일까?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의 온상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은 관찰자들의 입장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은 ‘이제는 총성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올까’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의 무덤, 정복되지 않는 나라라고 불린다. 사실 정복은 여러 번 됐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장기적인 통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정복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불리는 지역 안에는 20개의 부족, 3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몽골 영국 소련 미국이 통치에 실패했다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이란 영역을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작업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사회가 통합되려면 경제적 소통이 중요하다. 물자가 유통되고,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이 나라는 거친 지형이 이런 통합의 길을 막는다. 험한 산악 지역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국토의 3분의 2가 해발 1500m 이상의 고지이기도 하다.
이런 고립적이고 험한 지형에서 아프간의 부족들은 수없이 싸우며 살아왔다. 강대국의 침공 이전에도 국토의 일부분은 항상 전쟁 중이었다.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이슬람의 교리, 신정정치가 강력한 통합을 이룩할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역, 부족세력은 여전히 독립성이 강하고 군벌화의 가능성도 버리지 않고 있다.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집권 탈레반의 분열, 지역 분열, 부족 전쟁, 내전, 그리고 폭력이 사라질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갖춰진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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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철수하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벌써 온갖 테러단체 몰려들어. 본격적인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
-팔면봉, 조선일보(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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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연합훈련 파행, 더 이상은 안 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2016년 3월 경북 포항시 독석리 해안에서 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쌍룡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필자가 10여 년 전 국방부 산하 교육기관에 파견돼 현역 장교들과 함께 연수를 받던 때의 일이다. 당시 주한 미공군의 고위 지휘관이 2시간여에 걸쳐 한미 연합훈련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는 초빙 강의를 했다. 그는 강의 내내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연합훈련(연합지휘소훈련·CPX)의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가령 훈련 시나리오(연합 작전계획)에 따라 개전 초 북한의 방공망과 핵·미사일 기지 등을 정해진 시간 내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훈련을 하다 보면 자꾸만 지체된다는 것이다. 지휘부의 의사결정 지연이나 엇박자 등이 주된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작전 반응시간’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역공으로 아군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CPX와 병력·무기장비를 동원한 실기동훈련을 철저히 병행해 유사시 대응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연합훈련의 주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당시 필자에겐 사전에 각본을 짜고 하는 훈련에서도 이처럼 오차와 변수가 많은데 실전에선 오죽하겠느냐는 하소연처럼 들렸다. 어떤 치밀한 작전계획도 전쟁이 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훈련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최첨단 무기가 등장해도 피를 담보로 한 전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올 5월 환송 행사에서 “평시에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다. 작전계획과 실제 전시 상황의 간극을 최소화하려면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첩경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연합훈련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존의 3대 연합훈련은 모두 폐지됐고 그나마 연 두 차례의 CPX도 북한의 눈치를 살피느라 축소·중단되는 게 다반사가 됐다.
16일부터 시작된 올 하반기 CPX도 북한 김여정 노동장 부부장의 훈련 중단 압박을 의식한 나머지 상반기 훈련보다 참가 병력이 크게 줄었다. 전쟁 수행의 핵심축인 작전사(司)급 부대는 전시 편제에 따른 증원 인력을 운용하지 않고 현 인원만 참가하고 사단급 이하 부대는 수동적 응답만 하는 ‘대응반’만 가동하는 등 야전부대의 참여 수위도 최소화됐다. 이뿐만 아니라 대규모 연합 실기동훈련은 4년째 ‘올 스톱’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했다는 정부와 군의 주장도 미국이 일본과 호주 등 다른 동맹국과는 연초부터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활발히 진행하는 점에 비춰 보면 핑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연합훈련의 파행이 길어질수록 유무형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한미 양국군 간 조직력과 유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언어 문화가 다르고 무기장비 및 교리도 상이한 한미 양국군이 유사시 ‘한 몸’처럼 움직이려면 정례적인 대규모 실기동훈련 등으로 손발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군은 1, 2년마다 보직이 바뀌다 보니 연합훈련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훈련 경험과 소통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유사시 투입되는 미 증원전력의 한반도 지형 및 작전환경 숙달 수준도 목표치를 밑돌 개연성이 적지 않다.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CPX가 아무리 정교해도 실제 무기·병력이 투입되는 실기동훈련과는 간극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합훈련은 2018년 이전과 비교해 양적 질적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연합훈련의 파행이 2, 3년 더 지속될 경우 되돌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미 지휘관과 장병들의 전투 노하우 및 자신감이 형해화되면서 연합태세의 저하와 심각한 안보 공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미동맹의 근간인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카드로 당연시하는 정부와 군의 안이한 인식 그 자체다. 국민 보호와 국가 안위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훈련조차 ‘협상칩’으로 남용하는 것은 북한의 오판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연합 방위태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첩경은 연합훈련의 정상화를 통한 대비태세 완비라는 군 안팎의 고언(苦言)을 군 지휘부가 되새겨보기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동아일보(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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