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
1974년 프랑스에선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서거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1차 투표에선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독립공화당의 지스카르 데스탱에 43% 대 32%로 앞섰다. 하지만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데스탱이 1.6%p 차이로 전세를 뒤집었다. 새로 도입된 TV토론의 덕을 보았다. 프랑스 결선투표에서 벌어진 첫 역전극이었다.

▶결선투표는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때 상위 득표자 2명을 놓고 다시 투표하는 제도다. 당선자의 대표성을 높이고 사표(死票)를 방지할 수 있다. 러시아·체코·폴란드·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 수십 국이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두 번 치러야 하고, 결선에서 승자가 바뀔 수 있어 변동성이 심하다.
▶프랑스는 10번의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자가 세 번 바뀌었다. 1981년 미테랑은 결선에서 판세를 뒤집으며 7년 전 데스탱에게 당한 아픔을 되갚았다. 1995년엔 우파인 자크 시라크가 좌파인 리오넬 조스팽에게 역전승했다. 일본도 결선투표에서 역전이 일어나곤 했다.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1차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에게 졌으나 결선에서 역전해 총리 재집권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선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 결선투표가 유명하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내건 김영삼 후보가 1차에서 이겼지만, 김대중 후보가 결선에서 뒤집었다. 1차 투표 뒤 승리를 낙관한 김영삼 측이 방심한 사이 김대중 측이 대의원들이 묵는 여관 방을 훑었다고 한다.
▶결선투표는 후보 난립을 부른다. 지지율이 낮아도 2등만 하면 역전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2002년 프랑스에선 조스팽을 필두로 한 좌파 집권이 확실시되자 좌파 후보가 10명 가까이 난립했다. 이들의 득표율 합계는 60%가 넘었지만 도토리 키 재기였다. 아무도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황당한 결과에 좌파에선 “결선만 믿고 단일화를 외면한 참사”라고 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선 결선투표 실시 여부를 두고 이재명·이낙연 후보가 첨예하게 맞서있다. 이재명 후보가 1차에서 50.29%를 얻었지만 중도 사퇴 후보의 득표를 합치면 49.3%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장동 파문 여파로 마지막 일반 국민 투표에서 이낙연 후보가 크게 이긴 결과였다. 당 지도부는 ‘이재명 당선’을 선언했지만 이낙연 측은 결선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결선투표는 속성상 결과 예단이 어렵다. 자칫 법정 공방까지 갈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결선투표 논란의 결말은 이번 대선 판을 뒤흔들 수 있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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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추락하지 않는 사람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존 M. 쿳시 ‘추락’.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추락하셨죠?” 추락했다? 그래, 추락이 있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단하다? 그것이 그에게 맞는 말인가? 그는 자신을 점점 더 모호해져 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역사의 변방에 속하는 인물. 그는 말한다. “어쩌면 가끔씩 추락하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지요. 부서지지만 않는다면요.”
- 존 M. 쿳시 ‘추락’ 중에서
임기가 끝나가는 정권의 지지율이 40%대로 여전히 높다고 한다. K방역을 성공으로 이끈 리더, 최고의 외교 협상가, 전략가, 승부사이기 때문이란다. 경기지사는 대장동 게이트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반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TV 토론에 나왔던 이는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다.
소설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제자 멜라니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로 고발당한다. 사과하라는 학교 측 권고를 무시한 그는 대학교수직을 사임하고 딸 루시의 농장에 머문다. 그러던 어느 날, 괴한들이 침입하고 루시는 성폭행을 당한다. 딸을 지켜주지 못해 괴로워하던 데이비드는 그제야 멜라니의 부모를 찾아가 상처 준 것에 대해 사죄한다.
백인의 유색인종 차별 정책이 끝난 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백과 흑, 가해자와 피해자가 자리를 바꾸었을 뿐, 똑같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그린다. 데이비드는 아무런 가책 없이 살다가 가해자로 낙인찍혀 명예를 잃었고, 딸은 피해자가 되어 모든 걸 다 빼앗겼지만 추락의 끝, 그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용기 있는 삶이다.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이 사라진 우리나라는 다를까. 얼굴도 들지 못할 참담한 상황에서도 절대 추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잘못과 거짓의 혐의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소리로 결백과 청렴을 주장한다. 그래야 대중의 신뢰와 부와 권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락해야 할 때 추락하지 못하면 진실한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영원히 놓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까짓 게 왜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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