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제 대학이 1등이 될 수는 없다]
[돈 더 줘도 싫다는 초중고, 구조적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
[학생수는 격감해도 교육청은 11조원 ‘묻지마 돈벼락’]
[학생은 줄었는데 공무원 84% 증원, 혈세 펑펑 쓰는 교육감들]
[학생 30% 줄었는데 교육청 공무원은 급증한 이유]
[대학 교육 혁신 막는 규제 풀어야 한다]
배급제 대학이 1등이 될 수는 없다
산업화 원동력이었던 공정 입시.. 이젠 획일적 균등 집착으로 변질
서울대 예산, 하버드의 8분의 1.. 대학이 돈 모을 방법 찾아줘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조선일보 DB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와 조지 W. 부시 등은 냉정히 말하면 서민들의 ‘사다리’를 빼앗은 사람들이다.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각각 나왔지만 그런 명문 대학에 입학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은다. 그들이 동문이나 기여자에게 특혜를 주는 입시 제도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본인들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공격 소재가 될 법도 하지만 정적(政敵)들조차 ‘뒷문 입학자’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대학엔 이런 저런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입학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엔 그런 식의 입시 전형이 없었기 때문에 기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모른다. 대학도, 산업도 모두 부족했던 시대에 명문대 입학까지 돈으로 가능했다면 산업화를 이끌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 가장 흔들리지 않았던 분야가 교육이었다는 사실은 산업화의 자산이었고, 사회의 역동성을 키워 계층 갈등을 풀어내는 통로 역할까지 했다.
문제는 이제 거의 전 국민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됐고,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가 됐지만, 획일적 공정에 대한 강박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0.1점이라도 높은 사람이 합격해야 한다는 집착은 학생부 종합전형조차도 어렵게 만들었고, 고교생들을 ‘반복 재반복 틀리지 않기 공부’에 더 매몰되게 하고 있다.
한국 대학은 입시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획일적 공정을 강요받고 있다. 등록금도 교육부가 14년째 동결시켰다. 이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등록금 인상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 대학은 세금 지원 말고는 재원을 구할 방법이 마땅찮으니 정부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배급 경제 시대에 살게 됐다.
교육이 돈으로만 되는 건 아니지만 세계 유력 대학들은 피나는 돈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 한국 대학의 재정 취약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미국 하버드대의 올해 지출 예산은 58억 달러(약 7조5400억원)인데, 서울대는 9410억원으로 8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 기업인 애플의 매출(약 500조원)에 삼성전자(약 300조원)가 따라 붙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세계 속 우리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한국 대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이렇게 큰 격차가 있다.
미국 대학들은 재원을 스스로 조달한다. 하버드대 수입의 45%는 기부금이고, 수업료·기숙사비 등 등록금은 21%에 그친다. 서울대는 등록금 비중이 19%로 하버드와 큰 차이가 없지만, 정부 출연금이 5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대의 등록금 수입은 지출하는 인건비의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규모 자체가 적으니 어차피 정부 출연금의 위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식으론 세계 최고 대학과 경쟁할 자금력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초·중·고교에 남아도는 지방재정교육교부금을 지자체로 내려보내 대학들을 지원하는 데 쓰게 할 작정이다. 이 예산을 따내기 위한 대학들의 사활을 건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당장 급한 불은 끈다 해도 이런 식으로 대학을 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 지원, 사실상의 배급제를 통해 글로벌 톱이 된 분야는 찾기 어렵다.
우리 기업은 대기업 위주의 정부 주도 육성 정책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일류기업으로의 성장은 자율과 혁신을 통해 무한 경쟁을 이겨냈기에 가능했다. 대학도 이제 배급경제를 벗어나 대학 스스로가 가진 자산을 활용해 미래를 개척할 재원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공동체의 기부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대학 개혁의 방편은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김덕한 사회정책부장, 조선일보(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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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더 줘도 싫다는 초중고, 구조적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
전국 초중고교가 갑자기 불어난 예산의 집행 계획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17개 시도교육청에 배정된 교육교부금은 65조 원인데 초과 세수가 늘면서 11조 원이 추가된 것이다. 지난해 쓰고 남은 예산까지 포함하면 올해 교부금은 지난해보다 21조 원이 늘어난 81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교육청은 지난해도 추경으로 교부금이 6조 원 증액되자 멀쩡한 학교시설을 리모델링하고 비품을 또 사들였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남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거나 현금 30만 원을 뿌린 교육청도 있다. 올해는 추경 예산이 배로 늘어나 압박이 심하다. 교사들은 돈 쓸 곳을 찾아 기안하느라 정작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며 예산 지원이 반갑지 않다고 한다. 추경을 짤 때마다 교부금을 자동으로 배정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추경이 아니어도 예산 낭비를 부추기는 교부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 교육교부금은 수요와 무관하게 경제 규모에 따라 증가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에만 쓸 수 있다. 올해 학생 수는 10년 전보다 20% 줄었지만 1인당 교부금은 1528만 원으로 2.5배로 뛰었다. 반면 대학은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구조적인 재정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기는커녕 인건비를 깎는 대학이 늘고 있다. 다른 선진국은 대학으로 갈수록 정부 지원이 증가하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초중고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위, 대학은 33위다. 남아도는 교부금을 대학에 지원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국회에서 교부금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학령인구는 줄어드는 데 반해 4차 산업혁명과 고령화로 고등 인재와 평생교육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을 변화된 교육 수요에 맞게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50년 된 교부금 제도를 재설계할 때가 됐다.
-동아일보(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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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수는 격감해도 교육청은 11조원 ‘묻지마 돈벼락’

올해보다 8.3% 증액된 내년 예산안 중에서도 가장 많이 늘어난 분야가 교육 예산이다. 내년 교육 예산은 올해보다 16.8%(12조원) 늘어난 83조여 원이다. 늘어난 예산 대부분이 17개 지방 교육청에 나눠주는 돈이다. 지방 교육청 배정 예산은 무려 21%(11조1000억원) 늘어나 처음으로 64조원을 넘어섰다. 내년 예산안 자체가 방만하기 그지없지만 그중에서도 교육 예산은 이해하기 힘들 만큼 늘어났다. 50년 전 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매년 걷히는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시도 교육청 예산으로 자동 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6~21세의 학령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2010년 995만명에 달하던 학령 인구는 2021년 현재 764만명으로 줄었다. 내년에 학령 인구는 20만명 더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초·중·고교생들이 제대로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지방 교육청들 예산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지난 7월의 2차 추경도 코로나로 피해 입은 소상공인 지원 목적이었지만 엉뚱하게 지방 교육청에 전체 추경(35조원)의 18%에 달하는 6조3000억원이 배정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돈 벼락을 맞은 일부 교육청은 학생 1인당 10만~15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주는 등 현금 살포에 나섰다. 내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돈 뿌리기를 한 것이다.
1972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할 당시 교육청에 예산 자동 배정하는 규정을 둔 것은 나라 살림이 빠듯해도 교육만큼은 최우선으로 투자하자는 취지였다. 지금은 모든 상황과 여건이 달라졌다. 서울·경기 등 전체 학생 수의 87%를 담당하는 14개 교육청을 장악한 좌파 교육감들은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혁신학교 같은 온갖 이념 교육 실험을 하고 교육청 조직을 비대하게 키우는 데 예산을 써왔다. 전체 공무원 숫자가 13% 늘어나는 동안 지방 교육청 공무원 수는 38% 늘었다. 지방 교육청이 그래도 못다 쓰고 쌓아둔 기금만 2조9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는 사이 학교 현장에서 중·고교생의 학력은 지난 10년간 계속 뒷걸음질 쳤다. 교육청에 배정되는 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비율을 낮추고, 예산 배정 방식 자체도 바꿔야 한다.
-조선일보(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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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줄었는데 공무원 84% 증원, 혈세 펑펑 쓰는 교육감들
부산 인천 울산 세종 강원 제주 등 6개 교육청이 지난해부터 관내 학생들에게 1656억 원이 넘는 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침해받은 학습권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1인당 10만 원씩 줬다는 것이다. 지원금은 용도에 제한이 없어 정부가 주는 재난지원금과 다를 바 없다. 부실한 원격수업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데 온라인 교육 인프라에 투자해야 할 돈을 일회성 지원으로 뿌린 것은 아닌가.
해당 교육청들은 코로나로 쓰지 못한 무상 급식 예산을 활용한 것이라고 하지만 선심성 행정이 가능한 배경에는 남아도는 지방교육 재정이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매년 내국세의 20.79%가 자동으로 시도교육청 예산으로 배정된다. 매년 줄어드는 학생 수와 무관하게 세수 증가로 내국세에 연동되는 교부금은 갈수록 불어나는 구조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1.4% 늘어난 59조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문제는 내국세의 5분의 1이 넘는 교부금이 방만한 교육 행정에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생은 534만 명으로 10년 전보다 26%가 줄어든 반면 시도교육청과 산하 지원청의 일반직 공무원 수는 1만7400명으로 10년 전보다 84% 늘었다. 같은 기간 교사 수는 12% 증가했다. 교사보다 공무원 수를 더 늘린 셈이다. 반면 각종 교육지표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난해 중3과 고2는 수학 기초학력 미달률이 13%가 넘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공교육이 제구실을 못 하면서 계층별 학력과 사교육비 격차는 날로 벌어지는 추세다.
학령인구 급감에도 문재인 정부 들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연동률을 두 차례 인상하면서 20.27%이던 연동률은 지금의 20.79%가 됐다. 이제는 초중고교생 1인당 공교육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수준이다. 교육 수요에 맞게 연동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성과는 시원찮은데 재정은 무조건 늘려주는 제도가 일선 교육청의 방만 경영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낳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동아일보(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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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30% 줄었는데 교육청 공무원은 급증한 이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7월 12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수도권 지역 거리두기 4단계 적용에 따른 원격수업, 학사운영 등 코로나19 긴급 점검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출산으로 지난 10년간 초·중·고 학생이 30% 감소한 반면 전국 시·도 교육청 공무원 수는 오히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초·중·고교생이 2010년 761만명에서 2020년 534만명으로 줄어든 사이, 시도 교육청과 산하 지원청의 교육행정 직원은 8654명에서 1만7398명으로 101% 늘었다. 교육부는 2010년 통계에는 누락된 기능직을 포함하면 실제 정원 증가율은 38%(4817명)라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 전체 공무원 증가율(13%)의 3배나 된다.
교육청 조직이 이토록 비대해진 것은 정권의 공무원 늘리기 정책에 더해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시도 교육청 예산은 2010년 33조원에서 2020년 59조원으로 80% 가까이 늘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매년 걷히는 내국세의 20.79%를 전국 시도 교육청 예산으로 자동 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 교육에 투자한다는 법 취지는 훌륭하나 학생 수 감소와 무관하게 교육청 예산이 매년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그 결과 지방교육청이 못다 쓰고 쌓아둔 기금만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지경이다.
교육청으로 가는 세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라도 교육 경쟁력 강화에 쓰였다면 미래를 위한 건강한 투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학교 현장에서 중·고교생의 학력은 도리어 뒷걸음질 치고 있다. 교과의 20%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2010년대 초반에 비해 2~3배 늘었다. 전교조 출신의 좌파 인사가 지방 교육청을 대거 장악하면서 자사고 죽이기와 혁신학교 늘리기 같은 이념적 교육 실험에만 몰두하고 학생들 학력에는 무관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경기교육청을 비롯, 좌파 교육감이 관할하는 지역의 학생 수가 전체 초·중·고교생의 87%에 달한다. 이 교육감들은 늘어난 재정 수입을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무원 늘리는 데 써온 것 아닌가.
정부가 편성한 33조원 규모의 2차 추경안에서도 내국세 증가분의 20.79%에 해당되는 6조여원을 지방 교육청에 자동 배정하게 된다. 이 추경은 코로나 재난 지원이 목적인데 돈이 쌓여있는 교육청에 이 막대한 세금이 왜 지원돼야 하나. 이 돈으로 또 공무원 늘릴 궁리를 할 것이다. 지금 피해가 막심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배정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상하고 기막힌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의 일정 비율을 자동 배분토록 하는 39년 된 법 규정을 고쳐야 한다.
-조선일보(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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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육 혁신 막는 규제 풀어야 한다
고교 졸업자의 70% 정도가 대학에 가는 ‘고등교육 보편화’ 시대다. 대학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정책의 중심축도 고등교육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교육은 위기 상황이다. 나라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라고 하지만, 대학 경쟁력은 세계 50위권에 들기도 벅찬 실정이다. 학령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지방 대학들은 고사 직전이다. 지역 인재 양성에 차질이 생기고 지역 쇠퇴로 이어질까 두렵다. 고등 직업교육을 담당해 온 전문대학 사정은 더 심각하다. 대학을 옥죄는 환경이 바뀌지 않고, 대학에 대한 지원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정부 규제가 대학의 창의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지금은 에듀테크 발달로 온라인 학습이 확대되어,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아날로그 시대의 교실 수업과 경직된 학사 모델을 바탕으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 대학은 자기 소유 건물에서만 수업할 수 있을 뿐, 교육 수요자를 찾아가는 교육을 할 수 없다. 수강생 규모가 의미 없는 온라인 강의가 확대되고 대학을 넘나드는 공유 교육과정도 추진되는데, 정부의 대학 평가는 소규모 강좌를 얼마나 제공하는지 살펴본다. 무엇보다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급변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어떻게 법령이 정한 대로만 대학을 운영하란 말인가.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대학은 맘껏 혁신을 추구하고, 새로운 활동 무대를 개척할 수 있다.
획일적 평가도 문제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 초일류 대학과 지역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는 대학을 같은 지표로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양한 학과를 운영하는 대규모 국립대와 전략 학과를 중심으로 특성화를 추구하는 소규모 사립대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평가는 대학들을 한 틀로 균질화하고 억압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대학 여건과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평가’가 시급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대학 재정이다. 대학이 교육 질을 높이고 학생을 성공시키려면, 다양한 기관을 설립해서 사람을 배치하고 교육 프로그램과 인프라도 지속해서 개선해야 한다. 모두 재정 투자를 수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들은 최소한의 교육 활동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 지원은 부족하고 10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재정 절벽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고등교육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하지만, 재정 투자 없이 교육 질을 높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선진국 클럽인 OECD 국가의 고등교육 투자는 학생 1인당 1만6000달러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지 20년도 넘었지만, 1인당 1만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투자로 성공한 나라다. 대학이 지식을 창출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가는 물론 지역의 경쟁력도 한순간 허물어진다. 대학의 발을 묶는 규제를 들어내고, 투자를 늘려야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물론 대학은 적극적인 변화와 능동적 혁신으로 화답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일류 국가가 될 수 있다.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 조선일보(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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