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광주 청년이 바라본 신군부 시대.. 정말 모든 게 ‘암흑기’였나]

뚝섬 2023. 4. 13. 08:29

[광주 청년이 바라본 신군부 시대… 정말 모든 게 ‘암흑기’였나]

[손에 손 잡고]

[노태우 조문 5·18 前 회장 “참회, 용서로 역사 한 페이지 넘기자”]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촌 오징어게임’의 생존자”]

 

 

 

광주 청년이 바라본 신군부 시대… 정말 모든 게 ‘암흑기’였나

 

[호남 통신]

 

캠퍼스의 낭만을 버리고 스펙 전쟁에 뛰어들어도 취직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대기업들이 서로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려 캠퍼스에 입사 원서를 뿌려댔다던 이야기는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거 다 운 좋게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 맞아서 그런 거야’라는 말도 들었지만, 막상 일해보니 스스로 준비돼 있지 않으면 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으며 무엇보다 내 고향 광주 시민들에게 큰 아픔을 준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해선 당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정치에만 초점을 맞추고 신군부 시대를 ‘암흑기’로만 평가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군부 시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공부해봤다.

 

먼저 구조 개혁에 성공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1980년은 2차 오일 쇼크로 물가가 치솟았고 재정 적자와 외채 증가에 중화학공업 과잉 중복 투자 문제까지 겹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었다. 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은 먼저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근로자 임금과 추곡 수매가는 묶고 예산까지 동결한 다음 수입 자유화를 추진해 보호받던 국내 기업의 경쟁을 유도하고 독과점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제정했다.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인기 없는 구조 개혁에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전두환은경제 대통령은 당신이야라며 김재익을 전폭 지원했다. 결국 물가가 잡히고 만성적 무역 적자도 흑자 구조로 바뀌고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 이상을 기록했으며 중산층도 두꺼워졌다.

 

미래 과학기술에 투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과학기술비서관 오명에게전자 산업 육성 대책반 맡겨 통신·전자·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금과 기술력 부족으로 주변 반대가 심했다. 전두환은 일본에 ‘한국이 공산 세력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주고 있으니 안보 경협 자금 100억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다. 결국 40억달러를 받아내고 반도체 생산 장비의 수입 허가도 이끌어냈다. 이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또 기업이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때 관세를 면제해 주고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도록 토지 매입을 허가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투자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술이 됐다.

 

우민화 정책이라 평가 받던 ‘3s(screen·sports·sex) 정책 다시 보게 됐다. 성 묘사에 대한 검열을 완화하고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정책 추진은 소득 성장에 따른 국민의 사회 문화적 자유화 요구를 수용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해당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에 대한 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일까?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지만 국민의 선택은 노태우였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 외교, 평시 작전권 회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추진해 성공시켰다. 그리고 국민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 제도를 확대했다. 이 시기 호남 지역에 광양제철과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됐고 새만금 개발 사업도 추진됐다.

 

그 시대엔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도 있었지만 이념을 떠나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던 엘리트 관료들과 그들의 제안을 외압 받게 보호해주며 추진케 리더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한 국민들이 있었다. 시기는 암흑기가 아닌 모두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완성한 시대인 것이다.

 

아픔과 차별을 겪어야 했던 고향 광주 어르신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런 글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또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갚을 수 없는 원한을 대물림할 순 없다. 지금 광주 시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도 과거를 딛고 일어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갖춘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5·18 피해 유족들에게 사죄하러 온 전두환·노태우의 후손들이 환대받은 것도 그런 의미 아닐까. 공과 과를 담담히 바라보고 교훈을 얻어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노동·연금 분야의 구조 개혁과 미래 과학기술 투자를 통해 다시 성장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해본다.

 

-박은식 의사·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조선일보(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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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 잡고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전쟁의 폐허와 가난을 떨쳐내고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기상을 찬미하는 듯한 노랫말에 우리 모두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후렴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지금도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는 이 상당수가 ‘손에 손 잡고’를 역대 올림픽 주제곡 중 최고로 꼽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그룹 코리아나가 부르고 있다./조선일보 DB

 

▶당시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손에 손 잡고’였다. 밖으로는 북방 외교로 그때까지 적이었던 나라들과 손잡았다. 1988년 2월 미수교국으론 처음으로 헝가리 무용단이 방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고, 양국에 상주 대표부가 설치됐다. 이후 5년간 45국과 손을 잡아 친구가 됐다. 유엔 남북 동시 가입까지 이뤄졌다. 서울 올림픽은 두 번의 반쪽 올림픽 이후 첫 전 지구촌 올림픽이었다.

 

▶안으로는 국민 화합 정책이 펼쳐졌다. 그해 3월 정부는 ‘광주 사태’로 불리던 5·18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정지용 등 월북 문인 100여 명 작품도 해금했다. “전환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민주화와 과거 청산, 밖으로는 탈냉전 질서에 대응”(’노태우 시대의 재인식’·강원택 등 지음)했다는 평가 그대로였다.

 

▶'손에 손 잡고’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3저(저유가·저물가·저환율) 호황과 겹쳤다. 1986~1989년 한국 경제는 연평균 12.1%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2.5%까지 떨어지며 기업들은 항상 구인난이었다.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기업을 골라 취직했다. 그때쯤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해 1990년 1월 서울의 자동차 등록 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 주말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래가 처음 울렸던 1988년 1인당 국민소득은 4400달러였다. 국민 80%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자부했다. 30년 만에 이 수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반목을 부추겨 이득을 취하는 정치 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몇 해 전 방영된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회 제목이 ‘손에 손 잡고’였다. 올림픽 개막식 피켓걸 경험을 자랑으로 여기던 주인공 덕선은 30년 뒤 이렇게 회고했다. “가슴 뜨거웠고,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처럼 신나고 싶고, 비상하고 싶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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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조문 5·18 前 회장 “참회, 용서로 역사 한 페이지 넘기자”

 

5.18 당시 광주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5·18 당시 광주 시민군 상황실장이던 박남선 전 5·18 구속자동지회 회장이 지난주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폭도 대장’으로 체포돼 고문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유족들 손을 잡아줬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이제는 화합 통합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며 분단된 나라가 통일은커녕 지역·정파·계층으로 나뉘어 더 싸우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조문 후 격려 전화를 300통 가까이 받았다며 “내 뜻에 공감하는 광주 사람들도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장, 조문, 조기 등을 놓고 여론은 또 갈렸다. 박씨는 늦었지만 용서를 비는데 받아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사자가 광주에서 육성으로 사과하면 더 좋겠지만 “병상에서 끌고 내려오라고 할 순 없지 않나”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소뇌위축층 등으로 10년 넘게 병상에서 필담 정도만 할 수 있었다. 대신 아들을 여러 차례 광주에 보내 사죄의 뜻을 전한 것은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그래서 조문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일부가 “사죄 쇼”라고 비난하는데 대해 박씨는 “사과·반성 안 한다고 욕해왔는데 사과하는 걸로 또 문제 삼는 건 너무 편협하다”고 했다. 특정 정치 세력이 ‘5·18 정신’을 독점하려 한다면 “광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장을 안 하면 모를까 정부가 예우를 결정했는데 그 수반인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을 안 한 건 모순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은 정파나 지역 대표가 아닌 만큼 “화합 메시지 차원에서 조문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가장에서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은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박씨는 북한군 개입설 같은 5·18 왜곡이 ‘화합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용서하려는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에서 26살 때 총을 들었던 내가 내일모레면 70이다. 언제까지 ‘학살 원흉 죽이자’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가해자는 참회하고 피해자는 용서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겼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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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촌 오징어게임’의 생존자” 

 

‘오징어게임’은 빚에 쪼들린(be up to their necks in debt) 한국인들이 패배 형벌(penalty for losing)을 죽음으로 정해놓고 필사적으로 경쟁하는(desperately compete against one another) 현실로 묘사된다. 그런데 미국의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F)’는 한국 자체가 그 드라마의 주인공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왼쪽부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박해수), 성기훈(이정재), 강새벽(정호연)./넷플릭스

 

한국은 무자비한 ‘지구촌 오징어게임’(ruthless ‘global Squid Game’)의 생존자다. 196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아이티 또는 가나와 비슷했다. 인구 40%가 절대 빈곤 속에 살았다(live in absolute poverty). 한국은 그때부터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인정사정없는 지구촌 경쟁의 참가자가 됐다(become a contestant in a merciless global competition).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하려 했다(be willing to do anything to survive). 게임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규칙을 변칙 적용하는(bend the rules)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동안 민주주의와 수많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자유시간, 복지, 환경도 희생했고, 그 사이에 과로사(過勞死·death from overwork)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교육이 생존전략(surviving strategy)이 됐다. 글을 아는 식자율(literacy rate)이 1945년 22%였던 것이 1970년엔 90%가 됐다. 시골 농부들까지 논밭 팔고 빚을 내서(take out loans)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소를 팔아 등록금을 대면서 상아탑은 ‘우골탑(monument of cow skeletons)’이 됐다.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놀이들은 한국이 경제 발전 동안 견뎌야(endure during its economic rise) 했던 경쟁들과 기괴할 정도로 흡사하다(eerily parallel the competitions).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살인 로봇 ‘영희’는 한국 경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시하고 감시했던(order and surveil its every movement)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닮았고, 줄다리기(tug-of-war)는 일본·대만과의 힘겨웠던 생존경쟁(struggle for existence)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한번만 실수해도 떨어져 죽는(fall to death)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에서 맨 마지막에 선 주인공은 뒤늦게 산업화에 나서서 일본 등 앞서 가는 나라들의 실수에서 배워가며(learn from the mistakes of its predecessors) 경제 대국 진입에 성공한 한국을 보는 듯하다.

 

‘오징어게임’에는 부유한 외국인들이 등장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선두 주자들을 두고 내기를 즐기는(enjoy betting on their preferred frontrunners)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특혜융자(preferential loan)나 국가신용등급(sovereign credit rating)을 좌지우지하는 채권국 모임 파리클럽이나 G7 선진국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은 이런 처절한 지구촌 오징어게임에서 살아남았고, 마땅히 가져야 할 엄청난 상금을 손에 넣었다(rightly earn an enormous jackpot). 그러나 그 생존은 그만한 대가를 치른 끝에 온(come at a price) 것이었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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