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김정은 10년 축하 선물’이라도.. ] [‘어둠의 과학자’의 죽음] ....

뚝섬 2021. 10. 12. 04:59

[‘김정은 10년 축하 선물’이라도 주려는 건가]

[‘어둠의 과학자’의 죽음]

[“북 공작원 靑 근무” 고위 탈북자 증언, 과거 얘기만은 아닐 수도]

 

 

 

김정은 10년 축하 선물’이라도 주려는 건가

 

[동서남북]

비핵화 의지’ 거짓 확인하고도 제재완화·종전선언 궁리만
北은 다음 10년 핵플랜 가동, 우리 정치는 눈앞 선거만 본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에서 운구차를 따르고 있는 김정은.

 

10년 전 북한 김정은이 공식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미국 대선 경선에서 한 후보가 김정은을 ‘김정3세’라고 부른 해프닝이 있었다. 신문에서 본 ‘김정일(Kim Jong Il)’의 ‘Il’(대문자 I+소문자 L)이 로마숫자 ‘2(Ⅱ)’인 줄 알고 ‘김정 2세’로 잘못 읽었고, ‘그 아들이 3대 세습을 했다’ 하니 머릿속에서 ‘김정 3세’라는 그럴듯한 작명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에 관한 칼럼을 썼다. 그 후 몇 년 동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김정은을 ‘데니스 로드먼과 친한 철부지 독재자’ 정도로 인식했다. 국제정치의 ‘의미 있는 플레이어’가 아닌 ‘흥미거리’에 가까웠다.

 

올해 말이면 김정은이 집권한 지 꼭 10년이 된다. 그 10년 동안의 변화는 극적이다. 철저하게 은둔하던 김정은은 2018년을 기점으로 국제 무대를 누비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트럼프쇼’ 덕분에 미 대선 후보도 헷갈려하던 북 지도자 이름이 이제는 국제정치에 별 관심 없는 필부들 입에서 줄줄 나온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은 몰라도 김정은은 안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젊은 최고존엄’이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는 반짝했다 완전히 사라졌다. 파격 행보를 몇 차례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또래 젊은 세대를 체제의 최대 위협 요소로 보고 사상뿐 아니라 옷차림·말투까지 통제하고 있다. 140kg까지 늘었다가 다시 수십kg이 줄었다는 김정은 몸무게만큼 북의 변화 진폭은 컸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북한의 핵을 향한 집착이다. 김정은은 한순간도 핵 개발 시나리오를 중단한 적이 없다. 수소탄을 포함한 핵탄두를 완성했고 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다양한 미사일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다. ICBM, SLBM 완성도 턱밑까지 와있다. 미 위성에 노출된 영변 외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도 계속 돌리고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회담 때 ‘영변 폐기’ 카드로 선수를 친 것은 따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핵 완성을 선언한 이후에는 핵 보유를 인정받기 위한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가고 있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김정은·트럼프.

 

하지만 직진 일변도의 북한과 달리 국제사회의 대응은 유턴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는 ‘전략적 인내’에서 ‘화염과 분노’로, ‘최대 압박’에서 ‘러브레터’로 냉온탕을 오갔다. 우리 정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정권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한미는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북한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재 시스템을 쌓아 올린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성과였다. 강력한 경제 제재로 핵 개발 대가를 지속적으로 치르게 해야 북 내부의 계산법이 흔들리고 실낱 같은 비핵화 돌파구가 열린다. 길고 어렵고 지루한 과정이지만 지금까지 효과를 입증한 유일한 방법이다.

 

트럼프·문재인 대통령이 합작한 ‘화끈한 한 방’ 시도는 ‘김정은 비핵화 의지’가 허구라는 사실만 재확인하고 막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시즌2′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미국에 대고 우리 정부는 ‘제재 완화 인센티브’를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대선 전 종전 선언 이벤트도 하자고 한다. 지금 상황에서 ‘김정은 집권 10년 축하 선물’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김정은은 핵을 완성하고 국제적 위상도 높인 꽤 만족스러운 10년을 보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눈앞의 선거만 보고 있는 동안, 김정은은 핵보유국에 올라서고 한미 동맹을 와해하려는 다음 10년의 플랜을 가동하고 있을 것이다.

 

-임민혁 기자, 조선일보(21-10-12)-

_______________

 

 

어둠의 과학자’의 죽음 

 

'국제 핵확산 주범'으로 지목되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 /조선일보 DB

 

“(조국)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핵무기 개발의 핵심은 고농축 우라늄에 있습니다.” 1974년 네덜란드 민간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우라늄 농축 전문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해 5월, 숙적인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부토 총리는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 선언했지만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터였다. 칸 박사의 편지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부토 총리가 조국에 돌아올 것을 권유하자 칸 박사는 유럽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귀국했다. 그는 300달러의 적은 월급을 받아가며 개발에 착수한 지 불과 7년 만에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 변변한 제조업도 없는 기술 후진국에서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1998년 공식 핵실험에 성공해 파키스탄을 이슬람권 최초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어준 그는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로 국가적 영웅이 됐다.

 

우리 귀에도 낯익은 칸 박사가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국내외 언론은 ‘국제 핵 확산의 주범’이란 수식어를 붙여 그의 죽음을 전했다. 2000년대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등 서구 사회는 파키스탄 정부가 북한 등에 핵 기술을 이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그를 주요 인물로 지목했다. 급기야 그는 2004년 기자회견을 자청, 북한·이란·리비아 등 3국에 핵무기 기술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파키스탄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믿지 않았지만 파키스탄 대통령은 그를 사면했고 가택연금 조치로 끝냈다.

 

▶그는 북한·이란·리비아에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기술이나 장비를 전수해줬다. 세 나라 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이 북한이었다. 파키스탄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과 미사일을 제공받는 대신 우라늄 농축 기술·장비를 제공하는 ‘기브 앤드 테이크’ 방식이었다.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하기 7년 전에 이미 북에서 3개의 핵무기 장치를 목격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칸 박사가 북한 핵 개발에 어느 정도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가 북한 핵 개발, 특히 북 핵무기의 주류가 된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대해선 이론이 없다. 일각에선 그가 히틀러처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광기(狂氣) 어린 과학자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도움 준 북핵을 자나 깨나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선 그의 죽음에 착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______________

 

 

북 공작원 靑 근무” 고위 탈북자 증언, 과거 얘기만은 아닐 수도 

 

북 정찰총국 대좌 출신 탈북민이 BBC 인터뷰에서 "1990년대 초 북파 공작원들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뒤 복귀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BBC 캡처

 

북한 대남 공작 기관인 정찰총국 대좌(대령급) 출신 고위 탈북민이 영국 BBC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간첩을 한국에 보냈다. 1990년대 초 북파 공작원들이 청와대에서 5~6년 동안 근무한 뒤 무사히 복귀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북 공작원이 청와대까지 침투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실로 충격적이다. 그는 지금도 “북 공작원이 남한 중요 기관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BBC는 “그가 폭로한 모든 내용을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신원과 일부 주장은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두 달 전 북한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시위를 벌인 일당이 구속됐다. 이들은 김정은 답방과 통일 묘목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시민 활동가란 간판을 내걸고 여당 대선 후보 선대위의 특보단에 들어가고 총선·지방선거에도 출마했다. 2018년엔 간첩 활동을 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공기업 감사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사드 대책 회의’에는 이적 판결을 받은 뒤 간판만 바꿔 단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과 그가 주도한 조직은 북 지령에 따라 종북 세력을 규합해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등 내란 선동까지 꾸몄다. ‘북 공작원 맹활약’이란 인터뷰 내용이 과거 일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이 탈북자는 “북이 숙련된 해커 6000명으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했다”고 했다. 실제로 몇 달 전에도 북 추정 해커들이 원자력연구원·핵융합연구원·항공우주연구원 등을 줄줄이 뚫었다. 원전과 핵연료, 전투기 도면 등 안보에 치명상이 될 핵심 기술들이 북에 넘어갔을 수 있다. 우리 가상 화폐 업체 돈도 털어갔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사이버 위기 경보를 5단계 중 가장 낮은 ‘정상’으로 내려놨다. ‘사이버 간첩’에도 문을 열어주고 있나.

 

그는 “북한 목표는 한국 정치를 (북에) 예속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이 한마디만 해도 한국 내부가 박수 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실이 그와 다르지 않다. 김여정이 “(대북 전단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이 정부는 4시간 반 만에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미 훈련을 없애라고 하면 “북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북이 한국을 겨냥한 핵·미사일 전력을 대폭 증강했는데도 북을 대신해 ‘제재 해제’까지 요구하고 있다. 북의 목표 달성인가.

 

-조선일보(21-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